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이혼대법 47화>
대전의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자유로운 움직임이 가능해졌지만 누구 하나 손가락 까딱하지 않았다.
‘누구야? 도대체 누가 기침한 거야?’
마인들은 눈치를 보며 옆 사람을 힐끗거렸지만 누구도 나서는 이가 없었다.
무허는 그 모습에 눈살을 찌푸렸다.
‘혈미륵신공의 성취가 낮아 아직 지배력이 약하구나…… 쯧.’
무허가 신마결을 완성하고 창안한 무공이 혈미륵신공이었다.
아직 대성하지 못했기에 현재의 성취를 대전에서 확인한 것.
한데 그 지배력은 일다경이 한계였고 그나마 다시 심력을 일으키는 데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 때문에 누가 기침했는지 물음에도 나서는 마인은 없었다.
“정녕 본좌가 관심법으로 경들의 속을 들여다보아야 이실직고할 것인가?”
낮게 깔린 어조지만 마인들은 가슴속이 후벼 파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구양패는 신음을 흘리며 의아하게 여겼다.
‘관심법이라면 불가의 수련법 아니었나?’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성찰하는 마음의 수련법이 관심법이었다.
그리고 관심법이 극에 달하면 불가 육신통의 하나, 타인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타심통을 얻게 된다는 일설이 있었다.
한데 왜 교주가 불가의 수련법을 입에 올린단 말인가?
‘교주님께서 조금…… 이상하시구나. 단순히 무허를 너무 의식하신 탓일까…….’
구양패는 무공이 갑작스레 상승한 탓에 심기체가 흐트러진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폐관 수련을 막 끝낸 교주는 으레 그런 모습을 보이곤 했으니까.
그렇게 되뇌이던 구양패는 상념에서 빠져나오게 되었다.
오른쪽 말석의 대주가 입을 달싹거리며 자신이라 시인했기 때문이었다.
“지…… 지존이시어. 속하이옵니다.”
그는 살검대의 대주였다.
눈에 띄는 성과를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하여 능력이 없는 자도 아닌.
능력이 없다면 대주가 되는 것은 불가능한 곳이 천마신교였다.
“딱하구나. 본좌가 대전 회의를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어찌 기침을 할 수 있느냐, 이 미련한 것아!”
“송구하옵니다. 근래 몸이 좋지 않아 가벼운 고뿔에 걸렸습니다.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아니, 아니. 그것은 고뿔이 아니다. 본좌가 관심법으로 살펴보니 네 머릿속에는 마구니가 가득 하다. 여봐라! 당장 저놈을 끌어내어 철퇴로 때려 죽여라!”
무허의 호령에 양옆에 시립해 있던 수라혈검대가 답했다.
“충! 명을 받듭니다!”
수라혈검대가 움직이자 살검대주는 사색이 되어 외쳤다.
“교주님! 아…… 아닙니다! 그런 것이 아니오라…… 이거 놔라! 이거, 윽!”
수라혈검대원에 의해 순식간에 마혈과 아혈이 짚힌 살검대주가 눈이 벌게진 채 대전에서 끌려 나갔다.
좌중은 심각한 얼굴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마구니? 마도인의 머릿속에 마구니가 들었다고 철퇴로 때려 죽여?’
그들은 똑같은 눈빛을 하고 있었지만 누구 하나 따지고 들 수 없었다.
그만큼 지금의 분위기는 살벌했다.
무허는 그런 마인들을 보며 혀를 찼다.
“도대체 그대들은 본교의 수뇌부인지 뒷간의 똥막대기인지 그걸 알 수가 없단 말이야. 그대들은 하나같이 똥으로 가득 차 있어. 똥 말이야.”
무허의 독랄한 꾸짖음에 마인들은 고개를 숙였다.
“본좌는 미륵이야. 이 인간 세상에서 그대들을 구원하러 온 미륵말이야. 미륵인 나는 달리려 하는데 너희 똥막대기들은 쫓아오지를 못해! 이말 알아 듣겠는가? 알아 듣겠느냐는 말이야!”
구양패는 혼란스러웠다.
갑자기 미륵은 무엇이고 구원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생각에 잠긴 그때 구양패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무허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보게, 구양패. 자네는 수뇌부의 우두머리야. 본좌가 직접 나서 감숙을 정벌한 지 언젠데 아직 산서로 나아가지 못 하는 것인가? 본좌가 없는 본교는 빈껍데기인 것인가? 그러한가?”
“송구하옵니다. 여러 가지로 독려는 하고 있으나…….”
“독려라 하였는가? 독려?”
“망극하옵니다.”
구양패는 고개를 숙이며 잘못을 시인했다.
“그래. 그렇게 잘못된 것이 있으면 인정을 해야지. 그래야 발전이 있는 것이야.”
무허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리며 움직였다.
