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이혼대법 33화>
추측이 아닌 확신이었다.
십이사령의 목적은 백리황, 아니 금개가 분명했다.
낙양에 있는 정파 무림인 중 가장 중요한 인물이 금개이니 그가 아니고서는 십이사령이 직접 살행에 나설 다른 이유가 없었다.
“백리 애송아 책 덮고 이쪽으로 와라.”
적사결의 부름에 백리황은 비급을 내려놓고 쪼르르 다가왔다.
“무슨 일이십니까? 표정이 안 좋으신데요.”
“손님이 온 것 같구나.”
“예? 손님이라니요?”
“바깥의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느냐?”
적사결의 말에 백리황은 그제야 심상치 않음을 알아챘다.
“조용하군요…….”
“너와 본좌를 빼고는 이미 다 죽었다. 정확히는 이 공간만 제외시켰다 봐야겠지.”
“어찌 그럴 수 있는 겁니까? 그게 가능한가요?”
삼당이 임무를 띠고 부재중이라지만 이곳은 개방도들이 득실대던 낙양 지부였다.
자신들이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은밀하게 모두를 죽였다는 것이 백리황은 믿기지 않았다.
“독이겠지.”
적사결이 확신에 찬 대답으로 백리황의 궁금증을 풀어 주었다.
“음식이든 물이든 하다못해 공기 중에 살포하는 종류까지 독술에 조예가 깊은 놈이라면 가능하다.”
“독…….”
백리황은 고개를 끄덕였다.
독은 강호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종류의 것이었다.
사천의 지배자인 사천당가가 공명정대한 행보에도 불구하고 온전히 정파로 대접받지 못하고 정사지간으로 분류된 것은 독을 사용하기 때문이었다.
스스로를 단련시키고 완성에 이르는 무인의 길이 아니기에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다.
강호를 이르는 또 다른 말은 무림이었으니 말이다.
“상대는 두 놈이다. 그중 독향이 나는 놈 하나, 쇠붙이 냄새가 나는 놈이 하나다. 본좌가 독 쓰는 놈을 맡을 테니 네가 칼 쓰는 놈을 맡아라.”
적사결이 천장을 주시하며 말했다.
자신의 귀에는 두 명의 심장 소리가 들렸고, 후각을 통해 살행의 장기를 짐작할 수 있었다.
“다 들었으면 나오지 그래? 쥐새끼처럼 천장에 숨어 있지 말고.”
곧바로 두 명의 흑의인이 천장에서 미끄러지듯 내려왔다.
그들은 십이사령 중 금령과 녹령이었다.
“제법이구나. 금개의 직속 호위인가?”
금령의 물음에 적사결이 이죽거리며 대답했다.
“씨발련들 아니랄까 지랄을 하는구나. 본좌가 이놈을 왜 호위하냐.”
“…….”
씨발련?
금령은 문득 한 사람이 떠올랐다.
의천맹은 맹추라 부르고 자신들 사무련은 씨발련으로 부르던 마도의 하늘.
금령의 머릿속에 떠오른 인물은 광혈존 적사결이었다.
“야, 독 쓰는 애송이. 따라 나와라. 본좌가 친히 구린내 풍기는 손모가지를 박살 내주마.”
적사결은 대답도 듣지 않고 창문 밖으로 신형을 날렸다.
금령이 녹령에게 나직이 말했다.
“사로잡아야 하네.”
“역시 그렇겠지요? 씨발련이라…… 오랜만에 들어 보네요.”
녹령 역시 금령과 마찬가지로 적사결의 말투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방금 전의 사내가 마교와 관련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녀오죠.”
녹령이 적사결이 나간 방향으로 움직였다.
금령은 단둘이 남자 소매 속에서 두 자루 단검을 꺼내 들었다.
“십이사령의 일인, 금령이오. 금개, 그대의 목숨을 거둬가겠소.”
백리황은 심호흡을 하며 금령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했다.
긴장하면 긴장할수록 제대로 펼치기 힘든 것이 취팔선보였다.
첫 번째 훈련이 끝나자마자 치르게 된 실전이었지만 백리황은 지금의 공간 안에서는 자신 있었다.
***
쉬익. 탁.
산속에서 적당한 장소를 찾은 적사결이 신형을 멈추었다.
여기라면 인적이 드문 곳이니 다른 사람이 휘말릴 염려는 없었다.
독술을 사용하는 놈이니만큼 적사결은 신중을 기했다.
“죽을 자리로 정한 곳이 여기더냐.”
녹령이 천천히 다가오며 양손을 늘어뜨렸다.
녹색 손톱에서는 독연이 은은하게 흘러나왔다.
“네놈의 묏자리니 마지막으로 눈에 담아두어라. 앞으로는 이곳에서 썩어문드러져야 할 테니까.”
적사결의 도발에 녹령이 피식 웃었다.
보면 볼수록 천마신교의 교주를 보는 듯했다.
“너 혹시 교주의 숨겨 둔 아들이더냐?”
사무련에서 파악한 그는 혈육이 없었다.
고아 출신으로 입교한 뒤 평교도에서 교주까지 올라간 인물이었고, 교주가 된 이후에도 가족은 만들지 않았다.
