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이혼대법 23화>
“크아악.”
부들부들.
작두는 부러진 팔을 부여잡은 채 두려운 눈으로 상대를 올려다보았다.
갑자기 난입해 순식간에 수하들을 쓰러트린 두 사내는 엄청난 고수였다.
‘시발, 세상에 무슨 놈의 고수가 이렇게 많은 거야. 좆같은 고수새끼들…….’
욕설이 가득한 속은 시커멓지만 육신은 강자를 향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맞는가?”
“그렇습니다. 이자에게서 추종향의 냄새가 나고 있습니다. 놈과 접촉한 것이 분명합니다.”
왕욱의 물음에 진무백이 답했다.
그들은 산속을 헤매며 적사결의 뒤를 쫓아왔고 전하현까지 도달한 것이었다.
‘그 영악한 놈이 산속에서는 짐승들을 만지고 다니며 추적에 혼선을 주더니 산을 내려와서는 긴장이 풀린 건가? 두 번이나 흔적을 남기다니.’
왕욱은 절벽을 우회하고 산짐승들에게 묻힌 향을 쫓느라 허비한 시간을 생각하면 치가 떨렸다.
다만 그 덕에 그들은 천리추종향을 사람에게만 작용되도록 개선해야 한다는 안건을 본 위에 올릴 수 있었다는 것이 성과라면 성과였다.
현재 위사들이 사용하는 천리추종향은 획기적인 제품이었지만 개량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보완해야 할 점이 많았다.
“놈과 있었던 일에 대해 하나도 빠짐없이 말하라. 하면 목숨은 살려 줄 것이다.”
“누구를 말씀하시는 건지…….”
“풍류객잔에 있었던 그놈 말이다.“
왕욱과 진무백은 이곳에 오기 전 객잔에 들렀었고, 아화에게서 나던 추종향도 확인했기에 적사결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온 상황이었다.
아화와 작두는 전하현에서 적사결의 손에 접촉한 유일한 자들이었다.
진무백이 살려 준다 했기 때문일까. 작두는 가감 없이 술술 불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사왕에 대한 것도 있었다.
“흐음, 놈의 도에 그런 특징이 있단 말이지.”
중원의 것이 아닌 이형의 형태와 도신에 물결치는 독특한 무늬라면 분명 단서가 될 만했다.
“한데 이상하지 않습니까?”
작두의 말에서 이상한 점을 느낀 진무백이 입을 열었다.
왕욱도 그의 의문이 무엇인지 알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놈은 외모를 바꾸는 수단이 있는 듯하군. 십오 세에 불과했던 놈이 이십 대 중반으로 보일 정도면 말이야. 더구나 불제자가 도를 쓴다니……. 내 평생 이렇게 정체를 밝히기 힘든 놈은 처음이군.”
왕욱은 고개를 절레절레 휘저었다.
“가자. 서둘러 놈을 쫓는다. 녀석이 대도시에 들러 더 많은 사람과 접촉하면 추적이 힘들어질 것이야.”
천리추종향에 대해 밝힌 것이 이런 악재가 될 줄 몰랐다.
차갑게 굳은 표정의 왕욱이 신형을 날리자 진무백이 씁쓸한 얼굴로 그 뒤를 따랐다.
그들의 발길은 적사결이 있는 낙양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 * *
석양이 지기 전.
어스름이 점차 세상에 드리우고 있었다.
“으리으리하군.”
적사결은 나무 위에 올라 지부 대인 이문정의 집을 내려다보았다.
고래 등이 무색할 만큼 으리으리한 장원은 한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넓었다.
“저렇게 넓으면 하인들도 많을 테고 수저도 더럽게 많을 텐데, 흠…….”
가장 간단한 방법을 꼽으라면 아마도 장부일 것이다.
저 정도 규모라면 총관이 살림살이를 관장할 테니까.
하나 그렇게 간단할까?
장부가 신뢰를 얻으려면 실사를 통해 숫자를 비교해야만 했다.
“차라리 낙양 분타를 털까…….”
개방에서 조사해 놓은 답안지를 훔치는 것도 한 방법일 터.
무력행사를 제외한 모든 것이 허용된다 했으니 말이다.
하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 역시 불안 요소가 있었다.
경쟁자가 수저를 하나만 훔쳐도 답안지는 답안지가 아니게 되니 말이다.
정보란 유동적이기에 시기도 고려해야 했다. 그렇기에 명일 신시 이후라는 조건이 붙었을 것이다.
“상황을 주도하려면 주인공이 될 수밖에 없는 건가.”
한 식경 후.
한 사람이 지부 대인 이문정의 집 정문에 나타났다.
황색 가사를 입은 그는 주름이 자글자글한 외모의 노승이었다.
정문을 지키던 문지기는 노승에게 물었다.
“스님께선 미리 약조가 되어 있으신지요?”
