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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이혼대법-30화 (30/206)

<기적의 이혼대법 30화>

“백리 애송이.”

“네, 적운님.”

“네 녀석이 약해빠진 것은 네 탓만은 아닐지도 모르겠구나. 그리고 너에게 있어 지금의 상황은 오히려 강해질 절호의 기회일 수도 있다.”

“기회요?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백리황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상승의 경지에 진입하려면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지. 첫째, 수련을 통한 정신적인 깨달음. 둘째, 실전을 통한 육체적인 깨달음. 어느 쪽이든 한쪽이 다음 경지로 나아가면 심신이 균형을 이루기 위해 뒤떨어진 쪽이 따라오게 되지. 인체의 신비라고 할까?”

“그 말씀은!”

“그래. 너는 정신 상태는 나약하기 짝이 없으나 그 몸뚱어리는 절정 고수의 그것이 아니더냐. 네 자신의 몸이 아니니 시간이 걸리겠지만 삼류인 네놈이 단숨에 절정에 오를 수도 있는 것이지.”

“……!”

백리황은 몸을 가늘게 떨었다.

적사결의 말은 무려 세 단계의 벽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의미였다.

“더구나 본좌가 직접 가르칠 것이니 네놈은 정말 운수 대통한 것이다. 후후후.”

적사결의 말에 감복한 백리황은 일어나 세 번의 절을 올렸다.

보통 사승 관계를 맺을 때 아홉 번의 절을 올리는 구배지례가 아닌 것이다.

그것은 이미 사승 관계를 맺은 자가 외인에게 가르침을 받을 때 예를 올리는 형식이었다.

“적운 님의 은혜를 어찌 갚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기필코 제가 갚아 보이겠습니다.”

“당연히 갚아야지. 나중에 이자까지 쳐서 받아 낼 것이니 각오 단단히 하거라.”

“하하하. 알겠습니다. 절정 고수만 될 수 있다면 무엇이든 들어 드릴 것입니다.”

적사결이 마도 대종사란 것을 모르는 백리황으로서는 경솔하게 은혜를 운운했다.

그저 은거 기인이라고만 짐작한 데다 적사결의 행동거지가 그리 악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는 가문의 어른들로부터 사파는 사악하고 마교는 흉악하다는 주입식 교육을 받은 폐해였다.

‘나중에 본좌가 뭘 요구할 줄 알고. 이런 어리숙한 녀석.’

적사결은 속으로 혀를 찼으나 당장 이 약속을 사용하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곱게 자란 난초 같은 백리황이 안쓰러울 뿐이었다.

‘역시 본 교처럼 극한 상황에 던져 놓고 서로 물고 뜯으며 자라야 강해지는 것이지. 정파 놈들은 나약하단 말이야. 쯧쯧.’

적사결은 다시 한번 천마신교의 훈육법이 옳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자는 자기 새끼들을 절벽에서 떨어뜨린다 했던가.

강함이란 처절한 상황을 견뎌 내야 비로소 빛을 발하는 법이었다.

그리고 백리황은 이제부터 처절함을 맛볼 것이었다.

“백리 애송이. 금개가 익힌 무공이 무엇이지?”

아무리 백리황이 어리숙하다 하나 몸이 바뀌고 가장 먼저 확인한 것이 무공이었다.

그것은 무인으로서의 본능과 같은 것이었다.

“상계에 적을 둔 당시에는 삼재기공만 익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개방에 입문 후에는 취팔선권과 취팔선보 두 가지만 익혔더군요.”

삼재기공은 천하에서 가장 흔한 내공심법이었다.

내공을 쌓는 속도는 극악하게 느리나 어떤 무공과도 접목 가능한 장점이 있었다.

때문에 무림에 적을 두기 전 익히는 무공은 대부분 삼재기공이었다.

그마저 익혀 두지 않고 나이가 들어 버리면 상승 무공을 익히기 어렵기에 초반에 기반을 닦기 위한 용도인 것이었다.

“비급은 보았느냐?”

“취팔선권과 취팔선보는 낙양 분타에서 보관 중이던 것을 읽었습니다.”

“혹시 직접 펼쳐 보았느냐?”

“해 보긴 했으나 잘…… 모르겠습니다.”

취팔선보와 취팔선권은 개방에서도 분타주 이상만 수련이 가능한 상승 무공이었다.

더구나 그 무공은 자유로움을 추구하기에 천풍검법과 마찬가지로 백리황과 궁합이 나빴다.

“그렇겠지. 이미 몸에 각인된 성취가 높은 상태이니 제대로 펼치고 있는 것인지 아닌지 감이 안 잡혔겠지.”

적사결은 집무실 중앙으로 걸어갔다.

다행히 이곳은 거적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기에 무공 수련을 하기에도 적합했다.

지이익.

발끝으로 일보가량의 반경으로 원을 그린 후.

“안으로 들어가거라.”

백리황이 원 안에 자리 잡자 적사결은 말을 이었다.

