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이혼대법 32화>
다다다닷.
낙양 분타의 개방도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분타의 안밖을 드나드는 거지들이 늘어나고 삼 당의 당주인 진덕개와 붕산개, 그리고 삼살개는 쉴 새 없이 문서를 읽고 분석을 했다.
“이보게. 정말 놈들이 낙양까지 와 있는 것이 맞을까?”
붕산개가 믿기 힘들다는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우연히 걸려 든 것인지 의도가 있는 것인지 모르지만 사실일 것이네.”
진덕개는 무거운 음성으로 문서를 내려놓은 후 지도를 펼쳤다.
낙양을 중심으로 인근의 지형이 상세하게 표시된 것으로 군사 지도라 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였다.
탁.
진덕개가 낙양의 동쪽, 호로관이라 적혀 있는 지점을 짚었다.
“최초의 보고는 금칠대의 요원 칠(七)이 알려 왔네. 분타주님의 명으로 안휘성 쪽으로 향하는 중 호로관 인근에서 놈들을 발견했다는 것이었지.”
백류혼은 사령들을 따돌리자마자 낙양 분타에 정보를 흘려 그들의 발목을 잡고자 한 것이었다.
“한데 아무리 금칠대 요원들이 가려 뽑은 정예라지만 사령들의 움직임을 알아챘다? 흐음…….”
십이사령은 흑야귀령대의 조장들로 웬만한 부대의 단주급일 정도로 뛰어난 자들이었다.
이제 갓 첩보원으로 입문한 금칠대의 요원이 그들의 꼬리를 발견했다는 것은 쉽사리 믿기 어려웠다.
“일부러 모습을 드러내고 움직였다 보는 것이 맞겠지.”
삼살개는 손으로 지도를 훑으며 말을 이었다.
“자네들도 알다시피 호로관은 낙양으로 들어오는 관문이네. 낙양 동부의 길목에 위치하고 있다는 말이지. 이런 장소일수록 모습을 숨겨야 되는 것이 정보를 다루는 자들의 특징이건만 여기서 발각되었다는 것은 일부러 행적을 노출시키려는 의도가 있다 봐야겠지. 그렇다면 놈들이 여기서 발각되어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
삼살개의 물음에 진덕개가 답했다.
“이목을 끌기 위해서?”
“맞네. 성동격서. 동쪽에 노리는 척하며 서쪽을 치는 것이지. 얼마 전 흑야귀령대의 상당수가 장강을 넘었다는 의천맹의 첩보가 있었네. 흑야귀령대는 사무련의 눈과 귀가 되는 이들로 일종의 척후라 볼 수 있지. 그들이 호로관에 이목을 집중시키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사무련의 입장에서 하남은 호북을 넘어야 도달할 수 있는 북무림의 중지인데 굳이 호로관에 나타났다라…….”
진덕개는 고민하다 호로관을 짚은 손가락을 위로 움직였다.
그의 손가락은 숭산에 도달해 있었다.
탁.
“소림이군. 낙양을 치는 척하며 소림을 노리는 것이야.”
진덕개의 말에 붕산개가 동조했다.
“나 역시 자네 의견에 동의하네. 낙양에는 수많은 무가가 존재하지만 소림에 비할 바는 아니지. 놈들은 정파 무림의 정신적 지주를 무너뜨릴 속셈이군.”
붕산개의 말에 첨언하듯 삼살개가 대화를 이었다.
“그간 의천맹은 오대세가가 사무련을, 그리고 나머지 문파들이 마교를 견제하는 방식을 취해 왔네. 이는 사무련도 잘 알고 있지. 한데 이들이 직접 소림을 노린다? 내 기우라면 좋겠지만…… 어쩌면 사무련과 마교는 모종의 동맹을 맺었을지도 모르겠군.”
삼살개의 말에 진덕개와 붕산개가 사색이 되었다.
마교와 사무련의 연합이라니!
사실이라면 의천맹의 입장에서 이보다 무서운 일은 없었다.
“맹에 조속히 알려야 하네!”
붕산개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소리쳤다.
“진정하게. 아직 아무것도 확인된 것은 없어.”
“어찌 진정할 수 있겠는가. 그 악적 놈들이 작정하고 연합했다면, 의천맹으로선 대응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만한 사안이니 더욱 확실한 증좌가 필요하네.”
삼살개가 붕산개의 어깨를 붙잡고 말을 이었다.
“본방은 예전만큼 맹 내부의 신뢰가 높지 않네. 추측만으로 맹에 전해 봤자 자칫 웃음거리로 전락할 수도 있을 터. 경거망동해서는 안 될 것이야.”
진덕개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자네 생각과 같네. 다만 소림에는 이 같은 사실을 알리고 만일의 사태를 대비할 수 있도록 하세나.”
“물론이네. 세가들은 몰라도 무산대사라면 본방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 주실 것이야.”
“서둘러야 하네. 첩보에 따르면 백팔나한의 삼분지이 이상이 숭산을 떠나 있는 상태라 들었네. 지금 소림의 본산은 어느 때보다 전력이 약한 상황이야.”
