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이혼대법 16화>
다마스커스 강.
고대 파사국에서도 환상의 철로 불렸으며 지금은 그 채취 장소나 제련법이 사라져 전설로만 남아 있었다.
그것으로 만든 무구는 파사국 인근의 나라에게는 악마의 무구로 불리는 신병이기였다.
강철을 두부 자르듯 베고 그 강도는 어찌나 단단한지 부러지는 법이 없어 수많은 인명의 목숨을 앗아 갔기 때문이었다.
“적령이 보면 질투하겠는걸. 하하하.”
적사결은 허리 뒤로 패용한 사왕을 쓰다듬으며 걷고 있었다.
상당한 투자를 했지만 적사결은 만족했다.
소림에서 얻은 영약은 넘칠 정도로 많았고 지금 당장은 취할 수도 없었다.
현재의 몸이 무허의 것이기 때문이었다. 남의 몸에 뭐 하러 좋은 걸 먹이겠는가.
적사결이 풍류객잔으로 돌아오니 아평을 비롯해 다수의 사람들이 음식 준비에 한창이었다.
팔백인 분을 준비하려니 임시로 사람을 고용한 모양이었다.
“이제 오세요?”
적사결이 다가오자 아화가 냉큼 달려와 반겨 주었다.
언제 보아도 기분을 좋게 만드는 아이였다.
“못 보던 칼이네요. 아저씨 혹시 상인이 아니라 무인이었어요?”
“상인이기도 하고 무인이기도 하지. 이곳저곳 돌아다니려면 호신술은 필수거든.”
“하긴 무서운 세상이니까요.”
아화의 말대로 국외로는 북로남왜, 국내에서는 잦은 반란과 도적떼까지 삭막하기 그지없는 세상이었다.
“음식 준비는 잘 되어 가니?”
“재료가 방금 도착해서 막 다듬고 있어요. 오후 내내 저도 도와야 될 것 같아요. 한데 정말 괜찮을까요?”
“걱정되느냐?”
“되죠…… 왜 안 되겠어요…….”
아화가 우울한 얼굴로 고개를 숙이자 적사결은 웃으며 아이의 머리를 헝클었다.
“걱정한다고 해결되는 일은 없어. 그 일이 닥칠 때까지 최선을 다하면 어느 순간 해결되어 있을 거다. 시간이 약이다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닌 거지.”
“옆 가게 황씨 할아버지 같은 말을 하시네요. 히히.”
“하하하하. 그렇구나. 나도 모르게 꼰대 짓을 한 모양이구나.”
아화는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아저씨. 그럼 전 엄마 아빠 도와드리러 갈게요. 필요한 거 있으면 부르세요.”
“오냐.”
적사결은 피식 웃고는 객방으로 향했다.
이곳에 자신이 할 일은 없었다.
* * *
다음 날.
적사결은 아침부터 객잔에 앉아 간단하게 만두를 먹었다.
아평과 그의 아내는 불안하게 객잔의 문을 주시하는 중이었다.
아화는 방에서 나오지 못하도록 했기에 객잔에는 그들 세 사람만이 자리해 있었다.
차르륵.
문의 발이 젖혀지며 한 명의 장한이 들어섰다.
“주인장 계시오.”
“예, 어서 오십시오. 오늘 예약 준비는 다 되어 있습니다. 다들 오신 것인지요?”
“아아, 그것 때문에 왔소. 형님께서 오늘 급한 일이 생겨 시일을 좀 미루자고 전하라 하셨소이다.”
“어…… 얼마나 말입니까?”
“열흘 뒤, 그때 다시 오겠소. 미안하게 되었으니 계약금은 돌려주지 않아도 되오.”
역시나 예상했던 반응.
적사결은 먹고 있던 만두를 입에 털어 넣고 다가갔다.
“쩝쩝. 그래서 오늘 예약은 취소한다는 거요?”
“네놈은 뭐냐?”
“풍류객잔 신입 숙수니 말해 보시오. 취소하는 것 맞소?”
“그래, 취소다. 열흘 뒤…….!”
서걱. 텅. 텅. 데구루루.
‘와…… 무지하게 잘 드네. 간밤에 관리 좀 했더니 어제보다 훨씬 나은걸.’
베는 맛도 미처 느끼지 못했건만 사왕은 파락호의 머리를 손쉽게 날려 버린 것이었다.