“허허. 오가다 들른 것이라 미리 언질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어쩌지요. 이곳은 지부 대인의 댁이라 사전 약조가 없다면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오랜만에 이곳을 지나게 되어 대인을 뵈려 했건만 정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요. 아미타불.”
반장을 하며 목례를 하는 노승을 보자 문지기는 눈을 크게 떴다.
천하에 반장의 예를 취하는 사찰은 한 곳 밖에 없었다.
“혹시 스님께선 소림의 승려이십니까?”
“허허허, 그렇습니다.”
“실례지만 법명을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소승 무허라 하오이다.”
“헛! 무허 대사님!”
문지기가 무림에 적을 두지 않았다하나 하남에서 소림사를 모를 순 없었다.
더구나 상대는 무허 대사라는 천하에 위명이 자자한 승려였다.
‘흐흐, 역시 통하는구나. 무허가 개또라이지만 소림 최고 배분의 고승이니까.’
적사결이 흐뭇한 미소를 짓자 문지기는 잠시만 기다려 달라는 말과 함께 내원으로 기별을 넣었다.
그리고는 머리가 희끗한 노인이 나타났다.
“오오, 정말 무허 대사님이시군요. 저 기억하시겠습니까? 내총관인 양홍입니다.”
양홍은 합장으로 예를 표하며 적사결을 맞이해 주었다.
‘뭐야 아는 사이였어?’
적사결은 뜨끔했지만 반장으로 화답했다.
“오랜만이군요. 시주께선 별고 없으셨는지요.”
“기억해 주시는군요, 대사님. 내자와 함께 불공을 드리러 갔을 때 스치듯 인사드렸을 뿐인데 말입니다. 허허허.”
진작 말하지 새끼가, 뻘쭘하게.
적사결은 어색하게 웃었으나 겉으로 보기에 그 웃음은 무척이나 푸근했다.
“대사님께서 이리 저를 기억해 주시니 이 양 모 감격했습니다. 한데 지부 대인의 사가에는 어인 일이신지요?”
“지나가다 이 댁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흐르기에 오게 되었습니다.”
“심상치 않다니요?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곳에서 나눌 이야기는 아닌 듯합니다, 아미타불.”
“흠……. 마침 오늘 지부 대인께서도 사가에 계시니 제가 허락을 구해 보겠습니다. 일단 안으로 드시지요.”
양홍이 안내를 자처하자 적사결은 흐뭇하게 웃었다.
‘역시 소림. 하남에서 만큼은 먹어 주는구나. 흐흐.’
안내를 받은 적사결이 내빈당에서 기다리자 양홍은 비단 전포의 중년인과 함께 나타났다.
그가 낙양 최고의 실세, 지부 대인 이문정이었다.
“이문정이라 하오. 소림의 고승을 뵙게 되어 반갑소.”
“무허라 합니다. 아미타불.”
서로를 소개한 그들은 자리에 앉아 차를 들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대사, 내 듣자 하니 본 관의 집에 심상치 않은 기운이 흐른다 하셨다지요? 자세히 좀 말해 주실 수 있겠소이까?”
이문정은 수심 어린 얼굴로 물었다.
고래로 권력자들은 이런 미신 행위에 약했다.
줄을 한번 잘못 서서 가문이 망하기도 하였고, 정치라는 것이 워낙에 정적도 많기 때문에 늘 불안했기 때문이었다.
적사결은 그런 생리를 잘 알고 있었다.
“노납이 지나가며 보니 이 댁 주변에 사기가 뭉친 것이 보통 불길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대로라면 대인께서는 횡액을 면치 못 하실 것입니다.”
나이 지긋한 고승이 ‘너 곧 죽어’라고 말하는데 흔들리지 않는 이가 얼마나 되겠는가.
이문정의 눈알도 정신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대사, 무슨 방법이 없겠습니까? 어쩐지 요즘 꿈자리도 뒤숭숭하고 이곳저곳에서 본 관을 음해하는 소문이 끊이지 않는다 했습니다.”
판을 깔아 주니 알아서 이유를 갖다 붙이며 춤을 추고 있다.
불안한 나머지 최근 있었던 안 좋은 일은 죄다 끼워 맞추는 것이다.
“일단 댁을 한번 둘러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불온한 기운의 근원이 무엇인지 노납이 살펴보겠나이다.”
그 근원이 수저라고 말하면 황당해하겠지만 잠깐뿐일 것이었다.
몇 푼 안 되는 수저를 처분해서 불안한 마음을 달랠 수 있다면 이문정에게 있어 그것이 더 이득일 터이니.
저벅. 저벅.
적사결은 내총관 양홍의 안내를 받으며 이곳저곳을 쏘다녔다.
곧바로 수저 얘기를 꺼내면 의심이 들 테니 산책이나 하는 마음으로 걷는 것이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으니 곧 저녁이 될 듯했다.
‘슬슬 주방으로 가볼까.’