한데 말투 하나하나가 그를 연상시키고 있었다.
문제는……
“아닌가? 닮지는 않았는데…….”
생김새가 너무 닮은 구석이 없었다.
아무리 외가의 핏줄이 더 진하다 해도 말이다.
“눈깔은 제대로 박혔군.”
적사결은 피식 웃었다.
역시 자신의 외모가 태양이면 무허의 상판데기는 달, 아니 반딧불이었다.
우드득. 우득.
적사결이 포권을 하듯 손을 풀며 말했다.
“시작하지. 선수를 양보할 테니 재롱 한 번 피워봐.”
녹령의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신형이 주욱 늘어지며 짓쳐 들었다.
녹색의 다섯 줄기가 적사결이 있던 자리를 할퀴었다.
조강이 형성된 녹령의 손톱이 지나간 자리에 어른 몸통만 한 나무가 우수수 부러졌다.
쿵. 쿠쿠쿵.
나무의 부러진 부분이 드러나자 시커멓게 그슬리고 녹아내린 흔적이 엿보였다.
“독공도 아닌데 제법이야. 용독술만으로 이 정도 독을 자유자재로 다루다니.”
본디 독공은 천하에 사천당가만이 유일하다.
그들은 특이 체질이었으니까.
적사결은 부러진 나무 위 독이 묻은 부분을 손끝으로 찍어 문질러 댔다.
약간만 묻혔는데 손끝의 피부가 쓰리고 아려 왔다.
이 정도로 강력한 산성독을 다루다니……
“십이사령 중 독에 장기가 있는 놈이라면 녹령이겠구나. 맞지?”
적사결의 물음에 녹령은 아무 말 없이 손을 휘저었다.
쫘아아악.
독문 무공인 녹수망혼조가 재출수되었건만 또다시 그 자리에 적사결은 없었다.
녹령이 고개를 들자 뒤쪽 나무 위에 안착하는 그가 보였다.
“본 사령을 알고 있다? 역시 네놈은 마교의 세작이냐?”
강호에 십이사령이라는 이름은 널리 알려져 있으나 개개인의 신상은 기밀이었다.
그걸 알 정도라면 보통 놈이 아니라는 방증이었다.
“흥, 백천악의 사냥개 따위가 뭐 대단하다고.”
빠드드득.
녹령이 이를 갈며 광폭한 기세를 풍겨댔다.
가랑비에 옷이 젖듯 도발에 당하더니 강력한 한 방에 뚜껑이 열린 것이었다.
후와아악. 쫘아아악.
다섯 줄기의 조강이 세로 방향으로 솟아 올랐다.
디디고 있던 거목이 쪼개지며 충격파가 적사결에게 쇄도했다.
조강을 피하는 순간.
어느새 다가온 녹령이 오른손을 휘둘렀다.
촤아악.
‘크윽. 제대로 열 받았구먼.’
상체를 비틀며 피한다고 피했건만 왼쪽 어깨에 조강이 스쳤다.
역시 절정 고수.
도발에 흔들린 마음을 공격성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금세 피부가 변색되고 시커멓게 죽은피가 흘렀다.
“후우우우.”
원래의 몸이라면 내공을 사용했을 터.
하나 치명적인 약점이 있기에 보리연화공의 내공은 결정적인 순간까지 아껴야 했다.
“큭큭. 어쩌냐, 이 독은 녹안청사와 삼목섬와의 독액을 배합한 것이다. 천하에 나만이 해독할 수 있지.”
녹령이 독연이 흘러나오는 손톱을 내 보이며 입꼬리를 올렸다.
“살고 싶다면 스스로 마혈을 짚어라. 일각 안에 해독하지 않으면 네놈은 반드시 죽는다.”
적사결이 실소를 흘렸다.
“일각? 큭큭큭. 그 정도 시간이면 네놈을 열두 번도 더 죽일 수 있겠군.”
죽을지언정 목숨을 구걸하지 않는 것이 패도의 길.
더구나 이 정도의 역경은 수없이 경험한 적사결이었다.
“곧 죽어도 입은 살았구나. 점점 독이 신경을 마비시키고 이지를 앗아 갈 것이다. 얌전히……!”
항복을 종용하는 녹령의 눈앞에 적사결의 오른발이 날아들었다.
승리를 확신하고 마음에 생긴 틈을 노린 일격이었다.
빠아아악.
‘크으윽.’
황급히 팔을 들어 막았으나 팔목이 떨어져나갈 듯 욱신거렸다.
내공이 없이 외공만으로 그만한 힘이 실린 것이었다.
휘릭.
이번엔 왼발이 날아들었다.
녹령이 손톱을 세우고 조강으로 발등을 찍어 갔다.
그 순간이었다.
촤르르륵.
각법의 궤도가 틀어지더니 연체동물의 그것처럼 녹령의 팔을 휘어감았다.
우드드득.
그대로 부러진 녹령의 팔.
강기를 손끝에 집중시켰기에 팔에는 호신강기가 없었던 것.
하나 녹령은 침착하게 반대편 손으로 적사결의 허벅지를 후벼 팠다.
