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이혼대법 27화>
“교주님, 왜 그러시는지요? 속하가 확인한 바로는 독이나 이상한 성분은 없었습니다.”
그랬다.
사월은 여인이었기에 적사결의 반응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 사월이 너한텐 이상하지 않았겠지…….”
“하면 남성에게만 통하는 독이란 말입니까?! 교주님, 괜찮으십니까?!”
사월이 벌떡 일어나며 적사결의 손을 만지려 했고, 적사결은 화들짝 놀라 손을 빼며 말했다.
“독 같은 것은 아니니 걱정 말거라.”
“하면 어찌 그러십니까?”
“아, 아니다. 아무것도. 그냥 걸쭉한 것이 촉감이 기분 나빠서 그런 것이니 신경 쓰지 말거라.”
적사결의 이상한 태도에 사월은 다시 물었다.
“지존께서 그러한 촉감을 기분 나빠하신다는 것은 적월 모두가 모르는 사항입니다. 정말 이상한 점이 있으셔서 그런 것이 아닌지요?”
“어허! 그렇다니까!”
어렸을 때부터 거둬 키우다시피 했더니 정보원으로서는 일류이나 여인으로서는 빵점이었다.
애초에 미인계 쪽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으니까.
하나 밤꽃에 대한 것은 지금 알려 주기도 애매한 부분이었다.
“앞으로 너와 삼월, 그리고 오월까지, 너희들 셋은 이 밤꽃 냄새가 나는 것에 거리를 두도록 하거라. 알겠느냐?”
“지엄한 명 받들겠습니다.”
사월은 속으로 갸우뚱했으나 하늘같은 지존의 명이라 거부하지 않았다.
자신이 맡을 땐 좋은 향기가 났었지만.
“한데 교주님.”
“또 무엇이냐?”
“교주님 거처에 있는 새끼 원숭이들은 어찌하실 것입니까? 방금 전에 깨어났습니다.”
“그래?”
적사결은 탁자 위에 올려놓은 상자로 다가갔다.
그 속에는 눈처럼 하얀 새끼 원숭이 네 마리가 꼬물거리고 있었다.
‘배고픈가?’
입을 벙긋거리는 새끼 원숭이들은 귀엽기 그지없었다.
“가서 이 녀석들 먹을 것 좀 구해 오너라.”
“존명.”
얼마 후 다시 돌아온 사월은 탁자 위에 각종 과일을 비롯해 염소의 젖과 쌀죽까지 늘어놓았다.
“많이도 구해 왔구나.”
“하나씩 먹여 보겠습니다.”
“아니다. 내 직접 하마.”
적사결은 과일부터 시도를 해 보았다.
“끼익. 끼익.”
하지만 녀석들은 눈길도 주지 않았다.
으깨어 즙을 낸 후 입에 발라 줘도 마찬가지였다.
이어서 쌀죽과 염소젖까지 시도했지만 입맛이 없는지 고개를 돌려 버리는 새끼 원숭이들이었다.
“왜 안 먹는 것이냐? 끄응,”
적사결은 미간을 찌푸리며 새끼 원숭이를 살폈다.
오랜 시간 약에 취해 잠들어 있었기에 입맛이 없는 것인지 어미와 떨어진 탓인지 알 수는 없었다.
하나 어느 쪽이든 기력이 쇠한 것이라는 사실은 짐작할 수 있었다.
“사월아. 소환단을 하나 다오.”
“여기 있습니다.”
소환단이라면 쇠한 기력을 보하고도 남을 터.
적사결은 소환단을 물에 갠 후 새끼 원숭이의 입에 발라 주었다.
그러자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쪽쪽쪽쪽.
새끼 원숭이들이 손가락에 달라붙어 미친 듯이 빨아 댔다.
“오, 잘 먹는구나!”
녀석들이 소환단 하나를 해치우는 데 걸리는 시각은 일각이 채 되지 않았다.
