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이혼대법 17화>
“끄억. 끄억.”
“웁. 우웁.”
작두를 비롯해 그의 수하들은 올라오는 구역질을 되새김질해 가며 요리 아닌 요리를 씹어 댔다.
토할 수도 없는 것이 적사결이 시퍼런 광망을 뿜어내며 지켜보기에 달달 떨며 턱을 움직여댔다.
하나 오십 명이서 팔백인 분의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기는 불가능한 것 또한 사실이었다.
‘두목. 이러다 우리 죽어요!’
‘어떻게 좀 해 봐요!’
‘저걸 어찌 다 먹어요!’
눈빛만으로 의사를 주고받는 작두파 일원들은 눈물콧물 쏟으며 두목인 작두를 바라봤다.
‘나 보고 어떡하라고 이 새끼들아…….’
작두 역시 감히 반항할 생각하지 못하고 눈앞의 감자껍질을 입으로 가져갔다.
그나마 스스로 먹으니 조금씩 먹지 반항하면 눈앞의 부하처럼 강제로 씹고 뜯고 맛보고 삼켜야 했다.
한데 그때 작두의 눈동자가 흔들리며 부르르 떨었다.
“적운 아저씨. 여기 말씀하신 잔반 가져왔어요.”
아화와 아낙들은 사람들이 먹고 남은 잔반을 긁어모아 가져온 것이었다.
“어, 그래. 수고 많았구나. 여기 놓고 가렴.”
작사결은 바닥에 놓인 십여 개의 항아리를 보며 말했다.
“야 이것들아 빨리 빨리 처먹어라. 후식도 벌써 나왔잖아.”
히이이익.
작두는 바닥을 기며 적사결에게 다가가 그의 바짓가랑이를 붙들었다.
“대…… 대협.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살려 주십시오. 아니 죽여 주십시오. 대혀업!”
굵은 눈물을 흘리며 작두는 바닥에 머리를 쿵쿵 찧었다.
“내 요리가 그렇게 싫나? 이거 짬밥이라는 건데 나름 맛있으니 일단 먹어 봐. 먹어 보면 생각이 달라질 거야.”
콰콱.
적사결은 작두의 턱주가리를 움켜잡고 입을 벌렸다.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일까.
작두는 번쩍하고 기발한 생각을 떠올렸다.
“대협. 포…… 포장해 주십시오. 싸 가겠습니다. 가져가서 먹겠습니다.”
작두의 임기응변에 수하들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고개를 연신 끄덕여댔다.
역시 두목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는 듯했다.
“싸 가겠다고?”
“예. 이렇게 맛 좋은 음식을 하루만 먹을 순 없지 않겠습니까. 두고두고 먹으려고 팔백인 분을 주문한 거였습니다.”
“그래에?”
적사결은 작두의 얼굴을 놓고 씨익 웃었다.
“가져가. 한데 가기 전에 대금은 치러야지?”
“예! 예! 드려야습죠.”
작두는 벌떡 일어나 품에서 전낭을 꺼내 들었다.
“여기 있습니다. 족히 오백 냥은 될 것입니다.”
“엥? 오백 냥? 장난해?”
작두는 적사결의 미간이 좁아지자 수하들을 보며 일갈했다.
“이것들아 뭐하느냐!”
척하면 척인지 수하들도 돈이 될 만한 것을 탈탈 털며 모았다.
“에이. 이 정도면 육백 냥도 안 되겠는데. 재료값도 안 나오겠어.”
“어…… 얼마면 되겠습니까?”
“큰 거 하나.”
“처…… 천 냥 말씀이십니까. 지금은 없고 수하를 보내 전장에서 찾아오라 하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뭔 소리야. 요즘 인건비가 얼만데. 만 천이백두 냥인데 깔끔하게 꼬랑지 떼고 만 냥에 해 주지. 어서 다녀와.”
적사결의 능청스러운 태도에 작두는 말문이 막혔다.
만 냥이 무슨 동네 똥개 이름 부르듯이 말하는 통에 어이가 없기 때문이었다.
“어이. 표정이 띠꺼운데. 싫어?”