적사결은 양홍에게 안내를 부탁했고 곧이어 그들은 주방에 당도했다.
“허허. 불길하도다, 불길해!”
동시에 분위기를 잡기 위해 적절한 추임새를 넣었다.
“대사님, 이곳에 무언가가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이곳에 사기의 근원이 있음이 분명합니다. 나무관세음보살.”
대답을 들은 양홍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잘 좀 부탁드립니다, 대사님.”
“허허허, 노납에게 맡기시지요.”
적사결은 주방을 스윽 들러보며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는 서랍들을 열어 재꼈다.
“찾았습니다. 아미타불…….”
양홍은 적사결이 응시하는 서랍 속을 쳐다보았다.
“대사님, 이건…….”
“예. 수저에 마구니가 씌어 있습니다. 혹 근자에 배탈이나 속병을 앓는 이가 없었습니까?”
당연히 있겠지. 식솔과 하인들이 이리 많은 곳에 그런 병자 한둘 없을까.
“있었습니다, 대사님. 저도 속이 쓰리고 소화가 잘되지 않았습니다.”
“수저의 마구니가 음식과 함께 인체에 침투한 듯합니다. 조금이라면 모를까 시간이 지나면 중병을 앓았을 것입니다. 나무관세음보살.”
적사결은 양홍을 시켜 집안의 모든 수저를 모아 오라 지시했다.
하인들은 상자 가득 담긴 수저를 가져왔고, 적사결은 그것을 봉한 뒤 불가에서 쓰는 만(卍) 자를 써넣었다.
“노납이 마구니를 봉인하였으나 임시 처방일 뿐입니다.”
“하면 어찌합니까? 불태울까요?”
“아닙니다. 그리 되면 마구니가 풀려나 더 큰 화가 닥칠 것입니다. 노납이 본 사로 가져가 마구니를 성불시킨 뒤 소각하도록 하겠습니다.”
적사결의 말에 양홍은 수긍했는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당분간은 수저를 들이지 말아야 할 겁니다. 또 다른 마구니가 붙을 수 있으니 말입니다.”
“대사님 말씀에 전적으로 따르겠습니다.”
목적을 달성한 적사결은 다시 내빈당으로 향했다.
이문정에게 마지막 인사를 한 후 서둘러 떠나기 위해서였다.
그는 차를 마시며 기다리고 있었고, 봉인된 수저 상자를 보고는 짧은 장탄식을 내뱉었다.
“정말 어떻게 감사 인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소이다.”
“아닙니다. 부처님께서 이곳까지 저를 이끄셨으니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허허.”
“하하하. 내 부처님께 꼭 보답을 하도록 하겠소이다. 그리고 이건 먼 걸음 해 주신 대사께 드리는 작은 성의니 받아 주시구려.”
이문정은 작은 상자를 내밀었다.
적사결은 예의상 빼는 척하였으나 역시나 받아 챙겼다.
‘이 정도 무게면 금인데. 새끼, 어지간히 찜찜했나.’
복비로는 과할 정도로 많이 받았다.
이제는 상대가 기분 좋을 때 떠나는 일만 남아있었다.
“하면 노납은 이만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니, 대사. 시간이 늦었는데 하룻밤 지내고 가지 그러시오. 내 쉴 곳을 마련해 드리리다.”
“아닙니다. 봉인되어 있다 하나 마구니가 대인의 댁에 있어서 좋을 것은 없습니다. 이미 성의는 충분히 받았으니 괜찮습니다.”
아무렴. 금덩이를 복비로 받았는데 충분하지.
거짓말에 내심 찜찜하기도 했기에 어서 떠나고 싶었다.
“대사같이 진정한 불제자를 만나게 되어 참으로 다행이 아닐 수 없소. 하나 이대로 보낸다면 천하인들이 본 관을 욕하지 않겠소. 내일 날이 밝으면 떠나시구려.”
이문정은 다가와 적사결의 손까지 맞잡으며 말했다.
진정한 불제자란 말에 어색하게 웃으며 적사결이 대꾸하는 그때였다.
“크아아아악!”
“꺄아아악!”
사내와 여인이 내지르는 단말마의 비명이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은 적사결과 양홍, 이문정의 고개가 돌려지게 만들었다.
“으아악! 괴물이다!”
뭐? 괴물?
적사결은 바깥의 흉흉한 분위기를 감지했고, 그런 자신의 눈에 이문정이 들어왔다.
아까와 확연히 다른 눈빛이 섞여 있었다. 설마 의심인가?
마구니를 잡았으니 복이 올 것이라 했는데 이상한 일이 생긴다면 자신을 의심하고도 남을 것이었다.
젠장.
“허험. 마, 마구니가 또 있었나 봅니다.”
적사결은 서둘러 밖으로 뛰쳐나갔다.
‘잘되고 있었는데 어떤 새끼가 초를 친 거야. 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