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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이혼대법-46화 (46/206)

<기적의 이혼대법 46화>

*   *   *

“저…… 정말 지금 아버지를 뵈러 가자고요?”

백리황은 얼떨떨한 나머지 말을 더듬으며 물었다.

이천억의 심문에 대해 들을 때까진 기분이 좋았는데 그 끝이 이럴 줄이야.

이렇게 빨리 본가로 가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다.

“무슨 문제 있나?”

적사결의 물음에 백리황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아뇨, 아뇨. 문제는 없죠.”

“그럼 당장 가지.”

“예? 당장요?”

백리황의 되물음에 적사결이 짜증 어린 표정으로 소리쳤다.

“사내 새끼가 똑바로 의사전달 안 해!? 오랜만에 푸닥거리 한번 할까?”

지난 수련 때 소극적인 백리황의 태도를 고치기 위해 사랑의 매를 부단히도 들었던 적사결이었다.

백리황은 사색이 된 얼굴로 빠르게 말했다.

“죄, 죄송합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가서 씻고 옷도 좀 갈아입고 오겠습니다.”

“이각 안에 와라!”

“넵!”

백리황의 방을 나서자 적사결은 한숨을 쉬며 읊조렸다.

“때 빼고 광 내 봤자 다 늙은 남의 몸인데 저 녀석은 아직 자각이 없는 건가. 쯧쯧.”

십이월이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저런 모습으로 부모님을 만나러 가는 자리이니 긴장돼서 그런 것이지요.”

“십이월, 너도 고아면서 그런 건 어찌 아느냐?”

“지존께서는 저희들의 왕이시고 스승이시고 어버이십니다. 저도 지존을 오랜만에 배알할 때 목욕재개하고 가장 깨끗한 무복으로 갈아입고 왔었습니다.”

십이월의 말대로 적월에게 적사결은 군사부일체나 마찬가지였다.

아니, 그 앞에 신을 하나 더 붙여야 할 것이다.

교도들에게 있어 교주는 곧 신이었으니까.

‘거참…… 사월도 그렇고 얘네들은 밖에 내놓으니 더 충성심이 강해졌네…….’

처음 적월을 각 지역으로 파견할 때 살짝 걱정한 것이 무색했다.

아무래도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는 법이었으니까.

한데 반대로 보지 못하기에 더 우상화하게 된 경우인 듯했다.

“그리고 지존께 보고드릴 사안이 있습니다.”

십이월이 굳은 표정으로 말을 꺼내었다.

“무엇이냐?”

“본 단의 일월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놈의 근황에 대한 것이냐?”

“그렇습니다.”

사월을 통해 일월에게 명을 내린 사안이었다.

본교에서 지내는 무허가 무슨 짓을 하는지 조사해 오라는 것.

첫 번째 보고는 놈이 폐관 수련에 들었다는 보고였었고 이번이 두 번째 보고였다.

“그래. 말해보거라.”

적사결이 손짓을 하자 십이월이 보고를 시작했다.

한데 보고를 들을수록 적사결의 인상은 찌푸려지고 도무지 펴질 줄을 몰랐다.

“이런 개쌍놈! 요약하자면 또 술 처먹은 것밖에 없잖아!”

폐관 수련 중에도 간간이 밖을 오가며 술을 찾았다는 것.

역시 일월의 추측대로 구양장로의 눈치를 보지 않고 술을 마시기 위해서 연공실에 틀어박힌 것으로 생각되었다.

“예, 일월의 서신에는 본단의 술 창고에 있는 명주의 절반을 홀로 비웠다 합니다.”

십이월은 어두운 표정으로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속하는 주군의 옥체가 상할까 걱정입니다. 혹시 놈이 주군을 해하기 위해 몸을 바꾼 게 아닐까요? 본교는 특히나 교주의 자리가 가지는 의미가 크지 않습니까.”

천하 사대 세력 중 천마신교만이 오롯이 하나의 단체였다.

그리고 정파의 의천맹, 사파의 사무련, 정사지간의 사천회는 말 그대로 여러 문파의 연합체였다.

즉, 사대 세력 중 천마신교는 수장이 부재 시 타세력보다 혼란에 빠질 여지가 많았다.

“술로 나를 죽인다? 재밌는 농담이구나. 하하하…… 하, 하.”

적사결은 웃는 와중에 흠칫했다.

‘잠깐…… 술이 아니라…… 다른 방법으로 자살한다면?’

상상하기 싫지만 이런 가정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놈은 어쨌거나 세수 팔십이 넘은 노인.

일반인보다 수명이 긴 무인도 그만한 나이면 살만큼 산 것이다.

