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이혼대법 51화>
적사결은 약간의 적의를 둔 채 말했다.
스슥.
오른손은 여전히 도집 위에 늘어뜨린 상태.
여차하면 베어 버리겠다는 의도였다.
“본도가 평생에 걸쳐 연구 중인 이론이 있습니다. 그 이론을 위해 도가와 불가, 세속의 무가들이 지닌 내공심법을 연구했지요.”
“내공심법? 당신, 술맥의 일파라 들었는데?”
적사결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무맥이니 술맥이니 하는 것은 그네들만의 구분이지요. 본도는 무림에 적을 둔 자가 아니니 그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술맥에 적을 두고 무맥을 연구한다라고 해 두지요.”
잠허자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허허롭게 말했다.
“한데 그 이론과 본좌를 보고자 한 것에 관계가 있다? 혹시 본교의 내공심법에 대해 알고 싶은 것인가?”
“바로 그렇습니다. 천하를 주유하며 많은 내공심법을 살펴보았지만 오직 신교의 것은 접해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럴 것이다.
천마신교는 하나의 거대한 집단.
더구나 그 폐쇄성과 특수성은 천하의 어느 문파와도 달랐다.
신교의 내공심법은 교도가 되지 않는 이상 접하고 싶어도 접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일단 그 이론이라는 것. 들어볼 수 있나?”
“천하 십대고수의 일인께서 고견을 더해 주신다면 본도의 영광이지요. 하하하.”
“하면 듣고 판단하지.”
적사결이 허락하자 잠허자는 화색을 띠고 입을 열었다.
“무공을 익힌 무림인들은 내공심법을 통해 단전에 기를 쌓아 사용하는 자들입니다. 한데 단전이라는 신체 기관은 존재하지 않지요.”
“단전은 기의 그릇. 내공심법으로 만드는 것이니까 그렇지.”
“그렇습니다만 어쨌든 무림인의 배를 갈라 보아도 단전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마치 갈라 보았다는 듯 말하는군?”
“하하하. 그 부분은 넘어가시지요.”
잠허자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을 이었다.
“한데 말입니다. 영물의 경우 그 배를 갈라 보면 내단이 존재합니다. 그 차이가 과연 그저 종의 차이일까요?”
“지금 한낱 미물과 인간이 다른 것에 의문을 갖자는 것인가?”
“그런 것이 아닙니다. 관점을 넓혀 보면 두 경우 모두 수련을 통해 자연의 기를 신체에 쌓은 것, 한데 두 경우가 극명하게 차이가 있지 않습니까?”
“단순히 그렇게 비교할 수는 없지. 아무리 무공을 익혔어도 사람의 수명은 세수 백을 넘기기 힘들지만 영물들은 몇백 년을 넘어야 영물이라 부르니까. 사람도 몇백 년을 살면 단전이 유형화되어 내단이 될 수도 있겠지.”
적사결의 말대로였다.
일반인은 환갑을 넘기면 장수했다 할 수 있었고, 양생술을 기반으로 발전한 무공을 익힌 무림인의 경우 평균 수명이 일흔을 넘기지 못했다.
“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기를 쌓지 않은 기준으로 보았을 때 짐승들은 사람보다 수명이 짧습니다. 한데 기를 쌓게 되면 반대가 되지요. 자연계에서 이런 상반된 현상은 보기 드뭅니다. 해서 제가 관심을 가진 것도 있고 말입니다.”
“그래서 당신은 그 부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지?”
“이 역시 가설이지만 본도의 생각에 그 이유는 속도에 있다 봅니다.”
“속도? 무슨 속도?”
“신체에 기를 쌓는 속도 말입니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사람은 내공심법을 통해 기를 쌓고 그 힘을 발현하는 속도가 영물과는 비교할 수 없게 빠릅니다. 백 년도 살지 못한 무인이 몇 백 년을 산 영물을 때려잡는 것이 그 증거이지요.”
뛰어난 초식과 심법의 발전이라는 변수를 제외한다면 맞는 말이다.
적사결도 적랑대에 몸담았던 코흘리개 시절 일, 이백 년 정도의 영물들로 몸보신을 한 적이 있었으니까.
“본도의 생각에는 무공의 발전으로 그 속도가 비상식적으로 빨라진 것이 수명 단축의 원인이 된 것이 아닌가 봅니다.”
“양생술에 기초해 발전되었지만 그 정도가 과했다?”
“그렇습니다.”
적사결은 나름대로 인정했다.
한계를 넘는 과도한 힘은 필연적으로 수명의 단축을 가져온다.
잠허자의 말은 양생술로 몇백 년은 살 수 있었던 사람들이 이를 무공으로 발전시키면서 수명을 대가로 힘을 얻었다는 뜻이었다.
