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이혼대법 24화>
적사결이 나간 후.
이문정과 양홍은 서로를 바라보며 침을 꼴깍 삼켰다.
“양총관, 정말 저 사기꾼 같은 중이 그 괴물을 막을 수 있겠는가?”
이문정은 양홍의 말대로 속아 주긴 했으나 영 미덥지 않았다.
수저에 마구니가 씌였다는 말부터가 정신병자 같은 소리였으니까.
“어르신, 그래도 저자가 정파 최고수로 불리는 취불 무허 대사입니다. 기행을 일삼긴 하나 실력만큼은 믿을 수 있으니 기다려 보시지요.”
양홍은 모종의 이유로 적사결을 들인 것이었다.
그랬기에 주인에게 언질해 적사결이 하룻밤을 지낼 수 있도록 붙잡게 했었고 말이다.
“자네 말대로 그가 괴물을 처리해 준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어휴…….”
이문정은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저어 댔다.
며칠 전부터 주변을 맴돌며 습격을 하는 괴물은 대적불가라는 말이 떠오를 정도로 무시무시했다.
무장한 관병들을 수수깡 부러뜨리듯 박살 내었고, 솜씨 좋다는 낭인들도 놈에게는 갈기갈기 찢겨 죽었다.
이문정으로서는 하루하루 피 말리며 살고 있는 상황이었다.
“받은 금덩이가 있으니 허투루 하진 않겠지요. 오늘부터는 발 뻗고 주무실 수 있으실 겁니다.”
양홍은 노회한 여우 같은 얼굴로 주인을 안심시켰다.
* * *
파라라락. 촤아악.
적사결은 비명이 들린 곳에 도착해 주변을 훑었다.
경비 무사 세 명이 목이 부러진 채 쓰러져 있었고 한 명의 시비가 바닥에 주저앉아 벌벌 떨고 있었다.
“어찌 된 것이냐?”
“저, 저기……. 괴, 괴…… 괴물.”
시비는 입을 더듬거리며 손가락으로 한쪽 방향을 가리켰다.
적사결은 그쪽을 향해 청각을 활짝 열었다.
휙. 휘익.
‘발소리가 들리지 않아. 바람을 가르는 소리만 들리다니. 살수인가…….’
기척을 죽인 일급 살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설마 이문정의 정적들이 보낸 건가? 제길. 그게 왜 하필 오늘이냐. 시발, 넌 뒈졌다 새끼야.’
퍼어엉.
최대치로 발휘된 근력으로 발끝에 힘을 주자 지면이 터져 나가며 적사결의 신형을 밀어 올렸다.
궁신탄영과 같은 탄력적인 움직임으로 괴인영을 향해 다가갔다.
‘저기다.’
달리는 중에 적사결은 희끗한 물체가 지붕 위로 넘나들며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무슨 놈의 살수 새끼가 흰 옷을 입지?’
살행은 보통 모습을 감추기 쉬운 야밤에 행해진다.
그렇기에 검은 야행복을 입는 살수가 주류를 이루었다.
저토록 눈에 띄는 흰색이 아니라.
타탁.
‘음? 어디냐…….’
지척까지 접근하니 갑자기 녀석의 움직임이 사라졌다.
조금 전까지 들리던 바람을 가르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한데 무슨 짐승 노린내가…… 큭!’
콰아앙.
어둠 속에서 훅 하니 나타난 주먹에 고개를 숙이니 뒤쪽 담벼락이 무너져 내렸다.
마치 권강으로 후려친 듯한 일격이었다.
거리를 벌린 적사결의 눈에 들어온 자는 살수가 아니었다.
“흰 원숭이?!”
송곳니를 드러낸 채 적의를 보이는 놈은 서장의 대설산에 산다는 백원이었다.
천마신교는 서장과 가까운 신강에 있기에 적사결도 들어 본 적 있었다.
‘분명 설인이라고도 불리는 영물……. 한데 왜 이놈이 여기에…….’
놈의 덩치는 약 구 척. 노인의 신체로 돌아간 지금 신장의 두 배에 가까웠다.
