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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이혼대법-55화 (55/206)

<기적의 이혼대법 55화>

“저…… 적운 님. 참으십시오.”

백리황이 적사결의 성정을 알기에 화들짝 놀라며 팔을 붙잡았다.

“놔라. 너는 소가주라는 놈이 이 상황에서 무얼 하느냐? 가주가 부재중이면 그 대행은 네가 아니더냐.”

“……저, 저기 그렇긴 한데…….”

“이것 봐라? 앞서 네 스스로 한 맹세는 다 까먹은 거냐? 아니면 그게 지금 당당한 후계자의 모습이란 것이냐?”

적사결의 말에 백리황이 이를 아득 물며 고개를 들었다.

“눈빛은 좋구나. 어디 네가 맡아 보겠느냐?”

“네. 그리하겠으니 적운님께선 잠시 물러나주십시오.”

수틀리면 박살내는 적사결이니 백리황은 자신이 나서는 게 낫다고 여겼다.

“좋다.”

적사결이 의자에 기대앉자 백리청이 일갈했다.

“이놈! 아까 노부를 도발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소가주의 뒤에 숨는 것이냐!?”

“그만하십시오. 숙조부님.”

백리황은 자신이 나서며 그 말을 받았다.

“지금 저자를 두둔하는 것…… 인가?”

백리청은 하대를 하려다 백리황의 외모 때문에 평대로 말투를 바꾸었다.

자신보다 늙은 외모라 아무래도 껄끄러운 모양이었다.

“두둔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소 과격한 부분은 있었으나 틀린 말이 아니지 않습니까.”

“하면 노부가 틀렸다 이 말인가?”

“어느 쪽도 틀리다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더 중요한 것을 보자는 말이지요. 본가는 무가입니다. 우리가 무공을 익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평범하게 무과에 나가 관직에 오르기 위함입니까?”

백리황의 말에 백리청을 비롯해 장로들은 바로 답하지 않았다.

“아니면 도가처럼 도를 구해 신선이 되기 위함입니까? 그것도 아니면 불가처럼 심신을 닦아 열반에 들기 위함입니까?”

백리황의 연설에 답을 한 이는 검풍대주 감영이었다.

“작게는 가문을 지키고 크게는 약자를 보호하고 무사로서 도리를 다하기 위함이지요.”

감영의 말에 대주들은 고개를 끄덕였고 백리황도 맞장구를 쳤다.

“맞습니다. 그 약자들이란 바로 백성, 민초라 불리는 그들이지요. 민심이라는 그들의 지지가 있어 본가는 강소의 명문 무가로서 지금의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겁니다.”

백리황은 대장로 백리염을 보며 재차 물었다.

“본가가 돈을 바라고 약자를 외면한다면 한낱 장사치와 다를 게 무엇이겠습니까?”

“장로들도 그 뜻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 하나 지금 소가주는 이상을 보고 현실을 보지 못하고 있네. 제 몫을 다하는 고수 한 명을 키우는 데 드는 비용이 얼마인지 아는가? 본가가 지금의 규모를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과 필요한 인력의 수는 또 어떤가?”

“…….”

백리황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아직 재정에 대한 부분은 무지했으니까.

“과거 명문 무가라 불린 곳이 한둘이었겠는가? 가세가 기울고 사람이 떠나면 명문이라는 명성은 그저 허울 좋은 껍데기일 뿐이지. 본가 역시 한때 그런 과거가 있었지만 선조들께서 피눈물을 머금고 악착같이 노력하시어 지금의 성세를 이룬 것이야. 크흠.”

백리염의 말에 장로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평생을 바친 백리세가에 닥칠 불행은 원천 봉쇄를 하고 싶은 것이었다.

“저희도 피눈물을 머금고 악착같이 재기하겠습니다. 약자를 돌보다 그리된다면 달게 받아들이고 죽을힘을 다해 지금보다 더한 성세를 이룰 것입니다.”

“뭐라?”

백리황의 말에 백리염의 눈썹이 크게 휘었다.

“선조들이 하신 것을 후손인 저희가 못할 리 없습니다. 아니, 선례가 있으니 장로님들께서 이끌어 주신다면 더 빨리 재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백리황이 미소 지으며 대주들을 바라보자 감영을 비롯한 무인들이 우렁차게 답했다.

“하하하. 소가주의 말이 맞습니다.”

“까짓것 다시 일어나면 되는 거 아닙니까!”

“제가 낭인 생활을 다시 해서라도 입에 풀칠은 안 하게 해 드리겠습니다.”

대주들의 지지에 힘입어 백리황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제가 믿고 따르는 분께서 가르쳐 주신 말이 있습니다.”

물론 적사결의 가르침이었다.