“뭐, 영 터무니없는 말은 아닌데.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지. 단전과 내단의 차이. 그것이 핵심이지 않나?”
“그렇지요. 일단 그 차이는 토납법의 차이일지도 모릅니다. 무인들은 인위적인 호흡을 통한 내공심법을 사용하나 영물들은 타고난 호흡을 통해 오랜 시간을 들여 기를 쌓으니까요.”
잠허자는 코와 입을 만졌다 가슴을 지나 단전이 위치한 아랫배까지 짚으며 설명했다.
“해서 전 다양한 내공심법을 연구했습니다. 일단 토납법과 단전의 상관 관계에 대한 것부터 시작했었지요.”
“결과는 어땠지?”
“토납법과 별개로 단전의 형태는 유사했습니다. 대략 사각의 육면체 속에 원형의 구슬. 말 그대로 단과 전이랄까요. 다만 크기와 성질은 천차만별이었습니다. 이마저도 본도가 술가에 적을 두었기에 허락받을 수 있었지요.”
술맥을 이은 도사에 스스로가 무공을 익히고 있지 않았기에 단전을 살피는 것이 가능했다는 뜻.
당연한 것이었다.
타인에게 단전을 속속들이 보여 준다는 것은 무림인에게는 속살을 모두 내보이는 것과 같았으니까.
“한데 그러다 소림의 속가제자와 인연이 닿아 불문 정종의 내공심법을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불가의 무공에 특이한 점이 있었나?”
적사결이 흥미를 보이며 묻자 잠허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단전에는 전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이 거의 없었습니다. 대신 단의 크기가 컸습니다.”
전은 기운을 정제하는 역할을, 단은 정제된 기운을 저장하는 역할을 한다.
전이 작다는 말은 단에 모인 기운이 정순하지 못하다는 의미였다.
단적인 예로 사파의 무공이 그러했다.
‘흥미롭군.’
각계의 내공심법과 단전에 대해 이만큼이나 연구를 했다니.
어디서도 들어 보지 못한 이론이었기에 적사결 역시 호기심이 동했다.
“본도의 추측이지만 마공 역시 전이 거의 없지 않습니까?”
“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지?”
“일단 대답해 주시기 바랍니다.”
“맞다. 본교의 마공도 그러하다.”
“역시…….”
잠허자는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두 곳의 내공심법은 심상연공에 기반해 있기 때문이라 봅니다. 굳이 전으로 정제할 필요 없이 심력만으로 기운을 정제한 후 곧바로 단에 축적하는 것이지요.”
원리는 유사하나 기능은 정반대.
예를 들자면 유입된 흙탕물의 흙을 불심으로 가라앉히고 깨끗한 물만 저장한 것이 불가기공.
흙탕물에 마성이라는 먹물을 뒤섞어 저장한 것이 마공이었다.
“본도의 생각에 영물의 내단은 전을 완전히 배제한 채 형성된 단이 아닐까 합니다. 정제의 원리가 심상연공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말입니다.”
“하면 불기기공과 마공을 발전시켜 전을 완전히 없앨 수 있다면 단전이 내단처럼 유형화 될 수 있다 이 말이군?”
“그렇습니다. 하나 내단의 장점이 무엇인지 모르니 굳이 단전을 내단화할 필요성은 모르겠군요.”
“그것도 그렇겠군.”
적사결은 도집에서 손을 완전히 거두고 팔짱을 낀 채 동의했다.
사실 단전의 기능 자체는 단점이 거의 없었다.
무수한 세월 동안 무공은 발전에 발전을 거듭했고 그 중심에 단전이 있었으니 말이다.
“솔직히 놀랐네. 이리도 심층적으로 단전을 연구한 자는 평생 만나 보지 못했어. 본좌 스스로도 그리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고 말이야. 그대의 이론은 큰 줄기에 있어서도 확고한 가설이 정립되어 있고 절차에 있어서도 상당히 합당한 부분이 있다 생각되네. 몇 가지 덧붙이자면…….”
적사결은 잠허자에게 자신의 의견을 첨언해 주었다.
하단전만이 아닌 중단전과의 호응, 그리고 상단전으로 이어지는 체계과 심기체 깨달음의 영역까지 방대한 이론이었다.
이는 천마신교의 측면에서 바라본 관점이라 잠허자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기연이었다.
한참을 토론한 후 잠허자는 지식을 갈무리하듯 눈을 감은 채 한참 동안 생각을 정리했다.
그러고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현기가 서린 눈을 떴다.
“도움이 되었나 보군?”
“그렇습니다. 앞으로의 연구 방향을 새로 정립하였으니 저로서는 평생의 기쁨을 얻은 것이나 다름없지요.”