“크아아앙!”
백원이 달려들며 솥뚜껑만 한 주먹을 휘둘렀다.
오른쪽으로 돌아 들어가며 공세를 피한 적사결이 놈의 옆구리에 일격을 꽂아 넣었다.
퍼어억.
“크릉?”
“어라?”
시발, 내 주먹이 물주먹이란 거냐.
근력을 최대한 끌어 올렸다 하나 노인의 육체가 지닌 한계 탓일까.
백원은 그다지 충격을 받지 않은 듯 했다.
후우욱.
내뻗었던 주먹을 회수하는 동시에 팔꿈치가 적사결을 노리며 다가왔다.
마치 초식을 쓰는 듯 움직임이 효율적이었다.
파악. 치지지직.
손바닥으로 막아 내며 뒤로 신형을 날렸으나 얼마나 힘이 센지 십 보가량 땅을 긁으며 밀려났다.
적사결은 얼굴을 찡그린 채 손목을 매만졌다.
“짐승 새끼가 한가락 한다는 거지?”
뿌득.
주먹을 말아 쥐자 뼈 마찰음이 나며 팔과 어깨의 근육이 부풀어 올랐다.
얼굴은 노인네 상태로 둔 채 신체만 젊어지도록 변화시키는 것이었다.
“본 좌가 오늘 맨손인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 거다, 흰둥아.”
쇄액.
적사결은 지면을 박찬 동시에 바닥에 깔리듯 짓쳐들었다.
백원은 속도를 의식했는지 주먹을 뻗는 것이 아닌 손바닥을 내밀었다.
마치 맞추는 것이 어려우니 잡으려 하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퍼어엉.
백원의 손이 지척에 이르자 다시 한번 지면을 세게 박찼다.
가속된 움직임에 품으로 파고든 적사결의 주먹이 대기를 갈랐다.
뻐어어억.
“카아악!”
아까의 옆구리에 꽂힌 일격은 이전과는 달랐다.
하나 적사결은 만족스럽지 않았다.
‘쳇, 놈에게서 비명을 끌어냈지만 겨우 이 정도인가.’
사람과 짐승의 기본적인 육체의 차이가 너무 큰 것이었다.
후웅.
멈칫한 순간 백원이 손을 휘둘렀고 적사결은 이를 피해 훌쩍 뛰어올랐다.
“그렇다면 이건 어떠냐.”
꽈드드득.
관절의 가동 한계를 넘어 꼬였다 풀어지는 적사결의 주먹에서 광풍이 몰아쳤다.
뻐어어어억. 투쾅.
사왕이 없지만 회전력이 실린 광풍폭살은 백원의 머리가 한껏 젖혀지게 만들기 충분했다.
“크르릉. 크릉.”
충격 탓인지 바닥에 주저앉은 녀석은 머리를 잡고 이리저리 흔들어 댔다.
뇌가 흔들린 탓에 눈앞이 일그러지고 균형을 잡기 힘든 것이었다.
“그걸 맞고도 그 정도 반응이냐? 허……”
호신지기를 쓸 수 있는 일류 고수라도 정신을 잃을 정도의 강격이었건만.
백원은 숨 몇 번 들이쉰 후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카아악, 캬악!”
쿵쾅쿵쾅.
화가 난 듯 두 팔로 자신의 가슴을 친 백원은 시뻘건 혈광을 눈에서 발산했다.
“열 받았다 이거냐. 와라!”
한 마리 짐승과 한 명의 노인이 달려들어 맞붙었다.
퍼퍼퍼퍽. 퍼퍽.
물론 일방적인 적사결의 공격이었다.
백원의 공세가 아무리 빠르고 효율적이라 하나 결국은 일류 고수 언저리.
모조리 피해 내고 주먹을 때려 넣는 적사결의 권초는 실수 한 번 없었다.
“키악! 캬아아악!”
한 대도 못 때리고, 그렇다고 잡히지도 않는 적사결이 얄미웠기 때문일까.
