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이혼대법-20화 (20/206)

<기적의 이혼대법 20화>

적사결은 단출한 차림으로 방을 나섰다.

소림에서 가지고 온 비급과 영약, 그리고 녹옥불장은 사월에게 맡겨 놓았기에 챙길 것이라고는 사왕밖에 없었다.

“아저씨 벌써 가시는 거예요? 며칠 더 머물다 가시지…….”

아화는 아침부터 쭉 적사결을 기다린 모양이었다.

“아화야. 은공께서는 더 큰 일을 하러 가시는 것이니 기쁜 마음으로 배웅하자꾸나.”

아평은 딸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적운 님, 여기 음식을 조금 준비했습니다. 여정에 요기라도 하십시오.”

“하하하. 고맙소. 잘 먹으리다.”

적사결은 아화의 어미가 건넨 작은 보자기를 받아 들었다.

“아저씨. 또 나쁜 놈들 혼내 주러 가는 거예요?”

“후후. 맞다. 아주 나쁜 놈이 있어서 가는 거란다.”

“진짜 악당 놈인가 봐요? 헤헤.”

“그럼. 양의 탈을 쓴 늑대 같은 놈이지. 아저씨가 가지 않으면 사람들에게 무슨 해악을 끼칠지 모른단다.”

내 탈을 쓴 씹새끼지.

반드시 잡아 죽여야 할 놈이고말고.

적사결은 울컥 화가 치밀자, 아화의 머리를 부비적거리며 씨익 웃었다.

“부모님 말씀 잘 듣고 예쁘게 자라거라.”

“피이. 전 지금도 예뻐요.”

“큭큭. 물론 그렇지만 더 예뻐지라는 말이다. 멀리서 아저씨가 네 소식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그럴게요. 소문 들으면 꼭 놀러 오세요.”

“그러마. 후후.”

인사를 마친 적사결은 풍류객잔을 나섰다.

객잔 앞에는 작두를 비롯해 그 수하들이 시립해 있었다.

“떠나시는 것입니까?”

“아주 가는 거 아니다. 숙수로서 요리해야 할 놈이 있어서 잠시 비우는 것이니 사고치지 말고 시킨 일 똑바로 하고 있거라. 또다시 파락호 짓거리하다간 네놈 이름처럼 개작두로 대갈통을 잘라 버릴 테니까.”

“믿고 맡겨 주십시오, 형님!”

작두파는 허리를 직각으로 접으며 동시에 외쳤다.

그런 그들에게 적사결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형님은 무슨, 시발. 꺼져.”

감히 대천마신교의 지존에게 형님이라니.

사월이 보았다면 칼부림이 났을 것이다.

*   *   *

낙양.

하남성 서부의 대도시로 고대로부터 수많은 왕조의 도읍지였던 유서 깊은 곳이다.

황하의 지류인 낙수가 남쪽에 흐르고 있어 본래 ‘낙’이라 불린 이곳은 전국시대에 이르러 낙양으로 불리었고 지금까지 그 이름이 이어져 오고 있었다.

쏴아아아.

그 낙수 위에서 운마도강선이 물살을 가르고 있었다.

적사결은 선수에 서서 바람을 맞는 중이었다.

‘드디어 낙양이구나.’

낙양이 가시권 내로 다가오자 적사결은 목적을 환기했다.

무허를 제외한 천하사괴 중 첫 번째 목표물이 그곳에 있었다.

‘금개 이천억.’

개방 낙양 분타의 분타주가 바로 천하사괴의 일인이자 무허의 가장 절친한 벗이었다.

거지라는 신분에 걸맞지 않게 엄청난 부를 가진 별종이었고 말이다.

그가 거지임에도 그만한 부를 지닌 것은 이유가 있었다.

본래 이천억은 상인. 그것도 천하오대거상으로 거론될 정도의 대부호였다.

특별한 상재가 없음에도 그럴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천하제일의 재복을 타고났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있었다.

무슨 사업을 벌여도 일사천리였고 손대는 것마다 대박을 쳤기에 사람들은 그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랬던 그가 개방도가 된 것 또한 재복 때문이었다.

이천억에겐 오직 재복밖에 없었다.

다른 운이 없다고 할 정도로 그는 팍팍한 삶을 살아야 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을 여읜 것은 물론 아내와 자식까지 단명했고, 주변은 온통 그를 벗겨 먹으려는 사기꾼과 아첨꾼만이 득실거렸다.

결국 삶에 회의를 느낀 이천억은 전 재산을 나라에 기부하고 개방에 입문해 버렸다.

차라리 거지가 되면 재복을 없앨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고, 개방도가 되려면 전 재산을 처분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나 재복은 끝나지 않았다.

