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이혼대법 26화>
“갑자기 무, 무슨……. 컥, 짓입니까?”
적사결이 목을 움켜잡고 있기에 금개 이천억은 제대로 말을 하지 못했다.
“닥쳐, 이 새끼야. 묻는 말에나 대답해.”
그리고는 흉흉한 살기를 뿌리며 으르렁거렸다.
“반선주와 영혼이 바뀌는 현상에 대해 알고 있는 대로 불어라. 수작 부리면 이대로 모가지를 꺾어 버릴 테니까.”
적사결이 파악한 바 금개의 무공 수위는 절정.
하나 워낙 많이 먹은 영약 덕분에 공력의 수준이 높을 뿐 실력 자체는 과대평가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적사결은 금개가 내공을 일으키면 그 즉시 목을 부러뜨릴 요량이었다.
“귀, 귀하는 어찌 그것을 알고 있는 것이오? 반선주가 영혼을 바꾸는 켁. 술이라 말하지 않았, 끄으으.”
뿌드득.
적사결이 손아귀에 힘을 주며 말했다.
“본좌의 말을 허투루 듣지 마라. 개소리 말고 묻는 말에나 대답해!”
스륵.
힘을 풀자 금개는 기침을 하며 숨을 몰아쉬었다.
“헉. 헉. 설마 귀하도 몸이 바뀐 것이오?”
금개의 입에서 나온 말에 적사결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귀하…… 도? 네놈, 설마…….”
적사결은 자신도 모르게 목줄을 쥔 손을 풀고 뒤로 물러났다.
“누구냐, 넌?
“콜록. 콜록.”
목을 매만지며 기침을 한 금개는 숨을 고르며 말했다.
“역시 귀하께서도 몸이 바뀐 것이군요. 저는 백리황이라 합니다. 백리세가의 가주께서 제 아버님 되십니다.”
백리황이라면 방금 전 금개가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라고 한 대상이었다.
“네놈 혹시, 금개의 수작질에 몸이 바뀐 것이냐?”
“그렇습니다. 저는 그 반선주라는 것을 마시고 그리된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몸이 바뀐 그날 특별한 일은 그것밖에 없었으니까요. 귀하를 보니 그것이 원인이 맞나 보군요.”
적사결은 주먹을 쥐고 부르르 떨었다.
자신도 무허와의 일전 중에 반선주라는 술을 마셨기 때문이었다.
한데 정말 술 한잔 마신 것으로 그런 기가 막히는 일이 생길 수 있는 것인지 의구심이 들었다.
“귀하는 누구십니까? 누구와 몸이 바뀌신 겁니까?”
금개, 아니 백리황의 물음에 적사결은 잠시 침묵했다.
같은 처지라 하나 백리세가는 정파의 무가.
적대 관계인 만큼 모든 걸 밝힐 수는 없었다.
“본좌의 이름은 적운. 몸을 바꾼 놈은 취불이다.”
“취불 무허 대사! 역시 천하사괴가 이 일에 연루된 것이 확실하군요.”
“본좌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네놈을 찾은 것이었다.”
“한데 무허 대사께서는 세수 팔십이 넘는 것으로 아는데 귀하께서는,”
“인피면구니 쓸데없는 데 관심가지지 마라.”
“예? 예, 알겠습니다.”
백리황은 한결같이 예의 바른 모습으로 말했다.
노거지의 외양 때문일까 그 모습이 꽤나 낯설었다.
“한데 네놈은 몇 살이냐?”
“저는 올해 열다섯입니다.”
“아직 어린 것치고 행동거지나 말투가 애늙은이 같구나.”
“하하. 그런 소리 많이 들었습니다.”
백리황이 머쓱한 얼굴로 말했다.
백리세가는 오대세가 바로 아래 등급. 즉, 강호에서 종리세가와 비슷한 위치라 할 수 있었다.
명문 무가의 자제인 만큼 은연중에 예법이 몸에 밴 것이다.
“읊어 봐라.”
“예?”
“네놈 사연에 대해 말해 보란 말이다. 언제 어떻게 몸이 바뀌게 되었는지. 금개와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지 모두 말이다.”
“예, 그것이…….”
백리황은 천천히 두 달 전의 그때를 떠올렸다.
당시 백리세가에는 성대한 연회가 있었다.
바로 단목세가와의 혼담이 성사되었기 때문이었다.
두 세가는 강소성을 양분하는 세력으로 오래 전부터 사이가 그렇게 좋지 못했다.
한데 그런 두 세가가 혈연으로 맺어지게 되면 오대세가급의 무가가 또 하나 탄생하는 것이었다.
이를 대대적으로 알리기 위해 백리세가에서는 연회를 열었고 개방에서는 금개 이천억이 방문했었다.
평소 공식적인 장소에는 참석하지 않는 그였기에 이례적이라 할 수 있었다.
그때 백리황은 금개를 만났고 그가 따라 준 반선주 한 잔을 마시고 정신을 잃었다고 말했다.