백원은 양손을 맞잡고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지금까지 중에 동작이 가장 커진 것이었다.
“그거 내려친다고 본 좌가 맞을 것 같으냐. 그렇게 손을 들어 올리면 무방비 상태가 되느니라.”
지금의 백원은 빈틈투성이였다.
더구나 놈의 장점인 맷집이 가장 약해지는 자세이기도 했다.
상체의 근육이 이완되며 온몸에 두른 근육 갑옷이 벗겨진 것이었다.
“후우우우.”
반면 적사결은 숨을 내뱉으며 근육을 조였다.
꾸욱.
지면을 찍어 누르는 엄지발가락의 끝부터 시작된 힘이 비복근을 지나 대퇴근을 타고 올랐다.
이어 척추 기립근을 통해 상체로 전해진 힘이 광배근과 대흉근에 의해 증폭되어 꼬여 있는 오른팔로 모여들었다.
콰르르르르.
온몸의 근육으로 내지르는 듯한 광풍폭살.
앞전의 팔 근육만 사용한 것이 아닌 전신 근육이 연동된 일격은 갑옷을 벗은 백원의 가슴에 적중했다.
떠어어어엉. 쿠지직.
격타음과 함께 파골음이 나며 적사결의 주먹이 백원의 가슴 속에 파묻혔다.
가슴뼈를 함몰시키며 파고든 주먹에 백원의 가슴 근육이 빨려들듯 주름져 있었다.
스르륵. 쿠우웅.
두 손을 들어 올렸던 백원은 그 자세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입에서는 한 줄기 핏물이 흘렀고 들썩거리지 않는 가슴이 그 죽음을 알려 주고 있었다.
적사결은 백원에게 다가가 가슴과 아랫배 부분을 살폈다.
“쩝. 내단은 없군. 영물급은 아닌 건가.”
짐승도 오랜 기간 살면 무인의 단전과 같이 기운으로 가득 찬 내단을 지니게 되는데, 내단을 지진 짐승들을 일컬어 영물이라 불렀다.
그 영물의 내단 또한 영약이라 부르며 내공 증진에 큰 도움이 된다.
“한데, 서장에 사는 백원이 이곳 낙양에 나타나다니……. 흐음.”
물론 서장에만 있으란 법은 없다.
간혹 운남과 같은 밀림의 오지에서 백원이 발견된 적도 있었으니까.
“응? 킁킁.”
그런 적사결의 코에 익숙한 냄새가 감지되었다.
전투 직후 감각이 아직 예민한 상태라 그런 것이었다.
“이놈 냄새는 아닌데…….”
죽은 백원의 것은 아니나 유사한 노린내였다.
적사결은 후각을 강화시켜 그 출처를 좇았다.
“설마 수컷이 근처에 있는 건가…….”
죽은 놈은 암컷이었으니 그럴지도 몰랐다.
전각을 돌아 들어간 적사결은 한 창고 앞에 섰다.
원숭이 노린내는 이곳에서 나고 있었다.
우지직.
자물쇠를 부순 적사결은 창고 문을 열고 거침없이 들어갔다.
음침한 창고 안에는 크고 작은 상자들이 적재되어 있었다.
‘이건가…….’
한쪽 구석에서 노린내를 감지한 적사결은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이것 때문이었나…….”
상자 속에는 죽은 듯 잠자고 있는 네 마리 새끼 원숭이가 있었다.
백원의 새끼임을 증명하듯 털 색깔이 하얗고 앙증맞은 녀석들이었다.
“휴우…….”
엽사들에게 잡힌 새끼들을 구하기 위해 천 리 길을 마다하지 않은 것이다.
그것도 모른 채 적사결은 백원을 죽였고 말이다.
“제기랄…….”
백원의 공격이 거셌고 어쩔 수 없이 손을 썼다 하나 마음속이 씁쓸한 것은 사실이었다.
몰랐다지만 새끼를 구하려는 녀석을 자신의 손으로 죽인 것이었으니.
“한데 이것들은 다 뭐야.”
