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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이혼대법-36화 (36/206)

<기적의 이혼대법 36화>

*   *   *

휙. 휘휙. 쉬익.

청석이 깔린 연무장에서 한 소년이 진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초식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보보는 표홀한 움직임이 나이에 걸맞지 않은 무위임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천풍검법. 엄청나게 까다롭구나. 노부가 검을 쥐어 본 적이 없다 하나 아직까지 검의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다니.’

백리황, 아니 금개 이천억은 천풍검법의 초식을 연마 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백풍현원공의 운공요결을 배우고 천풍검법의 전 초식을 몸에 익혔지만 아직 대성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가 백리황의 몸을 빌어 다시 태어나고 보여 준 것이라고는 검강밖에 없었다.

새로 얻게 된 삶을 알차게 살아가려면 천풍검법을 반드시 대성해야 했다.

그렇게 이천억이 흘린 땀방울이 연무장 곳곳에 떨어질 즈음이었다.

“녀석, 아침부터 열심히구나.”

뒷짐을 진 중년인이 연무장에 들어서며 말했다.

소년은 초식을 멈추고 그를 향해 포검식을 했다.

포검식은 검을 쥔 채 포권을 취하는 예법이었다.

“아버님. 언제 오셨습니까?”

“방금 왔느니라. 매일 새벽같이 열심히 수련하였기에 그만한 성취를 얻은 것이었느냐. 이 아비는 네가 무척 자랑스럽구나, 황아.”

백리세가의 가주 백리검은 몇 달 전 아들이 검강을 보여 주었을 때 심장이 튀어나오는 줄 알았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직전까지 아들의 무위는 고작 삼류였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가전 무공의 탓도 있었지만 무공 자체에 큰 재능이 없다 여겼는데 아들은 어느새 훌쩍 자라 훌륭한 무인이 되어 있었다.

장부는 삼 일이면 괄목상대한다 했던가.

그 말을 아들을 통해 피부에 와 닿게 될 줄 백리검은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아닙니다. 아버님. 본가의 후계자로서 당연한 의무지 않습니까.”

“하하하. 그래. 분명 막중한 책임과 의무가 있는 자리이지. 하나 네 나이에 그걸 깨닫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니니라. 너는 충분히 자랑스러운 아들이다, 황아.”

백리검은 아들의 어깨를 짚으며 부드러운 미소를 보여 주었다.

항상 냉철하고 근엄한 모습만 보였던 그가 이 같은 모습을 보이게 된 것은 아들이 더없이 든든한 절정 고수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아들이 아닌 한 사람의 사내로 인정한 것이다.

“한데 이른 시각에 어인 일이신지요? 제 수련을 보기 위해 오신 것입니까?”

이천억의 물음에 백리검이 고개를 저었다.

“그것도 있지만 너와 중요한 일을 논의하기 위해서다. 일단 가자꾸나. 네 어미와 함께 의논해야 할 것이니.”

“예, 아버님.”

이천억은 납검 후 백리검을 따라 움직였다.

그들이 간 곳엔 한 명의 중년 부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백리세가의 안주인인 이옥연이었다.

강소성의 이름 높은 무가인 이가장이 그녀의 사가로 기품 있는 귀부인과 날선 기도의 여협이 보일 법한 기질을 한 몸에 지니고 있었다.

“아랫것들 시켜도 될 텐데 당신이 직접 가셨던 거예요?”

이옥연의 타박에 백리검이 껄껄 웃었다.

“강동 제일신룡이라 불리는 귀한 아들인데 걸음 몇 번 하는 것이 뭐 어떻다 그러시오? 하하하.”

“어휴, 참. 당신 최근에 실없어진 거 아세요? 예전엔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던 사람이.”

“근자에 좋은 일만 가득하니 사람이 절로 부드러워지는구려. 요즘만 같으면 얼마나 좋겠소. 자자, 앉읍시다. 음식 식겠소. 황아, 너도 앉거라.”

백리검이 상석에 앉자 이옥연과 이천억도 자리에 앉았다.

그들은 도란도란하게 아침 식사를 했고 식후 다과를 즐기며 담소를 나누었다.

달칵.

찻잔을 내려놓은 백리검은 앞서 언급했던 중요한 일을 입에 올렸다.

“너도 알다시피 달포 후면 혼례가 있을 것이다. 해서 단목세가에서 이틀 내로 혼례 준비를 위한 사람들이 온다더구나.”

혼례는 신랑 측인 백리세가의 본가에서 치러지게 된다. 하나 혼례 준비나 절차, 신방의 결정에 대한 권한은 신부 측인 단목세가에 있었다.

혼례 준비를 위해 오는 단목세가의 가솔들은 그 수행자들이었다.

“당신 혹시 저희 측 대표로 황아를 생각하시는 건가요? 그건 응당 안주인인 제 역할이지 않나요?”

이옥연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일반적이라면 그렇소. 하나 이번 준비단에 단목련 그 아이가 직접 온다고 하더이다. 허허허.”