깨어나 보니 금개가 되어 있었고 어리둥절하는 사이 개방도들에 의해 낙양으로 오게 된 것이 사건의 전부였다.
“열다섯이라며? 어린놈의 새끼가 술을 왜 처먹어?!”
적사결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술은 어른에게 배워야 한다며 주시는 데 어찌 받지 않겠습니까. 금개 어르신께서는 강호의 명숙이신데…….”
“어르신? 명숙? 지랄한다. 이 꼴이 되고서 그런 말이 나오느냐?”
“…….”
백리황은 정좌한 채 입을 꾹 다물었다.
이런 예의 바른 새끼.
“어쨌든 네놈은 금칠대라는 사조직을 꾸려서 금개를 조사하려 했던 것이냐?”
“그렇습니다. 제가 낙양 분타에 와서 이곳 집무실을 뒤졌으나 단서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해서 금개를 비롯한 천하사괴의 뒤를 캐기 위해 사조직이 필요했던 겁니다.”
“단서를 남겼을 리 없지. 작정하고 저지른 짓인데.”
적사결은 뒷목을 꾹꾹 누르며 한숨을 쉬었다.
‘늙은이들이 단체로 회춘이라도 하고 싶었던 걸까? 그래도 정파라는 꼬리표를 단 새끼들이 남의 몸을 빼앗는 짓을 하다니. 허, 참.’
눈앞의 백리황만 하더라도 꽃다운 청춘을 빼앗기고 볼품없는 늙은이로 전락한 신세.
그것도 명문 무가의 후계자라는 신분에서 거지로 말이다.
“야, 백리 애송이.”
적사결은 진중한 눈빛으로 백리황을 불렀다.
“예, 적운 님.”
백리황은 여전히 자세하나 흐트러짐 없이 경청했다.
“개방도들을 쓰지 않고 사조직을 꾸리려 한 것은 잘했다. 네가 내리는 명령이 계속되었다면 개방도 중에 의구심을 가지게 된 자도 생겼을 것이다. 역으로 네 의도를 간파당했을 수도 있는 것이지.”
“아…… 그렇습니까? 저는 다만 개방에게 제 사적인 일로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했는데…….”
적사결은 얼굴이 왈칵 일그러졌다.
“야, 이 호구 새끼야. 널 이렇게 만든 가해자가 개방도잖아. 뭔 피해를 줘? 피해를 당한 새끼가!”
“그래도 다른 개방도들이 그런 것이 아니니까요…….”
아 답답하다. 고구마 백만 개를 처먹은 것 같다.
적사결은 가슴을 쿵쿵 쳐 대고 말을 이었다.
“강호에서 사람 좋은 놈은 호구다, 알겠냐? 왜 과거 구대문파의 말코 도사들이 몰락하고 오대세가를 비롯한 무가들이 득세하는지 생각 좀 해 봐라. 네놈도 그렇게 세워진 세가의 일원이 아니더냐.”
적사결의 말에 백리황은 머쓱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더불어 살면 좋지 않습니까. 저는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 주면서까지 잘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아 답답하다. 바보같이 올곧은 놈이다.
적사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래, 아직 어리니까 세상의 풍파를 덜 겪었겠지.’
적사결은 백리황이 백리세가라는 온실 속의 화초로 자란 것이라고 판단을 내렸다.
더 이상 말해 봐야 입만 아픈 것이다.
“백리 애송이, 어쨌든 이건 우리 둘만의 비밀이다. 앞으로도 꼬리 밟힐 짓은 하지 마라, 알겠느냐?”
“알겠습니다. 한데 여쭐 것이 있습니다.”
“뭐냐?”
“적운 님은 누구십니까?”
하대가 몸에 밴 듯 자연스럽다.
아니, 하대라기보다는 하명이라고 해야 할 듯싶었다.
백리황은 적사결이 분명 한 집단의 수장급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고 있었다.
“본좌가 누군지 궁금한가?”
“예, 제가 식견이 짧다 하나 본가에서 강호의 저명한 인사들에 대해 가르침을 받은 바가 있습니다.”
“그중 적운이란 이름이 없다?”
“그렇습니다.”
“그런데도 너의 생각에 본좌가 그 저명한 인사들일 것 같다?”
백리황은 고개를 끄덕였다.
“후후후. 네놈 눈이 아주 옹이구멍은 아니구나.”
“하면…….”
“본좌는 아직 강호에 알려지지 않았다. 해서 말해도 모를 것이니라. 이렇게만 알고 있거라. 취불 무허, 그가 몸을 바꿀 정도의 인사라고 말이다.”
그래, 괴짜 취급을 받지만 무허는 강호에서 내로라하는 명숙 중의 명숙이다.
같은 천하사괴라지만 금개를 비롯해 다른 놈들과는 소위 말하는 급이 달랐다.
* * *
달칵.
적사결은 객잔으로 돌아와 방문을 열었다.
백리황과는 내일 다시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약속을 잡았다.