이유는 적사결을 쫓아 숭산을 내려갔지 때문이었다.
더구나 지금 종리세가와의 드잡이질로 발이 묶인 그들이 이제는 개방 때문에 본산으로 복귀해야 할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었다.
적사결로서는 천행이 아닐 수 없었다.
“일단 자네들은 호로관 인근 수색에 나서도록 하게. 나는 분타주님께 이일을 보고하고 소림에 지급으로 전서구를 띄운 후 후발대로 출발하겠네. 반드시 사령들의 꼬리를 잡아야 할 것이야.”
삼살개가 결론을 내리자 붕산개와 진덕개는 곧바로 회의장을 나갔다.
그들의 눈에서는 비장함이 감돌고 있었다.
흑야귀령대는 그만큼 강적이었다.
* * *
호로관 인근 산속.
금령을 비롯한 사령들은 모습을 숨긴 채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제길, 저따위 거지새끼들이 우리들의 뒤를 밟다니.”
홍령이 짜증 어린 얼굴로 말을 꺼냈다.
“개방도 그간 절치부심한 것이지. 그래도 한때는 천하제일방으로 불린 곳이었으니까.”
녹령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떼거리들이라 천하제일방이라 불린 것이지 어디 능력 때문이었나? 거지들은 쪽수 빼고는 볼 것 없어.”
백령의 말에 금령의 한쪽 눈썹이 씰룩거렸다.
“백령. 철비환 님 앞에서 그런 소리를 꺼냈다가는 사달이 날 것이야. 입 조심하도록 해.”
“…….”
백령은 다시 과묵하게 입을 닫았다.
그도 그럴 것이 사무련의 호법가 중 하나인 철혈철가의 가전 무공은 개방에 그 뿌리를 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철비환은 그 철혈철가의 당대 가주였다.
“아마 금개의 열렬한 추종자이신 도련님께서 우리들의 발을 묶기 위해 행적을 노출시켰겠지.”
자령이 목 뒤로 깍지를 낀 상태로 말했다.
은밀히 움직인 그들이었으니 아무리 개방도들이라도 이렇게 빨리 추적해 올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자령. 그래도 본련의 후계자이신 도련님이시다. 확증이 없는 상태에서 그런 유언비어는 입에 올리지 마라.”
금령이 미간을 좁힌 채 말했다.
자령은 고개를 돌리며 입을 삐죽 내밀었다.
금령은 사령들을 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
“저놈들은 개방 낙양 분타 삼당 소속의 타격대이니 오히려 잘 되었다. 나와 녹령은 낙양 분타의 금개를 노릴 테니 너희들은 놈들의 발을 묶어 두도록 해.”
금령의 말에 사령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명이서 동서남북을 맡아 종횡무진한다면 개방도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할 것이었다.
“흩어져.”
쉬쉭.
홍령, 청령, 백령, 자령이 사방으로 신형을 날렸다.
금령과 녹령도 서쪽, 정확히는 낙양 분타가 있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 * *
“더 빨리!”
파바바바바.
원 안에서 움직이는 백리황의 신형이 잔영을 남기며 빠르게 움직였다.
적사결의 주먹은 마치 채찍처럼 휘어지며 공격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하나 취팔선보의 보보는 적사결의 폭풍 같은 주먹질을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처럼 흘려내기 시작했다.
금개의 육체에 각인된 무공이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 사이에서 나타나는 신호였다.
‘역시 사람의 생존본능이란 위대한 거라니까. 흐흐.’
적사결은 백리황을 공격하는 와중에 조금씩 원의 크기를 넓혀갔다.
보통 움직임을 제한하는 원이 없다면 더 자유롭게 움직일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백리황의 성정과 취팔선보의 특징을 생각하면 그렇지 않았다.
우물 안에서만 지낸 개구리를 꺼내 천리를 달릴 명마에 태우고 채찍질을 가해 봤자 어디로 갈지도 모르고 얼마나 달려야 할지 모르는 것이 현실이다.
적사결은 원이라는 마장 안에서 취팔선보란 명마를 탄 백리황의 승마술을 훈련시키는 방식을 택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훈련의 성과가 점차 발휘되고 있었다.
슈욱. 그그극.
적사결의 팔이 늘어나더니 원을 두 배 가까이 크게 그린 후 줄어들었다.
백리황은 초점이 흐린 눈으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원 안에서 살아남는다는 한 가지 생각만이 가득했다.
“백리 애송아 이번 공격을 피하면 첫 번째 훈련은 끝이니 죽을힘을 다해 피해 보거라.”
후우욱.
단전에서 일어난 보리연화공의 내공이 광혈수라공의 운공요결에 따라 혈도를 휘돌았다.
뒤로 한껏 젖혀진 적사결의 오른팔에서 황금빛 기공이 꿈틀거렸다.
기운이 용의 형상을 그리며 일권이 내질러졌다.
광혈수라공의 권공인 광룡파천권이었다.
콰우우웅.
일직선의 권강이 아니었다.
미친 용이 발작적으로 원 안에서 공간을 찢어발겼고 강기가 다시 적사결의 오른팔로 회수되기까지 했다.