“취팔선보는 보법만 따진다면 천하에서 으뜸간다 할 수 있다. 하나 네 녀석의 성정과는 상극이지. 이 원이 네 녀석의 성정이라 가정하고 이 안에서 본좌의 공격을 피해 보거라. 취팔선보의 수련이 성과를 보이면 취팔선권으로 넘어갈 것이니라.”

신법과 보법은 무공의 기본이자 토대다.

실상 취팔선권 역시 취팔선보에서 파생된 무공이었으니 취팔선보를 집중적으로 수련한다면 권법은 어느 정도 따라온다 볼 수 있었다.

더구나 원이라는 한계를 가정한 것은 백리황이란 한 사람의 그릇 안에 무공을 담으려는 시도였다.

그릇 안에 무공을 담은 후 그 그릇을 점차 넓혀 가는 수련이었다.

“준비해라.”

“네!”

백리황은 기수식을 취하고 잔뜩 긴장했다.

쉬익. 뻐억.

“끄…….”

적사결의 주먹은 눈 깜짝할 사이에 백리황의 명치에 박혀 버렸다.

대비하고 있었음에도 피하지 못한 것이다.

“긴장하면 신체가 뻣뻣해진다. 그건 날 때려 주세요 하는 것과 진배없음이야. 다시 간다.”

“커흑, 예…… 예!”

백리황이 한 손으로 명치를 잡고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들었다.

뻐억.

칼같이 들어간 하단 발차기에 백리황의 한쪽 무릎이 꺾였다.

“멍청아! 맞은 곳에 신경이 온통 쏠려 있으니 다른 곳에 의식이 빠지지 않느냐.”

“죄…… 죄송합니다.”

“아파도 참아! 전신의 감각을 날카롭게! 공수 배분하라는 것도 아니고 수비만 하라는데 어찌 이리 얼빠진 것이냐!”

“크윽…….”

백리황은 이를 악물고 눈을 부릅떴다.

하나.

뻑. 뻐억. 퍼버벅.

변초가 섞인 것도 아니고 그저 내지르고 후려치는 공격인데도 피하지 못했다.

“으윽. 저, 적운님.”

“뭐냐?”

“내공을 사용하지 말고 상대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너무 빨라 대응을 못 하겠습니다.”

백리황은 줄줄 흐르는 코피를 훔치고 삐걱거리는 옆구리를 부여잡은 채 말했다.

일다경도 되지 않는 사이에 많이도 얻어맞은 것이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 본좌는 내공을 한 톨도 사용하지 않았는데.”

“네? 그게 정말입니까?”

“내공을 실었다면 네놈 대갈통이 터졌을 것이다. 흰소리 그만하고 준비하거라.”

“…….”

백리황은 침음을 삼키며 울상을 지었다.

적사결은 속으로 고소를 머금었다.

‘조금 무식하지만 육체를 강제로 일깨우는 데 이만한 방법이 없지.’

백리황의 의식을 파악하고 방비가 약한 곳을 집중적으로 노린 상황.

녀석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자신과 백리황의 실력 차는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였으니 말이다.

퍼버버벅. 퍽. 퍼퍽.

내공도 사용하지 않고 변초도 쓰지 않은 단순한 주먹질.

그런 공격도 피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참한 사실에 백리황이 독기를 품기 시작했다.

“헉, 헉. 허억.”

백리황은 전신은 물 먹은 솜처럼 무거워지고 의식은 몽롱해졌다.

평소라면 이미 정신을 놓아 버렸겠지만 악에 받친 독기가 그를 지탱하고 있었다.

“이제야 독이 바짝 올랐구나!”

뻐어억. 퍼퍼퍼퍽.

적사결은 더욱 거세게 백리황을 두드려 댔다.

조금만 더 몰아붙이면 원하는 조건이 성립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좀 더. 조금만 더 버텨라, 백리 애송이.’

줄기차게 후드려 패는 적사결이 다시금 손을 쓰려다 흠칫했다.

백리황의 눈이 돌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흰자만 불거져 나온 전형적인 의식 불명의 상태였다.

“이 새끼. 완전히 정신 놓은 거야?”

적사결은 한숨을 쉬며 백리황을 바라보았다.

이 정도까지 몰아붙이면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에서 투쟁 본능이 드러나기 마련이었다.

한데 백리황은 경계를 넘어 기절해 버린 것이었다.

“그래도 서서 기절할 정도면 아주 맹탕은 아니란 건데…… 그래도 이렇게 빨리 의식을 놓아 버리다니. 한심한 놈.”

일다경 후.

뿌옇던 백리황의 눈동자가 점차 선명해지며 정신을 차렸다.

“이제야 정신이 드느냐?”

“제가…… 기절했던가요?”

“자신이 기절한 것도 몰랐더냐? 쯧.”

“죄송합니다…….”

“그놈의 죄송하다는 소리 좀 내뱉지 말거라. 사내새끼가 그런 말을 쉽게 내뱉어 봐야 나약해지기만 할 뿐이다.”