그리고는 배가 부른지 뒹굴거리며 놀기 시작했다.
“하하하. 이제 살 만하다는 표정이군.”
적사결은 씨익 웃으며 새끼 원숭이들이 노는 것을 바라보았다.
사월은 황당한 얼굴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소환단이 어떤 보물인가.
대환단에는 미치지 못하나 무려 이십 년의 내공 증진 효과가 있는 영약이었다.
소환단 하나면 적어도 일류 고수 한 명을 육성할 수 있다고 말할 수도 있었다.
“사월아, 이 녀석들 이름은 무엇으로 하면 좋겠느냐?”
“이름이요? 지존께서는 이 원숭이들을 키우실 생각이십니까?”
“내 본의 아니게 이 녀석들 어미를 해쳤으니 책임을 지려 한다. 떠오르는 이름이 있다면 말해 보거라.”
사월은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네 마리니 사군자가 어떻습니까?”
“매, 난, 국, 죽이라, 흠…….”
“아니면 하얀색이니 백(白)를 따서 백화, 백수, 백풍, 백뢰는 어떠십니까?”
“사군자는 뭔가 대충 짓는 것 같고 백자는 백천악 그놈을 떠올리니 싫고…….”
사월은 이후에도 십여 가지의 안건을 말했으나 적사결은 떨떠름하게 고개를 저었다.
하나같이 어디서 들어 본 것 같다느니 입에 붙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그러더니 갑자기 생각한 바가 있다는 듯 운을 뗐다.
“이건 어떠하냐? 이두한백의 이름을 붙여 주는 것이다.”
“이두한백이라면 당나라 사대시선 아닙니까?”
당나라는 타국과의 교류가 활발했던 국가로 문화적으로 꽃을 피운 시기였다.
그 시기에 특히 주목을 받은 자들은 시인이었고 이두한백은 그 정점에 있었다.
“그렇지. 이백, 두보, 한유, 백거이. 당대의 천재 시인 네 명을 일컫는 것이지. 딱이지 않느냐?”
“…….”
사월은 적사결의 활짝 핀 얼굴을 보며 딱히 반문하지 않았다.
‘원숭이에게 시인의 이름이라, 흠……. 뭐든 어때? 지존께서 좋아하시는데.’
사월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역시 지존이십니다. 저도 이 아이들에게 딱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하냐? 하하하. 본좌도 그렇게 생각하느니라.”
적사결은 이두한백의 이름을 붙인 네 마리 원숭이를 보며 우쭈쭈거렸다.
그러다 문득 떠올렸다.
‘이거 다 똑같이 생겨서 구분이 안 가는구나. 흠…….’
적사결은 사월에게 염료를 구해 오라 명했고 자신은 소림 약왕전에서 얻은 천잠사를 품에서 꺼냈다.
그리고 사왕으로 천잠사를 일정 크기로 잘랐다.
웬만한 보검으로도 끊을 수 없는 천잠사지만 사왕의 예기에는 소용없었다.
잘린 천잠사는 몇 가닥씩 꼬아 새끼줄로 만들었고 작업이 끝나자 사월이 돌아왔다.
“염료는 최상급이겠지?”
“네, 자연에서 추출했기에 먹을 수도 있는 것으로 염색방 방주에게 확인했습니다.”
사월이 네 개의 작은 염료 병을 꺼내 놓자 적사결은 네 개의 새끼줄에 직접 물을 들였다.
만들어진 천잠사 새끼줄은 각각 청색, 자색, 적색, 황색이었다.
“청색은 이백. 너의 것이다.”
적사결은 제일 강단 있어 보이는 새끼 원숭이의 팔에 첫 번째 줄을 매어주었다.
“자색은 두보, 너다”
두보는 가장 똘망똘망해 보이는 녀석이었다.
“어디 보자 적색은 한유, 너로구나.”
한유는 떠버리처럼 쉴 새 없이 입을 조잘거리는 녀석으로 정했다.
