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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이혼대법-22화 (22/206)

<기적의 이혼대법 22화>

설마 심사관에게 발길질을 하다니.

부지불식간에 일어난 일에 붕산개는 제대로 대응도 못하고 벽에 처박혔다.

당주라 하나 그 기습을 받아낼 순 없었다.

“네 이놈! 지금 뭐 하는 짓이더냐!”

진덕개가 내공을 실어 소리쳤고, 삼살개 역시 탐탁지 않은 시선으로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 어린놈의 새끼가, 감히…….”

붕산개는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박치기에 발차기까지 연이어 얻어맞은 그의 얼굴에서는 두 줄기 코피가 쉼 없이 흘러내렸다.

“겨우 그 정도 격장지계에 손을 쓰다니. 네놈은 탈락이다!”

흥분한 붕산개의 일갈에 적사결이 이죽거리며 말했다.

“욱한 나머지 손이 나가긴 했으나 그걸로 탈락을 논할 순 없을 텐데 말입니다.”

“뭐라? 이놈이 지금 무슨 정신 나간 소릴…….”

“이보게, 잠깐.”

붕산개의 말을 자르며 다가온 이는 삼살개였다.

“계속해 보게.”

“이왕 아비란 작자의 얘기가 나왔으니 지원 동기부터 다시 말하죠. 제가 개방에 지원한 건 그때 당시의 일을 소상히 알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렇게 될 줄 짐작했을 텐데. 도대체 왜! 어머니와 제가 이런 손가락질받는 삶을 살게 했는지 말입니다.”

적사결은 무허를 상상하며 분기를 토했다.

놈을 생각하니 그저 연기가 아닌 진짜 분노가 표출되었다.

“자네 말은 그 당시의 일을 자세히 모른다는 말인가?”

“그 작자가 미리 가족과 상의했다면 그런 일을 저지를 수 있었겠습니까? 아들인 저부터 시작해 후손들이 줄줄이 욕을 먹을 것이 자명한데 말입니다.”

염석진의 생각 따위 알 바 없다.

다만 그 정도 큰 사고를 칠 때 가족과는 상의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기에 대형 사고이고 말이다.

“아비의 주변 상황만이 아닌 심중 변화를 알고 싶다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개방이라면 그 일과 관련하여 조사 보고서가 있을 것 아닙니까. 저는 그것만 얻을 수 있다면 제 인생! 기꺼이 버릴 수 있습니다.”

“개방이 아니더라도 그와 관련된 자료를 얻을 곳은 많을 텐데. 왜 개방이지?”

삼살개의 말에 적사결은 거칠어진 숨을 가다듬고 말했다.

“어디요? 하오문 말입니까? 본 단이 어딘지도 모르니 쟁자수나 점소이로 몇 년은 썩어야 입문 접선책을 만날 수 있고 입문하더라도 몇 년은 활동해야 자료 열람을 할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그렇다고 오대세가의 정보대로 갈까요? 혈연 중심에 조금의 오점도 용납지 않는 그들이 과연 저에게 기회를 주겠습니까? 염석진의 아들인데…….”

뿌득.

말끝을 흐리며 이를 가는 적사결의 입에서 난 소리였다.

물론 이번에도 무허를 생각하니 절로 이가 갈렸다.

‘아 시발, 안 통하는 건가……. 떨어지면 사월이 얼굴을 어찌 보지.’

준비해 준 자료를 안 봐서 탈락한 걸 알면 실망할 텐데.

적사결이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수험 번호 70번, 염장. 합격이다.”

삼살개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아니, 이보게. 심사관에게 손을 쓴 놈을 이대로 합격시킨단 말인가?”

진덕개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굳이 따지자면 손을 쓰면 안 된다는 기준은 없지 않은가. 그리고 우리가 질문에서 얻고자 한 것은 염석진이 아비라는 껄끄러운 점을 해소해 줄 만한 답변이었네. 염장 지원자는 그에 답했고 말이네.”

“자네는 지금의 답변만으로 해소가 된단 말인가? 아비를 증오한다 하여 같은 선택을 하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심사숙고 하겠지.”

삼살개의 대답에 진덕개가 반문하려 하자 적사결이 입을 열었다.

“절대로 같은 선택은 있지 않을 겁니다. 저는 그자와 다르니까요.”

“흥! 세상에 절대라는 말은 없다. 만일 네 아비가 너와 네 어미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그런 선택을 한 것이라면 어찌 하겠느냐? 그래도 아비를 증오할 수 있느냐?”

“그자가 협박을 당했다는 겁니까?”

“그렇다면 어쩔 테냐? 그래도 절대라는 말을 입에 올릴 수 있느냐?”

“…….”

적사결은 잠시 머뭇거렸다.

“흥! 그것 보아라. 누구나 말은 쉽게 지껄여도 내막을 알고 그 상황에 처한다면…….”

“수만 가지 상정해 본 상황들 중에 제일 처음 생각했던 것이로군요.”

“뭐?”

자신의 말을 자르고 들어온 대답에 진덕개는 눈을 치켜떴다.