적사결의 솜씨가 좋다 하더라도 내공도 쓰지 않고 이토록 깔끔하게 자른 것은 사왕의 예기가 뛰어나기 때문이었다.
“주인장. 내 다녀올 테니 주변 상인들과 주민들 오면 준비한 음식들 들고 계시오.”
“저…… 적운 님,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당연히 괜찮지 않소. 닭 잡는데 용 잡는 칼을 써야 되는데 어찌 괜찮겠소.”
“…….”
적사결은 빙그레 웃어 주고는 객잔을 나섰다.
“그나저나 적월 이것들은 하루가 지났는데 뭐 이리 굼떠. 내가 이런 잡것들 잡느라 친히 나서게 되다니…… 말세다 말세야.”
투덜거리며 걷는 적사결의 눈에 조그맣지만 꽤 번지르르한 집들이 들어왔다.
십여 개의 모옥이 모여 있는 이곳이 그들만의 성이랍시고 경계근무자까지 세워둔 작두파가 있는 곳이었다.
“여기가 작두파 소굴이 맞소?”
“뭐? 소굴? 이놈이 미쳤나 감히 여기가 어딘지 알고.”
“풍류객잔에서 왔소. 두목 좀 만나러 왔으니 안내하시오.”
적사결의 말에 경계를 서던 두 장한은 서로를 보며 말했다.
“풍류객잔이면 임가 녀석이 예약 취소하러 간 곳 아닌가?”
“맞을걸. 박가 녀석이 용문객잔이니 임가는 그곳이 맞지 싶은데.”
풍류객잔 말고도 수작질을 한 곳이 또 있었나.
적사결은 미간을 좁히고 다시 물었다.
“예약 취소 말이지?”
“그렇지. 예약 취소…….”
서걱. 툭. 데구루루.
“헉…….”
“헉 소리 하고 자빠졌네. 너도 예약 취소냐?”
“아…… 아니 저는…….”
“아니면 들어가서 두목 나오라 그래.”
적사결의 눈빛에 기가 죽은 파락호는 쏜살같이 안으로 들어갔다.
모옥들이 둥그렇게 둘러친 가운데는 공터가 있었다.
“이야. 요즘 파락호들은 수련도 열심히 하나 봐. 조잡하지만 연무장 비슷한 것도 만들어 놓고 말이야.”
적사결이 이죽거리며 들어서자 각 거처에 있던 패거리 오십여 명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그러고는 그를 가운데 두고 둘러싸며 말했다.
“연무장이 아니라 처형장이다 이놈아.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겁도 없이 연장을 들고 찾아와!?”
“저놈이 방금 전 단칼에 장과를 죽였습니다. 형님들.”
“넌 구경만 했냐, 새꺄!?”
경계를 섰던 장한의 뒤통수를 때리며 나타난 이는 작두파의 두목인 작두였다.
“네놈 뭐하는 새끼냐. 중구파 놈이냐?”
작두의 말에 적사결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나 풍류객잔 신입 숙수요. 예약 확인차 들렀지.”
“예약 확인? 야, 애들 안 보냈어?”
작두는 옆의 수하를 보며 물었다.
“임가 녀석 보냈습니다, 형님. 분명히 예약 취소하라고…….”
뎅강.
눈 깜짝할 사이에 모가지는 허공을 날았다.
적사결이 사왕을 휘둘러 묻어 있던 피를 털어 내고는 중얼거렸다.
“아, 시발. 벌써 세 놈이나 예약 취소네. 요즘 왜 이렇게 밥 남기는 쌍노무 새끼들이 많아.”
“……!”
상대의 움직임도 보지 못한 상황.
무슨 수를 쓴 건지 놈은 서 있는 자리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삼장 밖의 수하를 죽인 것이었다.
작두는 침을 꼴깍 삼키며 물었다.
“어…… 어느 고인이십니까? 그리고 밥을 남기다니요…….”
“고인은 무슨. 아까 말했잖아 신입 숙수라고. 그리고 예약해 놓고 안 처먹으면 밥 남기는 거지 뭐긴 뭐야. 우리 가게는 잔반 남기면 뒈져.”
분명 풍류객잔은 밥값이 싼 대신 잔반이 남으면 값을 두 배로 쳐야 한다 써 붙여 놓은 곳이었다.
실제로는 숙수인 아평의 솜씨가 좋아 남기는 경우는 거의 없었지만 말이다.
