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이혼대법 40화>
휘오오오오. 콰아아아.
풍사환혼진의 마지막 관문.
그것은 용권풍을 뚫고 내부에 위치한 단 하나의 진축, 여의주를 부수는 것이었다.
파라라라라.
옷자락이 마치 용권풍에 빨려 들듯 쉴 새 없이 나부꼈다.
적사결은 바닥에 두 발과 두 손을 박아 넣고 인력에 저항하는 중이었다.
“이런, 도대체 어떤 새끼가 이런 진법을 설치한 거야?”
환영이 실체를 넘어 실존하듯 그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용권풍의 인력에 휘말려 하늘 저편으로 사라질 것만 같았다.
믿기 힘들지만 자연재해의 현상 중 하나를 진법의 힘으로 구현해 놓은 것이다.
‘이 정도 바람이라면 천근추만으로는 무리야. 유일한 방법은 용권풍을 일시적으로 해소시키고 바람이 잠잠해진 틈을 타서 진축을 부수는 것인데…….’
이번에도 역시 내공이 문제였다.
내공만 마음껏 쓸 수 있다면 용권풍이라 하나 일초에 베어 버릴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적사결은 이번 관문이 마지막이라 확신하지 못했다.
몇 단계의 관문으로 이루진 것인지 세세하게 파악하기는 힘들기 때문이었다.
‘땅속으로 들어가서 접근해 볼까?’
바닥을 보고 적사결이 떠올린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생각을 바로 실천했다.
콰앙. 콰아앙.
조법의 응용.
손목까지 경화시킨 손으로 땅바닥을 쉴 새 없이 파고 또 팠다.
암석이 있으면 부수고 흙먼지를 쉴 새 없이 피우며 나아갔다.
지둔술과 같은 술법을 모르기에 손발이 고생이었다.
하나 무식할 뿐 괜찮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공이 없어도 땅을 파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이 정도면 다 왔겠지?’
적사결이 처음 파고 들었던 구멍으로 되돌아와 고개를 내밀었다.
한데 거리를 가늠하던 그때였다.
“이런 젠장!”
용권풍이 움직이더니 위치를 바꿔 버린 것이었다.
바람이 모인 회오리라지만 고정되어 있을 리가 없다.
한데 마치 약 올리듯 땅을 다 파고 나서야 용권풍은 움직인 것이었다.
“에이씨! 그냥 다 박살 내 주마!”
투웅.
적사결이 신형을 튕기듯 쏘아 올렸다.
용권풍의 인력에 이끌리자 저절로 하늘 높이 붕 떠올랐다.
콰우우우.
단전에서 일어난 보리연화공이 그 불꽃을 피웠다.
그 불꽃은 황금빛 불가기공으로 폭사되며 주변을 환하게 밝혔다.
하나 초식은 광혈수라공의 그것, 수라멸천장이었다.
쩌저저저저정.
거대한 황금 손바닥이 지렁이 잡듯 용권풍을 때렸다.
일거에 용권풍을 없앰과 동시에 진축까지 가루로 만들어 버린 것이었다.
“우웨에에엑.”
아, 씨발.
언제나 적응하려나.
한 번 쓸 때마다 쥐새끼가 온몸을 기어 다니고 구정물이 혈도를 타고 흐르는 것만 같았다.
“카악, 퉤.”
적사결이 마지막 토사물을 침과 함께 뱉어 낸 그때였다.
주변 환경이 환영이 사라지듯 번지며 버드나무로 둘러싸인 공터가 드러났다.
풍림에 발을 들이밀 때 보았던 풍경. 진법이 완전히 파훼되었다는 방증이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한 채의 모옥과 함께 한 명의 중년인, 그리고 네 명의 노인이 있었다.
“과연 대단하십니다, 무허대사님.”
중년인, 백리림이 포권을 취하며 적사결에게 말했다.
마지막 한 수에 느낀, 강렬한 불가기공에서 정체를 짐작한 것이었다.
“그대는?”
“백리림. 이곳 풍림의 주인이자 백풍각의 각주입니다.”
“허허허, 노납은 무허라 하외다. 반갑소이다, 백리 각주.”
적사결이 반장을 하며 연기를 시작했다.
“역시 무허대사님이 맞으셨군요. 오늘 이 사람 크게 개안했습니다. 본가의 풍사환혼진을 한 식경도 되지 않아 돌파하시다니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허허, 아닙니다. 노납이야말로 백리세가가 진정한 강호의 잠룡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서로 훈훈한 덕담이 오가자 백리림이 눈을 빛내며 물었다.
“한데 대사님께서 이곳은 어찌 알고 오신 것입니까?”