예상했던 답변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이런저런 생각을 안 했겠습니까? 별의별 생각을 다 해 보았습니다. 그중에는 가족을 빌미로 한 협박도 있었지요. 제 답은 그렇다 하더라도 그 작자를 용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당시 우리 가족은 무림에 적을 둔 무림인이었고, 무인이라면 응당 명예로운 죽음을 택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구차한 삶을 살 것이 아니라! 무림에 뛰어들었음에도 각오가 부족했던 겁니다! 그 인간은!”

“…….”

진덕개는 말문이 막혔다.

실제 염석진이 그랬던 것은 아니었으나 가장 감정 이입하기 쉬운 상황으로 놈을 흔들려 한 것이었다.

한데 흔들린 것은 도리어 자신이었다.

‘그래. 그의 말대로 무림에서는 어설픈 각오가 제일 위험하지…….’

물론 실제 그런 상황에 처한다면 어떤 선택을 할지는 그 사람의 진짜 본질에 달렸을 것이다.

하나 진덕개는 눈앞의 지원자가 그런 상황에 처한다면 염석진과 다른 선택을 하리라는 판단이 들었다.

“합격……. 나도 염장 지원자의 합격에 동의하겠네.”

진덕개의 입에서 합격이 나오자 삼살개가 결론을 내렸다.

“셋 중 두 사람이 합격 판정을 내렸으니 자네는 돌아가서 내일 있을 실습을 준비하게.”

“감사합니다, 그럼.”

적사결은 포권을 한 후 그대로 문을 빠져나갔다.

한데 붕산개가 적사결이 나간 문을 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자네 어디 잘못 맞았는가? 갑자기 왜 웃어?”

진덕개의 물음에 붕산개는 코피를 훔치며 말했다.

“킁, 저 녀석 아주 마음에 드는군.”

“응? 마음에 든다고?”

“그래. 화가 머리끝까지 났을 텐데 주먹에 내공이 실려 있지 않았어. 분노하더라도 이성을 잃지 않는단 거지. 제법 괜찮은 놈이야. 후후.”

진덕개는 눈을 가늘게 뜨며 생각했다.

‘너만 탈락이라 말했다고 뒤늦게 포장하는 거냐……. 으휴. 단순한 놈.’

*   *   *

실습 날.

낙양 분타에는 이 차 면접 합격자들이 공터에 모여 있었다.

주변에는 그들을 구경하기 위해 나온 개방도들이 구석구석에 앉아 있었다.

서로의 이를 잡아 주고 발가락 때를 꼬물거리는 그들은 영락없는 거지였다.

웅성웅성.

합격자들은 모두 스물한 명이었다.

면접에서 삼분지 이에 해당하는 인원이 탈락한 것이었다.

이 중 단 일곱 명만 합격하니 또 다시 삼분지 이를 걸러 내는 시험이 행해질 터.

서로를 바라보는 합격자들의 눈에는 불꽃같은 경쟁심이 서려 있었다.

‘그지 새끼가 뭐라고 이렇게 열정적이야? 참나…….’

적사결은 자신을 힐끔거리는 예비 거지들을 보며 혀를 찼다.

한데 그때 다른 이들과 다르게 자신에게 다가오는 자가 있었다.

“안녕하신가, 칠십 번. 이렇게 또 보게 되는군.”

그는 적사결에게 아는 척을 하고 있었다.

“응? 누구지? 난 당신을 모르는데.”

“이거 섭섭하군. 어제 내가 자네 앞에 면접을 본 육십구 번이었잖은가.”

그랬었나?

면접자 대부분 외모가 고만고만하고 특징이 없다 보니 그놈이 그놈 같아 보였다.

별로 관심이 없기에 유심히 보지도 않았지만 말이다.

“그래서? 나한테 볼 일이 있나?”

“아. 아. 그렇게 날 세우지 말게. 개방도가 되고 싶은 절실한 마음은 알겠으나 실습에서 까칠하게 굴다간 탈락할 수도 있네.”

누가 절실해? 내가?

적사결은 미간을 찌푸리며 사내를 주시했다.

“그저 반가워서 통성명이나 할까 하고 그런 것이니 경계하지 않아도 되네. 혹시 또 아는가? 최종 합격자에 우리 두 사람이 들지? 하하하.”

사내는 너스레를 떨며 씨익 웃었다.

“나는 봉두라 하네. 강호 초출이라 별호는 없다네. 그쪽은?”

“……염장. 별호는 마찬가지로 없다.”

“역시! 그럴 줄 알았어. 하하하. 반갑네. 반가워.”

봉두가 적사결의 팔을 툭툭 치며 웃었다.

한데 적사결은 여전히 냉막한 인상을 유지한 채 물었다.

“아까 실습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있는 듯한데. 실습이 뭔지 알고 있나?”

“아, 그거 말인가. 뻔하지 않은가 실습이니 정보를 캐 오는 것이겠지.”

“그거야 나도 대략 짐작하는 것이고. 무슨 정보냐는 물음이다.”