“언제고 신교에 한 번 들르게. 원한다면 자리 하나 마련해 주지.”
“하하하. 이거 천하에서 가장 든든한 후원자를 얻었군요.”
잠허자는 호탕하게 웃더니 진중한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호의에 대한 보답으로 한 가지 더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무엇인가?”
“고문서를 보다 영물의 외단이라는 것에 대해 본 적이 있습니다.”
“외단? 그게 무엇이지?”
“내단을 완성한 영물이 얻는 두 번째 단이라 합니다. 신체 외부에 가상의 단을 만들어 본신의 힘을 저장하기도 하고 외단이 완성되면 천지간의 기운도 마음대로 사용한다 하더군요.”
“호오?”
“신체 외부에 존재한다는 것 외에는 단전과 비슷하지 않습니까?”
잠허자의 말대로였다.
기운의 저장과 사용은 마찬가지였으니까.
“어쩌면 사람도 신체 외부에 또 다른 단전을 만드는 방법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하다면 천하에서 오직 불문과 천마신교만이 가능하겠지요.”
“어쩐지 보답이 아니라 과제를 주는 기분인데?”
“그렇습니까? 하하하. 하면 과제라 하지요. 참고로 영물의 것이 외단이라 명명되어 있는 만큼 사람의 외단에는 다른 이름을 붙여 보았습니다.”
잠허자가 능청스럽게 말하자 적사결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
“뭐라 부르지?”
“금단. 일단은 금단이라 정해 보았습니다.”
* * *
“네가 여긴 어쩐 일이더냐?”
백리검은 사자림에서 돌아오자마자 천풍각에서 기다리던 단목련을 보고 물었다.
한데 그 답은 옆의 백리림에게서 나왔다.
“형님. 일전에 말씀드린 그 일로 찾아온 듯합니다.”
“흠…… 그러하냐?”
백리검의 말에 단목련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이럴 것이 아니라 들어가자. 들어가서 얘기하자꾸나.”
두 사람이 먼저 천풍각으로 들어가자 단목련과 그녀의 시비 양화가 뒤를 따랐다.
집무실에는 이옥연이 가주대행으로서 그곳에 있었다.
“여보, 가신 일은 잘되셨나요?”
“소기의 성과는 있었소. 그 얘기는 차차 하도록 하고 앉읍시다.”
“음? 련아, 너는 어인 일로 같이 오는 것이냐?”
이옥연이 단목련을 발견하고는 묻자 그녀는 쓰게 웃었다.
“어머님께서도 아시지 않습니까. 혼약에 관한 것을 여쭙고자 왔습니다.”
“휴…… 그렇구나. 이리 와서 앉으렴.”
단목련이 착잡한 얼굴로 자리에 앉자 이옥연이 먼저 백리림을 질책했다.
“도련님께서는 가문의 대사를 어찌 그리 함부로 말씀하신 것입니까?”
“죄송합니다, 형수님. 저는 혼인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조금이라도 빨리 단목가에 알려야 한다 생각했습니다.”
풍림의 관리자로서 은풍대와 관련된 이유도 있지만 명분으로 삼을 만한 사안은 아니었다.
명분은 혼약의 파기 혹은 지연할 만한 사안이냐 아니냐였다.
“시급을 요하는 일이라도 도련님께서 통보하실 일은 아니지요. 이는 가문의 안주인인 저의 책임입니다.”
이옥연이 거듭 백리림을 책하자 단목련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어머님. 누구의 입에서 나왔건 혼약에 문제가 생긴 건 사실인 듯하군요. 당사자로서 설명이 필요하니 말씀해 주세요.”
백리림을 질책하는 행위는 일종의 분위기를 잡는 것.
단목련은 그녀가 만든 분위기에 휩쓸리기 전에 화제를 본론으로 돌린 것이었다.
“그리 말한다면 알았다. 사정이 어찌 되었든 내 우선 너에게 사과하마. 본가는 혼인을 조금 미루고자 한단다.”
“연유를 말씀해 주세요.”
“황아가…… 지금 많이 아프단다.”
“갑자기 아프다고요? 어제까지 멀쩡하던 사람이요?”
단목련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치켜뜨며 말을 이었다.
“만나게 해 주세요. 직접 봐야겠어요.”
“허락할 수 없다. 황아는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해.”
이옥연이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갑자기 죽을병이라도 걸린 건가요? 왜 만나지도 못하게 하시는 거죠? 저는 혼인 당사자일 뿐만 아니라 이번 혼례 준비의 대표로 온 것이에요. 저는 알 자격이 있어요, 어머님.”
단목련이 쏘아붙이자 이옥연이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실은 황아가 주화입마에 걸렸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