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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이혼대법-56화 (56/206)

<기적의 이혼대법 56화>

“우측 전방! 우군 예비군 빨리 투입해!”

천호의 명이 떨어지자 백인장 한 명이 부대를 이끌고 구멍 난 전선을 메웠다.

소주성의 성벽 위는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변변한 공성 병기도 없건만 왜구들은 조잡하게 만든 사다리와 갈퀴 달린 밧줄로 잘도 성벽을 올랐다.

서걱. 촤악.

적사결도 성벽 한 곳에서 쉴 새 없이 올라오는 왜구를 썰고 있었다.

‘흐음…… 이상한데…….’

일 초식 이상 쓰지도 않았다지만 왜구들의 실력이 예상과는 너무도 달랐다.

아니 기대와는 다르다 해야 될 터였다.

쉬익.

그때 벼락같이 솟구친 왜구가 일도를 내리그었다.

쩌엉.

사왕으로 일격을 받아본 적사결은 미간을 찌푸렸다.

‘역시 이상해.’

오른손 손목이 반월을 그리며 왜도를 흘려내고 가로로 긋자 왜구의 목에서 핏줄기가 치솟았다.

동시에 앞차기로 왜구의 몸뚱아리를 성벽 아래로 떨궈버렸다.

죽은 시체는 훌륭한 무기가 되어 개 떼처럼 모여드는 왜구의 위로 떨어졌다.

“야, 백리 애송이!”

적사결의 부름에 근처에서 왜구를 상대하던 백리황이 다가왔다.

“네, 적운 님.”

“아까 왜구가 천마신교의 마인 같다는 말을 했지?”

“그랬죠.”

“상대해 보니 어때? 그런 것 같아?”

백리황은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했다.

그때 적사결이 갑자기 사왕을 찔러 왔다.

“히익!”

백리황은 고개를 비틀며 사왕을 피하자 뒤통수에서 뜨끈한 액체가 흘러내리는 것이 느껴졌다.

적사결이 백리황의 뒤를 점한 왜구의 머리통을 사왕으로 꿰뚫은 것이었다.

“하여간 모지리 새끼. 방심하지 마라 그렇게 얘기해도 소용이 없구먼.”

“죄…… 죄송합니다.”

“됐고. 느낀 바나 말해 봐.”

“마공을 상대해 보지 않아서 모르겠는데 그런 느낌은 전혀 받지 못했습니다.”

백리황이 대답하자 적사결은 그의 엉덩이를 걷어차며 말했다.

“알았으니 가서 자리 지켜. 오늘 저녁 제삿밥 먹으려면 아까처럼 방심 많이 하고.”

백리황이 머리를 긁적이며 달려가자 적사결은 혀를 찼다.

“순진한 건지…… 집중력이 좋은 건지…… 쩝.”

그러면서 사왕을 좌우 연속적으로 베어 냈다.

광혈수라공의 연환검초인 격혈경혼이었다.

후두두둑.

토막 난 왜구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죽은 고깃덩이로 변하자 왜구들은 더 이상 덤벼들지 못하고 주춤거렸다.

이는 주변에 있던 아군조차 마찬가지였다.

적사결의 압도적인 기세는 피아를 막론하고 영향을 미쳤다.

그 순간 전장과 어울리지 않는 정적이 피어올랐고 적사결, 단 한 명만이 존재감을 발하고 있었다.

위지휘사 조정생은 중앙 군루에 올라 사문의 현황에 대한 보고를 받고 있었다.

“동문의 공세가 끝났습니다. 놈들이 후퇴하고 있다는 보고입니다.”

“서문도 그렇습니다. 다행히 첫날의 일전은 무사히 마쳤습니다.”

이어지는 남문과 북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보고를 받은 조정생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입꼬리를 올렸다.

“장군.”

부관의 말에 조정생이 고개를 돌렸다.

“할 말이 있으면 해 보게.”

“수성의 이점을 살린 덕에 적의 기세가 한 풀 꺾였습니다. 하니 야습을 해 봄이 어떠신지요?”

“불가하네. 자네는 여러 해 왜구를 상대해 보고도 백병전이 머릿속에 떠오르는가?”

조정생의 되물음에 부관은 안타까운 한숨을 쉰 채 말했다.

“소장은 수성만 해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놈들은 약탈자이지 않습니까.”

지난한 수성전이 계속되면 놈들은 먹잇감을 찾아 다른 곳으로 떠날 것이 분명했다.

점령이 아닌 약탈이 목적이기에 그런 행동 양식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소주라 버틸 수 있는 것이지 인근 중소 도시는 하루도 버티지 못할 것입니다. 더구나 남경에 계신 도지휘사의 파발을 받지 않았습니까.”

강소성의 지방군권을 지닌 실권자가 도지휘사.

그는 공식적으로 소주에 지원군을 파견 않겠다는 파발을 전했고 그 사유는 남경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하나 그것은 명분일 뿐 실제로는 제 한 몸을 보신하기 위해 군사를 보내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지금의 병력으로는 소주를 지키기에도 벅차네.”