“하하. 그건 나도 모르지. 그걸 내가 어찌 알겠나.”

젠장, 그냥 입 싼 놈일 뿐이었나.

적사결은 팽하고 고개를 돌려 버렸다.

강호 초출 애송이의 우정 놀음에 어울릴 시간은 조금도 없었다.

“아니, 저기…….”

봉두가 다시 입을 떼는 그때였다.

“면접 합격자들은 모이시오. 지금부터 실습에 대한 안내를 할 것이니.”

적사결은 봉두를 제쳐 두고 중앙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곳에는 삼당의 당주들, 세 명의 심사관이 있었다.

“먼저 면접을 거쳐 이 자리에 온 지원자들께 수고했다는 말씀을 드리겠소. 모두 뛰어난 인재들이나 아쉽게도 뽑을 인원이 한정되어 있어 실습을 진행할 것이니 다들 좋은 결과가 있길 바라오.”

진덕개의 허울 좋은 말이 끝나자 붕산개가 나서며 말했다.

“모두 알다시피 본방의 정체성은 정보 단체라 할 수 있소. 해서 실습 역시 이에 걸맞게 첩보 능력을 보기 위한 목적에서 실시될 것이오. 지원자들은 첩보원이 되어 지정된 곳의 특정 정보를 얻어 오면 되는 것이오.”

여기까지 말하자 붕산개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하……. 새끼들, 그냥 한 놈이 쭉 읊을 것이지. 무슨 세 쌍둥이냐.’

하여간 정파 새끼들 미적거리는 데는 일가견이 있었다.

역시나 이번에 나선 자는 삼살개였다. 그는 손에 여러 개의 봉서를 들고 있었다.

“과제의 종류는 총 일곱 개로 같은 과제를 받게 된 세 명이 경쟁자가 될 것이오. 과제별로 단 한 명만 뽑힐 것이며 경쟁자에 대한 무력 행사를 제외하고 모든 것이 허용되니 이 점 참고하기 바라오.”

삼살개는 봉서를 나눠 주었고 지원자들은 경쟁자를 의식하여 개봉하지 않은 채 품에 넣었다.

그중 한 지원자가 손을 들고 물었다. 그는 봉두였다.

“만일 세 명 모두 정보를 얻을 경우 승패는 어찌 가리는 것입니까?”

삼살개는 질문자를 보며 말했다.

“정보전의 또 다른 말은 속도전. 정확한 정보를 가장 빨리 가져온 자가 최종 합격의 영광을 누릴 것이오. 또 다른 질문 있으시오?”

간단명료했기 때문일까 선뜻 질문하는 사람은 없었다.

한데 역시나 또 손을 드는 자가 있었고, 그는 봉두였다.

“혹시 첩보 방식에 제한이 있습니까?”

“좋은 질문이오. 사실 그간 본방은 귀동냥에 의존하여 첩보를 하였으나 이는 정보의 질이 낮은 문제가 있었소. 해서 그간 첩보보다는 사파나 마교의 정세를 파악하거나 정보를 교란하는 데 역량을 집중했다 할 수 있소. 그렇기에 이번 공채 실습에 있어서는 제한을 두지 않고 신입들의 참신한 생각을 보고자 하오.”

“창의력도 본다는 말입니까?”

“두 명 이상의 지원자가 한날한시에 같은 답을 가지고 온다면 그리될 것이오.”

삼살개의 답이 있은 후 더 이상 질문은 없어 보였다.

입 싼 예비 거지 봉두 역시 봉서를 매만지며 생각에 빠져 있었다.

“자, 그럼 더 이상 질문이 없는 것 같으니. 실습을 시작하겠소. 본 심사관들은 이곳에서 기다릴 테니 정보를 얻은 자는 이곳 접수대로 오시오.”

삼살개의 선언이 있자 지원자들은 썰물 빠지듯 장내를 떠났다.

적사결 역시 그 자리를 뜬 후 으슥한 곳으로 옮겨 봉서를 확인했다.

자신의 봉서에는 생각지도 못한 장소와 첩보 대상이 적혀 있었다.

-지부 대인 이문정. 그의 사가에 있는 수저 개수. 해당 정보 제출은 명일 신시 이후.

뭐야, 이게. 남의 집 수저 개수를 왜 알아야 해.

‘뭔가 거창한 게 있을 줄 알았더니……. 개방도 맛이 갔구먼.’

정보 단체의 능력을 비유할 때 ‘누구 집 수저 개수까지 안다’는 말 때문에 정한 건가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대충 정한 것 같았다.

하나 대충 정했다 하여 쉬운 과제는 아니었다.

지부 대인이라는 직책이 낮지 않기 때문이었다.

지방 관제 중 성 다음으로 가장 큰 구역을 이르는 것이 부, 그 최고 책임자를 지부 대인이라 불렀다.

낙양의 최고 권력자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설마 나한테 일부러 최고 권력자에 관한 과제를 준 건 아니겠지, 쩝. 그나저나 보안도 삼엄할 테고 수저도 한두 개가 아닌 텐데. 무슨 수를 써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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