“마지막으로 황색은 백거이. 요 말썽꾸러기 녀석 살 만하다고 벌써 탈출하려는 것이냐, 하하하.”
적사결은 상자를 기어오르는 백거이를 떼어 내 황색 끈을 달아 주었다.
천잠사는 늘어나는 성질도 있으니 녀석들이 성체가 되어도 바꿀 필요 없을 것이었다.
“본좌가 부재중일 때는 사월이 네가 애들 밥도 챙기고 잘 돌봐 주거라. 하루 한 알씩 소환단은 꼭 챙겨 먹이고.”
“교, 교주님. 하루에 소환단 한 알을 말입니까?”
사월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물었다.
“한 알로 되겠느냐? 건강해질 때까지는 영양제라 생각하고 계속 먹여야지. 하루도 빼먹지 말거라.”
“조, 존명.”
소환단?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본좌도 이번 기회에 반려 영물을 키우는 거지. 후후.’
중원을 직접 돌아다녀 보니 강호에서 유명세를 떨치려면 무공만으로는 부족했다.
자신만 해도 천마신교의 지존에 천하 십대고수의 일인이지만 변방에 있기 때문인지 명성에서 중원 놈들보다 밀리는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신교의 교주라는 점은 그저 배경일 뿐 나만의 상징성이 필요해.’
일례로 사무련주 백천악이 유명한 것은 사파제일인이기도 하지만 그가 데리고 다니는 영물 화식조 때문이기도 했다. 또한 남궁세가주 창궁검제 남궁건 역시 뇌조가 있어 그를 상징한다 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사천당가주의 별호인 암룡신존도 그가 데리고 다니는 영물인 묵린혈망 때문이었지 아마?’
강호를 사분한다고 할 수 있는 집단의 수장들 중 자신만 영물이 없는 것이다.
마침 영물이라 불리는 백원의 새끼들이었다.
야생에서 대충 자란 어미가 일류에 준하는 실력을 지녔었으니 제대로 된 지원과 교육이 뒷받침된다면 어찌 될까?
‘내 새끼들은 최고로 키울거다. 후후후.’
* * *
같은 시각.
지부 대인 이문정의 사가.
그 집 대문 앞에는 적사결을 쫓고 있던 왕욱과 진무백이 서 있었다.
“이곳은 지부 대인의 사가입니다. 놈이 이곳에 있을까요?”
“들어가 보면 알겠지. 여러 번 허탕 쳤지만 놈에게 가까워지고 있으니 긴장을 늦추지 말거라.”
“알겠습니다.”
진무백은 고개를 읍한 후 앞장섰다.
이후로는 일사천리였다.
본래 금의위는 황족의 호위와 고관대작들의 부정부패를 감시하는 암행의 임무를 띠고 있었다.
개국 초기와 달리 지금은 동창에 밀려 그 권한이 축소되었다지만 그 정체성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 눈앞에 땀을 뻘뻘 흘리는 양홍 내총관의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어디든 금의위 위사의 방문을 받는 곳은 이러했으니까.
“한데 주인어른께서는 업무차 관사에 나가 계시는데 기별을 넣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양홍 내총관은 왕욱을 향해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이문정이 없을 시 집안에서 생기는 일은 총관인 자신의 책임이다.
그는 그런 책임을 지고 싶지 않았다.
“말했다시피 본 위사들이 이곳에 온 것은 쫓고 있는 범인의 흔적을 더듬어 온 것이네. 지부 대인에게 일이 있어 온 것이 아니니 자네는 괘념치 말게.”
왕욱의 칼 같은 대답에 양홍은 입을 꾹 다물고 안내를 계속했다.
한데 양홍은 위사들이 가리키는 곳으로 안내를 할수록 등에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큰일 났구나……. 이쪽으로 가면 황실 진상품을 모아 놓은 창고인데. 설마 알고 온 거 아니야?’
양홍은 진무백이 가리키는 곳으로 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런 생각이 강해졌다.