“죄…… 넵.”

습관적으로 나오는 말을 꿀꺽 삼킨 백리황이 짧게 대답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절할 정도로 얻어맞았건만 이상하게 몸은 가벼웠다.

‘골병이 드는 거 아닌가 생각했는데 다행이네. 역시 절정 고수의 몸이라 그런가.’

백리황이 자신의 몸을 더듬는 그때 적사결이 속마음을 읽은 듯 말했다.

“본좌가 막 때린 것처럼 보였겠지만 그 한 수, 한 수가 모두 추궁과혈과 같은 효과를 낸 것이니라. 어혈을 풀고 혈맥을 단련시켜 신체를 튼튼하게 만드는 수련법이지. 후후.”

맞는 것도 수련의 하나였단 말인가.

백리황은 적사결의 말에 입을 떡 벌렸다.

어느 정도의 경지이기에 내공도 쓰지 않고 그것이 가능한지 그로서는 가늠할 수 없었다.

“그런 얼굴로 보지 말거라. 네놈이 본좌를 우러러 볼 때는 강기 형성에 성공했을 때로 충분하니 말이다.”

적사결의 말에 백리황은 더더욱 존경스런 표정을 지었다.

과정만이 아닌 오로지 결과만으로 능력을 보여 주겠다는 적사결의 호언장담에 마음이 동한 것이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다. 몸을 쉬며 대련 과정을 복기하고 네놈의 몸이 무의식적으로 움직인 점은 없는지, 있다면 어떠했는지 생각해 보거라.”

과제를 내준 적사결은 몸을 일으키며 말을 이었다.

“한데 금칠대의 나머지 놈들은 언제 임무에 투입되느냐?”

“오늘 저녁 출발할 것입니다. 천하사괴 중 취불과 금개를 뺀 나머지 두 명에게 세 명씩 배정했습니다.”

“그놈들은 거주지가 일정하지 않은데 대략적인 위치는 파악했느냐?”

“산서와 안휘 쪽에 마지막으로 나타났다는 정보는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곳에 있는지는 알 수 없지요. 워낙 신출귀몰한 이들이니까요.”

“그건 어쩔 수 없겠지. 어쨌든 최대한 빨리 알아보도록 하거라.”

“알겠습니다.”

백리황의 대답을 흘려들은 적사결은 생각했다.

‘산서와 안휘면 칠월과 오월이 담당이었지. 녀석들에게도 알아보라 해야겠구나.’

*   *   *

찌르르르.

어둠이 드리운 산속.

우거진 수림 탓에 달빛도 비치지 않건만 이동하는 신형은 눈부시게 빨랐다.

탓. 타탓. 쉬이익.

두 번을 박찬 신형은 거목의 꼭대기에 올라앉았다.

달빛에 드러난 그는 금칠대 중 칠(七)이란 요원명을 받은 봉두였다.

쉬익. 쉬익.

곧이어 봉두의 주위로 두 명의 흑의인이 나타나 나무 꼭대기에 올라섰다.

가느다란 가지 끝에서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경신법은 그들이 절정의 고수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었다.

“도련님.”

한데 놀랍게도 흑의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존칭이었다.

봉두는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에휴, 결국 여기까지 따라온 거야? 그것도 십이사령 중 두 명이나?”

“절반입니다. 나머지 네 명은 동서남북 사방에서 대기 중이지요.”

“여섯이나? 날 잡으려고?”

“지난번처럼 도련님께서 대화도 하지 않으시고 도망가실까 봐 배치해 놓은 것입니다.”

“무슨 대화가 하고 싶은 거야? 난 더 이상 할 말이 없는데.”

봉두의 삐딱한 말에도 흑의인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말을 이었다.

“련주님께서 걱정하시니 돌아가시지요.”

“분명히 말했어. 난 자유롭게 살겠다고 말이야. 본 련의 절대적인 가치가 자유 아니었나?”

“무련의 모든 이들은 그럴 수 있어도 련주님과 후계자이신 도련님은 안 됩니다.”

“그러니까 나 후계자 안 한다니까. 수연이가 있잖아. 걔보고 하라 그래.”

봉두는 손사래를 치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류혼 도련님!”

흑의인, 아니 사무련 흑야귀령대 소속 십이사령의 일인 금령이 노성을 토했다.

“백류혼이란 이름은 버렸다. 난 이제 발정개…… 아니다. 그냥 봉두야!”

개방에서 받은 걸명을 말하고 찝찝했는지 다시 가명을 말한 백류혼이었다.

“다 들었습니다! 사무련의 후계자이신 도련님께서 발정개가 뭡니까! 발정개가!”

“이익! 발정개가 어때서! 금개 님께서 지어 주신 거야!”

백류혼, 그는 황당하게도 천하사괴의 일인, 금개의 열렬한 추종자였다.

사무련의 후계자인 그가 그 신분을 버리고 개방의 정보원이 되려 한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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