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이혼대법 52화>
단목련은 어안이 벙벙했다.
주화입마라면 십중팔구 폐인이 될 가능성이 높으니까 말이다.
“주…… 주화입마라니요?”
단목련의 되물음에 이옥연이 말을 잇지 못하자 백리검이 말했다.
“그 말대로다. 어제 저녁 연공실에서 쓰러져 있는 황아를 호위 무사들이 발견했고 상세를 살피니 주화입마라는 진단이 나왔다 하더구나. 휴우…… 내 단목 가주를 뵐 면목이 없구나. 면목이 없어…….”
참으로 훌륭한 연기가 아닐 수 없었다.
백리림은 자신은 흉내도 내지 못할 연기력에 속으로 감탄사를 연발했다.
‘역시 가주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구나. 과연 형님과 형수님이시다.’
모름지기 수장이란 여러 가지 가면을 쓸 줄 알아야 하는 법.
백리림은 두 사람의 연기력을 따라갈 수 없는 것을 알기에 침묵으로 일관했다.
“근래 황아의 무공 실력이 너무도 일취월장하여 염려되는 부분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나 이리도 급작스럽게 주화입마에 빠질 것이라 예상 못한 나의 실책이구나.”
백리검은 침중한 눈빛으로 잠시 말을 멈춘 후 단목련을 바라보았다.
“본가의 총력을 기울여 주화입마를 고칠 방도를 찾고 있으니 조금 기다려 줄 수는 없겠느냐? 그렇게만 해 준다면 내 단목세가에서 바라는 것은 무엇이든지 수락할 용의가 있다.”
“방도가 있는 것입니까?”
“주화입마도 상세가 각양각색이니 장담할 수는 없으니 본가를 믿어 달라는 말밖에는 해 줄 말이 없구나.”
“휴우…….”
단목련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거의 넘어왔군.’
백리검은 대충 견적이 나왔다 판단했다.
“본가는 단목세가에서 어떤 결정을 내리든 따를 것이다. 그것이 혼인을 연기하는 것이 아닌 파기가 되더라도 말이다. 부디 현명한 판단을 내리기 바라마.”
단호한 어조와 함께 축객령을 내린 것.
내 할 말은 끝났으니 돌아가 의논한 후 통보를 달라는 태도였다.
이를 모를 리 없는 단목련은 자리에서 일어나 포권을 하며 말했다.
“아버님의 의중은 잘 알겠습니다. 본가 어른들과 상의 후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오냐, 내 긍정적인 답변 기다리마.”
단목련과 양화는 그대로 집무실을 떠나 천풍각을 나섰다.
한데 걸음을 옮기던 단목련은 문득 멈추어 양화를 바라보았다.
“유모가 보기엔 어땠어?”
“아가씨께선 어찌 보셨는지요?”
“난…… 솔직히 잘 모르겠어. 한데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삼류에서 갑자기 절정으로 올랐다면 성취가 빨라도 너무 빠른 거잖아? 충분히 주화입마에 빠질 수 있는 조건인 것 같은데…….”
단목련이 입술을 깨물며 뒷말을 씹었다.
정황이나 사연 등 모든 것이 앞뒤가 맞지만 이상하게 뒷골이 간질간질한 것이었다.
“호호. 다행이네요. 아가씨께서는 반만 넘어가셨군요.”
“반만…… 넘어갔다고? 그럼?”
“네. 아까 두 분은 십중팔구 거짓 연기를 한 것입니다.”
“정말!?”
“아가씨께서 태어나기 전 평생을 전대 가주님을 모셨던 저입니다. 그분도 여러 가면을 잘 쓰셨지요. 그분께서 수장의 자리에 앉은 사람의 인생을 뭐라 표현하셨는지 아십니까?”
“뭐라 하셨는데?”
“구라. 자신의 인생은 태반이 구라다. 라고 하셨습니다. 호호호.”
양화는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웃었다.
