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이혼대법 18화>
숙수가 이런 무공이라니.
용식은 적사결이 정체를 숨긴 은거 고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놈은 설마 검기를 쓸 필요도 느끼지 못한 건가? 내공을 쓰지 않고도 우리 모두를 도륙 낼 자신이 있는 건지도 모르겠구나…….’
한 번의 판단착오로 또다시 수하를 잃게 된 용식이었다.
자신의 추측이 맞다면 일수회로서는 대적하기 힘든 고수였다.
그때 용식에게 한 줄기 동아줄이 내려왔다.
“무슨 일이냐.”
그는 용식과 함께 독대하고 있던 사내였다.
“죄…… 죄송합니다. 저희 선에서 처리하려 했지만 놈이 워낙 고수라…….”
“고수?”
사내는 눈을 가늘게 뜨며 적사결을 바라보았다.
한데 그의 눈에는 별다른 기도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보리연화공의 내공이 마치 돌부처처럼 신체와 동화되어 완벽히 기운을 갈무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놈이 수금을 방해하는 것이냐?”
“그렇습니다.”
용식이 고개를 숙인 상태로 입꼬리를 올렸다.
잘하면 두 놈을 양패구상시킬 수도 있겠다 여긴 것이었다.
한데 그 순간이었다.
촤아악.
“끄아아아아악.”
용식은 오른팔 어깻죽지부터 불로 지지는 듯한 통증에 비명을 질렀다.
목이 찢어져라 소리쳐도 고통은 쉽사리 수그러들지 않았다.
“크으윽. 갑자기…… 왜…….”
“쯧, 본좌를 귀찮게 한 죄다.”
촤앙.
용식의 팔을 베었던 도를 납도한 사내가 단청 아래로 걸어갔다.
“본좌는 망혼살객 음가경. 강동 백대고수의 위명은 한 번쯤 들어 봤겠지?”
“강동 백대고수…….”
“큭큭. 빌어도 소용없느니라. 네놈의 목숨을 거둬 갈 분이니. 염왕이 물어보면 알려 주거라.”
음가경의 도발에도 적사결은 별 감흥 없었다.
강동이라면 고작 장강의 동쪽 일대를 이르는 말.
더구나 백대고수? 안중에도 없던 숫자였다.
“근데 백 명 중 정확히 몇 등이지?”
“뭐?”
“일등은 아닐 거 아냐?”
“…….”
음가경의 머뭇거림에 적사결은 피식 웃었다.
“입도 못 떼는 걸 보니 꼴등이로구먼.”
“이…… 이 쳐 죽일 놈이!”
“촌동네 뱀꼬랑지 주제에 자랑하지 마라. 추하다.”
“크악! 그 아가리 닥쳐라!”
치링. 쇄애애액.
도집을 이용한 최속의 발도.
검과 달리 완만한 곡선을 가진 도는 발도 시 가장 쾌속한 속도를 낼 수 있었다.
카아앙.
하나 그것은 사왕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첫 도격을 맞댄 후 연격은 이어졌다.
따다다다당. 따당. 따다다당.
신속하기 그지없는 음가경의 연환도에 적사결의 사왕 역시 밀리지 않았다.
순식간에 십여 초를 교환한 그들은 삼 장 가까이 떨어져 서로를 노려보았다.
“큭, 생각보다 제법이로구나. 네놈은 누구지? 이런 실력이라면 이름 없는 놈은 아닐 텐데.”
“본좌 말인가? 흐음……. 뭐라 해야 할까.”
일수회나 작두파와 달리 음가경은 무인이라 할 수 있기에 객잔 숙수라 말하는 것은 무를 숭상하는 마도인이 할 짓이 아니다.
그렇다고 천마신교의 지존이라 칭하는 것도 못할 짓이었다.
지금의 실력은 본신의 발바닥에도 못 미치는 실력이니 말이다.
