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이혼대법 48화>
“황아, 네 입으로 자초지종을 말해 보거라.”
백리검은 의자를 끌어다 앉으며 말했다.
그는 충격이 컸는지 서 있을 기운도 없어 보였다.
“네…… 아버지.”
백리황은 차분히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에 대해 설명했다.
금개 이천억이 건네었던 반선주부터 시작해 낙양으로 갔다가 소주로 돌아오기까지.
백리황의 설명을 듣는 백리검과 이옥연, 그리고 백리림은 끝까지 침착한 태도로 경청했다.
“후우…… 내 강호의 기사나 괴담에 대해 알 만큼 안다 자부했거늘…… 이거 참…….”
백리검은 속이 타는지 탁자 위의 찻잔을 들어 단숨에 들이켰다.
“한데 그쪽 분은 누구시오?”
백리검이 시선을 돌린 곳에는 적사결이 있었다.
지금의 적사결은 젊은 시절 무허의 얼굴이 아닌 젊은 시절 자신의 얼굴이었다.
천축유가신공이 마침내 역용이 가능한 수준까지 오른 것이었다.
더구나 오랜만에 사왕을 패용했기에 이전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었다.
“형님.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그가 무허대사와 몸이 바뀐 적운 대협입니다.”
“한데 저 모습은 무허대사가 아니지 않느냐?”
백리검의 물음에 적사결이 대답했다.
“본문의 비전절기 중 한 가지요. 너무 많은 건 묻지 마시고 이것이면 증명이 될 것이오.”
적사결은 말이 끝남과 동시에 보리연화공의 내공을 움직였다.
그러자 황금빛 기운이 적사결의 등 뒤에서 일렁거렸다.
“항마기!”
백리검은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 역시 젊은 시절 수차례 의천맹의 일원으로 마교와의 전쟁에 참여했던 인물.
멀리서나마 무허대사의 신위를 목도한 경험이 있었다.
“허어…… 정말 천하사괴 그 정신 빠진 놈들이 사고 한 번 제대로 쳤구나…….”
백리검은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저었다.
“자, 상황 파악은 다 되었을 터.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상의해 봅시다.”
적사결의 물음에 좌중은 그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핵심은 반선주. 정황상 그것을 사용하지 않은 천하사괴 놈들은 없을 것 같소. 일단 무허와 금개는 반선주를 전부 사용한 것으로 확인되었고, 남은 두 놈은 남겨 두었을지도 모르니 확인이 필요할 것이오. 또한 그 망할 술을 만든 정체불명의 도사에 대한 조사도 해야겠지.”
“천하사괴 쪽은 금칠대가 있습니다, 적운 님.”
백리황의 말대로였다.
적사결을 제외한 여섯 명의 금칠대는 세 명씩 나누어 천하사괴에 대한 첩보를 입수하기 위해 움직인 상황.
더구나 별도로 적사결의 정보대인 적월이 조사 중이니 따로 인원을 더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좋아. 그쪽은 백리황 너에게 맡기마.”
적사결은 소리없이 웃으며 말했다.
녀석의 눈에서 열정이 흘러넘치고 있었기에 맡기지 않을 수 없었다.
“금칠대가 무엇이냐, 황아?”
이옥연의 물음에 백리황이 화색을 띤 얼굴로 말했다.
금칠대에 대해서는 적사결에게도 칭찬받은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금개의 지위를 이용해서 제가 뽑은 개인 정보대입니다. 개방도와의 연계 없이 오직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정보 부대죠. 개방의 이목을 끌지 않고 제 뜻대로 움직일 자들이 필요하다 생각해서 만들었습니다.”
구구절절 필요도 없는 말을 굳이 알아서 말하고 있다.
강아지처럼 칭찬해 달라는 태도가 그대로 드러났다.
‘순진한 건지…… 멍청한 건지…… 어휴, 단순한 놈.’
그래, 그간 부모의 칭찬이 목말랐겠지.
하긴 수련 중에 자신이 잘했다고 한 마디만 해도 눈을 반짝반짝 빛내는 백리황이었다.
“자자, 그럼 이곳에 있는 우리들은 그 정체불명의 도사 놈을 잡으면 되는데…… 문제는 놈에 대해 아무런 단서가 없다는 것이오.”
적사결의 언급에 백리림이 말을 이었다.
“놈과 이천억이 만난 곳은 강소성이라 했었소. 하면 적어도 강소성 어딘가에 놈에 대해 아는 이가 있을지도 모르오. 그리고 강소성은 우리 백리세가의 앞마당이라 할 수 있지.”
앞마당은 무슨. 단목세가와 반반인 주제에.
적사결은 속에서 나오는 말을 꿀꺽 삼킨 채 물었다.