“내 폐관 수련 중에 생각을 해 보니 그대들의 짐을 덜어 주어야겠다는 필요성을 느꼈어. 그래서인지 이번에 수라진결의 신마결을 완성할 수 있었지.”
신마결에 대한 파장은 놀라웠다.
모두가 감탄사를 내뱉으며 무허를 우러러보았다.
“교주님, 경하드리옵니다.”
“본교의 홍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감축드립니다.”
“오오. 신마결이라니. 역대 교주들께서 해내지 못한 것을. 정말 훌륭하십니다, 교주님.”
무허는 흐뭇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내 이번에 신마결을 얻고 창안한 새로운 무공의 이름은 혈미륵신공. 특별히 운용하지 않아도 그 효과는 이미 그대들이 몸으로 겪었을 것이야.”
“그렇다면 방금 전의 그것이?”
“허어…… 전설대로 만마앙복의 공능이로군요.”
좌중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그 효과에 탄복했다.
“해서 본좌는 탈마동을 개방할 것이니 다들 그리 알도록 해.”
탈마동을 언급하자 다시금 주변이 술렁였다.
수라진결을 익힌 후 마성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그 힘에 사로잡힌 이들이 지내는 곳이 탈마동이었다.
마성에서 벗어나야 나올 수 있는 뇌옥.
하나 탈마동에 들어가고 스스로 나온 자는 백 명 중에 한 명이 있을까 말까였다.
“교주님. 탈마동의 마인들을 다스릴 요량이십니까?”
구양패의 물음에 무허는 고개를 끄덕였다.
“본좌는 미륵으로서 이 세상에 현신한 화신이야. 하나 너희 똥막대기들을 이끌고 이 더러운 세상을 정화시키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함이 많아. 해서 새로운 친위대를 구성하여 내 직접 천하 정화 작업에 나설 것이야.”
혈안을 빛내며 내린 추상과 같은 엄명에 좌중은 고개를 숙였다.
여기서 간언을 올렸다간 살검대주처럼 철퇴로 대갈통이 박살날지도 몰랐다.
‘부처님이시여. 이 한 몸 희생하여 피로 얼룩진 학살의 길을 걸을 것이니 부디 이 가엾은 중생들을 구원해 주소서.’
무허는 자신이 무슨 소리를 되뇌이는지 자각하지 못했다.
지금 그의 눈에 중생은 마인들이었고 세상은 파멸시켜야 할 더러운 오물통이었다.
신마결을 익힌 그의 심상은 뒤죽박죽되어 무엇이 정도인지 어느 쪽이 마도인지 분간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 그것은 적사결의 신체가 지닌 기억과 무허 자신의 기억이 충돌하며 발생한 주화입마였다.
* * *
천풍각, 가주 집무실.
백리검과 이옥연은 황당하다는 얼굴로 백리림을 바라보았다.
“지금 나에게 그 말을 믿으란 것이냐?”
“형님. 거듭 말씀드리지만 소제의 말은 전부 사실입니다.”
“하…… 어처구니가 없구나…… 어처구니가 없어.”
“하면 묻겠습니다. 정말 두 분께서는 최근 그 아이의 언행에 대해 아무런 위화감을 느끼지 못하셨습니까?”
백리림의 물음에 두 사람은 침묵했다.
왜 없겠는가. 그들은 부모였다.
하나 성장기의 아들이었기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간 것이었다. 괄목상대니 일신우일신이니 하는 말을 떠올리며.
“그리고 형님. 지금의 가전 무공으로 황아의 연배에 절정 고수가 가능하다 보십니까? 아니, 형님께서 누구보다 잘 아실 것입니다. 그 아이가 절정의 상징인 검강을 보였다 하나 검의에 있어서는 턱없이 미흡하다는 것을 말입니다.”
“또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것이냐?”
“형님께서 단목세가와 혼인지약을 진행하신 건 그 때문이지 않습니까. 반쪽짜리 무공인 천풍검법을 후대인 황아에게는 물려주지 않겠다는 것. 삼류라는 벽을 뛰어넘지 못하는 그 아이를 위해 단목세가의 은림검법이 필요한 것 아니었냐는 말입니다.”
“…….”
백리검은 반박하지 못했다.
동생의 말대로 초반의 벽이 너무나도 두터운 천풍검법이었다.
자신 또한 그 벽을 넘기 위해 기나긴 좌절의 세월을 겪었고 말이다.
해서 평생을 천풍검법에 매진했고 강동 십대고수라는 명성을 얻었지만 끝내 문제점을 개선할 수 없었다.
그러다 고문서를 통해 단목세가와의 비사를 알게 되었었다.
바로 천풍검법의 반쪽이 단목세가의 은림검법이라는 것을.
이는 단목세가 역시 마찬가지였고 두 가문의 가주는 이해가 일치했다.