“네? 신부가 직접 말인가요?”

이옥연의 눈썹이 크게 휘며 상당히 놀란 눈치를 보였다.

보통 혼례 전 신부는 가문의 어른들을 찾아뵙고 사가를 떠날 준비를 한다.

한데 미리 시댁에 와서 혼례 준비를 직접 챙긴다는 말이었다.

“하니 내 생각에는 신랑인 황아가 맡는 것이 좋다고 보오.”

백리검의 말에 이옥연과 이천억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버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이거 혼례 전부터 예비 신부와 기 싸움하게 생겼군요. 하하하.”

단순 신혼부부의 기 싸움일 뿐만 아니라 두 가문의 기 싸움이었다.

백리와 단목.

강소성이란 산에 사는 두 마리 호랑이가 세력을 규합하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마냥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는 것이었다.

“천풍각과 풍령전만 제외하고 어떤 전각이라도 신방을 삼아도 좋다. 그 두 곳은 본가의 자존심이니 그리 알거라.”

이옥연은 미리 주의를 주었다.

천풍각은 가주인 백리검의 집무실이 있는 거처이자 그들의 안방이 있는 곳이고 풍령전은 가문의 원로들이 조사들의 위패를 모시며 기거하는 곳이었다.

“걱정 마십시오. 어머님. 단목 소저가 그리 경우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제가 그걸 허락하지도 않을 것이고요.”

“그래. 믿으마.”

이옥연은 다시 찻잔을 입가에 가져가며 다향을 음미했다.

*   *   *

“흐엑. 흐엑. 히익. 히익.”

바닥에 드러누운 백리황이 김빠지는 소리 같은 호흡을 거듭했다.

이번엔 삼 일 밤낮을 자지도 먹지도 않고 오로지 달리기만 하였기에 백리황의 폐는 산소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만큼 한계를 넘고 또 넘은 백리황이었다.

“힘드냐?”

나무둥치에 걸터앉은 적사결이 백리황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업힌 상태에서 불규칙하게 천근추를 걸어 주며 수련의 난이도를 높였기에 적사결도 마냥 편한 것은 아니었다.

내공을 쓰는 것 자체가 기분 더러웠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기분은 상쾌하지?”

크게 숨을 몰아쉰 백리황이 일어나 앉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허억. 허억. 네. 가슴이 터질 것 같지만 이상하게. 헉. 헉. 힘이 더 솟아납니다.”

“호흡 조절하며 듣기만 하거라. 지난 밤 네놈은 팔다리에 감각도 못 느낀 상태에서 무아지경으로 신법을 펼쳤었다. 본좌의 도움에도 삼 일을 꽉 채우고서야 그 상태에 도달한 걸 보면 네놈은 둔재가 확실하지만 영 가망 없는 놈은 아닌 듯하구나.”

“…….”

이제는 적사결의 화법에 익숙해진 백리황은 그러려니 하고 듣기만 했다.

광오한 걸 넘어 모든 걸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하는 적사결을 보며 은연중에 절대자의 위엄에 길들여진 백리황이었다.

“몸에 힘이 솟는 것은 무아지경의 감각이 신체에 남아 있는 것이지. 내력을 다스리며 그 감각을 똑똑히 기억하거라. 취팔선보든 백리가의 풍신보든 앞으로 네놈이 경공을 펼칠 때 그 감각만 기억한다면 극성으로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니까.”

적사결은 나무둥치에서 일어나더니 백리황에게 다가가 머리를 부비적거렸다.

“수고했다. 이것으로 수련은 모두 끝이다. 절정 고수가 된 것을 축하한다. 백리 애송이.”

“…….”

백리황은 감격 어린 얼굴로 적사결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절정 고수라니.

생각도 해 본 적 없던, 꿈에 그리던 경지에 오르게 된 것이었다.

“고맙습니다, 적운 님. 한데…… 아직 백리 애송이…… 인가요?”

백리황이 우물쭈물 거리며 물었다.

“큭큭큭. 당연하지. 절정 고수 따위 지나가다 발에 채일 정도로 많은 것이 강호다. 적어도 여기에 꼽힐 정도는 되어야 애송이 딱지를 뗄 수 있는 거다.”

적사결이 두 손을 활짝 편 채 들어 보이며 말했다.

그 의미는 당연히 천하 십대고수였다.

‘역시 적운 님은 대단한 분이시구나.’

백리세가의 가주인 자신의 아버지도 강동 십대고수로 불릴 뿐 천하를 논하기엔 부족함이 있었다.

하니 백리황에게 천하 십대고수는 뜬구름이나 다름없었다.

*   *   *

“어머나. 도시가 정말 예뻐요, 아가씨. 저기 좀 보세요.”

양화는 마차 밖을 보며 감탄을 자아냈다.

하늘에 천당이 있다면 땅에는 항주와 소주가 있다더니 정말 별세계였다.