“……으음.”
“뭐? 응? 이 새끼가 먹고 배 째라네 지금. 진짜 배떼지 확 째 줘?”
적사결은 사왕을 빼 들고 으르렁거렸다.
작두는 주저앉으며 무릎을 꿇고 사정했다.
“대협 정말 만 냥은 어렵습니다. 그동안 모은 것을 탈탈 털어도 오천 냥 정도인데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흐음…… 오천 냥이라…….”
적사결은 팔짱을 끼고는 고민하는 척 고개를 까딱거렸다. 그러고는 한참을 뜸을 들인 후 입을 열었다.
“반이나 후려치는 걸 덥석 물자니 역시 호구 잡히는 것 같은데.”
“대혀어업!”
“그러게 왜 무리하고 그래, 쯧쯧쯧.”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한 번만 용서해 주시면 착하게 살겠습니다. 흐흑.”
적사결은 작두의 표정에서 진심을 엿보았고 그제야 본론을 꺼냈다.
“한데 듣자 하니 용문객잔에도 똑같은 양을 주문했다며? 그것까지 합치면 상하기 전에 너네가 다 먹지는 못할 텐데. 어깨 힘 좀 주는 애들이 다 같이 먹으려고 한 거지? 걔들은 돈 안내?”
분명 이놈들 뒤로 상납을 받는 패거리가 있을 것이었다.
큰돈이 필요할 때마다 쓰는 수법이라 했으니 말이다.
작두도 이를 눈치챘는지 고개를 주억거리며 입을 열었다.
“맞습니다. 대협의 말대로 다른 녀석들이 있습니다.”
“근데 걔들한테 음식값을 청구할 수 있나? 주문은 니들이 한 건데 말이야.”
“할 수 있습니다. 같이 먹기로 했으니 말입니다.”
갑자기 막대한 상납금을 받아먹으려 했으니 공범이다.
작두는 눈앞의 적사결이 애초에 그들까지 노리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노리고 있었다면 그놈들을 감당할 수 있다는 뜻.
작두는 복잡하게 계산하지 않고 촉이 이끄는 대로 결정을 내렸다.
“일수회라고 있습니다. 주문한 음식은 그놈들이 먹으려 주문한 것입니다.”
사실 음식이 아니라 돈이지만 뭐 상관없었다.
그 새끼들이 다 처먹으려고 한 건 사실이니까.
“일수회? 뭐하는 놈들이지? 그냥 니들 같은 놈들인가?”
“아닙니다. 놈들은 돈을 빌려 주고 이자를 받아먹는 짓을 합니다. 다만 전장보다 이자가 좀 세지요.”
“이자가 센데 사람들이 왜 이용하지?”
“전장과 달리 따로 저당을 잡지 않으니까요. 신용에 상관없이 무조건 돈을 빌려 주는 놈들입니다. 다만 어떻게든 원금과 이자를 받아 내죠.”
“여기 놈들은 개짓거리도 빡대가리 굴려 가며 하는구나.”
천마신교의 영역에 일수회 같은 복잡하게 돈놀이를 하는 놈들은 없었다.
조금이라도 이상한 짓을 하는 쓰레기들은 모조리 모가지를 쳐 버렸으니 말이다.
한데 정파 영역의 파락호들은 겉으로는 가식을 떨고 뒤로 구린 짓을 하는 정파 놈들을 그대로 빼박은 모양이었다.
“너도 돈 빌렸냐?”
“…….”
“됐다. 묻는 내가 바보지.”
“……죄송합니다.”
적사결은 작두의 수하 한 놈을 시켜 오천 냥을 찾아오라 보내고 나머지는 음식물들을 옮기도록 했다.
그리고 작두를 앞세워 일수회로 움직였다.
* * *
일수회주 용식은 진땀을 뻘뻘 흘리며 눈앞의 사내를 대했다.
조금만 수틀려도 수하들을 죽이는데 주저하지 않았고, 이는 자신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얼마나 기다려야 되지? 삼 일이면 된다 하지 않았나?”