특히 단목세가는 가주가 적장자를 낳지 못했고 가세가 기울고 있었기에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었다.
“네 말대로 단목세가의 가전 무공이 황아의 벽을 깨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일을 진행한 것은 맞다. 하나 그렇다 하여 황아의 자질을 믿지 않을 이유는 되지 않는다!”
“형님!”
“듣기 싫다! 아비가 아들을 믿어 주지 않는다면 누가 그 아이를 믿겠느냐!? 나는 내 아들이 스스로의 노력으로 그 벽을 깨었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아!”
백리검은 고개를 돌린 후 숨을 몰아쉬었다.
그답지 않게 격정적으로 흥분한 감정을 다스리기 위함이었다.
그런 남편을 보며 이옥연이 침묵하던 입을 열었다.
“당신 마음은 이해하지만 도련님의 말도 일리는 있다고 봐요.”
자애롭고 현명하지만 필요할 때는 시리도록 냉정한 백리세가의 안주인이 그녀였다.
“도련님은 심문에 있어서만큼은 사천당가와 견주어도 될 만큼 출중한 능력이 있으신 분이죠. 더구나 그 증인으로 나선 자들은 은풍대. 본가의 잠룡이라 일컬어지는 분들이시고요. 그런 분들이 공증한 일이니 아주 무시할 수도 없어요, 여보.”
이옥연의 담담한 말에 백리검이 마음을 가라앉히고 물었다.
“하면 당신은 그 말을 믿는다는 말이오? 저런 터무니없는 기사를?”
“저도 직접 보지 못했으니 완전히 믿는 것은 아니에요. 다만…….”
“……다만 무엇이오?”
“만일의 하나라도 도련님의 말이 사실이라면 우리 아들은 지금 쳐 죽일 놈의 암계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는 것이에요.”
사실이라는 가정에서였다.
하나 백리검은 그 말을 듣는 순간 다시금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콰앙.
백리검은 손바닥으로 탁자를 내리치며 분개했다.
도대체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일로 갈팡질팡해야 하는 것인지 화가 주체가 되지 않는 것이었다.
“여보.”
“충분히 알아들었으니 그만하시오.”
“…….”
백리검이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기자 이옥연도 지그시 그를 기다려 주었다.
그녀의 남편도 본래 냉철한 성정의 소유자.
지금의 모습은 사랑하는 아들이 달린 일이기에 잠시 이성을 잃은 것이었다.
“휴우…….”
한 숨을 길게 내쉰 백리검이 감았던 눈을 떴다.
그러고는 집무실 입구 쪽을 보며 말했다.
“왔으면 들어오지 않고 무엇 하느냐?”
백리검은 사실 진즉에 그들이 방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이제야 말을 꺼낸 것이었다.
그리고 그 말에 백리림과 이옥연의 고개가 문 쪽으로 돌아갔다.
천천히 문이 열렸고 이천억의 모습을 한 백리황과 젊은 육체로 모습을 바꾼 적사결이 들어오고 있었다.
“강녕…… 하셨습니까…….”
백리황은 들어오자마자 머뭇거리며 인사를 올렸다.
그런 그의 모습에 백리검과 이옥연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경지에 오른 무인의 눈썰미가 한 눈에 알아본 것이었다.
눈빛과 시선, 어조의 높낮이, 몸짓에 배인 습관.
십여 년의 세월이 쌓은 그 모든 것이 그가 자신들의 아들이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그것은 흉내 낸다하여 흉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화…… 황아…… 가 맞구나. 맞아.”
이옥연이 천천히 다가가 백리황을 품에 안았다.
백리검은 탁자에 한쪽 손을 짚은 채 기대고 다른 손으로 이마를 잡고 있었다.
“어…… 머니…….”
백리황의 얼굴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몸이 바뀐 지금의 처지로 부모님을 만났기 때문이 아니었다.
낙양에서 소주로 오기까지 지난 고생들이 떠오른 것도 아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끝까지 나를 걱정하셨어.’
아버지, 백리검은 벽을 깨지 못하는 자신을 걱정해 단목세가와의 혼약을 추진했다는 사실.
어머니, 이옥연은 영혼이 바뀌었다는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만일의 경우 자신이 수렁에 빠져 있다는 걱정 어린 마음을 놓지 않았다는 것.
그 모든 것들이 백리황의 가슴속에서 어우러져 눈물을 만드는 것이었다.
‘앞으로는…… 앞으로는 두 분께 걱정을 끼쳐 드리지 않겠어. 반드시 한 사람의 무인으로, 든든한 가문의 후계자로 인정받고 말거야.’
백리황은 그렇게 어머니의 품에서 소리 없는 눈물을 흘렸다.
적사결은 심드렁한 얼굴로 백리황을 보며 머리를 가로저었다.
‘가지가지 한다, 정말. 아오, 닭살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