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이혼대법 34화>
푸욱.
금령의 단검이 등 뒤에서 파고들었다.
하나 허점이 찔린 상황에서도 취팔선보의 움직임은 즉사를 허용하지 않았다.
반사적으로 등의 정중앙이 아닌 어깨를 내준 것이었다.
푸싯, 푸시싯.
거리를 벌린 백리황의 어깨에서 핏줄기가 뿜어져 나왔다.
찰나지간 벌어진 일이었지만, 꽤나 큰 상처였다.
고작 손바닥만 한 단검이, 강기가 실리자 단병이 보일 수 없는 파괴력을 보여 주고 있었다.
“제법이구려. 회심의 일격을 피하다니. 과연 취팔선보, 강호에서 으뜸가는 보법이라 할 만하오.”
금령이 단검을 고쳐 잡으며 살기를 발산했다.
백리황으로서는 잠자는 호랑이의 코털을 건드린 느낌이었다.
‘젠장! 그냥 피하기만 할 걸! 성정을 바꾸긴! 얼어 죽을! 빌어먹을 젠장 할!’
후회해도 늦었다.
장기전으로 끌고 갈수록 중상을 입은 자신이 불리한 상황이었다.
백리황이 슬쩍 창문으로 시선을 주었다.
‘도망칠까…….’
취팔선보를 믿고 냅다 튀면 달아날 수 있지 않을까.
백리황의 마음이 갈팡질팡했다.
하나 이내 생각을 고쳐먹었다.
‘싸워야 해. 이 몸으로 도망은 무리야.’
취팔선보는 기본적으로 보법. 달아나는 데 필요한 신법과는 또 달랐다.
극에 달하면 보법이나 신법이나 일맥상통하지만 삼류인 백리황에게 신법은 오로지 속도에 중점을 둔 경공의 또 다른 영역이었다.
‘싸우자. 죽을 각오로 싸우는 거야!’
백리황의 투지가 기세로 화했다.
절정 고수 중에서도 심후한 공력을 자랑하는 금개의 내공이 공간을 짓눌러 갔다.
파앗.
압박감을 느꼈는지 금령이 급하게 재출수했다.
좌우 양손 단검이 대극만환의 초식에 따라 백리황의 사방을 압박했다.
피잇. 피핏. 핏.
공격을 염두에 둔 탓에 회피가 완벽하지 않았다.
백리황의 몸에 혈선이 점차 늘어 갔다.
단병이 주는 쾌속함이 백리황을 집요하게 물어뜯었다.
푹.
얼굴을 노린 단검을 손바닥으로 막은 백리황이 고통을 참아 내며 금령의 주먹을 쥐었다.
동시에 반대쪽 손으로 일권을 날렸다.
하수가 고수를 상대하기 위한 방법인 살을 주고 뼈를 취하는 수법이었다.
“당황스럽군.”
금령이 나직이 읊조리며 백리황의 주먹을 남은 단검으로 찍었다.
그러고는 그대로 바닥에 박아 넣었다.
백리황은 양손을 제압당한 채 바닥에 엎드려 꼼짝도 하지 못했다.
“내공만 상당하고 실전 경험이 부족하다더니 정말이었군. 이런 조잡한 수로 본 사령을 상대하려 하다니.”
금령은 백리황을 내려다보며 이죽거렸다.
더구나 백리황이 쥐고 있는 단검마저 뒤집어서 바닥에 찍었다.
“크으윽.”
고작 단검일 뿐인데, 마치 천근을 올려놓은 듯 손을 움직이지 못했다.
이대로는 그대로 절명할 터였다.
‘시…… 시간을 끌어야 해.’
적사결이 올 때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백리황은 다급히 입을 열었다.
“도대체 날 왜 죽이려는 것이오? 죽기 전에 이유라도 좀 알려 주시오.”
금령이 치켜들었던 일장을 고수한 채 말했다.
