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이혼대법-54화 (54/206)

<기적의 이혼대법 54화>

*   *   *

“찾았네! 찾았어!”

진덕개가 방문을 벌컥 열며 외쳤다.

그 모습에 방 안의 네 사람 중 붕산개와 삼살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정말인가!?”

붕산개가 참지 못하고 되묻자, 숨이 찬 듯, 진덕개는 바로 말하지 못하고 고개를 먼저 끄덕였다.

“다행이오. 보국공께서 무사하신가 보군.”

나머지 두 사람은 금의위 왕욱과 진무백이었다.

그들은 사월이 흘린 사왕의 모조품을 쫓다 낙양분타의 혈사에 대한 소식을 듣고 개방도들과 합류하게 된 것이었다.

보국공으로 불리는 이천억의 실종도 중대한 일이었고 개방의 정보력으로 사왕을 추적할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이래저래 일거양득의 목적으로 함께하게 된 것이다.

“도대체 어디에 계신 것인가?”

삼살개의 물음에 호흡을 가다듬은 진덕개가 말했다.

“강소성 소주. 백리세가에 머물고 계시네.”

“낙양에서 사라진 분이 소주에서 나타나? 더구나 백리세가?”

하남성과 강소성은 말을 타고 족히 열흘은 달려야 할 먼 거리였다.

“혹시 납치된 분타주를 구한 것이 백리세가인가?”

삼살개의 물음에 진덕개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납치된 것은 아니네. 분타주님께서 스스로 그곳에 가신 게야.”

“왜 그리 생각하는가?”

“분타주님의 행방을 알아낸 연유가 금칠대 때문이네. 금칠대에 연통을 넣으셨기에 알 수 있었던 것이지.”

“그렇군.”

삼살개는 즉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이 금칠대에 심어 놓은 사(四) 요원. 그는 삼당의 당주들이 혹시나 싶어 박아 놓은 수하였기 때문이었다.

진덕개는 사(四) 요원의 연락을 통해 분타주가 납치된 것이 아닌 스스로의 결정으로 강소로 향했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리고…… 위사님들께 알려 드릴 것도 있습니다.”

진덕개의 말에 왕욱과 진무백이 경청했다.

“무엇이오?”

“소주의 분타에서 전달받은 바로 그곳에서 이형의 도를 찬 무인을 발견했다는 첩보가 있었습니다. 사자림 인근 대로에서 확인한 개방도가 있다 하더군요.”

“그게 정말이오?”

말을 한 이는 진무백이었다.

그러고는 왕욱을 바라보며 눈빛으로 말했다.

‘놈입니다.’

왕욱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모조품으로 확인된 이형의 도는 모두 하남성 인근의 성을 넘지 못했다.

아마도 제작과 유통을 거치다 보니 그 이상 벗어나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한데 두 개의 성을 넘은 거리, 강소성에서 발견되었다면 진범일 가능성이 높았다.

“아무래도 저희도 소주까지 동행해야 할 듯합니다. 이거 좀 더 신세를 져야겠군요.”

왕욱의 말에 붕산개가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하하, 신세라니요. 얻어먹는 저희가 해야 할 말이지 않습니까.”

삼살개와 진덕개도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들은 빌어먹는 게 일상인 거지였으니까.

*   *   *

후웅. 웅. 웅.

적사결은 허공에 금단을 생성하고는 곧 심력을 거두었다.

그러고는 풀어헤쳐진 기운을 재흡수하는 적사결만의 기예로 다시금 받아들였다.

토한 걸 다시 먹는 기분이었지만 참고 시전하는 이유는 있었다.

금단 상태에서는 기운을 빼오는 것이 안 되니 할 수 있는 걸음마부터 시작하는 것.

일단은 익숙해지게 만드는 지난한 작업 중인 것이었다.

후웅. 웅. 웅. 푸화악. 슈우우.

세 번째 기운 재흡수를 하고 적사결은 옆에 놓인 수통을 들었다.

“가르르르. 푸웃.”

입안을 헹군 적사결은 다시금 가부좌를 틀었다.

‘역시 단전에서 내공을 직접 쓰는 것보다 금단으로 만든 후 받아들이니 덜 역겨워. 신체 외부에서 구현 중에 천지간의 기운이 섞였기 때문인가…….’

구정물이 약간 희석된 느낌이랄까.

구역질이 안 나는 것은 아니었지만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뭔가 한 걸음만 더 걸으면 알 것 같기도 한데 말이야…….’

눈앞에 무의 벽이 있다는 것은 피부로 느껴질 만큼 확연히 알 수 있었다.

손가락에 침을 발라 누르면 뚫릴 것 같은 희미하고 얇은 창호지 같은 벽.

하나 몇 번이나 그 벽을 넘어 보았기에 적사결은 알고 있었다.

뚫릴 것 같지만 계기가 없다면 금강석이나 마찬가지인 벽이 그것이라는 사실을.

