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이혼대법-35화 (35/206)

<기적의 이혼대법 35화>

*   *   *

“뭐!? 금령과 녹령이 실패해!?”

홍령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청령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한번 말해 주었다.

“확실하다. 녹령은 찾지 못했지만 금령의 시체는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처리했으니까.”

“사인은?”

“미간에 검상이 있더군. 흔적으로 보아 강기를 사용할 수 있는 절정 고수 이상으로 추정되고…… 금개의 장기는 권법이니 금개는 아니고…… 검법에 조예가 깊은 놈이다.”

“무슨 검법인지는 확인이 안 되던가?”

홍령의 물음에 청령이 고개를 저었다.

“일검에 당했더군. 가슴에 타박상은 있었지만 그 외 다른 검상은 남아 있지 않았어. 그것만으로는 무슨 검법인지 추정하기 어렵다.”

“금령을 일검에 죽였다는 말이야? 잘못 본 거 아니야?”

“사체에 남은 흔적을 분석하는 데는 내가 가장 뛰어나다는 걸 알잖나? 확실하다.”

“말도 안 돼…… 그게 가능하려면 천하 십대고수는 되어야 하잖아…….”

홍령이 말을 잇지 못하자 자령이 입을 열었다.

“천하 십대고수 중 검을 쓰는 자는 세 명이지. 사마오대존의 일인 광혈존 적사결. 의천오무제 중에는 창궁검제 남궁건과 북천대제 모용학. 하나 그 셋은 자신의 세력권을 벗어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알려지지 않은 은거고수 외에는 없다는 말이지.”

백령이 자령의 의견에 첨언을 달았다.

“분명 그 셋이라면 일격에 죽일 수 있겠지. 하나 가슴에 있었다는 타박상도 빼놓을 순 없어. 그 말은 권장으로 상대하다 결정적인 순간에 검을 썼겠지. 다수의 공방이 오간 끝에 금령은 당한 거야. 네 의견은 어때?”

청령이 고개를 저었다.

“가슴의 타박상도 일 초식이었다. 즉, 상대는 적어도 삼 초 안에 금령을 죽인 거야.”

홍령이 경악스런 얼굴로 되물었다.

“그럼 권장으로 가지고 놀다 일검에 죽였다는 거잖아!?”

“그래.”

“그런 자가 금개의 곁에 있다? 도대체 누구지?”

“확실하지 않지만 한 가지 더 단서는 있다.”

청령의 말에 사령들이 집중했다.

확실하지 않음에도 말한다는 것은 물증은 없지만 심증으로 알고 있다는 말이었다.

“희미하지만 금령의 미간에 남은 내공의 흔적은 불가기공이었다.”

“불가기공이면 소림? 한데 중놈들은 검을 쓰지 않잖아.”

백령이 고개를 끄덕이며 끼어들었다.

“아미파. 멸문한 아미파의 일맥을 이은 놈이로군. 불가기공에 검이라면 그년들 외에는 없지.”

“그래. 백 년도 더 전에 멸문했지만 아미파와 인연이 닿은 은거고수라면 설명이 가능해. 물론 가능성은 지극히 낮아.”

지금으로부터 백오십 년 전.

사천성에서 당가를 상대로 청성, 아미, 점창의 세 방파가 연합한 세력이 충돌했었다.

파촉의 땅을 놓고 근 십여 년을 겨룬 지난한 힘겨루기 끝에 승자로 우뚝 선 곳은 당가였다.

그렇게 사천당가라는 명성을 얻은 그들은 세 문파의 기둥 뿌리 하나 남겨 놓지 않고 멸문시켰었다.

은원은 결코 잊지 않는다는 사천당가의 가훈은 그 싸움을 통해 비롯된 것이라 알려졌다.

“썩어도 준치라고 역시 개방인가. 그만한 은거고수를 찾아내 숨겨 두고 있었다니.”

홍령의 말에 자령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금개의 비밀 호위로 쓴 것이겠지. 어쩌면 도련님께선 그걸 알고 정보를 흘린 것 아니까?”

“우리가 금개를 노릴 것을 예상하셨다고?”

“그럴 만한 분이시지. 자신의 우상인 걸 알고도 손을 쓴 수하들에게 따끔한 경고를 하신 것일지도 몰라.”

자령의 말에 사령들은 침묵했다.

단정할 수 없지만 일리 있는 말이었다.

그들의 주군인 사무련주 역시 수하들이 자유롭게 임무를 행할 수 있도록 풀어 주는 방식을 취하지만 아래에서 기어오르면 이런 방식으로 확실한 주의를 주는 것으로 유명했다.

백류혼은 어린 시절부터 그런 것들을 보고 자랐으니 숨 쉬듯 자연스럽게 행했다 볼 수도 있었다.

