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이혼대법 49화>
풍림의 뇌옥.
그곳은 일반적인 감옥이라 할 수 없었다.
단지 은풍대가 지내는 모옥 옆의 공터, 그곳에 네 개의 작은 돌탑을 이천억 주위에 놓았을 뿐이었다.
하나 그것만으로 이천억을 가두는 데 무리는 없었다.
파지직.
“윽!”
이천억은 손가락으로 돌탑을 건드렸다가 튄 뇌기에 깜짝 놀랐다.
호신강기를 두르고 있었음에도 얼굴을 찌푸릴 정도의 고통이었기 때문이었다.
“네놈이 무슨 짓을 해도 소용없으니 얌전히 있거라.”
감노는 이천억을 향해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이천억을 가둔 진법의 이름은 사방지뢰진이었다.
진을 구성하는 진축은 사물이 아닌 네 명의 은풍대원.
그들 네 사람이 힘을 합친 수준을 뛰어넘을 수 있는 고수가 아닌 한 그곳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
이천억은 팔짱을 끼고 얌전히 자리에 앉았다.
표정은 불퉁스러웠지만 별다른 수가 없는 것이리라.
감노는 코웃음치고는 풍림의 한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풍사환혼진의 입구가 열리며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각주, 가주와 얘기는 잘되었소?”
“형님께서 냉철하고 영민한 분이신 것은 감노도 잘 아시지 않소. 당연한 일이지.”
“거, 우애 한 번 돈독하구려. 허허.”
“아무렴.”
백리림은 피식 웃고는 이천억을 바라보았다.
“꼴좋구나. 금개.”
“…….”
이천억이 말이 없자 백리림은 적사결에게 말했다.
“저자의 입을 여는 건 알아서 하시구려.”
“내 알아서 할 테니 자리만 비켜 주시오. 이왕이면 저 진법도 해제해 주고.”
“그건 안 될 말이오.”
“풍사환혼진인가 그것이 있으니 도망치지 못할 텐데 좀 풀어 주지 그러시오?”
“그대 눈빛을 보니 더 못 풀어 주겠소. 풀어 주면 때려죽일 듯한 눈빛인데 황아의 몸을 반병신으로 만들 순 없지.”
이런…… 나도 모르게 눈빛이 새어 나갔나.
“칫, 알았소. 그럼 다 나가시오. 단둘만 있고 싶으니.”
적사결이 손을 휘휘 젓자 백리림이 은풍대원들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다들 풍사환혼진 속으로 사라져 갔다.
둘만 남게 되자 적사결은 이천억에게 다가갔다.
“야.”
“…….”
“야.”
“…….”
“입 닥치고 있겠다?”
“…….”
“본좌가 또 입이 무거운 새끼들을 존나게 좋아라 하지.”
적사결은 천천히 왼쪽 팔의 소매를 걷어부쳤다.
“세상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어. 그게 누굴까? 궁금하지?”
이제는 오른쪽 팔의 소매를 걷기 시작했다.
“그건 본좌에게 얻어맞은 놈과 얻어맞을 놈이지.”
적사결의 말에 이천억은 피식 웃었다.
“웃어? 본좌를 앞에 두고 쪼개는 거냐, 지금?”
“해 볼 테면 한번 해 보시지. 한 대라도 때릴 수 있다면 내 뭐든 대답해 주지.”
자신을 가둔 진법, 사방지뢰진.
건드렸을 때의 반탄력을 계산했을 때 적어도 공력이 이갑자 이상이어야 감히 비벼볼 만한 수준.
또한 이천억은 한 가지 확인해 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그때 보인 보리연화공의 기운. 진짜 운기한 것이 맞을까…….’
자신이 알기에 보리연화공은 구결을 모르면 다루기가 불가능에 가까웠다.
어지간한 심력이 아닌 이상 반응하지 않는 것이다.