“수뇌부는 오직 수하들이 제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을 반드시 마련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희는 나가 싸우겠습니다. 돈이 부족하면 수뇌부이신 아버님과 장로님들께서 벌어 오십시오. 못하시겠다면 그 자리 내려놓고 풍령전에서 바둑이나 즐기고 말입니다.”

백리황은 가슴이 쿵쾅거리고 식은땀이 흘렀지만 왠지 모를 통쾌함을 느끼고 있었다.

“큭. 큭. 큭큭큭. 푸하하하하.”

백리염이 실소를 흘리더니 참지 못했는지 이내 박장대소했다.

“이거 괴의한 기사를 겪었다 했더니 기사가 아니라 기연이었구나.”

“예?”

“말 한 번 잘했다는 말이다.”

백리염의 말에 장로들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하나같이 이건 또 무슨 말이냐는 눈빛들이었다.

“군군, 신신, 부부, 자자(君君, 臣臣, 父父, 子子). 제몫을 다할 자리는 따로 있는 것을. 늙은이들이 너무 오지랖을 부렸구먼그래. 허허허.”

“그 말씀은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까?”

“허락은 가주 대행직을 맡은 이 부인이 해야겠지. 늙은이들은 부족한 재정을 챙기고 인력을 충당하느라 바쁠 테니 말이야.”

백리염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숙조부님!”

백리황이 포권하며 활짝 웃었다.

“지금 네 자리는 소가주이니 마땅히 그런 패기를 보여야지. 그간 너무 조심성 깊고 여린 부분이 걱정이었는데 이제야 안심이 되는구나. 하나 앞으로 너에게 다가올 가주의 직위는 다르다. 우리가 언급한 현실도 살펴야 하고 아랫사람들에게 이상도 심어 줄 수 있어야 한다. 너는 그 점을 명심, 또 명심하거라.”

“숙조부님의 가르침, 가슴 깊이 새기겠습니다.”

백리황은 목례를 한 후 이옥연을 돌아보았다.

이옥연은 싱긋 웃으며 허락을 내렸다.

“출진하거라. 하나 지금의 몸으로 본가를 대표할 수는 없으니 참모 역할을 맡는 것이 좋을 듯하구나.”

“알겠습니다.”

백리황이 이옥연에게 포권하자 대주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일제히 포권했다.

‘어휴, 빨리 빨리 좀 가자. 느림보 거북이들아.’

적사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숨을 푹푹 쉬었다.

*   *   *

소주성.

소주 외곽을 직사각으로 둘러싼 성곽은 운하가 이어진 외성하라는 해자를 두른 요새였다.

배가 드나드는 수문과 도보로 출입이 가능한 성문은 활짝 열려 백성들을 부지기수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소주 인근의 주민들로 왜구의 진진격 소식에 다급히 모여든 것이었다.

“그나마 소주가 천하에서도 보기 드문 대도시라 다행입니다.”

부관의 말에 소주의 위지휘사 조정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주는 항주와 함께 천하제일 향락의 도시이자 상업이 발달한 운하 도시였다.

그런 이유로 소주는 커질 수밖에 없었고 규모만 따진다면 강소성 제일 도시라 불리는 남경보다 크다고 할 수 있었다.

“모든 유민들을 받아들인 후 곧바로 비상 감시 체제로 돌입할 것이니 천호들에게도 전달토록 하라.”

조정생의 말에 부관은 짧게 읍한 후 자리를 떠났다.

‘후우…… 만 명이라…… 우리만으로 소주를 방어하기에 벅찬 규모일진대…….’

위소는 본래 오천여 명에 달하는 지방 방위군이다.

하나 지금의 병력은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이천여 명이었고 이는 잦은 반란과 왜구와의 전투 때문이었다.

병력 충원이 이뤄지지 않으니 조정생은 간신히 위소를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황실이 정사를 돌보지 않고 민심을 등한시 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도대체 나라꼴이 어찌 되려고…… 후우…….’

중앙의 명령 없이 지방은 함부로 모병을 할 수 없었고 그런 연유로 위소의 병력이 충원되지 않은 것이다.

대규모 왜구의 진격에 급하게 건장한 남성을 모집하고 있지만 부대 편성을 할 시간이나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다행히 수성이니만큼 없는 것보다 나을 터…… 하나 역시 무림 문파의 힘이 꼭 필요한데 아직인 것인가…….’

무림의 유력 가문인 백리세가에 요청을 해놓은 상황.

하나 아직 답변이 없었기에 조정생은 초조하게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성곽 위에서 긴 한숨을 쉬는 그때였다.

“장군. 백리세가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오, 그래? 드디어 왔구나. 어디냐? 앞장 서거라.”