단목련은 혀를 차며 말했다.
“어휴, 나도 한참 멀었네…….”
“아니에요. 아가씨께서는 잘 판단하신 겁니다. 지아비가 될 사람이 주화입마라는데 평정심을 가질 여인이 세상에 몇이나 있겠습니까. 잘하신 거예요.”
“그래…….”
단목련은 씁쓸하게 웃었다.
아직 그녀의 나이 십오 세. 꽃이 피기는커녕 봉우리도 여물지 않은 나이였다.
* * *
북로남왜.
북쪽의 몽골과 남쪽의 왜구를 가리키는 말이다.
작금의 명은 특히나 이들의 외환에 시달리는 시기였다.
“스베테 코로세!(모조리 죽여라!)”
단 한 마디였다.
왜장으로 보이는 사내의 명 한 마디에 대학살이 시작되었다.
“끄아아악!”
“사…… 사…… 살려…….꺽…….”
“이 개새끼들! 우욱. 크학…….”
사내들은 당연한 수순이었고,
“아아악!”
“꺄아아악!”
여인들도 마찬가지였다.
보통은 겁탈한 후, 죽이지만 이번은 그저 살육을 자행할 뿐이었다.
하니 노인은 말할 것도 없었고 심지어 어린아이와 아기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도륙했다.
꼬꼬댁. 꼬꼬꼬꼭.
푸르릉. 푸릉. 음머어어.
쿠익. 쿠익. 뀌이익.
남긴 생명이라고는 식량이 되는 가축만이 남아 어디론가 끌려 갔다.
“대장님. 명령대로 시행했습니다.”
왜장의 사내에게 다가온 사내가 고개를 숙이며 왜어로 말했다.
“뒤처리는 후발대에게 맡기고 서둘러 이곳을 떠난다.”
“예!”
우렁찬 대답과 함께 수하는 부하들에게 서릿발 같은 명령을 내렸다.
무질서하고 광기 어린 행태를 보이던 왜구들은 그 명령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고작 해적 나부랭이라 생각했는데 꽤 훈련이 잘된 놈들이었군.”
얼굴에 기름기가 흐르는 청년은 꽤 부유하게 자란 듯 표정에 오만함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까마득한 절벽 위에서 왜구들을 내려다보는 그는 처참한 마을의 모습에도 눈살 하나 찌푸리지 않았다.
그의 눈에는 죽은 시체들이 아닌 왜구들의 몸놀림만 보일 뿐이었다.
“지금은 해적이지만 한때는 저들도 다이묘의 가신이었으니까요.”
날카로운 기도의 중년인이 청년의 뒤에서 첨언했다.
“다이묘라면 일성의 규모를 이룬다는 세력가 아닌가? 하면 저들이 정병이었단 말이야?”
“그렇습니다. 그 중에서도 백전불패의 특수 부대, 귀갑병대라 불린 자들이었지요.”
“흐음…… 저놈들이 백전불패인데 왜 그 주인인 다이묘가 패망했지?”
“거짓 정보에 속은 겁니다. 저들이 작전을 나간 사이 기습이 이뤄졌고 허무하게 패망했다 하더군요. 이후 본국을 떠나 이곳 중화까지 흘러온 겁니다. 지금은 다이묘를 재건하기 위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못하는 짓이 없지요.”
작금의 왜국은 과거 중원이 춘추 전국시대를 거쳤듯 혼란의 도가니였다.
여러 다이묘로 나눠진 세력들의 각축장.
몇백 년 동안 이어진 피의 제전에서 떨려 나간 패배자들이 넘치는 곳이었다.
“하면 아버지께선 정보 교란에 당한 멍청이들을 이용하시겠다는 건가? 칫.”
청년의 이름은 제궁명, 강소성의 부호인 제금상단의 후계자였다.
“멍청한 건, 저들의 상관이었습니다. 저들은 그저 순수한 타격대였으니까요.”
