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이혼대법-53화 (53/206)

<기적의 이혼대법 53화>

“도대체 뭔 짓을 한 게요?”

묘 선생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마치 벽력탄이 터진 듯 방안은 엉망이었다.

“수련.”

“아니 뭔 수련이길래 이리 과격하오? 마치 진법을 설치하다 실패한 꼴하고 비슷한데…… 교주 혹시 기관진식 배워볼 생각이시오?”

묘 선생이 흥미를 가지고 물었다.

적사결과 같은 천재가 기관진식을 배운다면 자신이야 대환영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익히기 어려워 배움을 청하는 자가 부족한 분야가 기관진식이었으니까.

“그런 거 아니오. 한데 선생은 왜 아직 신강으로 안 가고 있는 거요?”

적사결은 손을 휘휘 저으면서 말했다.

“쥐구멍 만들려면 필요한 게 한두 가진 줄 아쇼? 때 되면 갈 테니 재촉하지 좀 마시죠.”

묘 선생은 배를 긁적이며 하품을 하고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주군 이것 좀 드십시오. 요상단입니다.”

“괜찮다.”

적사결은 사월이 내민 요상단을 손으로 밀어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많이 다치셨습니다.”

“혼자 회복할 수 있으니 걱정 말거라.”

스스스슷.

말이 끝남과 동시에 재생력을 발휘해 다친 상처를 수복해 갔다.

십이월은 그 모습을 보며 눈을 반짝이고는 존경과 동경이 가득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았다.

“나중에 너희들에게도 가르쳐 주마. 아직 대성하지 못한 무공이니 좀 기다리거라.”

십이월은 절도 있게 읍하며 대답했다.

“주군. 하해와 같은 은혜, 충성으로 보답할 것입니다.”

적사결은 씨익 웃으며 십이월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더 안 바란다. 지금만큼만 해.”

*   *   *

몸이 회복된 후.

적사결은 곧장 백리세가를 찾았다.

“그래 진인과의 독대는 어떠셨소?”

백리검이 적사결을 보자마자 물었다.

그도 내심 둘 사이에 무슨 말이 오고 갔는지 궁금한 것이었다.

“그저 그랬소. 말을 나누다 보니 그는 날 통해 누가 몸이 바뀐 것인지 캐려 했고 나는 일언지하에 거절했을 뿐 가주께서 관심 가질 사안은 없었소.”

“흠…… 그렇구려.”

그럴 리가.

잠허자는 고작 그런 것이나 캐려고 독대를 청할 인물은 아니었다.

하나 당사자가 그 일을 말하고 싶지 않다는 것을 완곡히 표하니 백리검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적 대협, 이제 용호산을 가 볼 차롄데 지금 당장 떠나도 괜찮겠소? 여정에 필요한 준비는 이미 다 해 놓은 상황이니 몸만 마차에 실으면 된다오.”

백리검이 천사도를 방문하는 건을 말했다.

용호산은 강소성 북쪽에 자리 잡은 곳으로 멀지 않다하나 마차로 며칠이 걸릴 거리에 있었다.

“사적인 일이 생겨 당장은 떠날 수 없게 되었소. 가주께서 가 보시고 차후 상황만 알려 주십시오.”

적사결은 같이 가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금단에 대한 실마리를 잡은 지금은 수련에 매진할 때였다.

깨달음이 불현듯 찾아온다지만 지금과 같은 경우에 확률이 더 높다는 것은 경험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동 중에 수련하다가 금단이 폭발하면 안 되니 천사도는 저들에게 맡겨 두자. 어차피 민간 신앙으로 전락한 종파에 대단한 것이 있을 리 없으니까.’

역사가 깊고 술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지만 적사결의 눈에는 그저 그런 도교의 종파일 뿐이었다.

“알겠소. 여러 사람 갈 필요는 없겠지. 하면 이곳에서 아들에 대한 지도를 계속 부탁드리리다.”

백리검이 백리황의 교육에 대한 부탁을 정식으로 청했다.

지난 백리황의 수련 과정을 들으며 탄성을 내지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에 아들이 계속 그의 가르침을 받기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벽을 마주했기에 큰 도움은 안 되겠지만 작은 조언 정도는 할 것이오.”

“그 정도면 충분하오. 고맙소이다, 적 대협.”

백리검은 포권하며 감사를 표했다.

백풍각.

풍림에 자리한 덕분에 인적이 드물어 백리황이 머물게 된 곳이었다.

그곳에서 백리황은 금칠대와의 연락망을 가동하고 개인수련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생각보다 요원의 실력이 상당하네…….”

정체를 숨긴 백류혼의 임무는 안휘성에 있던 음치 악도겸에 대한 조사였다.

한데 연락망을 가동하자마자 악도겸에 대한 여러 정보가 부지기수로 쏟아졌다.

“봉두, 그 헐랭이가 그렇게 뛰어나더냐?”

적사결이 백리황의 뒤에서 서신을 힐끔 보며 말했다.

“어? 적운 님 언제 오셨습니까?”