금칠대 전부와 면담이 예정되어 있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복잡한 생각도 정리해야 했고 말이다.
방에 들어선 적사결은 방 한쪽을 의식하며 말했다.
“사월이냐?”
스으윽.
바닥에서 유령처럼 솟구치는 인영은 흑의 무복을 입은 사월이 맞았다.
“주군, 공채 건은 잘되셨는지요?”
“그래. 의외의 성과도 있었다. 너는 어떠하냐?”
“저도 하명하신 제거법을 알아 왔습니다.”
사월의 대답에 적사결은 흐뭇하게 웃었다.
역시 돈 들인 보람이 있는 아이들이었다.
“여기 있습니다.”
사월은 옥병을 꺼내 적사결에게 건넸다.
“잘했다. 한데 이것을 어찌 얻었느냐?”
“반호산인 이시진이 가장 원하는 것을 주었습니다.”
“원하는 것? 그게 무엇이더냐?”
“그가 낙향한 것은 본초학을 집대성하기 위함이라 하더군요. 해서 본 교 마의전에서 보관 중인 약학서를 주겠다 약조했습니다. 구백 년의 역사가 녹아 있다 말하니 그자도 혹하더군요.”
“마의가 가만있을까? 자기 연구 자료를 준다는 것을 알면 가만있지 않을 텐데?”
“주군께서 지시하신 것으로 처리하겠습니다. 아무리 마의라지만 감히 뭐라 하겠습니까?”
사월은 당당하게 적사결의 핑계를 대겠다고 말했다.
과거 필요 시 자신을 언제든지 이용하라고는 했지만 참으로 적극적인 수하가 아닐 수 없었다.
적사결은 지시해 놓았던 사항을 물었다.
“일월에게서 무허의 근황에 대한 연통은 받았느냐?”
“받긴했으나 최근에 폐관에 들어 자세한 근황을 알기 어렵다 합니다.”
“폐관 수련을? 그 자식이? 흠…….”
적사결은 턱을 쓰다듬었다.
무인이 폐관 수련에 들 때는 세 가지 경우가 있다.
첫 번째는 깨달음이 왔을 때 다음 단계로 진입하기 위해 무공에 집중할 때이며 이는 가장 바람직한 경우라 할 수 있었다.
두 번째는 강해지기 위한 목적이나 필요성을 가지고 강제적인 수련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이는 첫 번째에 비해 효율은 낮지만 대부분의 무인이 이러한 이유로 폐관 수련에 들어간다.
세 번째는 본신의 행보를 가리기 위해서이며 흔히 가짜 폐관 수련이라 말한다. 암행에 나서거나 비밀리에 처리할 일이 있는 경우 폐관 수련이란 장막을 치는 것이다.
“일월의 전언에 따르면 세 번째 경우인 것으로 짐작 중이라고 합니다.”
“그 근거는?”
“본 단으로 복귀 후 그가 한 것이라고는 교주전에서 술을 마시는 것이 전부라고 합니다. 해서 최근 구양장로가 작심하고 인근 능행을 비롯한 밀린 업무를 처리하였고 이 때문에 일부러 폐관 수련에 들지 않았나 보고 있습니다.”
“구양장로가 술 마시는 데 방해가 되니 그를 피하려고 연공실로 숨는다?”
“그 일이 있은 후 곧바로 폐관에 들었으니 추정일 뿐이지만 가능성은 높다 여겨집니다.”
적사결은 이를 빠드득 갈았다.
‘거창한 이유가 있어서 본좌랑 몸을 바꾼 것이 아니라 마음껏 술 처먹으려고 몸을 바꿨단 말이야? 뭐 이런 미친 돌중 새끼가…….’
하여튼 거론될 때마다 마음에 드는 구석이 조금도 없는 인간이었다.
적사결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일월에게 계속 감시하라 전하고 사소한 것 하나라도 빠짐없이 보고하라 이르거라.”
“네, 지존의 명대로 전하겠습니다.”
사월이 부복하며 고개를 숙였다.
“한데 이건 어떻게 쓰는 거냐? 그냥 손에 바르면 되느냐?”
적사결은 옥병을 흔들며 말했다.
안쪽의 액체는 걸쭉한지 찰랑거리는 소리도 나지 않았다.
“네, 손에 뿌리고 비비시면 일각 후 천리추종향이 사라질 것입니다.”
사월의 대답에 적사결은 거침없이 옥병의 내용물을 손에 덜었다.
한데 그때 풍기는 냄새에 적사결은 경악했다.
“사월아…… 이거 원료가 뭔지 아느냐?”
“반호산인의 말로는 율목화의 수액이라 하였습니다.”
“뭐, 뭐? 방금 뭐라 했느냐? 율목화라면 밤나무의…….”
“네, 밤나무 꽃의 수액입니다.”
“헉…….”
어쩐지 걸쭉한 것부터 냄새까지 다른 사람의 그것을 만진 것처럼 등골이 오싹했다.
‘아오! 개썅 좆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