“적운 님.”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적사결은 감았던 눈을 살며시 떴다.

“수련하는데 방해하지 말라 이르지 않았느냐.”

적사결을 부른 이는 백리황이었다.

백풍각이 한산한 점도 있고 풍림 때문인지 지기가 풍부해 적사결은 그곳에 잠시 머물고 있었다.

수련장은 자연의 기가 풍부한 곳이 가장 최적이었다.

“저기…… 급한 일이라고…… 천풍각에서 회의가 열린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적운님도 참석해야 한다고 하시던데요.”

“본좌도? 누가 그러더냐?”

“어머님께서 그리 말씀하셨습니다.”

“무슨 일이길래? 설마 벌써 백리가주가 서신을 보내온 것이냐?”

아직 당도하지도 않았을 텐데.

그 일이 아니라면 자신이 백리세가의 회의에 참석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서둘러 오라는 말만 전해 들었습니다.”

“그래? 흠…… 일단 가 보자꾸나.”

적사결은 백리황을 대동한 채 백풍각을 나섰다.

천풍각 대회의장.

그곳에는 상석에 앉은 이옥연을 필두로 풍령전의 장로들과 대주급 가솔들이 자리해 있었다.

즉, 백리세가의 핵심 인물들이 모였고 백리검과 백리림의 빈 의자가 그들만 부재중임을 보여 주었다.

“지금 즉시 가주께 사람을 보내야 합니다.”

풍령전의 전주이자 대장로 백리염이 운을 띄웠다.

“맞습니다. 이는 이 부인의 결정으로 처리할 문제가 아닙니다.”

“본 장로 또한 이하 동문입니다. 이는 가문의 명운이 달린 일 아닙니까.”

장로들은 모두 한 마음 한 뜻인 양 가주라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장로님들의 말도 일리는 있으나 지금 즉시 움직이지 않는다면 늦어지게 됩니다. 때를 놓친다는 말입니다.”

반대 의견을 낸 자는 검풍대의 대주 감영.

천풍대가 부재중인 지금 실질적인 무력 부대의 대표로서 의견을 낸 것이었다.

“감 대주의 말대롭니다. 지금 결정하고 산하 문파들을 규합해 부대를 구성하는데도 빠듯합니다. 자칫 오합지졸 상태로 적을 상대했다간 큰 낭패를 볼 겁니다.”

폭풍대의 대주 주성운이 말을 덧붙였다.

그 모습에 장로 백리청이 일갈했다.

“고작 왜구 따위에게 지금 본가가 낭패를 본다 이 말인가?”

“장로님, 미개한 놈들이라 하나 그 수가 파악된 것만 일만에 육박한다 합니다.”

“소주의 무인 중 일류만 추려도 일천이네. 싸울 수 있는 이와 낭인까지 합치면 삼, 사천은 될 것이야. 더구나 소주를 방어하는 관병은 어디 놀기만 한다던가?”

“저는 소주 인근의 백성들까지 보호하려면 제대로 된 편제가 구성되어야 즉각적으로 대응이 가능하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내 말이 그 말이네. 아무리 관의 협조 요청이 있었다하나 너무 빨리 부대를 구성한다면 어찌 되겠는가? 필시 관은 모병이 제대로 되지 않았으니 자신들이 성을 지키고 우리들에게 나가 싸우라 할 걸세. 왜구를 막았다는 공은 자신들이 취할 것이고 피는 우리들만 흘릴지도 모른다는 말이야!”

백리청의 말도 틀린 것은 아니었다.

과거에도 몇 번 긴급한 상황에 같은 요청이 있었고 발 벗고 나선 결과는 뒤통수였으니까.

물론 그들도 명분은 있었다.

지방의 무림 문파가 너무 과한 힘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만천하에 드러나면 필연적으로 황실의 제재가 들어올 것이니 알리지 말자는 것.

아무리 관과 무림이 불가침이라 하나 무림인은 엄연히 대명제국의 백성이었다.

일개 백성이 몇 천, 몇 만 단위의 힘을 가진 것은 반란의 씨앗으로 보일 수도 있었다.

“장로님. 지금 손익을 따질 때가 아니지 않습니까! 수천, 수만 백성들의 목숨이 달린 일입니다!”

검풍대주 감영이 참지 못하고 언성을 높였다.

“지금 노부가 백성들의 목숨을 등한시 여긴다는 말인가!?”

백리청도 눈살을 찌푸리며 목소리를 깔았다.

두 사람의 논쟁으로 분위기가 흉흉해지자 이옥연이 손을 들어 올렸다.

“두 분 모두 자중하세요. 아직 모든 이가 참석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두 개의 빈자리를 바라보았다.

지금과 같은 때에는 그 자리가 하염없이 커 보였다.

“백풍각주가 증언을 확보했고 가주와 이 부인이 확인했다지만 본 장로는 영 탐탁지 않군요.”