물의 도시라는 이름대로 크고 작은 운하가 도시 곳곳에 뻗어 있어 이색적인 풍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유모, 앞으로 지겹도록 봐야 할 텐데 뭐가 그렇게 좋아?”

단목련이 냉소적인 얼굴로 말했다.

그녀는 언젠가 다가올 정략결혼이었지만 고작 열다섯이란 나이에 다가온 현실에 이를 외면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 탓에 그녀의 눈에는 아름다운 광경도 보기 좋을 리 만무했다.

“아가씨. 백리세가는 강호에서 알아주는 유력한 무가예요. 더구나 가주인 백리검 어르신께선 명망이 높고 수완이 뛰어난 분이시지요. 절대 나쁜 혼처가 아니랍니다.”

“알아. 그리 수완이 뛰어나니 아버님을 설득하고 두 집안이 혈연으로 다시 뭉치게 만들었지. 한데 백리황 그 녀석에 대해서는 유모도 잘 알잖아?”

강소성 북부의 단목세가, 남부의 백리세가라 불리는 두 집안이다.

어린 시절부터 교류가 있었고 단목련이 알기에 백리황이 내세울 것이라고는 착한 것밖에 없었다.

아무리 가문이 좋아도 남편감이 능력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래도 백리 공자께서 최근 강동 제일신룡으로 불리신다지 않습니까. 어디 요행으로 그런 별호를 얻을 수 있었겠어요?”

양화는 단목련을 위로하듯 말했지만 자신도 믿을 수 없었다.

그들이 백리황을 마지막으로 본 것은 일 년 전.

당시 삼류였던 그가 일 년도 되지 않아, 검강을 사용하는 절정 고수가 되었다는 것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유모! 나 보고 그런 유언비어를 믿으라는 거야? 그 멍청이가 강동 제일신룡? 뭔가 착오가 있었겠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천하제일 후기지수라 불리는 하북의 옥기린도 스물이 넘어서야 절정에 오를 수 있었다 들었다.

하물며 약관도 안 된 열다섯에 절정 고수?

헛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허명인지 아닌지는 직접 보시면 알게 되겠지요. 하니 아가씨, 백리세가에서 그런 태도는 보이면 아니 되십니다. 앞으로 아가씨께서는 백리세가의 며느리가 되실 분이십니다.”

양화의 말에 단목련은 퉁명스럽게 답했다.

“나도 알아!”

*   *   *

“꽤 요새처럼 지어 놓았구나.”

적사결은 비선 위에 앉아 백리세가의 담벼락을 보며 말했다.

백리세가의 주위는 운하가 이어져 해자를 파 놓은 듯 사방이 수로로 막혀 있었다.

“선조께서 지형과 소주의 특성을 이용해 지으셨다 들었습니다. 성을 참고해 지었기에 세가 내는 자급자족이 가능한 작은 성이나 마찬가집니다.”

백리황이 노를 능숙하게 움직이며 말했다.

어리다 하나 이곳에서 자란 백리황이다.

어지간한 사공보다 뛰어난 솜씨를 지니고 있었다.

“제 입으로 이런 말하긴 그렇지만 몰래 침입하기는 어려운 곳이 본가입니다.”

“하면 가문의 후계자인 네놈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이 있느냐?”

집단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당연히 수장, 그리고 그다음이 후계자다.

금개는 현재 백리황의 몸을 하고 있으니 평범한 방법으로는 만나기 힘들었다.

“개방의 소주분타로 가서 분타주의 서신을 들고 간다면 어떨까요?”

백리황이 금개의 몸을 하고 있으니 소주분타주의 서신 하나 받는 것은 일도 아닐 것이다.

하나 적사결은 고개를 저었다.

“나쁘지 않지만 좋은 생각도 아니야. 그러다간 우리 소재가 낙양 분타에 알려질 것이야. 그 과정에서 사령들에게 꼬리가 밟힐 수도 있다.”

“개방의 정보가 샐 수도 있다고요? 설마요.”

“흑야귀령대의 정보망은 하오문과 이어져 있기에 천하에서 가장 넓다고 봐도 무방하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야.”

하오문은 점소이, 기녀, 소매치기, 도둑 등 하층 집단으로 이루어진 단체였다.

천하제일 정보 집단으로 불러도 무방한 곳인데 흑야귀령대가 그곳과 이어져 있다는 말이었다.

“예? 하오문이 그곳과 이어져 있다는 말입니까?”

흑도와 가깝지만 하오문은 고객을 가리지 않는다.

돈만 된다면 정파와도 정보를 사고판다는 말이다.

때문에 강호에서 하오문은 정사지간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하니 적사결의 말은 백리황에게 충격적이었다.

“본좌를 못 믿겠다는 거냐?”

적사결이 적랑대주 시절 목숨을 걸고 알아낸 사실이었다.

하오문주와 사무련주는 분명 모종의 관계가 있었다.

“아닙니다…… 하면 어쩌지요?”

백리황의 물음에 적사결이 씨익 웃었다.

“후후후, 본좌가 누군지 잊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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