“네놈이 존재하는 이유만으로도 어떤 분에게는 해악이다. 더 자세한 건 염라대왕에게 물어보도록.”
“자…… 잠깐! 난 금개가 아닙니다! 살려 주십시오!”
“뭐라?”
“정말입니다! 다 말씀드릴 테니 제발 살려 주세요!”
백리황이 눈물 콧물 쏟으며 사정하자 금령은 의아함이 들었다.
그래도 천하사괴의 일인이자 강호의 명숙 중 한 명인 금개가 울고불고 사정하다니.
금령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백리황의 볼을 잡아당겼다.
“인피면구도 아니건만 무슨 헛소리냐! 네놈이 구차한 변명으로 목숨을 구걸한들 살 수 있을 성 싶으냐!”
금령이 다시 일장을 추켜드는 그때였다.
피잉.
파공음과 함께 한 줄기 궤적이 금령이 있던 자리에 쏘아졌다.
하나 금령 역시 암습을 눈치채고 그 자리를 벗어나 있었다.
“야 이 새끼야. 뭐? 다 말씀드려? 뒈지고 싶냐?”
창문을 훌쩍 넘어온 이는 적사결이었다.
“적운 님!”
“닥쳐! 그 가벼운 주둥이로 본좌를 부르지 마라! 확 꿰매 버리기 전에.”
적사결의 으름장에 백리황이 울상을 지으며 입을 닫았다.
“네놈…… 어떻게 이곳에 온 거지?”
금령이 적사결을 보며 물었다.
당연히 녹령이 올 것이라 여겼건만 예상이 빗나가도 한참을 빗나간 것이다.
더구나 자신의 감은 틀린 적이 거의 없었다.
스스로도 상대의 무위를 파악하는 눈이 십이사령 중 최고라 자부하는 금령이었다.
반박귀진이 아닌 이상 자신의 눈을 속일 수 없다 여겼건만.
“당연히 쳐 죽이고 왔지. 씨발련아.”
“…….”
금령은 기감을 총동원해 적사결을 살폈지만 역시나 마찬가지였다.
강자만이 가지는 여유와 기세는 있으나 내공이 느껴지지 않았다.
갈무리한다고 해도 은연중에 드러나는 기운만으로 상대를 측정할 수 있는 경험이 금령에겐 있었다.
하나 적사결의 몸에서는 단 한 줄기의 내공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반박귀진이라 하기엔 너무 젊다. 설마 인피면구? 하나 저 정도로 정교한 인피면구는 사무련 내에서도 제작 가능한 자가 드문데…….’
금령은 긴장한 채 단검을 고쳐 잡았다.
녹령이 당했다면 자신 역시 최선을 다해야 할 상대라는 의미였다.
“단검? 넌 금령이구나?”
적사결이 단박에 자신의 정체를 알아채자 금령이 눈썹이 크게 휘었다 제자리로 돌아갔다.
사무련에서도 극비 사항인 십이사령의 개인정보를 알다니 정말 보통 놈이 아니었다.
“본좌도 한때 양손검을 써 본 적 있지. 오랜만에 즐겨볼까.”
백리황에게 다가간 적사결이 그의 손에 박힌 단검을 빼 들었다.
“으윽.”
“으윽 같은 소리 한다. 저리 짜져 있어! 거치적거리지 말고!”
백리황이 양손을 부여잡은 채 살며시 물었다.
“죄송합니다. 그런데 안 무거우세요?”
자신의 손에 박힌 단검은 무지하게 무거웠다.
고통이 아니더라도 꼼짝도 못할 정도로 말이다.
한데 적사결은 가볍게 단검을 들고 있었다.
“천 근이 뭐가 무겁다고. 쓸데없는 소리 말고 찌그러져 있어.”
단검은 만년한철로 만들어져 있었다.
만년한철은 공력을 저장하고 뿜어내기 유용한 기물.
금령은 천근추의 수법을 단검에 담아 놓은 것이었다.