만일 그것이 가능하려면 천하에서 열 손가락 안에는 꼽혀야 가능성이 있을 것이었다.
‘이번 한 수로 무허 그놈이 누구랑 몸을 바꾼 건지 대략이라도 짐작할 수 있겠지…….’
이천억이 노골적으로 무시하는 듯한 눈빛을 내 보였다.
적사결의 이마에 빠직하고 힘줄이 돋아났다.
“개새끼가 본좌를 뭘로 보고.”
스릉.
적사결은 돌탑 하나에 다가가 사왕을 빼 들었다.
‘꼴에 정보 다루는 거지새끼라고 본좌가 누군지 가늠해 보려는 것 같은데 개눈깔 크게 뜨고 똑똑히 봐라. 그래도 알아낼 수 있을진 모르지만. 큭큭.’
상단세의 자세를 잡은 뒤 두 손으로 부드럽게 사왕의 도파를 고쳐쥐었다.
“후우…….”
날숨을 내쉬자 근육이 바짝 긴장하고 천축유가신공으로 터질듯 부풀어 오른 상체가 꿈틀거렸다.
그것은 최대한의 외공을 발휘하기 위한 준비 단계였다.
실전에서는 사용하지 못하겠지만 움직이지 않는 돌탑이니 시험해 보는 것이었다.
‘지금의 근력 수치로는 이 정도가 한계로군.’
적사결은 한계치에 도달했다는 판단이 들자 벼락같이 사왕을 내리그었다.
쩌어엉. 치지지지직.
한 치를 앞에 두고 사왕은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고 있었다.
돌탑을 보호하는 뇌기가 척력이라도 생긴 듯 사왕을 밀어내는 것이었다.
‘칫.’
사왕을 거두고 물러서니 적사결의 온몸에서 더운 김이 흘러나왔다.
뇌기가 사왕을 타고 신체에도 타격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짜릿하지? 바싹 구운 오징어 같군. 보기 좋아. 쿡쿡.”
이천억이 이죽거리며 실소를 흘려댔다.
“간 본 거야, 새끼야.”
체면이 말이 아니군.
적사결은 입안의 쓴물을 뱉어 내고 다시금 사왕의 도파를 쥐었다.
“내공을 못 쓰는 건가? 아니면 일부러 안 쓰는 건가? 힘만으로 휘둘러 베어 낼 물건이 아님을 알 텐데.”
“그건 네놈 같은 약골들 기준이고.”
적사결은 다시금 호흡을 가다듬었다.
잠재의식이 정해 놓은 힘의 한계. 부작용이 생기지 않는 선에서는 이전의 힘이 최대치였다.
‘한계치로 안 된다면 한계를 넘으면 되지.’
애초에 천축유가신공은 한계를 넘어 더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마치 신교의 마인화가 마성에 빠져 자신의 한계를 넘나드는 것과 같이.
마인화는 신체에 걸리는 부담이 두 배 정도이기에 사용 후 약간의 근육통이 전부.
하나 천축유가신공은 두 배가 아니라 열 배, 어쩌면 그 이상도 가능했다.
‘문제는 근육통만으로 끝나지도 않고 습관적으로 의존할 수도 있지만…….’
한계가 정해져 있지 않은 거대한 힘은 마약과 같다.
몸이 망가져도 그 쾌락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내 웬만하면 이건 안 쓸려고 했는데 네놈같이 우물 안 개구리들 상식 파괴가 본좌의 취미 중 하나라 특별히 보여 주지.”
꾸드득. 꾸득.
근육이 꿈틀거리다 못해 삐걱거리는 듯한 특유의 소리가 발생했다.
무복에 가려 보이지 않지만 적사결의 몸에는 수많은 핏줄이 불거져 있었다.
자세는 이전과 동일한 상단세.
콰우.
하나 그 속에 깃든 힘은 측정불가의 거력이었다.
콰지지직.