황실에서 이천억의 선행을 치하하고자 땅을 하사했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그것이 국유지에 하사품이라 사사로이 처분이 불가했고, 관료들은 이천억이 죽으면 나라에 환수조치 되기에 양도나 증여 역시 불가하다 못을 박았다.

사실 이는 관의 노림수였다.

너무 엄청난 금액을 받았으니 어주를 내리거나 정덕비를 세워 주는 정도로 치하하기엔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하니 쓸모없는 불모지를 하사하고 죽고 나면 돌려줘야 한다 생색을 부린 것이었다.

나라에서 그리 하사한 것이니 개방에서도 감히 어쩌지 못하였고 말이다.

‘한데 그 넓은 불모지를 가지고 무료로 하다시피 내놓으니 화전민들이 몰려들어, 매년 수확량을 갱신한다고 하고…….’

농사 짓기 척박한 산에서 나무를 베고 불을 질러 터를 만들고 밭을 만들어 내는 개척자들이 화전민이었다.

그런 그들이 불모지라 하나 평지에 내려왔으니 개간이 안 될 리가 없었다.

국유지에 면세라 탐관오리들도 건들지 못하니 일석이조였고 말이다.

그것이 천하에서 제일 돈 많은 거지인 금개 이천억의 배경이자 강호에서 가장 유명하고 어이없는 일화 중 하나였다.

‘문제는 분타주이기에 놈의 위치를 찾기가 어렵다는 건데…….’

정보 단체는 수뇌부가 무엇보다 중요한 존재였다.

많은 정보 속에서 옥석을 가르고 취합하는 역할을 맡기 때문이었다.

개방의 분타주 이상은 일급 기밀에 속하기에 적월이라도 쉽사리 찾기 힘들었다.

‘일단 낙양 안에는 있을 테니 방법을 강구해 보자.’

*   *   *

낙양의 번화가에 숙소를 잡은 적사결은 손을 씻고 있었다.

구석구석 꼼꼼히 씻은 후 대야에서 손을 꺼내는 그때.

“교주님, 여기 있습니다.”

사월이 기다렸다는 듯 무명천을 두 손으로 건네었다.

슥슥.

적사결이 손을 닦는 모습을 보며 사월은 생각했다.

‘역시 지존이시구나. 평범한 모습마저 품위가 있으시니…….’

외양이 천하의 죽일 놈인 취불 무허의 것이었으나 그녀의 주군은 품격으로 외양을 보완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교주를 신격화하는 천마신교에서 적월은 특히 적사결을 숭배했다.

그들을 하나 하나, 키워 낸 이가 그였기에 마치 어버이 여기 듯하는 것이었다.

“어떠십니까?”

사월은 코에 손을 대고 킁킁거리던 적사결이 손을 내리자 물었다.

“안 되는구나. 쯧.”

적사결은 금의위의 천리추종향을 제거하기 위해 손을 씻은 것이었다.

“백향정화수로도 안 되는군요. 아무래도 금의위에서 개발한 특제품인 듯합니다.”

백향정화수는 사천당가에서 제조한 상등품으로 시중에 통용되는 백 가지의 천리추종향을 제거할 수 있었다.

한데 사월이 구해 온 백향정화수로도 금의위의 천리추종향을 없애지 못한 것이었다.

“다른 방법이 있겠느냐?”

적사결의 물음에 사월은 막힘없이 대답했다.

“기주에 빈호산인 이시진이라는 자가 있습니다. 황실 태의원에 있었고 얼마 전 낙향하였다 하니 그를 찾아가 보겠습니다. 태의원에서도 명성이 자자했으니 분명 금의위의 약물 제조에 도움을 주었을 것입니다.”

무관인 금의위가 자체적으로 그만한 물건을 만들어 냈을 리 없으니 태의원과 합작했음이 틀림없었다.

사월은 백향정화수가 통하지 않을 것에 대비해 차선책을 준비한 것이었다.

적사결은 수하의 뛰어남에 흐뭇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만한 자라면 네가 직접 가야겠구나. 금의위와 관련된 것을 쉽게 알려 주지도 않을 테니 말이다.”

“예, 이미 수하를 몇 명 보냈지만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습니다.”

적월은 일월부터 십이월까지 열두 명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중원에 나와 현지 충당한 소모품이었다.

그저 명령대로 일하고 월봉을 받고 인형처럼 움직이는 영혼 빠진 꼭두각시 말이다.

“한데 제가 보좌하지 않아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속하의 생각으로는 섬서성에 있는 구월이라도 부르심이 나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아니. 되도록 본좌의 상황을 노출하고 싶지 않구나. 본좌의 상황을 아는 이는 당분간 너와 일월이면 족하다. 나머지 적월은 자신의 임무에 집중하도록 놔두거라. 차차 대원들에게 알리도록 하자꾸나.”

적사결의 대답에 사월은 부복하며 명을 받들었다.