더구나 놈은 의발을 이을 제자도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놈이 호적수인 자신을 두고 입적하는 것을 걱정했다면?

그리고 그런 놈에게 반선주라는 귀물이 주어졌다면?

‘이 망할 영감탱이 설마 날 없애려고 몸을 바꾼 건 아니겠지?’

적사결은 제발 아니길 바랐다.

그간 놈이 먹은 술이 이승에서 마시는 마지막 만찬주가 아니길 빌었다.

그런 그의 상념을 깨듯 십이월이 보고를 이어 갔다.

“그리고 일월이 마지막으로 확인한 사안은 놈이 최근 지하 연공실을 가기 전 술동이와 함께 무공 비급을 지니고 있었다 합니다.”

십이월의 말에 적사결이 눈이 번쩍 띄었다.

“뭐? 비급?”

“예. 분명 그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이 자식아 그런 건 빨리 빨리 보고해야 할 거 아냐! 에이씨! 괜히 쫄았네!”

“예?”

“됐다. 아무것도 아니니 보고나 계속 하거라. 커험.”

다행이다.

비급을 들고 갔다면 죽을 생각은 아닌 것이다.

중놈이라 하나 무허 역시 무인.

자신이 칠십이종 절예를 훔쳤듯이 마공에 대한 관심이 생겼거나 분석해서 약점을 찾기 위함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 근데 무슨 비급이래? 광혈수라공인가?”

“아닙니다. 광혈수라공은 폐관 수련 처음부터 지니고 있었고 최근 확인된 비급은 신마결입니다.”

십이월의 대답에 적사결은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다.

“바…… 방금 뭐라 그랬어?”

“수리진결의 마지막 비급인 신마결이라 했습니다.”

“시…… 신마결!?”

적사결은 입술을 깨물었다.

수라진결은 총 네 개의 비급으로 나눠져 있었다.

첫 번째, 입마결. 천마신교에 입교한 신입교도들에게 열람이 허락되며 입마결을 익혀야 마공을 사용할 수 있었다.

과거 마교의 시절에는 신녀가 있어 성화로 마성을 일깨웠지만 신녀와 성화가 사라진 후 개파한 천마신교는 초대 교주인 흑마신이 창안한 수라진결의 입마결로 신입교도들의 마성을 일깨웠다.

두 번째, 진마결. 대주급 이상부터 허락되며 이를 익힐 시 마인화의 개방이 가능했다.

마인화는 마성을 극대화해 내외공의 힘을 증폭시키는 기예. 이성을 잃고 본능에 몸을 맡겨 버리는 단점이 있으나 신체에 별다른 부작용도 없이 본래의 두 배에 가까운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세 번째, 극마결. 오직 교주만이 익힐 수 있으며 마인화를 개방하더라도 이성을 유지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즉, 극대화된 마성에 잠겨도 이성을 유지할 수 있기에 잠재의식 깊숙이 자신을 몰아넣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잠재의식 속에서 그간 쌓인 경험과 지식, 삶의 총체적인 역량을 규합하면 자신만의 무공을 창안할 단초를 얻을 수 있었다. 수십 년 후에나 올까 말까할 깨달음을 단숨에 얻는 사기적인 공능인 것이었다.

‘극마결을 얻고 광혈수라공을 창안했지만 그런 나도 신마결은 엄두도 내지 못했어…….’

신마결은 수라진결의 창안자인 흑마신조차 이론으로 남겨 놓은 부분이었다.

그가 목표로 했던 것은 마를 굴종시키는 만마앙복의 힘. 바로 천마신교의 교호인 ‘신교출세, 만마앙복’의 그것이었다.

실상 흑마신이 말년에 신마결에 매진한 것은 입마결 때문인 것도 있었다.

입마결을 익히고 마성에 잠겨 빠져나오지 못한 교도들이 한둘이 아니었고, 그들을 제정신으로 돌리기 위한 해결책이 신마결이었다.

결국 그 뜻을 이루지 못했지만 말이다.

‘입마에서 진마, 극마로 이어질수록 더 깊숙한 음차원의 심상에 빠지게 되지. 극마경에서 빠져나와 극마결을 완성하는 데도 목숨을 걸어야 했었어…… 하물며 신마경은…… 쯧.’

수라진결 자체가 인위적인 주화입마를 바탕으로 하기에 위험한 것이었다.

정신을 조금씩 마에 귀속시키고 빠져나오는 행위의 반복.

더구나 신마결은 잠재의식의 벽 너머에 존재하기에 발을 들였다간 다시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르는 미지의 영역이었다.