“오해가 있으신 듯합니다. 노납은 이곳이 특별한 장소라는 것을 알고 온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을 따라온 것입니다.”
“한 사람이라니요?”
“노납은 일일 과외 선생으로 백리세가에 온 것입니다. 백리황, 그 아이가 이곳에 왔었지요?”
“하면 황아 그 녀석의 뒤를 따라 풍림에 발을 디뎠는데 진법 안으로 들어가셨단 말입니까?”
백리림의 반문에 적사결이 고개를 끄덕이며 반장했다.
“아마도 이곳 풍림은 허락받지 않은 자는 들어갈 수 없었나 보군요. 노납이 실수한 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아미타불.”
“…….”
백리림은 섣불리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진법의 순리를 따랐다면 풍림을 맴돌다 다시 입구로 나갔을 터.
한데 굳이 진법의 내부로 강제 침입을 시도했다?
그 부분이 걸린 것이었다.
“노납이 최근 진법 공부에 매진 중이라 호기심에 발을 디뎠으니 넓은 아량으로 이해 바랍니다, 백리 각주.”
백리림의 표정에서 생각을 읽은 적사결이 재빠르게 변명했다.
어떤 문파든 이런 비지에 허락 없이 들어오는 것은 무례한 행위였기 때문이었다.
“아닙니다, 대사님. 무언가에 몰두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요.”
“한데 여긴 어떤 곳입니까? 이토록 철저한 진법으로 보호되는 곳이라니…… 아미타불.”
“이곳은 백리세가의 조사께서 본가를 개파한 곳입니다. 이들은 은풍대라 합니다.”
“은풍대라…….”
과연 한 명, 한 명의 기도가 보통이 아니었다.
장로나 대주급 등 드러난 자들 외에 이 정도의 고수들을 숨겨 두고 있었다니.
쌓아 올린 무로써 존재를 증명하는 자들이 무인일진대 이만한 능력이 있음에도 음지에서만 지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들이 백리세가를 아끼는 마음은 그 누구보다 넓고 깊다는 말이다.
‘이들에게 백리 애송이와 이천억의 사연을 얘기해볼까?’
적사결은 이천억의 뒤를 밞으며 느낀 것이 있었다.
그것은 생각보다 백리세가는 규모에 비해 인적이 드문 곳이 없다는 것. 그리고 이천억의 것으로 짐작되는 발자국을 살폈을 때 그 무위가 확실히 절정 이상이라는 것이었다.
추종술이 뛰어난 자 혹은 극에 이른 고수는 작은 단서만으로 상대의 무위를 추정하는 가능하다.
이천억의 발자국은 그 족적이 희미함은 물론 전면에 고르게 힘이 분포되어 있었다.
이는 절정 고수 이상의 무인에게서 나타는 특징이었다.
만약 그렇다면 이천억이 어지간히 방심하지 않는 이상 제압에 시간이 걸릴 것이었다.
더구나 이천억이 무허도 몸을 바꿨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더욱 자신을 경계하고 일이 꼬일 수도 있었다.
그런 측면에서 은풍대의 도움을 받는다면?
또한 이곳 풍사환혼진을 이용하면 인적이 드문 곳으로 놈을 끌어들일 수도 있었다.
결단을 내린 적사결이 연기를 시작했다.
“아무래도 부처님께서 저를 이곳으로 이끈 듯합니다. 나무관세음보살.”
믿든 안 믿든 일단 세가를 위하는 이들의 마음에 걸어 보는 것이었다.
* * *
“여기가 그 묘 선생이란 분의 거처인가요?”
백리황의 물음에 십이월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들어가야지 뭘 망설이고 있어요?”
백리황이 발을 뻗는 순간이었다.
“잠깐.”
십이월이 백리황의 어깨를 잡았다.
“왜 그래요?”
“여기서부터는 한 걸음만 잘못 걸어도 목숨이 날아간다.”
“예?”
백리황의 눈에는 그냥 평범한 마당일 뿐이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기관진식이 빈틈없이 설치되어 있었다.
“내가 밟는 곳만 밟아라. 그렇지 않으면 난 책임 못 지니까.”
십이월은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때로는 평범한 걸음으로 때로는 갈지자로, 또 어떤 때는 경공을 발휘해 오 장 이상을 건너뛰었다.
“가…… 같이 가요!”
백리황은 그가 발을 디딘 곳을 까먹을 새라 재빠르게 그 뒤를 따랐다.
일다경 후.
“이런 씨부랄. 주인이나 개나 대갈통 하나는 끝내주는구먼, 끝내 줘. 이걸 고작 차 한 잔 마실 시간에 뚫고 들어와?”