지존의 결정에 감히 반문하는 행위는 있을 수 없었다.

“한데 금개, 그놈을 찾으려면 어떤 방법을 쓰면 좋겠느냐? 사월, 너에게 좋은 수가 있다면 말해 보거라.”

“지존께서 직접 움직이신다는 전제로 세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고하라.”

사월은 호흡을 고른 후 간략하게 간언했다.

“첫째. 취불과 금개는 절친한 사이입니다. 지존께서 무허의 늙은 외양으로 돌아가 개방의 낙양 분타를 방문하신다면 어렵지 않게 놈을 만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기각. 소림 중놈들의 발을 종리세가에서 묶어 두고 있지만 본좌의 소재가 드러나면 여러모로 귀찮아질 것 같구나. 되도록 피하고 싶으니 다른 방법을 말해 보거라.”

고개를 주억거린 사월은 다음 방안을 말했다.

“둘째. 금개를 암살하려는 음모가 있다 정보를 흘리는 겁니다. 교주님께서도 아시겠지만 금개는 개방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입니다. 어떤 의미로는 용두방주보다도 말입니다.”

사월의 말대로 금개 이천억은 그 재력 탓에 개방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가 되어 있었다.

백만 평의 부지에서 창출되는 이익이 개방의 운영자금 중 삼 할을 차지하기 때문.

십만 개방도라는 엄청난 인력망을 바탕으로 돌아가는 정보 단체이기에 구걸만으로는 그 덩치를 유지할 수 없었다.

과거 구파일방 시절에는 정파 유일의 정보 집단으로서 각 문파에서 재정적 지원이 풍족했으나, 구파일방이 쇠퇴하고 오대세가가 대두됨에 따라 점차 그 역할이 축소 될 수밖에 없었다.

세속의 문파들은 자체적인 정보대를 운영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자금줄이 끊김에 따라 정보의 질이 낮아지고 개방의 입김이 줄어드는 그때 혜성처럼 나타난 구세주가 금개 이천억이었다.

“사월 너의 말은 암살 음모에 대한 정보를 접하고 몸을 피하려는 금개를 잡자는 뜻이로구나?”

수면 아래에서 움직이지 않는 물고기와 수면 위를 오가는 물고기 중 어느 쪽의 위치를 파악하기 쉽냐 묻는다면 당연히 후자였다.

암살 음모가 있다면 개방은 분명 금개의 은거지를 옮기려 할 것이었다.

“소문만으로 개방은 움직이지 않겠지요. 낙양 분타의 수뇌부 몇 놈은 황천으로 보내야 할 것입니다.”

“후후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구나.”

내공을 쓰지 못한다하나 거지 몇 놈 죽이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과거에나 천하제일방이라 불렸지 작금에 이르러서는 쪽수만 많은 하룻강아지들이었으니 말이다.

“다만 시간이 걸리겠구나. 놈이 움직일 때까지 거지들을 족쳐야 하니 말이다.”

“그렇습니다. 지존께서 번거로우실 테니 속하로서는 상책이라 할 수 없고 말입니다.”

“하면 세 번째 방법이 상책이라는 말이더냐?”

“속하의 판단으로는 그렇습니다.”

“들어 보자꾸나.”

이어지는 사월의 설명은 간단명료했다.

개방의 낙양 분타에서 신입 방도들을 공개 모집하니 여기에 지원하라는 것.

특히 이번 모집은 그저 인원을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닌 정보 집단으로서 개방을 쇄신하기 위한 정보원들을 뽑기 위함이라 알려져 있었다.

재산을 처분하고 입문을 희망하면 받아주는 상시 모집이 아니었기에 이번 모집은 특별한 경우였고, 정보원으로 입방하게 될 시 낙양 분타 분타주로부터 직접 임무를 하달 받는 직속 부대로 활동할 수 있었다.

“세상 말세로구나. 거지새끼를 공개 모집이라니.”

“금개는 돈 많은 거지이지 않습니까. 더구나 이 방법이라면 나흘 내 금개와 만나실 수 있으실 겁니다. 분타에서 공표하길 심사는 단 삼 일이라 했으니 말입니다.”

사월은 적사결이 뽑힐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어쨌거나 적사결은 적월을 직접 키웠기 때문이었다.

“한데 사월아. 개방에서 의심하지 않을 만한 신분은 준비된 것이냐?”

이번 모집은 세작을 침투시키기 딱 좋은 기회였다.

모르긴 몰라도 하오문을 비롯해 많은 문파들이 노리고 있을 것이었다.

어쩌면 본교의 정보대인 흑영단에서도 준비 중일지 몰랐다.

“물론입니다, 교주님.”

사월이 꺼낸 신분패와 그에 대한 보고서를 읽어 본 적사결은 미간을 좁혔다.

“이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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