“여전히 독만 주입하면 이길 것 같냐?”
적사결의 머리가 뒤로 젖혀졌다 내리꽂혔다.
뻐어억. 콰직.
시정잡배의 그것 같은 박치기가 녹령의 얼굴을 짓뭉갰다.
빠악. 쿠지직.
두 번째 박치기에 녹령의 이마가 함몰되었다.
“독 따위에 의지하니까 실력이 그따위지.”
등 뒤로 한껏 젖혀진 적사결의 오른팔에서 황금빛 강기가 용틀임했다.
백리황을 훈련시키며 사용했던 광룡파천권이었다.
콰아아아앙.
지척에서 발휘된 광룡의 포효에 녹령은 한 줌 핏물로 화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또 다시.
“우웨에엑.”
내공을 사용한 반작용으로 토사물이 쏟아지고 그 사이에 검은색 토혈이 섞여 있었다.
녹령의 독에 완전히 중독되었다는 증거였다.
“후우…….”
호흡을 가다듬은 적사결이 의념을 집중했다.
신체 내부를 다스려 독을 강제로 배출하려는 것이었다.
기공술이 극에 달하면 운기조식을 통해 내공의 힘을 빌려 가능한 것이 그 방법이다.
하나 적사결은 천축유가신공으로 직접 독을 뽑아내고 있었다.
피 한 방울조차 의지 아래 두는 것이 천축유가신공의 공능이었다.
주르륵. 주륵. 치이이.
왼쪽 어깨와 오른쪽 허벅지를 통해 죽은피가 빠져나오기 시작하자 점차 선홍색 피가 배어나왔다.
그럼에도 남은 독성은 신체의 자연해독력을 높여 제거했다.
지독한 극독이 아닐 수 없었다.
독의 제거가 끝나자 이번엔 근육을 조여 피를 멈추고 상처 부위에 의념을 집중했다.
신공의 성취가 5성에 달했을 때 적사결은 모낭을 재생성해 탈모에서 벗어난 적이 있었다.
이번엔 찢어진 상처 부위의 세포를 재생성해 회복을 꾀하는 것이었다.
꾸득. 꾸득.
마치 상처 부위만 시간을 가속한 것처럼 피딱지가 내려앉고 새살이 돋기 시작했다.
반각도 되지 않아 전투에서 입은 상처를 회복한 것이었다.
“이 정도면 만독지체는 아니더라도 만독이 소용없는 몸이 된 건가. 더구나 이런 재생력이라니! 크하하하.”
적사결은 한동안 등한시했던 천축유가신공의 수련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성취가 깊어진다 해도 몸이 아닌 의념으로 발휘하는 무공이기에 향후 본래 몸을 되찾더라도 무허에게 좋은 일이 아닌 것이 더욱 마음에 들었다.
“그나저나 백리 애송이는 잘 버티고 있으려나.”
낙양 분타에 남은 또 한 명의 십이사령.
백리황이 도망은 칠 수 있을지언정 이길 수는 없었다.
적사결의 신형이 빠르게 움직였다.
***
“허억. 허억. 헉.”
백리황은 헉헉거리면서도 히죽히죽 웃어댔다.
저 무서운 살수가 자신의 옷자락 하나 건드리지 못하자 희열이 느껴진 것이었다.
‘적운 님과의 수련이 효과가 있구나.’
그간의 보법이 강물이었다면 실전을 거치며 취팔선보의 운용이 극에 달한 지금 백리황의 보법은 대해가 되어 있었다.
여기에 권을 더하면 그것이 취팔선권이라 했던가.
백리황의 마음속에서 주먹을 뻗고 싶은 강렬한 욕망이 일어났다.
흔히 보법은 무공의 토대라 했다.
보법으로 상대의 공세를 피하고 그 사이 생긴 상태의 빈틈에 공격을 적중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싸움법이다.
취팔선보로 금령의 공격을 피한 백리황의 눈에는 그 빈틈이 보였다.
‘때릴까? 때려도 될 것 같은데.’
갈등하는 백리황이 고개를 휘저었다.
‘아니야. 배운 것만 하자. 나는 삼류 나부랭이다. 삼류 나부랭이.’
자괴감을 불러일으키는 백리황의 마음에 악마가 속삭이듯 말이 들렸다.
‘손만 뻗으면 돼! 자유롭게! 마음이 가는 대로 발을 움직이는 것이 취팔선보라고! 이 융통성 없는 벽창호야!’
그래 이걸 계기로 성정을 바꾸는 거다!
가전무공인 천풍검법을 대성하려면 내 성정부터 바꿔야 해!
그렇게 스스로를 세뇌하듯 중얼거리던 백리황은 눈 질끈 감고 주먹을 휘둘렀다.
취팔선권의 취로일견이었다.
후아아앙.
백리황이 눈을 떴을 때 시간이 느려진 듯했고 꽉 쥔 주먹은 금령의 관자놀이에 거의 닿아 있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후웅.
백리황의 주먹이 유령을 관통하듯 금령의 얼굴을 통과했다.
잔영을 남긴 금령은 백리황의 뒤에 자리해 있었다.
“이형환위!”
좆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