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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이혼대법-28화 (28/206)

<기적의 이혼대법 28화>

한 시진 후.

“알아보았느냐?”

왕욱은 여각으로 들어선 진무백을 향해 물었다.

이문정의 사가를 나선 후 그들은 각자 맡은 정보를 처리하고 이곳에서 다시 만난 것이었다.

진무백은 무허대사가 왜 이문정의 사가에서 수저를 들먹인 것인지 알아보았었다.

“개방과 관련이 있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진무백은 저자거리의 소문부터 시작해 사설 도박장까지 들러 수저 사건의 배경을 조사했었다.

“개방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냐?”

“근자에 개방 낙양 분타에서 정보원을 뽑는 채용이 있었다 합니다. 그 과정에서 실습 과제의 하나로 지부대인의 사가에 있는 수저 개수가 나온 것으로 확인하였습니다.”

“출처가 확실한 정보더냐?”

“그렇습니다. 또한 그 채용의 주도를 분타주인 금개가 지시했다 합니다. 참고로 금개는 취불과 함께 천하사괴의 일인입니다.”

“한데 금개가 주도하는 일에 어찌하여 취불이 나선 것이냐?”

“속하도 그 이유까지 알아낼 수는 없었습니다. 그저…… 장난치려 한 것은 아닐까요?”

온갖 괴상한 짓을 하고 다닌다 하여 천하사괴라 했다.

타문파의 공식적인 행사라 하여 장난질을 하지 않을 그들이 아니었다.

왕욱은 관자놀이를 누르며 한숨을 쉬었다.

“정말 내 살다 살다 이런 개망종 같은 중놈은 처음이구나…….”

왕욱의 탄식에 진무백은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속하의 생각에 그자는 주화입마에 빠져 정신병이 들었거나 매병(呆病 : 치매)에 걸린 것이 아닌지 의심됩니다. 해서 소림에서도 그 사실을 숨기는 것 아닐까요?”

진무백은 자파의 최고 어른이 그런 병증이라면 숨길 수도 있지 않을까 의심되어 한 말이었다.

어느 쪽이든 문파의 치부가 될 테니까.

“진무백, 너는 정파의 무림 고수 중에 주화입마나 매병에 걸린 자가 있다는 얘기를 들어 본 적 있느냐?”

진무백은 잠시 고민하더니 대답했다.

“현문 정종의 내공은 주화입마에 빠질 확률이 낮지만 아예 없는 것은 아닌 것으로 압니다. 금의위 서고의 강호무림사에도 과거 구파일방의 고수들이 주화입마에 빠져 무림 공적이 된 경우가 기록되어 있고 말입니다. 그리고 매병은 무림 고수도 일반인과 발병률이 비슷한 것으로 태의원에서 배운 적이 있습니다.”

“잘 알고 있구나. 하면 정파가 아니라 소림의 고수로 국한한다면 어떨 것 같으냐?”

“소림도 정파의 일부이니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진무백의 말에 왕욱은 고개를 저었다.

“소림은 다르다. 현문 정종은 엄밀히 말하면 도가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지. 하나 소림은 불문 정종, 달마대사가 전한 능가경을 기본바탕으로 내공심법 자체가 부처의 설법이나 마찬가지지. 해서 불가의 내공심법은 모두 제마멸사의 공능을 가지고 있는 것이야. 그리고 본위에서 조사한 바로 소림의 내가고수는 주화입마도 매병도 걸린 자가 없었다. 이는 근 이백 년간 천관무도회를 통해 백호급 이상의 위사들이 분석한 일급 정보이니라.”

“……!”

진무백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왕욱의 말은 어디서도 들은 적 없는 이론이었기 때문이었다.

“황실에서 무림을 지켜보는 것은 그들의 무력이 탐이 나서 이기도 하고 간혹 그들 중 천외천의 신인이 나타나는 이유 때문인 것도 있다. 하나 방금 말한 것처럼 그들 스스로도 모르는 무궁무진한 잠재력이 있기에 그런 것도 있다는 것을 알아 두거라.”

“……그렇군요. 저는 그간 너무 단편적인 것만 보고 있었던 것이군요. 한데 무허대사는 도대체 왜 그런 기행을 하는 것일까요? 정신도 온전한데 말입니다.”

왕욱은 한숨을 쉬며 일축했다.

“천성이겠지. 타고나길 그렇게 타고 난 것이야. 그런 성정으로 어찌 불문 정종의 무학을 대성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지만 그 외엔 설명할 길이 없구나.”

왕욱은 진무백의 어깨를 두드린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만 가자. 가서 놈이 미친놈으로 타고 난 것인지 대들보에 머리를 자해하고 미쳐 버린 것은 아닌지 확인해 보자꾸나.”

“네, 따르겠습니다.”

