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이혼대법-50화 (50/206)

<기적의 이혼대법 50화>

*   *   *

“동자공이 뭐냐?”

적사결의 물음에 이천억이 입가에 흐르는 피를 훔치고는 말했다.

“백 년 전 무신불 법륜대사가 고안한 기공 수련의 개념입니다. 풀이하자면 동정을 지닌 자의 무공이라 할 수 있죠.”

“동정?”

동정이라면 이성과 성교를 하지 않은 상태를 말함이다.

한데 그것과 무공이 무슨 상관이 있는 거지?

“예. 한 마디로 순결을 지켜야 하는 무공이 동자공입니다.”

“안 지키면 어떻게 되는데?”

“그동안 쌓은 내공이 흩어져 버립니다.”

“뭐? 그거 한 번 한다고 내공이 흩어져?”

“그렇습니다. 그 때문에 보리연화공이 미완성으로 남은 것입니다.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으니까요.”

“그럼 결론적으로 동정을 지키는 대신 내공이 쌓이는 속도를 빠르게 한다는 말인가?”

“네, 법륜대사께서는 동정을 지키면 신체가 태초의 순수한 상태에 가깝게 유지된다 하셨습니다. 특히 마흔까지 순결을 지켜 절대 동정지체를 이루면 그때부터 내공을 쌓는 속도가 몇 배로 늘어납니다. 나이가 들수록 그 속도는 더 빨라지고요.”

적사결은 어안이 벙벙했다.

그야말로 중이나 생각할 법한 파격적인 개념이었다.

‘영약의 도움 없이 오갑자를 쌓은 이유가 있었구나…… 고자라니…….’

자신이라면 십갑자를 얻을 수 있어도 선택하지 않을 방법이었다.

아무리 무를 숭상하고 강함을 쫓는 패도라지만 그걸 버리고 얻는 것이라면 아무 소용없다.

사내대장부라면 말이다.

“이건 무허와 저 외에는 누구도 모르는 비밀입니다. 무허 그 친구가 만취했을 때 말한 것이라 술이 깨고 그 녀석이 신신당부하며 부탁했습니다. 부디…… 비밀을 지켜 주십시오.”

이천억은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목숨 때문에 배신했지만 또 그걸 들키고 싶지는 않은 건가.

적사결은 혀를 차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하여튼 정파, 이 이중인격 같은 새끼들. 겉 다르고 속 다르고…….”

“…….”

이천억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다 눈앞이 번쩍하더니 시야가 새카매졌다.

쿵.

적사결이 관자놀이의 태양혈을 기습적으로 후려쳐서 기절시킨 것이었다.

그러고는 천축유가신공으로 이천억의 몸을 이리저리 만져 댔다.

앞서 해 본 경험이 있기에 치유는 생각보다 빨랐다.

엉망이 된 이천억의 몸을 보면 백리림과 은풍대가 지랄을 할 것이기에 최소한의 응급조치를 취하는 것이었다.

탁탁.

손을 털며 자리에서 일어난 적사결은 별안간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내 몸을 되찾을 때까지 고자라 생각해야 하는 건가…… 그래 그러고보니 고자가 되는 내공이라 더 기분 나쁜 거였어.”

어쨌든 앞으로는 최대한 여자를 조심해야 할 상황이 된 것이다.

잘못 처신했다가 삼백 년 내공이 날아가면 자신만 손해였다.

‘참았다가 무허 그 새끼한테 몸 돌려주기 전에 한 번 하고 줘야겠다.’

*   *   *

사자림.

원 말기 건립된 정원으로 기이한 형상의 태호석이 명물인 소주의 대표 정원이다.

이 태호석의 형상이 마치 춤추는 사자와 같다 하여 사자림으로 불리게 된 곳이었다.

“멋진 곳이군.”

적사결은 사자림의 풍경에 순수하게 감탄했다.

태호석은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았고 그 형상 하나하나가 생동감이 넘치고 고풍스런 예술성이 엿보였다.

이름 또한 사자림이라니. 이 얼마나 웅혼하고 패도적인 명칭인가.

정원은 보통 정적인 이름을 붙이기에 적사결은 동적인 느낌의 사자림이 이색적이고 마음에 들었다.

“사자림은 소주의 명승지라오. 해서 본 가주가 오늘 하루 특별히 빌렸소.”

백리검이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는 잠허자와의 만남을 위해 사자림을 통째로 빌린 것이었다.

“오랜만에 오는 사자림이지만 올 때마다 새롭군요.”

백리림이 정취에 한껏 매료된 어조로 말했다.

풍림에서 유유자적하는 것이 일상이지만 일렁이는 듯한 대나무와 고고한 노송이 어우러져 숲을 이루고, 그 사이를 뛰어 노는 사자 바위의 조화는 또 다른 장관이었다.