“하면 백리세가의 가솔들을 풀어 탐문 수사를 할 거요?”
“그러다 본가의 후계자에 대한 일이 새어 나갈 수도 있으니 그건 안 될 일이오.”
가주인 백리검의 단호한 거절이었다.
“하면 생각한 바가 있으시오?”
“영혼을 바꾸는 기이한 일이오. 그리고 그것을 무림에 적을 둔 우리는 전혀 모르고 있었소. 심지어 식견이 풍부한 은풍대조차 마찬가지였지.”
그랬다. 은풍대가 식견이 풍부한지 모르겠으나 천마신교의 지존인 자신도 들어본 적 없는 일.
심지어 온갖 정보를 다루는 적월들조차 모르는 사안이었다.
“가주께서는 그놈이 무림인이 아니다 생각하는 것이오?”
“그렇소. 그리고 그놈에 대해 확실한 하나는 도사라는 것이지 않소.”
“일부러 도사행색을 한 것이 아니라면 그럴 것이오.”
도사. 말 그대로 도를 닦거나 도교를 믿는 수행자를 뜻한다.
도교는 수많은 방파가 있지만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었다.
바로 무맥과 술맥.
무맥은 현존하는 무당파와 화산파와 같이 무로써 도를 얻고자 하는 이들.
그들은 대부분 무림에 적을 두고 있었다.
술맥은 신선이 되기 위해 주술과 방술을 수련하는 이들.
그들도 과거엔 무림에 적을 두었으나 현재는 무림방파로써 존재하는 곳은 없었다.
“가주께서는 술맥을 이은 도문을 의심하는 것이오?”
“적 대협도 알겠지만 술법은 무공보다 그 종류가 다양하고 기상천외한 이능을 부리는 경우가 많다고 했소.”
직접 눈으로 보진 못했으나 그랬다고 했었다.
구전 설화나 민담으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서 방술사는 자주 등장했었으니까.
하나 지금의 방술사들은 대개 약이나 파는 사기꾼이 대부분이었다.
이는 술법 자체가 후천적인 노력보다는 선천적인 자질에 의존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었다.
무공도 그렇긴 하지만 술법은 그 정도가 극심했기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이다.
“혹시 그 방면으로 친분이 있는 자가 있으시오?”
적사결의 물음에 백리검은 고개를 끄덕였다.
“개인적으로 아는 자 중에 잠허자라는 분이 있소. 양주사람으로 지금은 이곳 소주에 있으니 내일이라도 만날 수 있을 것이오. 그리고…….”
“다른 사람이 또 있는 것이오?”
그럴지도 모른다. 그는 강소성에서만큼은 유서 깊은 가문의 수장이니까.
하나 이어진 대답은 예상과 달랐다.
“사람을 아는 것은 아니고 적 대협도 들어는 보았을 것이오. 천사도라고. 그 천사도의 총본산인 용호산이 이곳 강소성에 있소.”
“아…… 천사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들어 본 적 있었다.
후한 말, 황건적의 수장인 장각의 태평도와 함께 도교의 원류로 일컬어지는 종파 중 하나.
태평도와 비슷한 시기 창건되었으나 맥이 끊긴 태평도와 달리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곳이 천사도였다.
그리고 엄밀히 구분하자면 그들은 술맥의 일파였다.
“한데 그들에게 그만한 지식이 남아 있겠소?”
수천 년을 민간 신앙으로만 이어져 온 곳이었다.
적사결은 그들에게 무언가를 기대하기란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알 수 없소. 하나 오랜 역사를 자랑하니 단서가 될 만한 고문서나 얘깃거리가 있을지도 모르지 않소.”
“흠…… 그건 그렇구려.”
“일단 잠허자와의 자리를 마련할 터이니 그분을 먼저 만나 보도록 합시다.”
“알겠소.”
적사결은 백리검과의 의논이 끝나자 백리황을 돌아보았다.
“나는 가 볼 터이니 너는 오랜만에 본가에서 푹 쉬거라. 금칠대와의 업무도 여기서 하도록 하고.”
“적운 님. 수련은 더 받지 않는 것입니까?”
“더 이상의 지도는 필요 없을 텐데. 듣자 하니 선생의 시험도 통과했다던데 아직 스스로 자신이 없느냐?”
“아…… 아닙니다.”
“지금까지 수련했던 과정을 반추해 보고 스스로 자신을 단련해 보거라. 그렇게 수련 방식을 바꿔 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알겠습니다.”
적사결은 고개를 끄덕이며 백리림에게 따로 눈짓을 했다.
백리림은 알아들었는지 적사결을 따라 집무실을 나섰다.
“황아, 저 적운이란 사람에게 가르침을 받았더냐?”