배불뚝이 노인, 묘 선생의 말이었다.
“일다경이나 걸린 겁니다. 지금까지 이각 이상 저를 묶어 둔 진법이 없었는데 기록이 깨졌군요, 쯧.”
십이월이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백리황은 그런 그들을 멀뚱히 보고만 있었다.
그런 그에게 묘 선생의 시선이 옮겨졌다.
“한데 저 노인네는 누구신가? 처음 보는 얼굴인데.”
“주군의 새로운 종복입니다.”
“나처럼 불쌍한 인생 하나 더 늘었구먼. 쯧쯧쯧.”
“영광이라고 하시죠.”
“영광은 개뿔. 너희들한테나 영광이겠지.”
묘 선생의 말에 십이월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이런 씨, 알았어, 알았다고. 정색은 니기미.”
“…….”
“황공하다고 새끼야, 표정 좀 풀어! 하여간 존나 살벌해!”
“조심 좀 해 주시죠. 방금 참을 인 세 번 삼켰습니다.”
“예, 예. 어련하실까. 한데 왜 왔어?”
묘 선생이 손사래를 치며 물었다.
“선생을 모셔 오라는 주군의 명이 있었습니다.”
“계약 알지? 오란다고 막 가고 그런 흔한 종복 아닌 거.”
“물론입니다.”
“니가 할 거야?”
“아닙니다. 여기 이자가 시험을 치를 겁니다.”
십이월이 백리황을 가리키며 말했다.
백리황은 도대체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어리둥절했다.
“그래? 아까 보니 기관진식의 기자도 모르는 것 같던데.”
“그러니까요. 주군께서 말씀하시길 기관진식에 무지한 자가 선생의 시험을 통과하면 건당이 아닌 기간제로 부려 먹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계약에 그렇게 되어 있다지요?”
“뭘로 할 건데?”
“적색 등급. 기간이 일 년이라죠?”
“뒈져도 난 모른다?”
“물론입니다.
십이월의 당찬 대답에 백리황이 사색이 된 채 끼어들었다.
“아니 뭐가 물론입니까! 상황을 좀 설명해 줘야 할 것 아닙니까!?”
“주군께서 말씀하셨다.”
“뭘요?”
“개새끼 잡아 올 테니 너도 밥값하고 있으라고.”
“예? 밥값이라뇨?”
“선생을 이곳에서 모시고 가는 게 종복인 너의 밥값…… 아니 임무다. 하니 너는 그저 선생의 기관진식을 통과하면 돼.”
십이월의 담백한 설명에 백리황이 거칠게 항의했다.
“죽을 수도 있다면서요!?”
“안 죽는다. 주군께서 너에게 이 임무를 맡기신 것은 그만한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주군을 믿어라. 그분은 능력도 안 되는 놈에게 중책을 맡기는 분이 아니다.”
“아니…… 믿어 주시니 좋긴 한데…….”
아무리 수련이 끝났다지만 기관진식을 모르는 자신에게 그걸 통과하라니.
그것도 죽을 수도 있는 위험한 등급을……
백리황은 말도 안 된다 생각하고 있었다.
누군가와 싸우는 것과 기관진식을 상대하는 것은 전혀 다른 분야다.
이는 어린애도 아는 상식이었다.
“아무래도 재고해 주시면 안 될까요? 너무 불안한데…….”
백리황이 한 발을 빼며 물러나자 십이월이 말했다.
“주군께서 말씀하시길 남이 인정해 주는 것과 스스로 납득하는 것은 다르다 하셨다. 듣자 하니 주군께서 네가 절정에 이른 것을 인정했다 하더군. 한데 너는 스스로 절정 고수라 자부할 수 있는가?”
“……그…….”
백리황은 말을 내뱉다 말고 입을 닫았다.
자신 있게 말하기엔 자신감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절정 고수란 말 그대로 심기체가 절정에 달한 한 사람의 완성된 무인. 그런 자는 망망대해에 던져 놓아도 살아남고 불구덩이 한가운데 떨어져도 죽지 않는다. 네가 스스로 절정 고수라 자부하고 싶다면 시험을 치르고 살아남아라. 단언컨대 그 누구도, 너 스스로도 네가 절정 고수라는 것에 의문을 가지지 않을 것이다.”
십이월의 말에 백리황은 가슴이 벅차오름을 느꼈다.
눈에서는 정광이 번득이고 투지가 절로 솟아오르는 것이었다.
숙였던 고개를 든 백리황은 가슴이 시키는 대로 말을 내뱉었다.
“해 보겠습니다, 시험.”
십이월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이런 단순한 놈. 던지는 족족 덥석 덥석 무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