백리염이 하얀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도대체가 영혼이 바뀌는 기사라니…… 참으로 믿을 수가 없소이다.”

“이혼대법이라고 잠허자에게서 그러한 이능의 술법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허허. 잠허자라는 그자도 한낱 떠돌이 도사일 뿐인데 신뢰할 수 있겠소이까?”

“대장로께서는 풍령전의 전주이시자 가주의 숙부로 집안의 큰어른 되십니다. 한데 가장인 조카의 안목을 못 믿으시는 것입니까? 더구나 남편과 제가 직접 아들이라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계속 의문을 품으신다면 저희 부부도 신뢰할 수 없다는 말로 들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옥연의 말에 백리염은 헛기침을 하더니 수염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돌렸다.

알았으니 계속하라는 의미였다.

“그럼 계속해서……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호호.”

이옥연은 말을 하다 말고 회의장 입구 쪽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문이 열리며 백리황과 적사결이 장내로 들어섰다.

“……송구합니다. 조금 늦었습니다.”

백리황이 포권을 하며 가문의 어른들에게 자신이 왔음을 알렸다.

그들도 여러 번 백리황의 문안 인사를 받았었기 때문일까 늙은 거지의 모습을 한 백리황에게서 기시감을 느끼고 있었다.

“적운이라 하오. 나까지 이 자리에 참석해도 되는지 모르겠소.”

포권을 하며 말하는 적사결에게 이옥연이 웃으며 말했다.

“적 대협은 본가의 빈객이기도 하고 이번 일은 소주에 있는 무인이라면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일이니까요.”

“도대체 무슨 일인지 들어나 봅시다.”

이옥연은 간략하게 설명을 해 주었다.

강소성 해안가의 어촌 마을에 왜구가 나타났고 점차 소주를 향해 진격 중이다.

수군은 복건성을 공격한 대규모 왜구를 소탕하기 위해 그곳으로 집결되었고, 관부에서는 주둔 병력만으로는 이를 해결하기 어려워 무림 문파에 지원을 요청한 상황.

백리세가는 소주의 대표 무가인 만큼 무림 세력을 이끌 문파로 선정되었다는 말이었다.

“흠…… 왜구가 몇 놈이나 되기에 관에서 도움을 요청한단 말이오?”

무림 문파는 치안을 담당하고 관병은 외적을 막는 구조는 오랜 관행이었다.

그만큼 북의 오랑캐와 남의 왜구는 지긋지긋하게 명국을 괴롭혔고 잦은 반란까지 일어나 관병은 턱없이 부족한 현실이었다.

하니 치안은 무림 문파가 맡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다.

그런데 관이 외적을 막기 위해 무림 문파에 도움을 구했다는 것은 그만큼 심각한 상황이라는 뜻이었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로는 일만에 가까워요. 참고로 왜구를 방어하는 수군의 핵심 병력은 절강에 있으나 그들은 지금 복건성으로 향한 탓에 당장 강소성으로 오기 힘들죠.”

이옥연의 부연 설명에 적사결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중이떠중이라도 만 명에 달하는 집단은 특유의 기세가 생긴다.

기세가 더해진 집단의 공격은 가벼이 여길 수 없는 사안이었다.

“이건 엉덩이 붙이고 회의할 것이 아니라 당장 움직여야 할 일인데 다들 여기서 뭐하시오?”

적사결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얼굴로 물었다.

이옥연은 짧게 한숨을 쉬고는 장로파와 대주파로 나뉜 의견에 대해서 말해 주었다.

그 말을 들은 적사결은 얼굴을 찌푸린 채 장로들에게 물었다.

“당신들에게 하나 물읍시다.”

백리염을 비롯해 장로들이 적사결에게 눈길을 주었다.

“길을 가는데 흑도 새끼가 지나가는 행인을 죽일 듯이 패고 있소. 그걸 봤는데 집에 가서 집안 어른에게 힘 좀 써도 되냐고 허락 받고 올 거요?”

“그게 무슨 소린가? 당연히 그 자리에서 힘을 쓰겠지.”

“한데 왜 가주 똥꼬 빠는 소리만 하지?”

적사결의 거친 말에 백리청이 탁자를 내리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놈! 본가의 장로들께 그 무슨 망발이냐!”

“망발은 당신이 하는 거지. 가주 핑계로 출진을 지연시키는 건 공짜로 움직이기 싫으니 몇 푼 챙기고 달려가겠다는 거 아닌가? 똥꼬를 빨았으면 똥독이 올라야지 왜 돈독이 오르지?”

“이…… 이놈이…….”

백리청이 벌게진 얼굴로 검파에 손을 갖다 댔다.

“속 좁은 늙은이가 간은 큰가 보군. 본좌 앞에서 검에 손을 대다니. 뽑아라. 뽑는 즉시 그 멍청한 머리를 날려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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