“하면 무림인들에게 야습을 맡기면 어떻습니까? 그저 놈들의 식량 저장고를 불태우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무림인은 불빛 하나 없는 밤에도 뛰어난 시력을 자랑했고 기척을 죽인 신법은 기습 작전에 안성맞춤이었다.

“장군 설사 실패하더라도 놈들은 야습을 경계할 것이고 이는 대낮에 치르는 전투에도 영향을 미칠 겁니다.”

야간의 기습 공격이 이루어지면 경계병을 세우더라도 숙면을 취하기 어려워진다.

언제 적이 나타나 목줄기에 칼을 들이밀지 모르니 말이다.

“좋네. 야습을 허락하지. 하나 전투가 아닌 오직 식량을 없애는 데 주력해야 하네.”

조정생의 허락이 떨어지자 부관은 절도 있게 읍하며 대답했다.

“맡겨 주십시오, 장군. “

*   *   *

적사결은 전장에서 구한 왜도를 들고 이리저리 살폈다.

과하지 않게 유려하게 곡선을 그리며 중원의 도보다 폭이 좁은 도신.

독특한 형태였지만 역시 뛰어난 무구라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칭. 칭.

사왕과 부딪혀도 이빨이 나가지 않고 불꽃을 튀긴 왜도는 뛰어난 내구성까지 지닌 듯했다.

‘좀 더 세게 해 볼까.’

쉬익. 채애앵.

힘껏 부딪혀 보자 이번에는 달랐다.

사왕의 이빨이 왜도의 절반까지 파고든 것.

과거 사왕을 얻은 무기상에서 현철이 섞인 검을 단숨에 잘랐던 것을 생각하면 탄성이 절로 나왔다.

‘고작 해적 나부랭이가 이런 걸 쓴단 말이야?’

가볍고 내구력이 좋은 데다 예기도 뛰어난 편.

일개 해적이 쓰기엔 지나친 감이 있었다.

‘백리 애송이가 말한 왜구의 특징 두 가지 중에 한 가지는 틀렸고…… 다른 한 가지는 맞고…… 뭐야 이거…….’

그저 상대한 왜구들의 수준이 낮아 그런 것일까.

적사결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성곽에서의 전투를 복기해 보았다.

한데 수상한 점은 또 있었다.

‘그러고 보니 몇몇 놈들은 중원의 무공 흔적이 보였단 말이야…….’

단순한 초식의 형이었고 그나마도 어설프지만 분명 그러했다.

설마 왜구가 중원의 무공을 훔쳐 배운 것일까?

적사결은 이곳의 사정을 모르기에 당장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

‘뭔가 구린내가 난다. 썩은 구정물 같은 냄새가…….’

적사결은 반쯤 부러진 왜도를 바닥에 던져 버리고 자리를 옮겼다.

으슥한 골목으로 들어가자 바닥에서 검은 인영이 슥하고 솟아올랐다.

“주군, 하명하실 것이라도 있으십니까?”

십이월이었다.

강소성에서 첩보 활동을 했기에 이곳의 사정을 잘 알고 믿을 수 있는 수하였다.

적사결은 자신의 생각을 말해 주었고 십이월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주군의 말대로 수상한 점이 있습니다. 속하의 판단으로 그들은 가왜가 아닌가 사료됩니다.”

“가왜? 그건 또 뭐야?”

“왜구로 변장한 중원인입니다.”

“뭐? 중원인이 왜구 행세를 왜 하는 거지?”

적사결은 이해되지 않는다는 어투로 물었다.

“해금 정책 때문입니다. 나라에서 타국과의 교역을 금지하기 때문에 해상 무역을 원하는 상인들이 왜구 행세를 하며 밀무역을 하는 것이지요.”

십이월의 설명에 적사결의 표정이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졌다.

“지금…… 장사치 새끼들이 교역 좀 금지시켰다고 해적질을 한다는 말이냐? 백성들의 목숨을 담보로?”

“주군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해적왕으로 불렸던 왕직 이후로 가왜는 거의 근절되었으니까요. 속하가 확실히 알아보겠습니다.”

“알아는 보거라. 하나 아마 가왜라는 개새끼들이 맞을 것이다.”

적사결은 확신하듯 말을 이었다.

“해적왕이라 불린 놈이 있었다면 이권이 상당했다는 뜻. 하면 그 자리를 노린 다른 놈도 있었겠지. 고래로 돈과 권력에 맛을 들인 놈들은 근절이 안 되니까…….”

왜구 특유의 기세가 없었던 이유. 또한 어째서 놈들에게서 중원의 무공 흔적을 엿볼 수 있었는지.

모든 추측이 가왜라는 답변 하나로 풀렸다.

놈들은 왜구 행세를 위해 옷차림과 왜도라는 장비로 변장을 한 것이었다.