“지…… 지금 가지고 오는 길일 겁니다. 한 시진 아니 반 시진만 기다려 주십시오.”
“일다경! 이후 일각씩 늦을 때마다 네놈의 사지를 자를 것이다.”
“헉! 예…… 예.”
용식은 고개를 연신 조아린 후 밖으로 나와 수하들을 닦달했다.
“영신포목으로 간 놈은 도착했느냐?”
“예, 현금과 전표는 모조리 쓸어 왔고 모자란 것은 비단으로 채워 왔습니다.”
“멍청한 새끼! 누구 죽는 꼴을 보고 싶은 것이냐. 전장에 가서 당장 현금으로 만들어 와!”
용식은 수하의 머리통을 퍽퍽 쳐가며 욕을 해 댔다.
“사하술도가 쪽은 어떻게 됐어?”
“그, 그게 마찬가지로 모자라서 술로 받아왔습니다. 죄송합니다.”
“시바랄! 너도 당장 튀어가, 새꺄!”
용식에게 배를 걷어차인 수하는 바닥을 나뒹굴었다.
“뒷골목 새끼들은 어떻게 됐어?”
“흑견파, 왕이파, 중구파는 완납했습니다. 다만 작두파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뭐!? 아직!? 애들 보냈어!?”
“바, 방금 보냈습니다.”
용식은 이를 바득바득 갈더니 손바닥에 침을 뱉고 몽둥이를 손에 들었다.
“일각 준다. 가서 돈 받아와. 일각 후에 장부에 적힌 돈 못 받아 온 새끼들은 내 손에 뒈질 줄 알아!”
눈깔을 뒤집으며 몽둥이를 집어 드는 그때였다.
“이야 많이도 모여 있네. 이래서 그렇게 많은 양을 시킨 거였구나.”
정문으로 당당히 들어오는 이는 적사결이었다.
“뭐냐, 저 새끼는? 못 보던 얼굴인데.”
용식의 물음에 수하들도 어리둥절하며 적사결을 바라보았다.
적사결은 고개를 돌려 작두에게 눈을 부라렸다.
“야, 여기 맞아? 확실해?”
“예. 맞습니다. 어느 안전이라고 제가 거짓을 아뢰겠습니까. 저기 저놈이 용식입니다.”
작두는 손가락으로 단청 위의 용식을 가리켰다.
“뭐? 용식이? 야 작두 너 이 새끼 뒈지고 싶어!? 가져오란 돈은 어디 있어!?”
작두는 그런 용식을 보며 이죽거렸다.
“얘들아 돈 가져와라.”
“예, 형님.”
작두의 명에, 음식이라 부르기 힘든 잔반들이 가득 담긴 수레를 줄줄이 끌며 들어왔다.
“내가 요즘 요식업에 투자하느라 당장 현금이 없소. 당신 돈은 저 요리에 다 투자되어 있으니 일단 저거라도 가져왔소. 어휴, 얼마나 돈이 급하면 현물까지 긁어 왔소.”
작두는 장원 곳곳에 널린 비단과 술동이 등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돈으로 이 지역을 아우른다는 소문이 사실인 것이었다.
용식은 작두의 태도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저딴 쓰레기를 가져와서 뭐라? 이 파락호 새끼가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모양이구나!”
원하던 대답이 나왔기 때문일까.
작두는 입꼬리를 올리며 적사결의 뒤로 빠졌다.
“야. 너 뭐라 그랬냐? 내 요리가 쓰레기라고?”
적사결이 무표정한 얼굴로 되묻자 수하로 보이는 주변 놈들이 나불거렸다.
“뭐야, 저 미친놈.”
“요리라니? 뭔 개소리지?”
“신종 정신병인가.”
항상 생각 없이 굴리는 혓바닥이 문제지.
적사결은 이죽거리며 사왕을 빼 들었다.
쉬이이익. 촤좌좍.
채찍처럼 늘어나는 오른팔은 현란하게 춤추며 나불거린 놈들의 머리통을 베어 냈다.
순식간에 세 명의 생목숨이 날아가자 일수회 놈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검을 뽑고 있었다.
