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이혼대법 39화>
진법.
자연 속에 흐르는 기의 흐름을 인위적으로 비틀어 특정 공간을 시전자가 원하는 환경으로 바꾸는 공부다.
술법과 함께 배움의 난이도가 높은 분야로 손꼽히는 이유는 오직 두뇌만으로 모든 변수를 계산하고 법칙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
하나 그 법칙만 완벽하다면 하나의 진법으로도 능히 일만, 아니 십만 명이라도 상대할 수 있었다.
해서 뛰어난 진법가는 하늘이 내린다는 말도 있을 정도였다.
콰콰쾅. 콰쾅.
단 한 사람에 의해 완벽한 변환 법칙을 가진 풍사환혼진의 내부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바람처럼 끊임없이 변하는 변수를 즉석에서 계산해 진축을 파괴하기 때문이었다.
“휴우. 변수가 많아 그런지 진축도 더럽게 많군. 벌써 십여 개는 부순 거 같은데.”
적사결이 손을 털며 좌우를 훑었다.
진법 안은 인위적으로 구현된 환경.
때문에 오감과 직감을 활용해 대응하는 것이 정답이었다.
지금 적사결은 천축유가신공으로 신체 감각이 극대화된 상황.
평소보다 더욱 엄청난 파훼 속도를 보여 주고 있었다.
후욱. 꽈앙.
우측으로 뻗은 일권이 덩그러니 놓여 있는 바위를 박살 냈다.
마지막 진축을 부순 것. 곧 공간이 일그러지며 검은 구멍이 생겨났다.
적사결은 거침없이 그 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스르륵.
적사결이 사라진 곳에 한 명의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얼굴은 하얗게 뜬 채 질려 있었다.
“무슨 저런 괴물이 있단 말인가…… 풍사환혼진의 첫 번째 관문을 반각도 되지 않아 뚫어 버리다니.”
겉으로 보기엔 노승.
복색으로 봐서는 소림사의 승려였다.
한데 무슨 이유인지 모르나 풍림에 정면 돌파를 시도했다. 그것도 자신들의 거처를 향해.
풍림 내부에는 풍사환혼진으로 숨겨진 공간, 은자들이 머무는 모옥이 있었다.
적사결은 일직선으로 그곳을 향해 움직이고 있는 것이었다.
“도대체 왜 소림승이 본가의 풍림을 공격하는지 이유를 모르겠구나…… 더구나 저 노승의 정체는 뭐지?”
내부에서 단독으로 진법을 파훼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무지막지한 무공으로 진법 자체를 박살 내 버리거나 내부에서 진축을 깨트려 생문을 찾는 것.
전자가 무식하다면 후자는 영리하다.
그가 알기에 소림에서 전자가 가능한 자는 취불 무허대사, 후자가 가능한 자는 석불 공선대사였다.
하나 석불 공선대사는 무인이 아니었다.
공선대사라면 지금처럼 주먹질 한 번에 바위를 박살 낼 수 있는 무위를 보일 순 없다.
“일단 다른 영감들에게도 알려야겠구나. 나 혼자 대처할 일이 아니야.”
노인의 모습이 나타났던 방식대로 스르륵 사라졌다.
콰우우우우.
여덟 방위에서 칼바람이 날아들었다.
첫 번째 관문이 침입자를 현혹시키는 단순한 환영진이라면 두 번째 관문은 환영을 실체화시키는 살상의 단계에 있었다.
‘보법을 못 펼치니 꽤 까다롭겠는걸.’
내공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다면 여덟 방위가 아니라 백팔방위에서 날아오는 칼바람도 다 피할 자신이 있었다.
하나 구토유발공력을 쓸 수 있는 횟수는 많아야 두 번.
지속적으로 보법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된 거 그냥 버텨 내자.’
진축을 파괴할 여유를 만들기 위해 내린 결론이었다.
일명 몸빵으로 버티기.
꾸득. 꾸득.