적사결은 극마결을 익혔기에 그 위험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주군 왜 그렇게 놀라십니까? 신마결은 어차피 미완성의 무학이지 않습니까? 역대 교주님들께서도 신마결은 익히기 불가능하다 결론내리셨고 말입니다.”

“그건 그렇지…… 본좌도 신마결은 불가해의 무학이라 여겼다. 한데 말이다…… 무허, 그놈은 인정하기 싫지만 무공에 있어서만큼은 괴물이다.”

적사결은 무겁게 가라앉은 눈을 한 채 말했다.

“주군께서도 익히지 못한 것을 놈이 익힐 수 있을 리 없습니다.”

십이월은 믿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저어댔다.

‘그래…… 그냥 참고하려고 들고 간 거겠지…… 설마 그걸 익히려고 가져갔겠어?’

적사결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그런 그때 방문이 열리며 백리황이 들어왔다.

“준비됐습니다. 가시죠!”

적사결은 좁혀진 미간을 펴지도 않고 소리쳤다.

“자식아! 일다경도 더 지났겠다!”

안 그래도 마음 심란한데, 쯧!

*   *   *

천마신궁 지하 연공실.

사방을 격세석이란 만근거석을 세워 만든 장소였다.

격세석은 청옥석 다음의 강도를 자랑하며 청옥석이 희귀광물이란 점을 감안하면 이만한 규모의 격세석 연공실은 천하에서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는 천마신교가 위치한 신강이 격세석의 산지이기에 가능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주수입원 역시 이 격세석이었기에 천마신교는 척박한 신강에서 그만한 규모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었다.

드드드드.

마치 지진이라도 난 듯한 갑작스런 진동이었다.

천마신궁 전체를 뒤흔들려는 듯 흔들림은 점차 커져만 갔다.

하나 곳곳에 박힌 격세석 기둥은 그 힘을 버텨 내고 있었다.

쿠구구구궁.

마지막 용틀임 같은 진동이 끝나자 흔들림은 완전히 잦아들었다.

지하 연공실은 천장에서 부스스거리며 먼지가 흩날리는 정도였고 악귀가 새겨진 입구의 석벽은 그 위용을 여전히 뽐내고 있었다.

한데 그때였다.

쩌억.

악귀의 얼굴에 실금이 번져 갔다.

쩌어억. 쩌억. 쩌저적.

실금은 방사형으로 석벽 전체까지 번졌고 그 시작인 악귀 형상은 잘게 부서져 흉물스런 인상을 내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끝내.

콰아아아아앙.

갑작스레 엄청난 경력이 터져 나오며 석벽이 산산조각나고 안개처럼 번지는 먼지 속에서 붉은 안광이 오연히 빛나고 있었다.

“흐흐흐.”

붉은 안광의 주인은 적사결, 아니 그의 몸을 한 무허였다.

그가 폐관 수련을 끝내고 연공실을 나온 것이었다.

‘자, 그럼 마구니들을 만나러 가 볼까.’

무허. 그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교주전 대전.

갑작스런 소집령으로 천마신교의 장로들을 비롯 각전의 각주와 전주, 그리고 무력단체의 대주급 등 중진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있었다.

그리고 가장 상석의 태사의에는 붉은 안광의 중년인, 무허가 흉흉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음…… 교주님께서 폐관 수련에 드시더니 그새 진전이 있으셨나 보구나.’

잔혼마수 구양패는 속으로 흐뭇하게 웃었다.

한참을 술만 마시던 교주가 드디어 폐관 수련에 들더니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었다.

기세를 드러내지 않아도 분위기만으로 마인들을 압도하는 존재감.

지금 자리한 마인들은 하나같이 고수가 아닌 자들이 없었다.

그런 그들이 누구 하나 선뜻 입을 열지 못하고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무려 일다경 동안.

교주가 입을 열지 않아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좌중은 일다경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움직일 수가 없다.’

마치 신체에 마혈이 짚인 듯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입술을 움직이는 것조차 뜻대로 되지 않았기에 입도 뻥긋하지 못한 것이었다.

‘무슨 이런 기사가…… 설마 마비독인가? 한데 교주님께서 왜?’

모두가 그런 생각할 즈음이었다.

훅.

알 수 없는 신체 구속력이 해제되자 마인들은 그제야 숨을 몰아쉴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였다.

“쿨럭.”

침묵을 깨는 작은 소리가 마치 천둥치듯 대전에 울려 퍼졌다.

그 소리를 들은 무허의 눈썹이 불쾌한 듯 씰룩거렸다.

“누구인가? 지금 누가 기침 소리를 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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