적사결은 다른 상자들도 열어 보았는데 그 속에는 백사부터 시작해 비늘이 하얀 악어까지 다양한 종류의 하얀 짐승들이 있었다.
상자 속 동물들을 건드려 보니 새끼 원숭이처럼 아직 죽지 않고 가사 상태에 빠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평생 보기 힘든 것들을 잘도 모아 놓았군.’
하얀색 동물은 자연계에서 흔히 보기 힘들었다.
눈에 잘 띄기에 성체가 될 때까지 살아남기 어렵기 때문이다.
적사결이 눈살을 찌푸린 채 동물들을 보는 그때였다.
“대사.”
적사결이 고개를 돌리니 이문정과 양홍이 서 있었다.
“감사하오. 저 괴물을 대사께서 잡아 주시다니 정말 어찌 감사를 표해야 할지 모르겠소.”
이문정의 말에 적사결은 눈치챘다.
시발, 이용당한 건가.
이들은 백원을 잡기 위해 자신을 들인 것이 틀림없었다.
하나 마구니를 들먹이며 사기를 친 것이 자신이었기에 따질 수도 없었다.
“설명이 필요할 듯하오만.”
적사결의 물음에 앞으로 나선 것은 양홍 내총관이었다.
“여기 있는 것들은 황실에 진상되는 것들입니다. 아마 바깥의 어미 원숭이는 대사께서 보신 그 새끼들을 쫓아온 것 같군요.”
“황실 진상품…….”
들은 적 있었다.
당금의 황제가 도술에 빠져 정사를 등한시하고 불로장생이니 하는 것에 현혹되어 있다고 말이다.
이곳에 모아 놓은 것들은 황제를 위한 것임이 분명했다.
하얀색을 띠는 동물들은 그 특이함 때문에 고래로부터 상서롭다 여겼으니.
“대인.”
한참을 고민하던 적사결은 이문정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이 새끼 원숭이들, 노납에게 주시지 않겠습니까?”
적사결은 이대로 새끼들이 불로장생의 약재가 되는 것은 막고 싶었다.
어미를 죽인 죄책감도 한몫했고 말이다.
“대사, 이것은 황제께 진상되는 것이오. 어찌…….”
“그러고 보니 그 진상품이 왜 대인의 사가에 있는지요? 관부의 창고도 아닌데 말입니다.”
말을 자르며 되물은 적사결의 말에 이문정의 목울대가 위아래로 요동쳤다.
‘사가에 있어야 몇 마리 빼돌릴 수 있었겠지.’
윗물이 그따위니 아랫물인들 깨끗할까.
관리 중에서도 방술에 빠진 자들이 한둘이 아니라는 말은 익히 들었었다.
반응으로 보아 이문정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허허, 대인. 이 새끼들은 마구니가 씌여 부정 탄 것으로 여기고 진상품 목록에서는 제하시지요.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
이문정은 늙은 구렁이 같은 적사결의 말에 거절하지 못할 것임을 직감했다.
괴물 원숭이를 처리한 실력도 실력이거니와 소림이라는 배경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하하하. 부정 탄 물품을 어찌 황실에 진상할 수 있겠습니까. 대사의 말대로 할 것이니 뒤처리 잘 부탁드리겠소.”
이문정이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웃으며 적사결의 제안을 수락했다.
표정에서 속내가 드러나지 않는 것은 그가 어찌 지부 대인의 자리까지 올라왔는지 말해 주는 것 같았다.
“한데 한 가지 물어볼 것이 있습니다. 아까 죽은 놈은 어미였는데 아비는 어찌되었는지요?”
적사결의 물음에 양홍이 대답했다.
“새끼들을 생포하는 과정에서 엽사들에게 사살되었다 들었습니다. 어미도 당시 죽은 줄 알았는데 몸을 회복하고 뒤늦게 나타난 것이었지요.”
혹시나 했건만 역시나 아비도 죽은 것이었나.
나중에라도 아비 원숭이가 나타나지 않을까 생각한 적사결로서는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