피부가 바싹 마른 고목나무껍질처럼 변해 갔다.
얼핏 보기엔 마치 목내이와 같은 외향이었다.
‘추한 외모 때문에 사용하고 싶지 않았는데.’
천축유가신공 칠 성에 달하며 이룩한 성과인 경질화였다.
마치 사후경직처럼 피부가 굳어지고 수분이 빠지며 강철 같은 단단함을 가지는 것이 그 특징.
마치 금강불괴가 된 것처럼 신체방어력이 올라가는 공능이었다.
카카카카카캉. 카캉. 카가가가각.
세기도 힘들 정도로 많은 칼바람이 적사결을 난도질했다.
하나 마치 봄바람을 대하는 사람처럼 느긋하게 걸음을 옮기며 진축을 파괴해 나갔다.
그렇게 모든 진축을 파괴하자.
칼바람이 흩어지면서 기존의 공간이 찢겨 나가고 새로운 환경이 펼쳐졌다.
한데 그 환경이 놀라웠다.
‘백리세가의 수준이 생각보다 제법이구나. 이 정도의 진법이라니.’
적사결이 서 있는, 아니 떠 있는 장소는 허공.
무엇 하나 디디지 못한 채 공중을 부유하고 있었다.
물속처럼 손을 휘젓는다고 저항력이 있는 것도 아닌 상황.
진축을 부수려면 공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찾아야 하나 운신에 제약이 걸려 버린 것이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대로 굶어 죽기 딱 좋았다.
‘그냥 내공을 쓸까…….’
허공답보면 해결된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박차며 운신의 폭을 넓히는 상승의 경신공이니까.
하지만 앞으로 몇 개의 관문이 더 있는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고민하던 적사결은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후욱. 후욱. 생각대로 잘될까 모르겠네. 후욱. 후욱.”
점점 깊고 길게 호흡하며 적사결의 시선이 전 방위를 훑었다.
진세의 흐름을 계산해 진축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찾았다.’
방향은 동북쪽 삼십장. 목표물은 갈색의 매였다.
“후우우우우우우웁.”
계속해서 숨을 들이마셨다.
온몸의 근육을 이완하다 못해 늘어질 정도로 풀어 놓은 상태에서 말이다.
적사결의 폐가 찢어질 듯 부풀어 오르고 상체의 크기가 열배에 가깝게 커졌다.
빵빵.
숨을 멈추고 목표물의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린 적사결이 한순간에 숨을 뱉어 냈다.
“푸화아아아악.”
입으로 공기포를 쏘듯 발사하자 그 반작용으로 적사결의 신형이 반대쪽으로 날아갔다.
쇄애액.
거의 삼장가까이 다가가자 이번엔 오른팔을 뻗었다.
슈우욱.
오른팔은 주욱 늘어나더니 순식간에 갈색 매의 목을 낚아챘다.
그러자 매는 잿가루로 변하며 바스러졌다.
“좋았어. 요령은 잡았군.”
적사결은 같은 방식으로 까마귀를 비롯해 독수리 등 세 마리의 날짐승을 잡고서야 다음 공간으로 넘어갔다.
* * *
“놈이 세 번째 관문을 통과했다.”
뚱뚱한 노인의 말에 나머지 세 노인이 탄식을 내뱉었다.
부대 단위로 쳐들어온 것도 아니고 단 한 명에게 진법이 파훼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한 식경도 채 되지 않은 시간 내에 말이다.
“이제 마지막 관문만 남았는데 다들 놈의 정체를 짐작하겠나?”
빼빼 마른 몸의 노인이 말했다.
하나 그를 비롯해 모두는 고개를 저었다.
도무지 그 정체를 짐작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신체가 목내이처럼 변하고 단단해지고 늘어나고…… 이거야 원…….”
얼굴 가득 수염이 풍성한 노인이 혀를 차며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무공을 사용했다면 대략적인 파악이라도 가능할 것이다.