“놀러 온 것이 아니다. 다 왔으니 긴장하거라.”

백리검이 눈앞에 나타난 호심정을 보며 주의를 주었다.

사자림의 연못 가운데 자리한 정자, 호심정.

그곳에는 한 명의 중년인이 자리해 있었다.

그는 백리검 일행들을 발견했는지 곧 자리에서 일어나 마중을 나왔다.

“약조를 해 놓고 조금 늦은 모양이군요. 송구합니다.”

“하하하, 아닙니다. 제가 사자림을 보고 싶어 이른 걸음을 한 것입니다. 심려치 마십시오.”

“그리 말씀해 주시니 감사하군요. 이쪽은 제 아우 백리림입니다.”

백리검은 우선 초면인 백리림을 소개시켜 주었다.

“백리림입니다. 진인의 고명은 익히 들었습니다.”

백리림이 포권을 하며 예를 올렸다.

“저야말로 강소에 자자한 백풍 대협의 명성을 듣고 언제 한 번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잠허라 합니다.”

“초야에서 수목이나 돌보는 저에게 명성이라니요. 과찬이십니다. 하하하.”

“몸을 일으키지 않았다하여 용이 아닌 것은 아니지요. 백풍 대협은 강소의 잠룡이라는 것이 세간의 평가 아니겠습니까.”

두 사람의 인사치레를 보는 적사결은 속으로 혀를 찼다.

‘정파 놈들은 꼭 만나면 서로 금칠을 하기 바쁘지, 쯧. 대충 하고 본론으로 넘어갈 것이지…….’

잠허자는 그런 적사결의 속내를 보았는지 그를 보며 말했다.

“잠허자라 하외다. 반갑소이다.”

“적운이오.”

“…….”

잠허자는 잠시간 착 가라앉은 눈빛으로 적사결을 바라보았다.

“왜 그러시오? 본좌는 별호가 없어 다른 소개는 해 줄 것이 없소만.”

“아…… 아닙니다. 성명을 주고받았으니 되었지요. 자, 그리들 계시지 마시고 이리 앉으십시오.”

잠허자가 미소를 지은 채 안쪽으로 손을 뻗었다.

백리검을 필두로 백리림과 적사결도 호심정 내에 마련된 자리에 앉았다.

네 사람이 원형의 탁자를 사이에 두고 자리하자 잠허자가 먼저 말했다.

“가주께서 본도를 만나자고 한 연유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분위기로 보아 그저 친분을 도모하기 위함은 아닌 듯 한데요.”

“진인의 고견을 듣고 싶어 이리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본도가 그리 식견이 넓지 못하나 일단 무슨 일인지 들어 보겠습니다. 말씀하시지요.”

“혹시 반선주라는 것을 들어 보셨습니까?”

“반선주라…… 들어 보지 못했습니다.”

잠허자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하고는 다시 되물었다.

“그것이 무엇이기에 가주께서 물으시는 것입니까? 이름만 들었을 땐 주종의 한 가지인 듯하오만.”

천하에 알려지지 않은 술의 종류는 셀 수 없이 많다.

지역의 특색을 살린 술도가의 명주는 물론이오 이름난 객잔마다 자신들 나름의 술을 판매했고 심지어 개인이 담근 술도 있었다.

생소한 술의 이름만 듣고 그것이 무엇인지 판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술은 술이되 보통 술이 아닙니다. 해서 진인을 찾아왔지요.”

“보통 술이 아니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것을 나눠 마시면 영혼이 바뀌게 됩니다. 정확히는 그런 현상에 대한 진인의 고견을 듣고자 하는 것이지요.”

“…….”

잠허자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말을 꺼냈다.

“모산파라 들어 보셨습니까?”

“구파일방 이전 십이도문으로 불린 도가의 일문 아닙니까. 과거 원 황실에 대항하다 멸문했다 들었습니다.”

강소성 모산. 그곳을 본산으로 둔 모산파는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도문이었다.

“도가에 처음 입문한 당시 본도는 이름난 명산의 도관을 찾아가 그곳의 고문서를 탐독하고 진리를 찾아 헤맨 적이 있습니다. 그러던 중에 멸문한 모산파의 것으로 보이는 고서를 보게 되었지요. 그리고 그 속에서 이혼대법이라는 방술에 대한 것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이혼대법이요? 그것이 무엇입니까?”

“혼을 옮기는 술법의 일종입니다. 수천 년 전 고대에는 선인들이 신묘한 현상을 일으키는 주술을 지금의 무공처럼 흔하게 사용했다 합니다. 본도도 믿기 힘들었지만 당시에는 사람의 영혼을 물건에 옮겨 담는 술법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백리검은 자신도 모르게 탁자를 내려치며 말했다.