“지금 우리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다. 금개의 암살을 제대로 계획한 후 재시도하는 것과 도련님을 다시 쫓는 것. 어느 쪽을 택하는 것이 련주님의 명을 잘 이행하는 것일까?”

사실 언급할 필요도 없었다.

책임자인 금령이 강력하게 주장했기에 따른 것이지 금개를 죽이는 것보다 백류혼을 잡아서 본련으로 복귀하는 것이 이번 임무의 핵심이었다.

“다들 만장일치인 것 같은데?”

홍령의 말에 자령이 고개를 끄덕이며 정리했다.

“금령과 녹령을 처리할 정도의 은거고수다. 우리 넷이 합공하더라도 잘해야 양패구상. 최우선적으로 도련님의 신변을 확보하고 본련으로 복귀 후 그 은거고수 놈과 금개를 처리하자.”

흑야귀령대의 전력을 기울이면 염라대왕도 죽일 수 있다 알려져 있었다.

사령들은 암살 시도를 차후로 미루고 일단 주어진 임무에 충실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   *   *

삼당의 당주, 진덕개와 붕산개, 그리고 삼살개는 낙양 분타로 돌아와 망연자실했다.

그들이 자리를 비운 사이 낙양 분타의 방도들이 모조리 독살당한 것이었다.

심지어 분타주의 호위대인 호구대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이럴 수가! 이 많은 동지들이 모두 당하다니! 도대체 누가!”

붕산개가 바닥을 치며 분개했다.

“진정하게.”

진덕개가 붕산개의 어깨를 짚으며 말했다.

“진정하게 생겼는가!? 이 참담한 상황을 보게! 흐흐흑.”

“우리가 침착해야 흉수를 찾을 것 아닌가!”

“으흐흐흐흑.”

붕산개는 고개를 떨구고 굵은 눈물을 흘려댔다.

어제까지만 해도 함께 동냥밥을 먹고 농담을 주고받던 동지들이었다.

한데 한순간에 싸늘한 주검이 된 것이었다.

“분타주님이 안 계시네.”

의기당을 이끌고 건물 내부를 수색한 후 삼살개가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다행히 몸을 피하신 건가?”

진덕개의 물음에 삼살개는 고개를 끄덕였다.

“집무실에 혈흔이 있었고 바깥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아 상처를 입고 피하신 것 같네. 방도들이 추적 중이니 어디 계신지 찾을 수 있을 것이네.”

“그나마 다행이군. 흉수에 대해서는? 단서가 있던가?”

“몇몇 시체에 남은 흔적으로 보아 단검을 사용하는 놈이라는 것 외에는 없네. 자네들은 어떤가?”

“독공이 아닌 용독술이 경지에 이른 놈이라는 것까진 알겠더군. 한데 흔하디흔한 단장독과 미혼산을 사용했기에 흉수를 특정하기엔 어렵네.”

시흔과 독흔이 너무 단순한 것이 문제였다.

물론 용독술이 뛰어난 자들 중 이번 사건이 가능한 자들로 용의자를 추릴 수는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증좌가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처럼 학살이 자행된 경우 생존자의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리고 이번 사건의 경우 그 생존자는 낙양 분타 최우선 보호 대상이었던 금개 분타주일 것이었다.

“금개 어르신을 찾으면 흉수를 알 수 있겠지만…… 혹시 십이사령 그 새끼들의 짓은 아닐까?

붕산개의 말에 진덕개가 고개를 저었다.

“정사대전을 일으킬 생각이 아니라면 이렇게 눈에 띄게 일을 저질렀을까? 그리고 정사대전의 효시로 삼기에는 금개 어르신의 이름값과 본방의 명성이 그 정도는 아니지 않은가.”

객관적으로 의천맹에서 개방의 입지는 미미한 수준이었다.

맹 자체에서 정보대를 운용했고 각 무가에서도 개별 정보대가 있었기에 개방이 활약할 여지가 적기 때문이었다.

“나는 사무련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네. 이유는 모르지만 근자에 모습을 드러낸 썩을 놈들 중에 이 정도 혈사를 일으킬 놈들은 십이사령 그놈들밖에 없잖은가!”

“십이사령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 하나 속단은 금물이네. 일단 금개 어르신을 찾는 것에 총력을 기울여야 하네.”

“알았네. 총타에 이번 혈사를 알리고 삼당은 분타주님을 찾는 데 집중하세.”

삼당 당주의 결정으로 개방에서도 적사결을 쫓게 되었다.

의도했든 아니든 적사결은 가는 곳마다 사건의 중심이 되어 풍운을 일으키고 있었다.

*   *   *

“저기…… 적운 님.”

백리황이 앞서 가는 적사결을 향해 궁금했던 점을 물었다.

“무엇이냐?”

“아까 그 살수 있잖습니까. 씨발련이라고 하시던데…… 어디 놈들인지 정체를 아시는 건가요?”

적사결은 백리황을 돌아보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이 강호에 련이라 불리는 곳이면 한 곳뿐이지 않느냐.”