소림승이라도 칠십이종 절예를 모조리 익히지 않은 이상 각자의 절기는 한정되어 있었으니까.
한데 늙은 괴승은 무공다운 무공은 쓰지 않고 기괴한 방법으로 진법을 파훼하는 중이었다.
“저런 괴이한 사술을 부리는 자가 소림승일 리는 없고 위장을 한 것이겠지. 소림승이야 머리 깎고 가사만 두르면 대충 그럴듯하게 보이니 말일세.”
외팔이 노인의 의견이었다.
그의 말처럼 강호를 통틀어 겉모습만으로 출신 내역을 알아 맞추기 가장 쉬운 것이 승려였다.
즉, 위장하기 편하다는 말이다.
“위장? 무슨 연유로 위장을 한다는 말이지?”
뚱뚱한 노인이 물었다.
“위장을 하는 이유야 정당하지 못한 짓을 일삼고 정체를 숨기기 위함이지 또 뭐가 있겠나.”
“정당하지 못한 짓이라…… 하면 은밀히 풍림을 공격하러 왔다?”
“파훼하는 속도, 그리고 백풍각이 아닌 우리들 쪽으로 향하는 것을 봐서는 그렇다고 봐야겠지.”
“본가의 숨겨진 힘인 풍림에 대해 알게 되었고 우리들을 제거하러 왔다면 노리는 것이 백리세가 자체라는 가정도 해야겠군.”
“확실한 건 아니지만 일단 그렇게 가정하고 행동하는 것이 본가를 위하는 길이라 보네.”
외팔이 노인의 말에 모두는 고개를 끄덕였다.
항상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는 것이 그들, 은풍대였다.
“한데 방금 전 각주께서 우리들을 소집하셨는데 어찌할 것인가?”
풍성한 수염의 노인이 백리림의 호출에 대해 말했다.
모종의 적이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상황.
당장 자리를 비워 백풍각으로 달려갈 수 없기에 의견을 물은 것이었다.
“각주도 침입자의 존재를 눈치챈 모양이군. 자네가 가서 상황을 설명하게. 저자가 마지막 관문을 파훼할 것에 대비해 우리들은 이곳을 지키고 있을 터이니.”
* * *
“진짜 두 번 눌렀습니까? 두 번 누르면 어떻게 되죠? 사용 설명서 읽어 보셨어요?”
이천억이 다급하게 백리림을 재촉했다.
“응? 아니, 안 읽어 봤지. 만들어진 지 백 년도 넘은 기관인데 사용 설명서가 있겠느냐. 나도 여기 각주로 배정받고 감노에게 배운 것이다.”
“감노? 감노라는 그자는 어디 있습니까?”
“기관으로 연락했으니 이리로 오고 있겠지.”
태연한 백리림과 달리 이천억의 속에서는 불길이 일었다.
만약 자폭 장치가 가동되었다면 최소한 백풍각 전체가 폭발할 것이었다.
침입자와 자멸하기 위한 목적이 그것이었으니까.
‘이 흐리멍텅한 작자를 믿어도 되는 걸까…… 젠장!’
이천억은 탁자 근처로 가서 이곳저곳을 살폈다.
‘너무 오래전에 만들어진 구판이라 그런지 신판과는 구동 방식이 다르다. 이러면 무슨 기관이 어떻게 작동할지 알 수가 없는데…… 일단 자리를 피해야 하나…….’
이천억이 침음성을 삼키며 탁자에서 떨어졌다.
폭발음은 잦아들었지만 아직 바닥에서는 진동이 미미하게 울리고 있었다.
“숙부님. 제가 급한 일이 있었는데 이제야 생각이 났네요. 이만 가 봐야겠습니다.”
“벌써 간다는 말이냐? 애써 사람들을 불렀는데?”
“죄송합니다. 워낙 시급한 일이라…….”
이천억은 식은땀을 흘리며 단목련에게 말했다.
“단목 소저, 어서 갑시다. 내 나중에 다시 구경시켜드리겠소.”