수하를 앞세워 조정생이 향한 곳은 남문 앞이었다.

그곳에는 백리세가 뿐만 아니라 소주의 군소방파에서 모인 무인들이 자리해 있었다.

“백리세가 검풍대의 대주 감영이라 합니다. 위지휘사를 뵙습니다.”

“반갑소. 조정생이라 하오. 이리 와주어 고맙구려.”

“아닙니다. 무사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지요.”

조정생은 흐뭇하게 미소 지으며 무인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 수는 위소의 병력과 비슷한 이천 명 정도였다.

“한데 이곳에 모인 자들이 전부인 것이오?”

“각 문파의 정예 무인들만 모은 것입니다. 이에 더해 낭인은 물론이고 상단과 표국의 예비 무사까지 모으고 있으니 도합 오천 명 정도가 될 것입니다.”

“오오, 큰 힘이 되겠구려. 그 정도면 소주를 지키는 데 충분할 것이오. 하하하.”

조정생은 고개를 끄덕이며 희망이 보임을 느꼈다.

정규군이 아니라지만 실전을 겪은 자들이 7천여 명 정도. 모병을 통한 일반병과 소주 자체가 보유한 관병과 포쾌, 세도가의 사병까지 포함한다면 억지로 일만의 군세를 꾸릴 수 있었다.

수성의 이점을 생각한다면 충분한 병력인 것이다.

“백리 애송아, 왜구라는 놈들 해적이라 하지 않았냐? 수적이나 산적 같은.”

감영과 조정생의 대화를 듣던 적사결이 백리황에게 물었다.

“네, 왜인들로 구성된 해적이죠.”

“만 명이나 된다지만 그래봐야 도적놈 새끼들인데 저 장수는 수성을 할 모양이네?”

비슷한 규모라면 싸워 볼 만하지 않은가.

적사결은 소주의 인근 현과 마을이 피해를 볼 수도 있는데 성 안에 들어앉아 지키기만 할 것 같은 조정생이 이해되지 않았다.

“적운 님은 왜구를 보신 적 없으십니까?”

“없지.”

서북의 변방, 신강에서 평생을 보낸 자신이었다.

바다도 제대로 보지 못했기에 왜구는 더더욱 본 적 없었다.

“어른들 말씀으로는 왜구들 실력이 대단하다고 했습니다. 일대일이라면 일류 고수가 아닌 한 제압하기 힘들다고 말입니다.”

“뭐? 그게 무슨 말이야? 일류 고수가 길바닥에 널린 돌멩이도 아니고 해적 새끼들이 그렇게 강하다고?”

“강한 것도 있지만 특유의 기세라는 게 있다고 하셨어요. 마치 마교의 마인들을 상대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하셨는데 뭐랄까 더 섬뜩하고 음산한 기분이 든 답니다. 그래서 심신을 완벽히 통제할 수 있는 일류 고수가 아니라면 본 실력의 반도 발휘가 안 된다 하시더군요.”

백리황의 말에 적사결은 대충 예상이 갔다.

상대해 봐야 알겠지만 마공과 같이 상대에게 심적인 영향을 주는 기세가 있는 것이다.

마공의 경우 상대를 흥분시켜 자제력을 잃게 만들고 충동적으로 만드는 공능이 있었다.

마기 자체가 마치 전염병처럼 상대를 옭아매는 것이었다.

‘흥미롭네. 마공과 비슷하다니…….’

중원을 뒤져도 마공과 비슷한 효과를 내는 무공은 없었다.

한데 바다 건너 왜국의 도적놈들이 유사한 기예를 지니고 있다?

마도의 종주인 천마신교의 지존으로서 흥미가 동할 수밖에 없었다.

“참! 그리고 왜구가 강한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또 뭔데?”

“도검이요. 왜도라 부르는 놈들의 도검이 무척이나 뛰어나다는 얘길 들은 적이 있습니다.”

“얼마나 뛰어나길래?”

적사결도 왜도를 모르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는 몰랐다.

“어지간한 명검이 아니면 왜도와 열댓 번만 부딪혀도 부러진다 들었습니다.”

“그게 정말이야? 허…….”

무슨 청동기와 철기도 아니고 그 정도로 격차가 난다니.

적사결은 무의식중에 사왕을 쓰다듬고 있었다.

“이거야 원, 어디가 중원인지 모르겠군.”

“예?”

“아니다. 아무것도.”

적사결은 씁쓸하게 사왕의 도파를 만지작거렸다.

중원은 세상의 중심이란 의미.

한데 도검 제작에 있어서는 중심이 아니라 변방인 것만 같았다.

‘파사의 도와 왜의 도라…… 재밌겠군.’

적사결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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