“어떤 새끼들인지 알아 와. 일만의 인원을 동원할 정도라면 중소 상단 한두 개가 장난질 친 건 아니겠지. 덩치 큰 놈들 위주로 파다 보면 쉽게 꼬리를 잡을 수 있을 거다.”

“존명.”

십이월은 신형을 바닥으로 꺼드리며 신속하게 움직였다.

“새끼들이 뒈질려고…… 동포끼리 뒤통수를 치고 제 배 속을 불려?”

적사결은 이를 바드득 갈며 서늘한 안광을 빛냈다.

“적운 님 어디 다녀오십니까?”

백리황이 광장으로 나온 적사결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무슨 일 있느냐? 꽤 어수선한 것 같은데.”

“곧 야습을 나갈 것이기에 작전을 수행한 인원을 추리는 중입니다.”

“야습? 성 밖을 나간다는 말이냐?”

“그렇습니다. 무림인들로 구성해 적진의 식량 창고를 불태우는 목적이라 합니다.”

“잘됐구나. 책임자가 누구냐?”

“본가의 감영대주입니다.”

“가서 본좌도 참여하겠다. 전하거라.”

“적운 님께서요?”

“그래.”

“알겠습니다.”

백리황은 그대로 조르르 달려갔다.

잠시 후 돌아온 백리황을 따라 군영으로 가니 백리세가 폭풍대의 대원들이 모여 있었다.

폭풍대는 백리세가에서도 경공에 특화된 이들, 기습에 최적화된 무인들이었다.

“오셨습니까.”

감영이 포권을 하며 백리황과 적사결을 맞이했다.

“적 대협께서도 작전에 참여하신다 들었습니다. 적진 깊숙이 들어가야 하니 위험할 터인데 괜찮으시겠습니까?”

“괜찮소. 모두가 목숨을 걸고 싸우는데 위험한 게 대수겠소.”

“역시 소가주께서 믿고 따를 만한 분이십니다. 하면 함께하시지요.”

감영은 감복한 얼굴로 다시 포권을 취하고는 작전 설명을 시작했다.

“왜구의 진지 형태로 보아 식량 저장고는 대략 스무 군데로 추정됩니다. 작전에 나갈 인원은 총 백 명. 하니 다섯 명씩 조를 이루어 야습을 감행할 것입니다. 적 대협은 제가 속한 조에서 함께 움직이시지요.”

“아니. 우리는 따로 움직일 것이오.”

“우리…… 라니요? 혹시 따로 조원을 구하셨습니까?”

“여기 있지 않소. 아마 이중에서 가장 날랜 무인일 텐데.”

적사결은 백리황의 어깨를 짚으며 말했다.

“예? 저요? 적운 님, 전 아직 이런 작전에 나가 본 적이 없습니다.”

“누군 연습하고 나간다더냐. 원래 이런 기습 작전은 실전을 통해 경험을 쌓는 법이다.”

“하…… 하나 제가 방해가 될 수도 있는데…….”

“또. 또 간이 작아지구나. 쯧쯧.”

적사결은 혀를 차며 백리황의 머리를 부비적거렸다.

“본좌와 함께 갈 것이다. 스스로가 못 미더우면 본좌를 믿거라, 알겠느냐?”

“예…… 예…….”

백리황은 머쓱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적운님께서는 따로 생각하시는 목적이 있으십니까?”

감영의 물음에 적사결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인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식량 저장고가 불타는 그 순간, 적진이 혼란한 틈을 타 할 수 있는 기습 작전 중 가장 효과가 좋은 것.”

“설마 적장의 암살입니까?”

“바로 그렇소.”

적사결의 대답에 조장급들이 웅성거리며 부정적인 의견을 내비쳤다.

성공한다 해도 일만 군세의 중심에서 무사히 빠져나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아까의 전투에서 상대해 보니 놈들의 실력이 생각보다 형편없었소. 더구나 경공은 말할 것도 없지. 뛰어난 신법을 펼칠 수 있었다면 성곽을 넘는 데 대나무 사다리나 밧줄 따위가 필요 없었을 테니까. 그런 자들이 십만이 모인다 한들 어둠을 틈타 움직이는 절정 고수를 잡을 순 없소.”

적사결의 설명에 감영은 고심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가능하겠습니다. 관부에서는 식량 저장고만 기습하라 명했지만 무림인인 저희가 꼭 그 명령을 그대로 수행할 이유는 없지요.”

“그럼 동의한 것으로 알겠소.”

“단, 두 분만으로는 문제가 있습니다. 스무 곳에 달하는 야습조의 행동을 예측하고 시기를 맞추는 것은 어렵지 않겠습니까?”

“그 말은?”

“예, 저도 함께 하겠습니다.”

감영 부대주는 검갑을 툭 건드리며 말했다.

“조장은 그대가 아닌 본좌가 될 텐데 괜찮겠소?”

“작전 입안자가 장을 맡는 것은 전장의 관례입니다. 문제없습니다.”

“하면 그리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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