“아니에요. 전 여기 분들을 만나고 갈 테니 백리 공자 먼저 가세요. 저희 때문에 숙부님께서 사람들을 모으셨는데 아무도 없으면 숙부님이 어떠시겠어요?”
“아니…… 그…….”
이천억이 말을 꺼내려는 그때 바닥에서 느껴지는 진동이 일순간 멈췄다.
‘이런 젠장할. 자폭장치가 맞다면 이게 마지막 신호일 텐데…….’
길게 설득할 시간이 없다.
만일의 하나라도 폭발한다면 힘겹게 얻은 두 번째 삶이 송두리째 날아갈 판국이었다.
“알겠소. 하면 내 있다 사람을 보내리다. 미안하지만 정말 급한 일이 있어 먼저 가 보겠소. 숙부님 다음에 또 찾아뵙겠습니다.”
파바바밧.
극성의 풍신보가 발휘되었다.
이천억의 신형은 바람처럼 백풍각을 빠져나갔다.
“녀석, 식은땀을 뻘뻘 흘리는 걸 보니 뒷간이 급했나보군. 예비 신부에게 뒷간 가는 모습을 보여 주기 싫어 그런 듯하니 이해하거라. 하하하하하.”
굳이 그 말을 꼭 할 건 뭐란 말인가.
단목련이 어색하게 웃는 그때였다.
한 줄기 바람이 불었고 눈 깜짝할 사이에 수염이 풍성한 노인이 장내에 자리했다.
“어이쿠, 이건 또 누구야?”
노인은 나타나자마자 놀란 눈으로 단목련을 바라봤다.
상황이 긴급한 나머지 백풍각으로 이어지는 진법의 문을 이용했고 백리림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있을 것이라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감노, 조심성 없게 왜 그쪽으로 오는 겁니까?”
백리림이 갖은 인상을 쓰고 노인을 타박했다.
방금 전 모습은 이곳에 진법이 있네 하고 보여 준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었다.
“각주. 다 알고 부른 거 아니었소?”
“다 알고? 뭘 말이오?”
“아니…… 그게…….”
감노가 말끝을 흐리며 단목련을 힐끗거렸다.
백리림은 한숨을 쉬며 단목련에게 말했다.
“급한 일이 생겼으니 오늘은 이만 자리를 파해야겠다. 너도 풍림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온 듯하니 다음에는 서로 가면을 벗고 만나도록 하자꾸나.”
“……!”
백리림의 말에 단목련은 발가벗겨진 듯한 느낌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는 자신의 의도를 꿰고 있었던 것이었다.
“네…… 숙부님. 다음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단목련은 고개를 숙이며 예를 올리고 장내를 떠났다.
단둘만 남게 되자 백리림은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감노를 돌아보았다.
“아이고, 두야. 도대체 뭔 일이길래 앞뒤 가리지 않고 호들갑이오?”
감노는 부끄러웠는지 얼굴을 붉힌 채 말했다.
“미안하오, 각주. 내 너무 사안이 시급하여…….”
“이미 지나간 일이니 됐고! 그 사안이라는 것이나 말해 보십시오.”
“풍림에 침입자가 들었소이다.”
“침입자? 하면 아까의 진동이 은풍대의 비무 중에 생긴 것이 아니라 진이 파훼되며 발생하는 것이었소?”
백리림이 놀란 토끼눈을 하고 말했다.
은풍대는 네 명의 은거고수로 이루어져 풍림 내 숨겨진 공간에서 살아간다.
때문에 그들이 하는 소일거리는 무공을 연구하고 실력을 겨루는 비무였다.
이번에도 그런 것이라 생각했는데 오판을 한 것이다.
“각주, 엄청난 고수가 침입했소이다. 그리고 방금 전 진동이 멈춘 것으로 보아 놈은 마지막 관문까지 통과한 듯하오.”
그 말에 백리림의 눈이 이루 말할 수 없게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