돌탑의 꼭대기부터 바닥까지 베어 내는 데 굉음은 없었다.
반탄지기까지 깔끔하게 절단내 버렸기 때문이었다.
“이…… 이럴수가…….”
이천억은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랐다.
이갑자 이상의 힘이 필요한 것을 오로지 외공만으로 베어 버리다니.
아무리 신력이 있다 하나 불가능한 일이었다.
“야, 이제 좀 맞자.”
해제된 사방지뢰진 안으로 들어간 적사결이 손목을 돌리며 경직된 근육을 풀었다.
지금 상태로 때리면 반병신이 아니라 바로 뒈질 테니까.
“대…… 대협. 말로 합시다. 내 다 말할 테니까.”
“말해. 본좌는 일단 좀 때릴 테니까.”
곧이어 이천억의 비명이 하늘에 울려 퍼졌다.
하나 바람에 흩날리는 버드나무 잎사귀의 소리가 그것을 가렸다.
* * *
“그래서 요약하자면 보리연화공의 특징은 세 가지로군.”
적사결의 물음에 이천억이 시퍼런 눈탱이를 문지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첫째, 보리연화공은 내공의 응집력이 강하기에 다른 내공에 비해 그 파괴력이 뛰어납니다. 마공에 비해도 손색이 없는 수준이지요. 다만 뭉치는 힘이 강한 만큼 다루기가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닙니다.”
풀이하자면 내공 자체가 지들끼리 뭉치려 들기에 운기하기도 어렵고 체외로 발현하기도 힘들다는 것.
“둘째, 불가기공 중에서도 안정성이 특히 뛰어납니다. 운기조식 중에 건드려도 무탈하고 내상을 입은 상태로 내공을 사용해도 주화입마에 걸릴 위험이 없죠.”
개사기다.
내상을 입어도 공력의 운용에 크게 무리가 없다는 말이었다.
“셋째, 내공을 쌓는 속도가 정공임에도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마공이나 사공에 비할 바가 아니죠.”
도대체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
적사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공은 안정성이 높고 상승의 경지에 진입하기 쉬운 반면 성취가 느린 단점이 있다.
마공과 사공은 그 반대였고 말이다.
한데 보리연화공은 단점을 장점으로 승화시킨 것이었다.
“단점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는데 왜 미완성의 무공으로 남긴 거지? 완벽하잖아, 씨발.”
인정하기 싫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다.
다루기 어렵다는 점이 있지만 천재라는 자들에게 있어 그것은 단점이라기보다 극복하고 싶은 과제 정도에 불과했다.
‘어? 이 새끼 뭔가 알고 있네?’
적사결은 이천억의 눈빛에서 그것을 읽었다.
무언가를 숨기는 눈빛 말이다.
“근데 네놈은 소림 땡중 놈들도 모르는 것을 잘도 알고 있구나?”
“무허, 그 친구와 자주 술 마시다 보니 이런저런 얘기를 주워들은 겁니다.”
하긴 부모에게 못하는 말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친구니까.
더욱이 술친구라면 오죽할까.
“그럼 왜 미완성의 무공인지 그 이유도 알겠네? 이런저런 주워들은 얘기 중에 있었지? 그렇지?”
“없었습니다.”
이천억은 적사결을 당당히 쳐다보며 말했다.
“없어?”
“예.”
“정말 없어?”
“진짭니다.”
적사결은 다시 소매를 걷어붙였다.
“그래, 입 꾹 처닫아라. 네가 아프지 내가 아프냐.”
“때려도 소용없습니다. 모르는 건 모르는 거요.”
“맞아. 모르는 건 모르는 거지. 근데 경험상 모르는 것도 맞다 보면 알게 되더라고. 그러고 보면 참 경험이 재산이야. 그치?”
“…….”
이천억은 마른침을 삼켰다.
앞서의 분근착골과 구타가 머릿속을 둥둥 떠다녔다.