중년인 장천보의 말에 제궁명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지금 같은 칼잡이라고 두둔하는 건가? 나 보고 틀렸다는 거야?”
“그런 뜻이 아니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도련님.”
장천보는 고개를 숙인 채 볼을 씰룩거렸다.
강동 백대고수이자 낭인십검으로 불리는 자신이었다.
돈 때문에 제금상단의 목줄을 차게 되었다지만 새파랗게 젊은 놈에게 무시당하니 속에서 열불이 치밀었다.
“됐고. 그래서 저 떨거지들 실력이 어느 정도야?”
“두 명이면 저와 자웅을 겨룰 수 있는 수준입니다.”
장천보의 대답에 제궁명이 이죽거렸다.
“그대도 많이 늙었나 봐? 낭인십검이란 별호도 이제는 물려줘야 하는 거 아니야?”
“…….”
이런 개호로 새끼.
아비의 후광만 없었다면 단칼에 대갈통을 쪼개 놨을 것을.
장천보는 이를 악물고 구겨지는 표정을 삼켰다.
“별호가 물려준다고 물려지는가요. 때가 되면 세인들이 거두어 갈 겁니다.”
“킥킥. 하긴 돈도 없고 힘도 없이 주둥이만 주절거리는 놈들이니 그렇게 나불거리는 맛이라도 있어야겠지.”
제궁명이 배를 잡고 재밌다는 듯 웃어댔다.
그 모습에 장천보는 속이 뒤집어져 말했다.
“제가 낡은 칼이라 저들의 실력이 제대로 파악이 안 되실 것 같아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몇 년 전 남경이 왜구들에게 공격당한 것을 기억하십니까?”
“남경이라면…… 그 오십 명? 인가 그 정도 남짓한 숫자로 공격한 놈들을 말하는 건가?”
“정확히는 쉰 세 명이었습니다. 그들이 바로 저들 귀갑병대였습니다.”
“…….”
제궁명은 그 말을 듣자 더 이상 까불지 못하고 연신 침을 삼켜댔다.
오십삼 인의 왜구, 그들은 고작 그 숫자로 남경 일대에서 사천 명이 넘는 학살을 일으킨 살귀들이었다.
남경은 대명제국의 건국 초기 태조 주원장이 수도로 삼았던 도시.
이후 영락제가 북경으로 천도했지만 아직까지 남쪽의 수도라 불리는 곳이었다.
“그 미친놈들은 모두 주살했다고 공표했었잖아?”
당시 그 사건으로 관병뿐만 아니라 강소의 무림 문파에서도 다수의 무림인이 놈들을 쫓아 천라지망을 펼쳤었다.
그리고 그 흉적인 오십세 개의 수급을 성문에 내걸어 흉흉한 민심을 달랜 사건이었다.
“대역이었습니다. 어르신께서 귀갑병대를 빼돌리시고 모두의 눈을 속이셨지요.”
“그…… 그게 정말이야?”
“당시 꽤 많은 돈을 쓰셨습니다. 당시 연루된 자들은 낙향해서 떵떵거리며 살고 있지요.”
“왜? 놈들이 대단하긴 하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어?”
뛰어난 무사라면 중원에도 차고 넘친다.
당장 장천보만 해도 그만한 실력에도 불구하고 돈의 노예인 상황이 아닌가.
그보다 뛰어난 낭인도 얼마든지 살 수 있는 시대였다.
“놈들은 진짜 왜국 놈들이니까요. 그리고…… 그것이 아니더라도 저기 저자 보이십니까?”
장천보는 주인의 진짜 의도를 설명하려다 왜장에 대한 말로 화제를 바꾸었다.
어차피 눈앞의 모지리는 말해 주어도 그 가치를 모를 테니까.
“저 빨간 놈?”
“그렇습니다. 저자가 귀갑병대의 대장 요신키라 합니다. 별호라 하긴 그렇고 왜국에서는 붉은 귀신, 적귀라 불렸다더군요.”