한 번 출수한 강기를 회수해 다시 내공화하는 적사결만의 기예였다.
이는 늘 생사비무를 장기전으로 끌고 갔던 무허 때문에 고안한 방법이었다.
상대적으로 부족한 내공을 보완하기 위해 지난 삼 년간의 폐관 수련에서 얻은 심득인 것이었다.
지금은 반대 상황이 되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우웨에에엑.”
적사결은 구석으로 달려가 먹은 것을 게워 냈다.
마치 똥을 입으로 쌌다가 다시 받아먹은 느낌이었기 때문이었다.
“적운 님. 괜찮으십니까.”
정신을 차린 백리황은 광룡파천권을 완벽하게 피했는지 상처하나 없는 몸으로 달려와 적사결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가…… 간밤에 과음했더니, 으웩.”
적사결은 약점을 보이기 싫어 핑계를 대며 속을 비웠다.
‘하…… 이게 무슨 꼴이냐.’
입가에 흐르는 침을 소매로 훔친 적사결이 그제야 몸을 일으켰다.
백리황은 어느새 잔을 가지고 와 내밀었다.
“쭉 들이켜세요. 속이 편해지실 겁니다.”
“뭔데?”
“지구자로 만든 차입니다. 숙취에 좋은 겁니다.”
지구자는 헛개나무열매로 흔하게 구할 수 있는 것이었다.
“용정차 없어?”
“거지가 무슨 용정입니까…… 찾아보니 비상금도 없었습니다.”
금개가 가진 땅에서 수익이 지속적으로 창출되지만 모두 개방의 운영자금으로 쓰이기에 백리황은 구경도 해 보지 못했었다.
“에휴, 그래 거지 소굴에서 바랄 걸 바라야지. 이리 내놔.”
적사결은 백리황에게서 찻잔을 받아서 입에 갖다대었다.
흔한 차라지만 달작한 맛과 쌉싸래한 향이 제법 잘 어울렸다.
입을 헹구고 따끈하게 속을 달래니 구역질이 가라앉자 그제야 살 것 같았다.
적사결은 찻잔을 내려놓고 백리황에게 말했다.
“백리 애송아 취팔선보는 이제 감 좀 잡았느냐?”
백리황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머쓱하게 웃었다.
“완전하게 소화해 내진 못했지만 몸으로 깨닫고 이해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겠습니다.”
“삼류 나부랭이였으니 벌써 다 소화할 수 있을 순 없지. 하나 오래 걸리진 않을 것이다.”
“노력하겠습니다.”
“노력은 개나 소나 다 하는 거고. 반드시 해내겠다고 대답해! 사내새끼가 매가리가 없어!”
적사결의 험한 말에 백리황은 머리를 긁적였다.
“꼭 해내겠습니다. 하하하.”
적사결은 그제야 인상을 풀며 다시 차를 마셨다.
백리황은 어색해진 분위기를 환기시키기 위해 화제를 바꾸었다.
“한데 아까 삼살개 당주가 와서 보고한 것 있잖습니까. 정말 마교와 사무련이 동맹을 맺을 수도 있을까요?”
대련이 있기 전 삼살개가 방문해 십이사령의 발견과 그에 대한 분석 보고서를 보여 주었었다.
그 자리에는 물론 적사결도 있었고 내용도 다 들을 수 있었다.
“동맹을 맺든 사돈을 맺든 확실하지도 않은 사안에 관심 가지지 말고 네놈 몸뚱이 사용법이나 생각하거라.”
적사결의 호통에 백리황은 목을 쑥 집어넣고 취팔선보의 비급을 손에 들었다.
‘흥. 본교가 씨발련과 손을 잡아? 개소리지. 하긴 정파 놈들은 그 사건에 대해 모를 테니 그런 추론도 할 수 있겠지. 하나 헛다리짚은 것이다 삼당 똥개들아.’
천마신교와 사무련 간에는 씻을 수 없는 은원이 있었다.
그걸 아는 적사결은 삼살개가 올린 보고서를 보고 코웃음을 쳤었다.
‘한데 십이사령 그 새끼들은 호로관에 왜 나타난 거지…….’
사무련주의 직속 정보대인 흑야귀령대.
그들의 수뇌라 할 수 있는 십이사령이 움직였다면 보통 사안이 아닌 것이었다.
적사결이라도 십이사령의 목적까지 짐작할 수는 없었다.
‘음? 뭐지?’
갑자기 바깥이 조용해진 것을 감지한 적사결이 청각을 강화했다.
하나 개방도들로 늘 어수선하던 낙양 지부가 누가 명령이라도 한 듯 잠잠해진 상태였다.
‘천장 위의 쥐새끼들도 다 죽은 건가? 왜 이렇게 조용해? 이거…… 설마…….’
그런 경우가 있다.
목표로 삼은 곳의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는 모조리 말살하는 잔혹한 행위.
이는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단서조차 남기지 않으려는 특급 의뢰를 받았을 때 행해지는 살행이었다.
‘설마 십이사령 이 새끼들…….’
적사결은 고개를 돌려 아무것도 모른 채 비급을 읽고 있는 백리황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