“물론 그러고도 모를 수 있어. 너도 아픈 거 한번 경험해 봤으니까. 아픈 경험도 재산이라고 또 적응을 하더라고.”
또 무슨 짓을 하려고 이러는 걸까.
이천억은 불안감이 엄습했다.
“끝까지 모르면 넌 뒈져. 본좌는 답을 가진 놈을 앞에 두고도 궁금증을 해결 못하면 이성을 잃는 나쁜 습관이 있거든.”
“날 죽인다? 백리세가의 비지에서 그 후계자의 몸을 가진 나를?”
“그래 안 믿기겠지. 믿지 마. 믿으라고 사정 안 하니까. 일단 맞으면서 곰곰이 생각해 봐. 시간은 많잖아.”
뻐어억.
갑자기 날린 앞차기에 얻어맞은 이천억이 명치를 붙잡고 바닥을 굴렀다.
이어서 적사결의 주먹이 미친 듯이 내려꽂히기 시작했다.
퍼버버버벅. 퍼버벅.
탄력이 넘치는 주먹질은 늘어났다 줄어들고 다시 늘어나며 때리는 박자감에 속도를 더했다.
‘이런 미친 괴물 새끼.’
이천억은 온몸을 웅크린 채 급소를 보호했지만 뼈가 저리고 내장이 진탕됨을 느꼈다.
‘지…… 진짜 때려죽이려는 거 아냐?’
얼핏 보이는 눈깔이 반쯤 돌아가 있었다.
죽든지 말든지 상관없이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은 것.
살기를 풀풀 풍기며 때리는 것과는 또 다른 무서움이었다.
뻐억. 콰직. 퍼벅. 으직.
얼마나 얻어맞았는지 뼈가 부러지기 시작했다.
늑골이 아작나고 단단한 정강이뼈도 덜렁거렸다.
“대…… 대협…….”
이천억이 가느다랗게 목소리를 흘렸다.
적사결은 못 들었는지 들은 척도 않는 건지 구타를 멈추지 않았다.
“대…… 협! 윽! 윽! 대혀업! 꺽!”
있는 힘을 다해 외치자 그제야 주먹질이 멈추었다.
“그…… 그만. 그만 때리시오. 말씀드리겠습니다. 쿨럭.”
“벌써? 이제 시작인데?”
“더…… 더 맞으면 죽을 것 같습니다. 말하겠습니다. 다 말하겠습니다.”
“거참. 줏대 없네…… 근데 네놈은 살 만큼 산 놈이 왜 그렇게 삶에 집착하지? 떵떵거리고 살았으면 즐길 만큼 즐겼을 텐데. 아직 더 하고 싶은 게 있는 거냐?”
적사결의 말대로 이천억의 삶에 대한 집착은 과한 수준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두 번째 삶에 대한 집착이었다.
“어떻게 얻은 새 삶인데 이렇게 죽을 순 없지…… 쿨럭. 앞선 인생에서 평생을 불운과 악운에서 허우적거렸으니 이번에는 제대로 살고 말거요.”
엄청난 재복이 있었으나 재복만 있었다.
사람으로서 가져야 될 것은 단 하나도 가지지 못했고 그나마 말년에 개방도가 되어서 사귄 친구는 천하사괴 그들이 전부였다.
“빼앗은 남의 인생으로 제대로? 지랄 떨고 자빠졌네.”
“…….”
이천억은 몸을 추스르며 그에 대해서는 입을 열지 않았다.
“자 그럼 얘기해 봐. 왜 보리연화공이 미완성으로 남은 거지?”
“……그건…….”
“뜸들이려면 좀 더 처 맞자.”
적사결이 손을 풀자 이천억은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보…… 보리연화공이 동자공이기 때문입니다.”
“동자공?”
그게 뭐지?
동자승이 익히는 무공의 줄임말인가?
적사결은 처음 들어 보는 단어에 고개를 갸웃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