“꼴찌 따위에게 밝힐 이름은 없다. 이렇게만 알아 둬. 본좌는 천하 ‘제일’이라는 거. 큭큭.”
적사결의 이죽거림에 음가경은 눈이 뒤집힌 채 달려들었다.
얼마나 내기를 몰아넣었는지 도기가 일 장 가량 뻗어 나와 있었다.
‘도기는 단칼에 베이지 않는데…… 흐음…….’
앞서 도초를 교환하며 무기 파괴를 시험해 보았건만 통하지 않았다.
내공으로 보호되면 사왕이라도 쉽사리 베어 낼 수 없었다.
‘하나 전혀 통하지 않는 건 아니니.’
음가경의 도에는 듬성듬성 이가 빠진 부분이 있었고, 그것은 사왕과 맞닿은 부분들이었다.
‘더 강력한 힘을 실으면 부러질 것이다.’
꽈드득. 꽈득.
사왕을 쥔 오른팔이 회전하기 시작했다.
관절의 가동 한계를 넘어 계속해서 꼬여갔다.
음가경의 신형이 적사결이 심상으로 정한 권역 내로 접근한 그때였다.
부와아아악.
사왕을 내지르는 힘에 회전력이 더해졌다.
검이었다면 일점 집중이었을 테지만 사왕은 만곡도의 형태, 그것도 도첨이 일반적인 도보다 더욱 휘어져 있었다.
그랬기에 팔에서 일어난 회전이 도첨에 이르러서는 전면을 휘몰아치는 태풍으로 변해 있었다.
콰아아앙.
지르기가 끝난 후 적사결은 사왕을 내민 채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후두두둑.
음가경의 도가 산산조각 나고, 상체 역시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다져져 육편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초식명은 광풍폭살이라고 할까?’
내공도 쓰지 않고도 가공할 위력이었지만, 그 와중에 초식명을 생각하는 적사결이었다.
하나 좌중은 달랐다.
누구 하나 방금 전 적사결의 신위를 보고 움직이는 자는 없었다.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 적막이 이어졌고, 특히 용식은 등허리에 싸늘한 한기를 느끼고 있었다.
‘생각해라. 생각해. 이대로는 죽는다…….’
음가경조차 어육으로 다져진 마당에 자신이라고 그리되지 않으란 보장이 없었다.
그런 용식의 눈에 수레 가득 실린 쓰레기가 보였다.
“대협! 저희가 미처 몰라 뵈었습니다! 저토록 훌륭한 요리에 망발을 지껄이다니. 너무도 파격적인 요리라 이 우매한 것들이 이제야 개안을 한 것 같습니다.”
적사결은 엎드려 구구절절 혓바닥을 굴리는 용식을 보며 피식 웃었다.
살기 위한 혀 놀림은 수레에 실린 음식쓰레기를 온갖 미사여구로 포장하고 있었다.
“주절거리느라 입은 충분히 풀렸겠네. 그럼 이제 실전을 보여 주지 그래?”
“예? 실전…… 이요?”
용식의 반문에 적사결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먹어. 한 식경 주겠다. 다 비우지 못하면 방금 저놈처럼 다져서 개먹이로 줄 것이다. 직접 음식이 되어 보면 음식을 두고 욕하지 못하겠지?”
적사결의 말을 들은 용식은 사색이 되어 소리쳤다.
“달려 들어 새끼들아! 한 식경 안에 못 먹으면 다 뒈지는 줄 알아!”
더 협박할 필요도 없었다.
용식의 말이 있기도 전에 수하들은 개 떼처럼 수레를 항해 뛰고 있었다.
우적. 우적.
쩝쩝쩝. 쩝쩝.
챠웁. 챠웁.
팔백인 분을 준비하기 위한 음식쓰레기니 양으로 따진다면 약 천인 분 정도였다.
일수회의 인원은 약 백 명이었으니 일인당 최소 십 인분을 감당해야 했다.