진무백은 왕욱을 따라 일어났다.

그들이 향하는 목적지는 개방의 낙양 분타였다.

*   *   *

“방금 뭐라 그랬냐?”

적사결은 금개의 몸을 한 백리황과 독대하며 눈을 부라렸다.

지난번에 못 다한 얘기. 즉, 향후 행보에 대한 논의를 하는 중에 짜증이 솟구친 것이었다.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대놓고 백리세가로 찾아가서 그를 잡는 것은 싫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왜 싫다는 말이냐! 그놈이 한 것처럼 너도 금개인 척하고 가서 독대할 자리를 만든 후 족치면 될 것 아니더냐.”

적사결은 답답한지 가슴을 쿵쿵 쳐 대며 한숨을 쉬었다.

“그러다 자칫 그자와 제가 몸이 바뀐 것이 들통 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저는 그것을 원치 않습니다.”

“백리세가나 개방이나 다 같은 의천맹 소속 아니더냐? 그놈이 사술로 몸을 바꾸었다는 것이 알려진다면 정파 무문은 네놈의 손을 들어 줄 것인데 뭐가 문제라는 것이냐?”

자신과 무허와는 경우가 달랐다.

그래도 두 사람은 정파의 테두리 내에 있으니 말이다.

하니 백리황이 자신이라 주장한다면 과거의 기억이나 행동, 습관 등으로 스스로를 증명할 수도 있었다.

‘하아…… 본좌도 같은 경우라면 당장 본산으로 찾아가서 ’본좌가 광혈존 적사결이다.’라고 외치겠지만 그랬다간 장로들이 일장에 때려죽이려 들겠지.’

충성심이 과한 것도 문제가 된다는 것을 이번 기회에 알게 된 적사결이었다.

한데 백리황에게도 문제가 있는 듯 그의 입이 열렸다.

“지금 제가 강호에서 뭐라 불리는지 아십니까? 정확히는 몸이 바뀐 후의 저이지요.”

“뭐라 불리는데?”

“강동 제일 신룡입니다. 알아보니 얼마 전 그가 제 몸으로 검강을 사용했다 하더군요.”

“뭐, 그 자식이야 원래 절정 고수였으니 가능하겠지. 강기는 무엇보다 깨달음이 중요하니까.”

이름 높은 무가인 만큼 영약이 많을 테니 내공은 수준을 맞출 수 있었을 것이었다.

하나 깨달음은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휴…….”

백리황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어후, 이 답답한 새끼. 내가 속이 다 터지는구나.’

적사결이 인상을 있는 대로 쓰자 백리황은 말을 이었다.

“백리세가와 단목세가를 합친 통합 무가의 후계자인 데다 십오 세의 나이에 절정 고수에 오른 강동 제일의 후기지수. 그 이름값 덕분에 상계의 막대한 투자부터 시작해 수많은 중소 문파의 산하 가입 지원이 늘고 있다 합니다. 그들은 저를 보고 향후 백리세가가 남궁세가를 넘어 강동의 패자가 될 것이라 여기고 있단 말입니다.”

“그래서?”

“그래서라니요? 그런 상황에서 몸이 바뀐 사실이 밝혀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다 없었던 일이 되겠지.”

“네, 그렇…… 아니 그게 그렇게 쉽게 대답할 일입니까?”

남의 일이라고 너무 쉽게 얘기하는 거 아닌가……

“쉽지 어려울 건 또 뭐지? 네놈 말을 들어 보면 지금 상황은 유지하면서 원래대로 돌아가고 싶다는 거잖아. 한마디로 당장은 실력이 안 되는 놈이니 실력 키울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 아니야?”

“……네.”

“어이, 백리 애송이. 다른 사람들 모르게 원상태로 돌아가면 절정 고수 될 때까지 그 실력 숨길 수 있을 것 같으냐? 아니 숨은 채로 실력을 키워서 절정 고수가 될 수 있으리라 여겼더냐? 절정 고수가 그렇게 만만해?”

“…….”

백리황은 대답하지 않았다.

적사결이 지적한 부분까지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잘 들어라. 절정 고수는 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심기체 모두 극에 달한 무인을 일컫는 말이다. 그 금개가 재운이 좋았다 하나 상계의 정점에 서기까지 치열했던 적이 없었겠느냐? 놈이 영약의 힘을 빌었겠지만 강기를 형성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러한 경험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한데 자신을 숨기고 타인을 속이며 힘을 기른다? 어불성설이지.”

사정없이 뼈 때리는 말에 백리황은 감히 반문하지 못했다.

“알아들었으면 본좌와 함께 내일 백리세가로 가는 거다. 알겠느냐?”

“…….”

“왜 대답이 없어!?”

이런 시발 고구마 새끼.