딱!

“윽!”

백리황은 기습적인 꿀밤에 머리를 부여잡고는 신음을 흘렸다.

“똥을 싸든 계집질을 하든 대갈통 한편에는 경계심을 놓지 말라고 그렇게 얘기했거늘 어찌 그렇게 방심을 밥 먹듯이 하느냐?”

“죄…… 죄송합니다.”

“죄송은 내가 아니라 네놈 부모에게 해야지. 그렇게 살다 눈먼 칼에 뒈지면 가슴 찢어지는 건 네 부모니까.”

“…….”

백리황은 고개를 떨구며 입을 열지 못했다.

“반성은 알아서 하고 어디 그 헐랭이가 보낸 보고서 좀 보자꾸나.”

“예…….”

백리황이 잔뜩 풀이 죽어 보고서를 건네자 적사결은 그것을 받아 휙휙 넘겼다.

읽는 것인지 그냥 빠르게 넘기는 것인지 모를 속도로 낱장을 넘기던 적사결은 감탄했다.

‘제법…… 인데?’

방대한 자료는 둘 째 치고 정리가 깔끔했다.

한 눈에 보기 쉽게 일목요연한 요약부터 시작해 보고를 받는 자가 염두에 두어야 할 점과 사소한 점을 구분하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의견을 첨부.

보고서가 오 회를 넘기자 육 회부터는 앞부분의 정리자료를 더해 다시 한번 상기시키는 치밀함까지.

모든 것이 보고를 받는 백리황에 맞춰 만들어진 자료집이었다.

“야, 이 새끼 이전에 어디서 뭐하던 놈인지 알아?”

보고서를 내려놓은 적사결이 물었다.

“모릅니다. 삼당의 당주들이 강호 초출을 기준으로 뽑았으니 사문에서 수련만 하다 하산한 것이겠죠.”

“강호초출이 이런 보고서를 작성한다고? 정보대에서 십 년을 굴러먹어도 이보다 못한 놈들이 천지야. 이 새끼 세 작아니야?”

“음…… 세작은 아닐 겁니다. 요원의 특이 사항이 하나 있었는데요. 그래서 그런 보고서가 나왔을 겁니다.”

“특이사항이라니? 그게 뭔데?”

“금개의 열렬한 추종자라 합니다.”

“뭐? 추종자?”

“네. 그것도 거의 광신도 수준으로요. 신의당주의 말로는 이력서와 면접을 통틀어 그가 가장 충성심이 았아다 합니다.”

적사결은 어이가 없었다.

뭐 볼 게 있다고 거지새끼를 추종해?

‘그러고 보니 보고서가 모조리 금개 녀석을 기준으로 작성되었네…… 이런 미친 새끼…….’

다시 읽어 보니 애정이 넘치다 못해 사랑과 동경이 소용돌이치는 보고서였다.

‘젊은 남자 새끼가 늙은 남자를…… 하…… 천하사괴랑 연관된 놈들은 왜 다 이따위야…….’

적사결은 보고서를 팽개치고 의자에 털썩 앉았다.

“물.”

“예. 여기 있습니다.”

백리황이 잽싸게 물을 대령했다.

지난 수련 동안 무공 지도만이 아닌 여러 가지를 강제로 배운 백리황이었다.

“한데 적운 님은 용호산에 같이 안 가십니까?”

잠허자를 만나는 데 동행했듯 당연히 갈 것이라 여겼는데 백풍각에 나타났으니 물은 것이었다.

“개인 수련하라 했더니 방심이나 하는 놈을 두고 가라는 말이냐? 쯧쯧.”

“…….”

백리황은 머쓱해서 뒷머리를 긁적였다.

*   *   *

제금상단.

강소성에서 가장 큰 상단으로 무석에 본단을 둔 곳이었다.

무석은 남경과 소주 사이에 위치해 유통의 중심에 있었다.

상단주 제문종은 뛰어난 상재와 덕망을 갖춘 인물로 세인들의 존경을 받는 자였다.

“귀갑병대는 계획대로 움직이고 있겠지?”

제문종의 말에 최측근이자 호위인 이령이 말했다.

“현재 장가촌에 머물고 있습니다. 도련님께서 잘해 주고 계시니 걱정 마십시오.”

“휴우…… 그 녀석이 담당이니 내 확인에 확인을 거듭하는 것이야. 자네가 그 정도 중책은 맡겨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지 않았으면 이리 불안하지도 않았을 것을…… 쯧.”

향후 후계자로서 입지를 다지기 위해서는 이번 일의 핵심인 귀갑병대의 길잡이를 수행해야 한다는 간언.

이령이 그렇게 나선 것은 제문종의 아내이자 제궁명의 어미인 화씨 부인의 배경 때문이었다.

“장천보가 함께 있으니 걱정 마십시오.”

이령은 화씨 부인으로 인해 제금상단의 녹을 먹게 된 검객이었으니까.