‘안 되겠다. 일단 시간을 끌어야…….’
그때 양홍의 뒤에서 왕욱의 말이 서늘하게 이어졌다.
“자네 뭔가 구린 것이 있나 본데. 머리 써 봤자 소용없다네. 본 위사들이 이런 일을 하루 이틀 하는 것이 아니거든. 위축된 어깨와 느려지는 발걸음만 봐도 뭔가 숨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아,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숨기는 것이라니요? 그런 것 없습니다요.”
“없으면 빨리 가지 그러는가? 가 보면 알겠지.”
“…….”
꼴깍.
양홍은 눈에 보일 정도로 목울대를 출렁이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이렇게 된 이상 피할 수 없는 노릇이다.
사실 그대로를 이실직고하고 자신의 살길이라도 챙겨야 했다.
양홍은 창고 문 앞에 도착하자 번개같이 무릎을 꿇었다.
“위사님! 여긴 주인어른께서 아무도 들이지 말라 명하신 곳입니다. 무엇이 있는지 소인은 모르오니 부디 수사에 감안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모른다? 내총관인 그대가 말인가?”
“정말입니다. 금의위에서 조사에 나설 정도면 무언가 대단한 것이 있을 것이온데 주인어른께서는 워낙 비밀이 많은 분인지라 소인에게도 말하지 않는 것이 많았사옵니다.”
양홍은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면서 왕욱의 눈치를 살폈다.
평생에 걸쳐 단련한 눈칫밥을 최대한 굴려 보니 왕욱의 눈빛은 한층 부드러워진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뭐가 있는지 확인해 보고 판단하도록 하지, 진위사.”
“네.”
콰창. 끼이익.
자물쇠를 부수고 문을 열자 그 속에서 노린내가 흘러나왔다.
오래지 않아 진무백은 창고를 나와 보고했다.
“이곳에 놈이 들렀던 것은 분명합니다. 백사를 비롯한 영물들에게 천리추종향이 묻어 있습니다.”
“이번에도 허탕이군, 쯧.”
왕욱이 혀를 차며 인상을 찌푸리자 양홍은 눈을 빛내며 말했다.
여기서 협조하면 자신을 좋게 봐줄지도 몰랐다.
“혹시 이곳에 들른 자를 찾으시는 것입니까?”
“아는 바가 있느냐?”
“물건을 옮긴 일꾼들 외에 한 명 들른 자가 있습니다.”
“누구냐?”
“취불 무허 대사입니다. 그가 이틀 전 이곳에 들어갔었습니다.”
양홍의 말에 왕욱과 진무백은 서로를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왕욱은 눈을 가늘게 뜨고 양홍에게 말했다.
“한데 네놈은 백사 같은 영물이 이곳에 있는 것에 그다지 놀라지 않는구나?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 말이다.”
하얀 영물은 시중에서 거래를 금지한 품목으로 황실 취급품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고관대작의 사가에 있어서는 안 되는 물건이라는 말이다.
“아, 아닙니다! 제가 워낙 표정에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체질이라 그렇지 많이 놀랐습니다!”
“그런 것치고는 지금은 또 잘 드러나는구나.”
“저, 저기 그것이…….”
“하잘 것 없는 잔머리 그만 굴리고 닥치고 있거라. 조사하면 다 나오는 것이 이 바닥이니라.”
왕욱의 서슬 퍼런 말에 양홍은 손을 떨며 고개를 숙였다.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한 눈빛에 기가 눌린 것이다.
“진무백.”
“위사, 진무백. 백호의 명을 받듭니다.”
“본 위에 죄인 이문정에 대해 보고하라. 죄목은 황실진상품을 빼돌린 밀수죄다.”
“충!”
왕욱은 다시 양홍을 보며 말했다.
“네놈은 아까 언급한 취불 무허에 대해 처음부터 끝까지 고하라. 도대체 그 빌어먹을 중놈은 여기 왜 온 것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