“야, 개작두.”
적사결의 부름에 용식을 보며 킬킬거리던 작두가 고개를 돌렸다.
“예, 대협.”
“니들은 왜 안 먹니?”
“예?”
“여기까지 싸 왔으니 이제 먹어야지. 더 식으면 맛없다.”
“……!”
식을 만한 온기를 지닌 음식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 말이 목구멍까지 올랐으나 차마 내뱉지 못하는 작두였다.
“얘들아…… 먹……. 자. 하…… 하.”
힘없이 발걸음을 옮기는 작두의 뒤로 어깨가 쳐진 수하들이 따라붙었다.
한 식경 후.
적사결은 만족스런 얼굴로 텅 빈 수레를 보며 말했다.
“잘 먹네. 어지간히 맛있었나 봐?”
일수회와 작두파는 손으로 입을 막고 고개를 끄덕였다.
손을 떼면 먹은 것이 올라올 것 같았기에 사력을 다해 참는 중이었다.
“자, 그럼 정산해야지. 밥값들 내라구.”
적사결의 말에 작두가 수하에게 고개짓을 했다.
그는 전장으로 오천 냥을 찾으러 갔던 수하였다.
적사결은 오천 냥이 적힌 전표를 들고 미간을 찌푸렸다.
꿀꺽.
“대협. 왜…… 그러시는지…….”
작두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물고 있던 음식을 삼키고 물었다.
“셈이 잘못되었는데.”
“잘못되었다니요? 아까는 분명…….”
적사결은 발로 바닥을 툭툭 치며 능글맞게 말했다.
“여기 이자가 그렇게 실하다며? 그리고 포장에 배달비까지 붙었는데 어떻게 금액이 같겠어?”
작두는 어이가 없어 입을 쩍 벌렸다.
일수회 이자가 세다고 말한 것이 왜 여기다 붙는단 말인가.
더구나 음식물쓰레기를 수레에 담고 여기까지 끌고 온 것은 자신들, 작두파였다.
“너무 걱정 마. 지금 바로 다 지불하라고 안 할 테니까. 오늘은 오천 냥만 내.”
적사결의 위로에도 작두는 기운 빠진 목소리로 물었다.
“하면 원금은 도대체 얼마를 생각하시는 겁니까…….”
“오만 냥.”
“헉! 열 배…….”
작두는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았다.
“걱정 마라. 나머지 사만오천 냥에 대한 변제는 돈으로 받지 않겠다.”
적사결의 말에 작두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오늘부터 작두파는 인근 마을을 돌며 환경 미화 활동을 한다. 하루 일당은 일인당 한 푼이다.”
“대협. 삯이 한 푼이면 저희들 하루 일당이 전부해 봐야 닷 냥입니다.”
“그래 봤자 25년이면 빚이 탕감되잖아? 종신 계약이 아닌 게 어디야? 좆 같으면 지금 당장 갚든지.”
“아…… 알겠습니다.”
“앞으로 청소 잘해라. 길바닥에 쓰레기 하나 굴러다니면 그건 다 니들 입으로 직행할 테니까.”
신교의 영역이었다면 작두파는 오늘 모조리 참했을 것이었다.
적사결이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자신은 떠날 것이고 또 다른 악인이 생겨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작두와 같이 눈치 빠른 놈이 자신의 눈치를 보며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이 더 나을 것이었다.
적사결은 이번엔 일수회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 저희는 얼마를 지불하면 되겠습니까?”
“오호. 자신 있나 봐?”
“어차피 음가경 저놈이 가져갈 것이었습니다. 모두 대협께 드릴 수도 있습니다.”
용식은 작두를 대하는 적사결의 모습을 보고 협상을 포기했다.
자신도 저런 짓을 여러 번 해 보았기에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낫다 여긴 것이었다.
“저게 다 얼만데 그래?”
“십만 냥입니다.”