백리검이 그들이 나간 문을 바라보며 말했다.
“예, 아버지.”
“실력이 어느 정도더냐?”
“저로서는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분이었습니다.”
“대충이라도 모르느냐?”
“제가 절정의 경지에 오르는 데 큰 도움을 주신 분입니다. 적어도 초절정 이상이라 생각됩니다. 하나 그것도 확실하진 않습니다.”
백리황의 대답에 백리검과 이옥연이 놀란 토끼눈이 되었다.
“저…… 절정? 지금 절정이라 했느냐?”
“예. 모두 적운 님 덕분입니다. 물론 절정 고수인 금개의 몸이 있었으니 가능했지만요.”
“…….”
백리검은 말문이 막혔다.
아무리 절정 고수의 몸을 지녔다지만 깨달음이 없어서는 아무 소용없다.
더구나 자신의 아들은 검기조차 다룰 수 없는 삼류였다.
설마 삼류에게 강제로 절정의 깨달음을 주입하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백리검은 불현듯 주화입마가 걱정되었다.
“어…… 어디 몸에 이상한 점은 없느냐? 간헐적인 두통이라거나 기절을 한다거나 주체가 안 되는 심화가 치밀어 오르거나 말이다.”
“여보, 혹시 주화입마를 걱정하시는 건가요?”
이옥연이 하얗게 뜬 낯빛으로 물었다.
“처음…… 황아의 몸을 한 이천억이 검강을 선보였을 때 나는 주화입마를 의심하지 않았었소. 지금 생각해 보니 본능적으로 당연하다 느꼈기에 그런 것이었지 않나 싶소.”
그때와 반대로 지금은 아들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의식하기에 불현듯 걱정이 든 것.
백리황은 그 마음을 알기에 또다시 한쪽 가슴이 시큰거렸다.
“걱정 마세요. 전 아무 이상 없으니까요. 그 때문에 적운 님께서는 실전에 가까운 대련으로 저를 지도해 주셨고요. 그분 말씀으로는 초식이나 운기법, 그리고 깨달음과 같은 생각 자체를 비우고 몸이 시키는 대로 그저 받아들이라 하셨어요. 그러면 절정의 신체가 제 정신을 그 영역으로 이끌 것이라고요.”
“허어…….”
백리검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분명 누구나 들으면 알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한 설명이나 그것을 실제로 적용하려면 가르치는 자가 어느 정도의 경지에 있어야 할지 그조차 가늠이 되지 않았다.
‘우리 아들이 기연을 얻은 것이구나. 그를 만난 것 자체가 기연이야.’
백리검은 적사결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하면 강기를 한 번 보여 주겠느냐? 아비가 직접 보고 확인을 해야 안심이 될 것 같구나.”
“네, 그럼 잠시만 뒤로 물러나주세요.”
백리황은 집무실 가운데 오연히 서서 눈을 감았다.
우우웅.
그것은 그저 강기가 아닌 호신강기였다.
신체 전반에 걸쳐 강기로 둘러싸는 방호기공.
백리황의 호신강기는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완전한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와…… 완벽하구나…….”
백리검은 순수하게 감탄했다.
기운의 흔들림도 없고 불안정한 부분도 찾을 수 없었다.
호신강기만 따진다면 자신 못지않은 수준이었다.
“그만 하면 되었다.”
후욱.
백리황은 기공을 거두고 천천히 호흡을 조절했다.
한껏 들썩인 단전을 가라앉히는 데는 아직 미숙한 것이었다.
“그간 고생이 많았겠구나, 황아.”
이옥연도 자랑스러운 눈빛으로 그의 아들을 바라보았다.
* * *
“각주께 부탁이 있소.”
적사결은 천풍각을 벗어나자 백리림을 돌아보며 말했다.
“부탁? 무엇이오?”
“이천억과 독대할 수 있게 해 주시오.”
“이유를 말해 줄 수 있겠소?”
“무허, 그 늙은이에 대해 묻기 위함이오.”
“무허라…… 뭘 물을지 물어봐도 되겠소?”
“꼭 알아야겠소?”
적사결의 담담한 물음에 백리림이 어깨를 으쓱했다.
“꼭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알겠소. 그대가 이천억을 사로잡는 데 큰 도움을 주었으니 그 정도야 어려운 것 아니지.”
백리림의 말을 듣던 적사결은 심기가 거슬렸는지 눈썹을 씰룩였다.
‘근데 이 새끼가 은근슬쩍 반말이네…… 어린 노무 새끼가…… 날 한 번 잡아야 하나…….’
부르르.
백리림은 갑작스런 오한에 양팔을 쓰다듬었다.
‘오뉴월에 감기가 든 것도 아닌데 웬 오한이지? 거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