‘품에 몇 개 더 있을지 모르니 싹 챙겨야겠어.’
적사결이 씨익 웃으며 금령에게 다가갔다.
같은 단검을 양손에 든 적사결과 금령이 일보의 거리를 두고 서로를 노려보았다.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서 두 사람은 움직이지 않았다.
서로의 머릿속에는 공수 교환의 투로가 어지럽게 그려지고 있었다.
먼저 움직인 것은 금령이었다.
쉬잇. 챙.
목덜미를 노리고 온 금령의 단검을 적사결의 단검이 잡아챘다.
쉬쉿. 채채챙.
공격해 온 팔의 팔목을 노린 적사결의 단검을 금령의 다른 단검이 막고, 공격하고 막는 행위가 반복되었다.
채채채챙. 채채챙. 채챙.
일보의 거리에서 서늘한 예기가 두 사람을 중심으로 치고받았다.
빛살 같은 움직임에 백리황은 눈으로 쫓지도 못할 정도였다.
백중세로 보이나 문제는 내공에 있었다.
동일한 무기라지만 금령의 단검에는 강기가 서려 있었기에 적사결의 단검에 점차 이가 빠지고 있었다.
만년한철이기에 그 정도 버텼지 일반 단검이었으면 벌써 부러졌을 터였다.
‘기회다.’
금령의 단검이 독사처럼 휘어지더니 적사결의 단검 중 금이 간 부분을 정확하게 노렸다.
절정 고수 이상만 가능하다는 무기 파괴.
눈으로 보이지도 않는 빠른 공세 속에서 그만한 상승 기예를 펼친 것이었다.
쩌엉.
적사결의 단검을 부러뜨린 금령의 단검이 그대로 미간을 향해 쏘아졌다.
닿기 직전 고개를 비틀었기에 단검은 귀를 스치며 지나갔다.
한데 적사결의 머리카락이 꿈틀거리더니 금령의 단검을 휘어 감았다.
천축유가신공이었다.
휘릭.
머리카락으로 단검을 붙잡은 채 회전하며 품으로 파고든 적사결이 팔꿈치로 금령의 명치를 찍었다.
하나 그새 호신강기를 펼쳤는지 금령은 얼굴만 일그러졌을 뿐 큰 타격을 받지 않은 듯했다.
왼팔로 금령의 남은 팔을 부여잡고 팔꿈치를 그대로 명치에 댄 적사결의 안광이 번쩍였다.
꾸구국.
발가락 끝으로 대지를 찍어 누른 힘이 하체를 타고 올라 팔을 접은 상태로 꼬여 있는 어깨에 도달했다.
콰르르르.
초근접 광풍폭살이었다.
회전력이 팔꿈치 끝을 중심으로 일점 집중되어 그 파괴력은 더욱 극대화되었다.
떠어어엉.
호신강기로 보호했다 하나 금령의 몸이 크게 들썩였다.
금령의 입이 벌어진 것으로 보아 상당한 타격을 받은 듯 보였다.
하나 그 입에서 비명 소리 하나 나오지 않았다.
‘새끼가 그래도 절정 고수라 이거지.’
기선을 잡았을 때 승부를 결정지어야 했다.
적사결이 검결지를 쥔 채 내공을 끌어올렸다.
광혈수라공의 검공, 수라천살검의 격혈경혼이었다.
촤좌좌좌좍.
황금빛 검기의 다발이 금령의 전면으로 쇄도했다.
한데 금령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리더니 검기가 금령을 통과해 나갔다.
쉬쉭.
잔영을 남기는 상승의 신법기예, 이형환위였다.
금령이 적사결의 뒤쪽에 자리 잡는 그 순간.
빙그르르.
등을 보인 채 적사결의 머리와 팔다리가 180도 회전했다.
“이러면 등 뒤를 잡힌 걸까, 아닌 걸까? 큭큭.”
금령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채 입을 떡 벌렸다.