사내자식이 왜 이렇게 답답한지 적사결은 이놈을 키운 부모 얼굴 한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기…… 적운 님.”

“왜?”

“저희 아버지 말입니다. 만일 그 사실을 알게 되면 제가 자식이라는 것을 알고도 외면할지도 모릅니다. 아니 그자가 아들이 맞다고,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호통을 칠지도 모릅니다.

“알고도 그럴 것이다? 왜? 혹시 권력 때문에?”

권력은 부모 자식 간에도 나누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본래 백리세가와 단목세가는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같은 집안이었습니다. 처음엔 본가와 분가 같은 위치였고 시간이 흐르며 서로 다른 성씨를 가진 무가가 된 것이지요. 해서 아버지는 단목세가와 어떻게든 세를 합치고 싶으셨고 오랜 노력 끝에 두 가문의 혼약을 성사해 내신 겁니다. 아버지의 집념이 어느 정도인지 적운님은 모르실 겁니다…….”

적사결은 앞에 놓인 차를 들어 벌컥 마셨다.

더 듣고 있다간 속에서 열불이 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여튼 정파가 호박씨 까는 건 적응이 안 된다니까. 뭐? 가문을 위해 아들을 버릴 수도 있다고? 나참…….’

그렇게 가세가 커지고 천하제일가가 되면 뭐하겠는가?

적사결은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야, 백리 애송이.”

“네, 적운 님.”

“좋다. 정면 돌파는 취소다. 네놈 의견대로 조용히 작업하자꾸나.”

“……감사합니다.”

백리황은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단! 넌 오늘부터 본좌의 교육을 좀 받아야겠다.”

“네? 교육이요?”

“그래, 새끼야. 약해 빠졌으면 강해질 생각을 해야지 시간을 버느니 어쩌니. 그러고 보면 너 본좌를 처음 만났을 때 자고 있었지? 약골 주제에 잠이 오냐? 잠이 와? 그러고도 검강이 어쩌고저쩌고? 어후, 답답한 놈.”

“…….”

백리황은 고개를 숙인 채 얼굴이 벌게졌다.

적사결을 만나면서 고개 숙이는 일이 많아진 백리황이었다.

“백리 애송이. 너 본좌가 책임지고 검강 뽑게 해 준다. 죽을 각오로 따라와라 알겠느냐!?”

“네, 네! 적운 님!”

백리황이 환한 얼굴로 답했지만 적사결의 속셈은 달랐다.

‘뭐 이놈이 나중에 커서 남궁세가를 견제할 수도 있으니까.’

물론 가능성일 뿐 정말 그럴 것이라 생각은 들지 않았다.

눈앞의 답답이가 커봤자 호랑이 앞의 하룻강아지일 테니까.

하나 옆에서 알짱거릴 수는 있을 것이다.

똑. 똑. 똑.

그때 문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서 중년거지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분타주님. 진덕개입니다.”

그는 공채 심사관 중 한 명이었던 의기당의 당주였다.

“무슨 일입니까?”

“분타주님을 만나고 싶다는 자들이 있어 찾아뵈었습니다.”

“누구길래 당주님께서 직접 오셨습니까?”

“금의위 위사들입니다. 백호 왕욱과 위사 진무백이라는 자로 확인되었습니다.”

진덕개의 말을 들은 적사결은 속으로 피식 웃었다.

‘오호, 여기까지 쫓아온 건가? 보아하니 백리황의 목을 잡았을 때 천리추종향이 묻은 모양이군.’

대충 짐작이 갔다.

그때 절벽에서 따돌린 후 천리추종향만 쫓아 여기저기 떠돌다가 이곳에 온 것이 분명했다.

적사결은 가볍게 웃으며 백리황에게 말했다.

“어서 안으로 들이시지요. 나랏일 하시는 분들을 기다리게 해서야 되겠습니까?”

백리황은 그 말에 진덕개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진덕개가 손님을 안내하기 위해 나가자 적사결에게 물었다.

“혹시 적운 님과 관계가 있는 것입니까?”

“미련 답답이 같은 놈이 눈치는 있는 모양이구나.”

“무슨 일입니까?”

“넌 자세히 알 필요 없다. 놈들을 만나면 무허대사는 제자를 데리고 떠났다고만 말해 주거라.”

“목적지가 어딘지 물으면 어찌합니까?”

“곤륜산맥 쪽으로 유람을 떠났다고 하거라. 큭큭.”

“…….”

백리황은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금의위 위사들이 불쌍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적사결은 낄낄거리며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역시 응조방에 작업해 놓길 잘했다니까. 흐흐.’

합격 발표 하루 전 들렀던 응조방.

당시 그는 청해성 곳곳에 무작위로 전서구를 보낸 것이었다.

물론 천리추종향이 묻은 손으로 전서구를 주물럭거린 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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