“그 정도면 전 재산인가?”
“그렇습니다. 저중에는 이 장원의 집문서와 땅문서도 있습니다.”
적사결은 한 손으로 턱을 쓰다듬으며 다시 물었다.
“십만 냥이 아니라 삼만 냥이면 음가경 그놈을 죽이고도 남을 텐데. 왜 순순히 십만 냥을 넘기려 한 거지?”
“놈의 별호는 망혼살객입니다. 집단에 속하지 않고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낭인 같은 놈이지요. 삼 일 전 갑자기 나타나 십만 냥을 요구했습니다. 삼 일 안에 놈을 죽일 정도의 고수를 섭외하긴 어렵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저희 같은 놈들이 정파에 의뢰할 수도 없고 말입니다.”
용식의 말을 들어 보니 음가경은 전형적인 사파인이었다.
문득 적사결은 과거 사무련주 백천악의 말이 떠올랐다.
-초대부터 내려온 본련의 방침은 자유방임주의랄까. 한 마디로 모두 자신의 의지대로 생각하고 행동할 자유가 있다는 것이지.
자유방임은 개뿔.
놈들의 그 같은 생각 때문에 중원의 쓰레기란 쓰레기는 모두 사파로 흘러들어갔고 사람 같지 않은 짐승새끼는 사파에 가장 많았다.
사무련이라는 거대한 세력이 자정작용을 한다고는 하지만 중원 전역에서 끊임없이 쏟아지는 오물들을 모두 처리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적사결은 사무련이 있기에 악인들이 계속해서, 더 많이, 더 빠르게 생긴다고 보는 주의였다.
음가경은 일수회 같은 곳을 돌며 폭력으로 원하는 것을 갈취하는 자유를 선택한 개새끼였다.
‘그나저나 음가경 그 녀석이 나타난 지 삼 일째라는 말이지? 흠…….’
적사결은 삼일이라는 기간에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용식이라고 했지?”
“그렇습니다.”
“네놈의 음식값은 십만 냥으로 퉁쳐 주마.”
“감사합니다. 대협.”
역시 자신의 생각대로 순순히 따르는 것이 정답이었다 생각하는 용식이었다.
한데 적사결의 말은 끝나지 않았었다.
“단, 조건이 있다.”
“말씀하십시오.”
“수금장부는 모조리 태우고 현물은 원주인에게 돌려주어라. 또한 집문서와 땅문서는 처분 후 현금으로 만들어, 오늘 안에 풍류객잔으로 가져와라.”
“예, 그대로 따르겠습니다.”
“또한 일수회는 오늘부로 해체다. 수하들은 오늘 모두 떠나되 용식이 네놈은 모든 사항을 확인 후 떠나라. 향후 근방에서 네놈들이 있다는 소문을 들으면 반드시 찾아가 고기육편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적사결은 서슬 퍼런 으름장을 놓은 후 품속에서 꺼낸 것을 용식에게 던졌다.
그것은 무산대사가 주었던 소림 속가 문파, 신현문의 제자임을 증명하는 신분패였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본좌의 신분패다. 늦어도 내일쯤이면 종리세가 그놈들이 올 것이니 본좌에 대한 것을 묻는다면 그것을 주도록 하거라.”
강동 백대고수라는 음가경 정도의 사파인이 나타났는데 종리세가에서 나흘 이상 모를 리 없었다.
오대세가에 미치진 못하나 나름의 세를 구축하고 있는 가문이니 말이다.
한데 자신들의 관할에서 소림 속가제자가 날뛴 것은 물론 그 재산까지 몰수했다면 어찌 될까?
더구나 자신을 찾는 나한승들은 지금쯤 근방까지 포위망을 넓혀 왔을 것이다.
두 집단의 부딪힘은 이쯤 되면 필연이라 할 수 있었다.
‘수사에 혼선을 주는 것이 도주의 기본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