“헉! 그럼 역시 사무련인가요?”

“그래. 남무림의 패자니 뭐니 어깨에 힘주고 다니는 사파 개잡종들. 아까 그놈들은 흑야귀령대 소속으로 십이사령이라 불리는 놈들이지. 살수 나부랭이들의 수식어로는 과분한데 말이야. 쯧.”

적사결의 말에 백리황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사무련주에게는 두 개의 검이 있다 알려져 있었다.

대외적이고 공식적인 무력 행사에서 쓰는 야차혈전대, 그리고 은밀하고 비공식적인 암행에 쓰이는 흑야귀령대.

십이사령은 그 흑야귀령대의 정예였다.

‘그런 자들을 고작 살수 나부랭이라고? 도대체 이분은 어떤 분이신 거지?’

하나도 아니고 무려 두 명의 십이사령을 죽이고도 별일 아닌 듯 행동거지가 변함이 없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지만 겸손이 하늘에 닿지 않으면 이럴 수는 없었다.

자신이었다면 당장 알리고 세인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을 것이었다.

십이사령을 죽인 사실은, 한 개 성을 넘어 천하에 그 이름을 알리고 강호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는 별호가 생긴다는 의미이기 때문이었다.

‘아참. 지금은 몸이 바뀌어서 자신을 내세우지 못하니 그러신 건가? 그래도 정말 존경스러운 분이시구나. 역시 그 무허대사님께서 몸을 바꿀 만한 은거기인이시다.’

백리황은 적사결을 자신만의 시선으로 해석하고 선망의 대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자, 이쯤에서 시작해 볼까?”

적사결은 산길에 접어들자 백리황의 등에 훌쩍 업혔다.

“예? 뭘 시작해요?”

“두 번째 수련을 시작해야지. 이동 중에는 본좌를 업고 신법 수련, 저녁에는 대련을 통한 취팔선권 수련이다.”

“저 아직 다 안 나았는데요…….”

“칼침 한두 방 맞은 걸로 엄살 떨지 마라. 본좌가 젊었을 때는 사지근맥이 잘리고 내장이 삐져나올 정도의 중상을 입고도 천리 길을 기어갔었다. 자, 출발!”

백리황은 뛰기 시작했지만 믿을 수 없었다.

‘사지근맥이 잘린 몸과 무허대사님이 왜 몸을 바꿔? 더구나 내장이 드러날 정도의 상처를 입고 천리를 기어가? 말도 안 돼!’

*   *   *

사월, 보아라.

사소한 문제가 생겨 백리 애송이와 강소성으로 먼저 출발한다.

너는 금의위와 위작 만드는 쓰레기들을 처리한 후 내 새끼들 잘 돌보고 있거라.

참고로 귀염둥이들의 기초는 본좌가 친히 닦아 놓았다.

서 선생에게 부탁해 녀석들이 익힌 무공의 초식을 가르치고 기본을 잡아 주라 전하거라.

똘똘한 놈들이니 몇 번 보여 주면 잘 따라 할 것이니라.

소환단 잘 챙겨 먹이고 잠은 잘 자는지 똥은 잘 싸는지 꼼꼼히 확인하거라.

이백은 잠투정이 심하니…… 두보는 활동성이 부족하니……

(후략)

‘에휴. 대부분 원숭이 보모 노릇이구나.’

그렇게 사월은 임무를 마치고 적사결의 숙소로 돌아와 그가 남긴 서찰을 볼 수 있었다.

임무는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사왕의 모조품을 만들어 적사결의 행적을 가렸고, 모조품을 쫓은 금의위 위사들이 위작을 만드는 조직을 일망타진.

사월은 손 안대고 코를 풀 듯 손쉽게 일을 처리한 것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확인한 것이 금의위 위사들이 낙양 분타의 혈사를 알고 삼당의 당주들과 만나게 된 것까지였다.

사월은 사소한 문제가 그 사건이라는 것을 곧바로 알 수 있었다.

‘그나저나 서 선생이라면 교주님께서 적랑대주 시절 사지근맥이 잘리고 위험에 빠졌을 때 구명의 은을 입은 분이잖아.’

천마신교에 입교하지 않았지만 그때의 인연으로 주종관계를 맺게 된 은거기인이었다.

물론 주군이 적사결, 부하가 서 선생이지만 적사결은 존대를 하고 서 선생을 극진히 대했다.

그리고 서 선생을 비롯해 인연이 있는 은거기인들의 존재는 신교 내에서도 오직 적월만 알고 있었다.

그들은 적사결의 숨겨진 한 수이기 때문이었다.

‘그 서 선생님께서 원숭이들을 직접 가르친다? 허…… 이 녀석들 나중에 괴물이 되는 거 아니야?’

사월은 귀여운 눈망울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이두한백을 보며 보모 임무를 잘 수행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