“내 아들은 내가 잘 알아. 안타깝게도 제 어미의 치마폭에 싸여 안하무인으로 자라 버렸지…… 장 무사가 함께 해도 제어가 안 될 거야. 쯧.”

“도련님께서도 이번 일이 얼마나 중요하고 또 위험한지 잘 알고 있습니다. 한 번 믿어 주시지요.”

“어차피 허락한 마당에 어쩌겠나. 걱정되지만 믿을 수밖에. 어차피 이번 일이 아니면 제금상단에 미래는 없으니 죽이 되든 밥이 되 든 제놈 손에 칼자루를 쥐어 줬으니 잘 해야 할 터인데…….”

제문종은 탁자 위에 펼쳐진 지도를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척가군은 어찌 되었는가?”

척가군은 왜구 잡는 호랑이, 절강지휘첨사 척계광 장군의 사병이었다.

유대유 장군과 함께 유룡척호의 일인으로 불리는 척계광은 백전불패의 무장이었다.

“왜구들이 세력을 규합해 복건으로 향한다는 첩보에 이동을 시작했습니다. 내일이면 절강을 비울 것입니다.”

“흐흐. 복건까지 내려가면 거사가 끝날 때까지는 절강으로 복귀하지 못하겠군.”

제문종은 비릿하게 웃으며 척가군의 상징으로 보이는 나무 인형을 복건으로 옮겼다.

“그리고 하나 더 희소식이 있습니다.”

이령이 희미하게 웃으며 소주라 표기된 지명 위 백리라 적힌 나무인형을 북쪽으로 옮겼다.

“백리세가주 백리검이 휘하 천풍대와 함께 소주를 비웠습니다.”

“천풍 대협이 소주를 떠났다? 어디로?”

“첩보에 따르면 용호산이 목적지라 합니다.”

“용호산? 그곳엔 왜 가는 거지?”

“그것까지는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아무래도 소주의 패자라 불리는 가문의 주인이라…….”

이령이 읍을 하며 말했다.

“됐네. 도교의 신에게 치성이라도 드리러 가는가 보지. 어쨌든 하늘이 돕는군. 그만한 거물이 소주를 비우면 일이 더 쉬울 테니 말이야. 흐흐흐.”

“혹시 모르니 백리검이 외유에서 급히 돌아올 경우를 대비해 수하를 붙여 두겠습니다.”

“그리하게. 한데 절강의 항주 쪽은 어떤가?”

항주에 대한 물음에 이령은 그 어느 때보다 어두운 표정이었다.

“주군, 아쉽지만 항주는 포기해야 할 듯싶습니다.”

“뭐라? 애초에 항주는 소주보다 쉬울 것으로 여겼지 않은가. 도대체 이유가 뭔가?”

“사무련의 야차멸살대가 호남을 떠나 동쪽으로 이동 중이라 합니다.”

“야…… 야차멸살대? 놈들이 왜? 목적지가 항주라 하던가?”

“그건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그들이 동쪽으로 움직인 이상 항주도 예상 범주에 들어가게 됩니다.”

일개부대의 단순한 이동방향만으로도 포기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젠장! 그 괴물 같은 새끼들이 갑자기 왜! 빌어먹을!”

제문종은 탁자를 내리치며 분개했다.

하나 어쩔 수 없음은 그도 잘 알고 있었다.

야차멸살대가 자칫 항주로 향한다면 설사 귀갑병대를 보내더라도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야차멸살대는 천하를 진동시키는 최강의 무력부대 중 하나였다.

“항주로 배치된 병력도 모두 소주로 돌리도록 지시하게. 이렇게 된 거 소주와 인근 일대의 세도가와 무가, 민가까지 돈 되는 곳은 모조리 털어야 할 테니까.”

“분부대로 지시하겠습니다.”

“한데 왜구로 위장할 옷가지와 무기의 준비는 어찌 되었는가? 왕직의 혈육이라는 그놈과 협상은 마무리 된 것이야?”

왕직은 이 년 전 수군에 사로잡혀 처형당한 왜구. 무려 해적왕이라 불린 인물이었다.

재미있는 점은 그는 왜인이 아니라 명나라 사람이었음에도 그 세력이 강대해 해적의 왕노릇을 한 것이었다.

그는 수하들을 왜구로 위장해 약탈을 일삼았고 그렇게 얻게 된 장물을 밀거래하여 막대한 이득을 얻을 수 있었다.

제문종이 언급한 왕직의 혈육은 이제는 그 세력을 다 잃었지만 당시 왜구로 위장하던 무기 등의 보관 장소를 알고 있었기에 그 물건을 암거래하려 했고 제금상단과 연이 닿은 것이었다.

“이미 물건을 건네받아 위장 중에 있습니다. 머리를 밀고 왜구의 복색과 무기를 드니 영락없는 왜구가 되더군요. 내일이면 작업이 끝날 것입니다.”

“좋군. 좋아. 준비된 병력은 어느 정도인가?”

제문종의 물음에 이령은 귀기 어린 눈을 빛내며 말했다.

“이만 명입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