“그것입니다. 그 이혼대법이 반선주의 정체였군요!”

잠허자는 분개하는 백리검의 태도와 낯빛이 변한 적사결을 보고는 호기심어린 얼굴로 물었다.

“혹시…… 지인 중 누군가가 반선주라는 것을 마시고 영혼이 바뀌게 되었습니까?”

“누군지 밝힐 수는 없으나 그렇습니다.”

“허어……. 무량수불…… 어찌 그런 일이…….”

잠허자가 눈을 감고 도호를 읊조리자 백리검이 다급히 물었다.

“진인, 무슨 방법이 없겠습니까? 그 이혼대법이라는 것에 대해 더 알고 계신 것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안타까우나 본도 역시 그 글귀 한 줄만을 보았을 뿐 더 이상은 알지 못합니다. 도움이 되어 드리지 못해 송구합니다.”

“아닙니다. 그것이라도 알게 된 것이 어디입니까. 진인께서 큰 도움을 주신 것입니다.”

백리검은 포권을 하며 목례를 했다.

아들의 인생이 걸린 일에 도움을 준 것이니 절로 고개가 숙여진 것이었다.

“혹시나 하여 드리는 말씀이지만 풍문에 제갈세가의 초대 가주께서 과거 모산파와 인연이 있었다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어느 정도의 인연인지는 모르나 가주께서 한번 연락해 보시는 것도 한 방법일 듯싶습니다.”

“제갈세가…….”

백리검은 말끝을 흐렸다.

오대세가와 다른 무가들은 사이가 좋지 않았다.

특히 중소무가들의 대표인 종리세가, 백리세가 등 몇몇 가문은 더욱 그들의 눈치를 봐야 했다.

오대세가는 자신들의 영역에 다른 가문이 끼어드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한 가지 물을 것이 있소.”

그동안 침묵하던 적사결이 입을 열었다.

“말씀하십시오.”

잠허자는 또다시 미묘한 눈빛으로 적사결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상해서 말이오. 입문 당시라면 수십 년 전일 테고 그때 보았던 단 한 줄의 글귀를 기억한다? 그것도 이혼대법이라는 생소한 술법에 대해? 아무리 기억력이 좋다하나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쉽게 믿음이 가지 않는군.”

적사결의 말에 잠허자는 호탕하게 웃었다.

“본도가 잘나서 그런 것을 어찌 증명할 수 있겠습니까? 이래 뵈도 소싯적 양주에서 육서성하면 모르는 이가 없었소이다. 하하하.”

이러고 보니 도사 치고는 또 허례의식이 없다.

아까도 느꼈지만 백리 형제를 대할 때와 자신을 대할 때는 달랐다.

마치 상대방을 꿰뚫어 보고 스스로를 그에 맞추는 것처럼.

‘말코 놈들이랑은 다르구나. 인물이야.’

적사결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허자는 그런 그를 물끄러미 보더니 말했다.

“적 대협께 독대를 청하고 싶은데 시간 좀 내줄 수 있겠습니까?”

“나와 말이오?”

“그렇습니다.”

“뭐, 상관없소.”

적사결이 고개를 끄덕이자 잠허자는 백리검과 백리림에게 동의를 구했다.

“듣고자 한 것도 다 들었으니 자리를 피해 드리지요. 가자.”

“예, 형님.”

백리형제는 흔쾌히 자리를 비켜 주었다.

그렇게 호심정에는 잠허자와 적사결만 남아 서로를 마주 보았다.

“나와 독대를 청한 이유를 물어도 되겠소?”

적사결의 물음에 잠허자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마도의 대종사를 뵙는데 정파의 위인들과 함께 있어서야 불편하지 않겠습니까?”

“……!”

적사결의 눈빛이 가늘어지며 사왕의 도집에 오른손이 얹어졌다.

“그게 무슨 말인가?”

“숨기지 않으셔도 됩니다. 지금의 그 용모. 젊은 시절 적사결 교주의 그것과 같아서 하는 말입니다.”

얼굴을 보고 알았다?

적사결은 자신의 얼굴을 알아보는 잠허자에게 물었다.

“우리가 만난 적이 있었나? 본좌는 기억에 없는데.”

“오래 전, 먼발치에서 잠깐 보기만 했지요. 처음엔 긴가민가했으나 이혼대법에 관한 얘기를 나누며 확신했습니다. 아마도 교주께서도 몸이 바뀐 것이겠지요? 그리고 인피면구와 같은 모종의 방법으로 역용을 하신 것이고요.”

표정을 읽은 것이구나.

이혼대법에 대해 들었을 때 잠시나마 격동했던 자신이었다.

숨긴다고 했지만 자신도 모르게 표정에 드러난 것이 분명했다.

“본좌를 안다니 다시 한번 묻지. 왜 나를 보자고 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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