특이한 분위기를 풍기는 자였다.
머리카락은 일반인처럼 검지만 붉은빛이 감돌았고 바람에 흩날릴 때면 마치 혈화가 피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물결치듯 일렁이듯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난 사내의 얼굴에는 커다란 십자 흉터가 아로새겨져 있었다.
“남경 공격 당시 저자가 남경제일검이라 불렸던 고학검문의 문주를 죽였습니다.”
“뭐? 고학검문주는 지병으로 죽은 거였잖아?”
당시 강동 십대고수의 일인이었던 고학검문주였다.
한데 세간에 알려진 죽음과 다른 사실에 제궁명은 경악했다.
“남경제일검이 왜구에서 당했다고 알려지면 남경의 모든 문파들은 강호에서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했을 겁니다. 그래서 진실을 가린 것이죠.”
장천보는 차가운 눈빛을 보이며 말을 이었다.
“단언컨대 강소성에서 놈을 당해 낼 무인은 없습니다.”
* * *
캄캄한 빈 객방에 적사결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잠허자와 자정 즈음에야 헤어진 그는 돌아오자마자 명상에 들어가 한참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깊은 밤을 지나 새벽의 이슬이 맺힐 즈음.
창문에서 빛이 들며 적사결의 얼굴을 어둠 속에서 드러냈다.
스으윽.
눈을 뜬 적사결은 한 손을 들어 올렸다.
후우웅. 웅. 웅. 웅. 웅.
보리연화공의 내공이 일어나 손바닥에서부터 한 자정도의 위로 황금빛 광구를 형성했다.
그것은 강기와 같은 기공술이 아니었다.
끊임없이 기가 소용돌이치며 마치 작은 태풍을 몰아넣은 듯했고 핵이 위치한 곳에서는 빛이 커졌다 줄어들며 생동감 넘치는 모습을 발현했다.
‘아직까지는 견딜 만하구나.’
거의 일갑자에 가까운 기운을 몰아넣은 상황이었으나 구열질만 조금 날 뿐이었다.
‘좋아. 이대로 내공의 공급을 끊어 보자.’
적사결은 그 즉시 주먹을 쥐며 장심혈의 기운을 차단했다.
“됐다! 됐어!”
밤새 명상하며 가상의 연구를 거듭하다 생각해 낸 단초를 실제로 구현.
첫 실험이라 실패를 예상했건만 금단은 비교적 안정적인 형태로 허공에 떠 있었다.
사실 이렇게 빠른 성취가 가능했던 것은 새끼원숭이 이두한백의 단전을 만들어 주다 내단이 만들어진 것을 직접 경험했기 때문.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경험이 귀중한 깨달음의 실마리가 된 것이었다.
웅. 웅. 웅.
금단이 서서히 움직이며 적사결의 주위를 맴돌았다.
그 경로는 자신의 의지가 이어지는 곳을 따르는 것이었다.
즉, 심력으로 금단의 위치를 조정할 수 있었다.
“자, 이대로 내공을 뽑아 보자. 천천히…… 천천히…….”
한참을 집중했건만 잘되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보리연화공의 응집력이 강한 데다 회전력을 구심점으로 삼아 더 그런 듯했다.
“크으윽. 움직여엇!”
이마에 혈관이 도드라지고 머리가 터질 듯 심력을 쥐어짜는 그때였다.
퍼어어어엉.
“으갸갹.”
금단이 터져 나가며 충격파가 창문으로 터져 나가고 방문이 박살 났다.
“주군!”
가장 먼저 달려온 이는 십이월이었다.
“뭐야? 아침 댓바람부터 무슨 일이야!?”
이어서 묘 선생이 하의만 대충 걸친 채 박살 난 문 앞에서 방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주군 괜찮으십니까?”
십이월이 즉각적으로 다가와 쓰러진 적사결을 일으켰다.
“쿨럭. 아윽…… 뒈지는 줄 알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