보통 저 정도로 목이 돌아가면 목뼈가 부러져 죽을 것이고 팔다리는 관절이 빠져 버릴진대……
상대의 말대로 등을 보인 동시에 정면을 향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슈르르르.
적사결의 손을 떠났던 검기가 검결지로 회수되었다.
빛의 다발이 모여 만들어진 것은 찬란하게 빛나는 황금색 검강이었다.
“똥 싸고 받아먹는 것 같아 당분간 안 쓰려 했는데 이게 다 너 때문이잖아, 이 씨발련아!”
번쩍.
금령은 눈앞에서 햇살이 터져 나가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의식의 끈을 놓았다.
검강에 미간이 꿰뚫으며 즉사한 것이었다.
“으웨엑.”
아니나 다를까 적사결이 쭈그려 앉아 토악질을 해 댔다.
더구나 아랫배가 차갑게 식어가는 느낌이, 보지 않아도 부처 형상이 사라진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것으로 다시 내공이 차오를 때까지는 기공을 사용하지 못하게 된 것이었다.
‘그래도 덕분에 구역질이 멎었네.’
입안의 이물감을 모아 침을 뱉은 적사결이 한숨을 돌린 후 백리황에게 다가갔다.
“야, 백리 애송이!”
적사결의 거친 어조에 백리황의 목이 자라처럼 쏙 들어갔다.
“앞으로 실수로라도 우리 일을 다시 입에 올리면 혓바닥 뽑아 버릴 테니 알아서 처신 잘해라. 아참! 네 본래 몸의 혓바닥도 뽑을 테니까 정신 똑바로 차려! 알겠냐!?”
백리황이 다 죽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다신…… 안 그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적운 님.”
대답을 들은 적사결은 이번에는 주먹을 쥐더니 그대로 백리황의 머리에 꿀밤을 먹였다.
빠악.
“끄악!”
“끄악? 지랄한다! 아프다는 소리가 나오느냐?”
“다…… 다신 안 그럴게요. 앞으로는 입조심 하겠습니다. 아야야.”
“누가 그것 때문에 때렸느냐! 이 멍청한 놈아!”
“예? 그럼 왜…….”
백리황이 영문 모를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이 똥 멍청이야! 본좌의 참교육을 받고서 고작 저딴 놈한테 칼을 맞아!? 네놈 꼴을 보거라!”
백리황은 그제야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그렇지 않아도 누더기인 옷이 군데군데 찢어지고 그 사이로 혈선이 죽죽 그어져 있었다.
양손바닥에는 관통상을 입은 채 피가 줄줄 흘러내렸고 말이다.
“본좌의 얼굴에 먹칠을 해도 유분수지! 어휴! 확 그냥, 이걸 패 죽일 수도 없고!”
타타탁.
적사결은 투덜거리면서도 백리황의 점혈을 짚어 지혈을 하고 옷을 찢어 손에 감아 주었다.
“네놈이 약관도 안 된 핏덩이인 걸 다행으로 여겨라. 약관이 넘었는데도 사람 구실 못하는 놈은 개처럼 처맞아야 정신 차린다는 게 본좌의 지론이니 말이다.”
“네…… 죄송…… 아니 정신 똑바로 차리겠습니다.”
백리황이 풀이 죽은 얼굴로 대답했다.
겉보기엔 젊은이가 노인을 구박하며 핏덩이 운운하는 게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지만 두 사람에겐 당연한 것이었다.
실제 나이는 반대였으니까.
“자, 다 됐으니 일어나서 짐 챙겨라.”
“네? 짐…… 챙기라고요?”
“아까 삼살개가 사령놈들 한둘이 아니라고 말했잖느냐. 또 오기 전에 자리 피해야지. 이왕 이렇게 된 거 곧바로 백리세가로 가자꾸나.”
그랬다.
발각된 사령들은 여섯 명이라는 보고가 있었다.
아직 네 명이나 더 남았으니 또 다른 살수가 들이닥치기 전에 피하는 게 상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