‘뭐…… 뭐지 지금 그건…….’
가장 멀리 떨어져 있었기에 용식은 똑똑히 보았고 생전 처음 보는 광경에 입을 떡 벌리고 있었다.
“말 한 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는데 어쩌냐. 네놈들은 방금 천 냥 빚이 생겨 버렸다. 한 놈, 두 놈, 세 놈, 네 놈. 어휴 이게 다 얼마야.”
장원 내에 보이는 인원만 백여 명.
죽은 놈을 빼더라도 대충 십만 냥은 될 법했다.
한데 돈 얘기가 나왔기 때문일까. 정신이 번쩍 든 용식이 일갈했다.
“무슨 사술을 부렸는지 모르나 검기도 쓰지 않은 녀석이다. 죽여 버려!”
검기를 쓰지 않은 것인지 못한 것인지는 모른다.
하나 용식은 놈이 일류 고수라면 검기를 날려 베어 냈을 것이라 생각했다.
칼 좀 쓰는 놈들은 검기를 뽑아 내는 것을 자랑처럼 여겼으니 말이다.
용식의 의도를 찰떡같이 눈치챈 수하들 역시 망설임 없이 적사결에게 달려들었다.
완숙에 이른 일류 고수가 아니라면 자신들의 수를 당해 내지 못할 것이라 판단한 것이었다.
“거참. 대가리나 손발이나 아주 죽이 척척 맞는구나.”
적사결은 가장 앞서 달려오는 놈을 향해 사왕을 치켜들었다.
동작이 컸기에 그걸 본 놈은 거치도를 두 손으로 들어 올려 공격을 막아 갔다.
째앵. 쫘아악.
현철이 섞인 명검조차 갈라 버리는 사왕이니 거치도와 함께 사람 하나 일도양단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죽어!”
좌측에서 두 개의 검이 머리와 가슴을 향해 찔러 들어왔다.
두 검 사이로 왼손을 내민 적사결은 손가락으로 검면을 튕겼다.
티잉. 티잉.
검로를 이탈한 검이 적사결의 좌우로 벌어지며 공간이 생기자 사왕이 움직였다.
쉭. 서걱. 서걱.
일합에 두 사람의 목을 베자 이번엔 뒤쪽에서 예기가 느껴졌다.
적사결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반보 뒤로 움직이며 사왕을 역수로 잡았다.
푸우욱.
겨드랑이 사이로 나온 사왕의 칼끝이 뒤에서 공격한 놈의 심장을 찔렀다.
적사결은 무시무시할 정도로 부드러운 손맛에 전율하고 있었다.
‘역시 베든 찌르든 부드럽기가 여인네 궁둥이 같구나. 마치 두부를 써는 느낌이야…….’
실전을 겪어 보니 예기만이라면 적령보다 낫다고 생각이 드는 적사결이었다.
자신이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일수회 놈들은 한 두 명이 아닌 다섯이 한꺼번에 방위를 접하며 공세를 펼쳤다.
“학습 능력은 있는 놈들이구나.”
입꼬리를 올린 적사결은 사왕을 도집에 꽂고 제자리에서 최대한 뛰어올랐다.
경공이 아닌 순수한 근력만으로 삼 장 가까이 솟아오른 것이었다.
허공에 뜬 적사결이 아래를 내려다보며 두 주먹을 번갈아 내질렀다.
퍼버버버버벅.
팔이 길어지며 일권을 꽂아 넣고 그 반발력으로 체공시간을 늘리는 수법이 반복되었다.
늘어나고 줄어드는 수발이 어찌나 빠른지 누구도 제대로 대응을 못하고 있었다.
손닿지 않는 곳에서 철퇴가 내려꽂히는 공세에 다섯은 피떡이 된 채 바닥을 나뒹굴었다.
타탓.
적사결이 바닥에 내려섰지만 더 이상 아무도 달려들지 못하고 있었다.
용식은 사색이 된 얼굴로 소리쳤다.
“도…… 도대체 네놈은 누구냐!?”
적사결이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나? 풍류객잔 신입 숙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