작두가 그 말을 하니 적사결은 짜증을 내며 말했다.
“그제부터 객풍이 바꿨지. 잔반 남기면 모가지도 남기고 가는 걸로. 말해. 너도 예약 취소냐?”
살기등등한 적사결의 물음에 작두는 입이 바짝바짝 말랐다.
부하들이 거의 온전하게 남아 있었지만 뒷골목 생활을 오래한 그의 촉은 말해 주었다.
덤비면 십할의 확률로 뒈진다고 말이다.
“대…… 대협. 지금 가려고 다들 나오던 참이었습니다. 가…… 가시죠.”
“그래? 다행이네. 밥 안 남겨도 되고. 팔백인 분 준비하느라 얼마나 뼈 빠지게 일했는지 아냐?”
“죄…… 죄송합니다. 가서 한 톨도 남기지 않고 먹겠습니다. 예, 먹어야죠.”
고개를 조아리는 작두를 필두로 작두파 패거리들이 풍류객잔으로 달려갔다.
적사결은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그 뒤를 따랐다.
풍류객잔에 도착하니 이미 잔치는 벌어져 있었다.
주변 상인들과 주민들이 웃음꽃을 띄우고 음식을 먹고 술잔을 부딪치고 있었다.
한데 작두파가 나타나니 급속도로 분위기가 얼어 갔다.
“이…… 이보게, 저기 보게.”
“헉! 작두파 놈들 아녀…….”
“준비한 음식 우리가 먹었다고 분탕질 치는 건 아니겠지?”
좌중은 술렁였고 먹던 것도 내려놓고 눈치를 보고 있었다.
적사결은 앞으로 나서 포권을 하며 말했다.
“자자. 다들 그리 계시지 말고 즐기십시오. 이들은 신경 쓰지 말고 마음껏 드시면 됩니다.”
적사결의 말에도 사람들이 쉽사리 수저를 들지 못하자 아화가 나섰다.
“황씨 할아버지, 이런 세상은 먹을 기회 있을 때 먹어 둬야 된다면서요. 강씨 아저씨,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곱다고 안 그러셨어요? 아니 설마 저희 아빠 요리가 맛이 없어요?”
“아, 아니 그럴 리가 있겠느냐. 아평의 솜씨야 전하현 제일이지.”
“그럼 어서 드세요. 어제부터 아빠가 있는 솜씨 없는 솜씨 다 부려 가면서 만든 거라고요.”
아화가 눈을 치켜뜨고 사람들의 손에 수저를 쥐어 주며 돌아다녔다.
황씨라 불린 노인은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허허허. 다들 일단 들게나. 이미 먹고 있던 마당에 지금 와서 안 먹는들 뭐 달라지는 게 있겠는가.”
황노인의 말에 그제야 사람들은 조금씩 음식을 먹으며 입을 오물거렸다.
작두는 그런 모습을 보고는 적사결의 눈치를 보며 물었다.
“저기 대협. 이미 자리가 꽉 찬 듯한데 저희는 어찌…….”
“아. 그쪽들 음식은 저어기 객잔 뒤에 준비되어 있어. 따라와.”
작두파를 이끌고 간 곳에는 산더미 같이 쌓인 음식쓰레기들이 있었다.
양파와 감자를 다듬고 남은 껍질부터 살을 발라낸 생선뼈까지 다양했고 팔백인 분을 준비하며 나온 것들이었으니 그 양은 어마어마했다.
“자, 맛있게들 먹어. 만한전석 부럽지 않지?”
“…….”
파락호들은 하나같이 사색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중 한 명은 빽 소리를 지르며 도망치려 했다.
“썅! 미쳤어? 쓰레기를 먹게? 난 못 먹어!”
터억.
도망치다 뒷덜미를 잡힌 파락호는 적사결이 있는 곳으로 질질 끌려왔다.
작두는 그 모습을 보고 눈이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파…… 팔이 길어졌잖아. 이런…… 괴…… 괴물이었다니…….’
적사결의 팔이 길어지며 작두의 수하를 붙잡은 것이었다.
“야. 못 먹어? 내가 어제 하루 종일 준비한 건데? 지금 본 숙수의 요리가 맛이 없다는 건가?”
“저…… 저게 무슨 요리야. 먹을 수 있으면 당신이 먼저 먹어 봐!”
“난 준비하면서 간도 보고 하느라 많이 먹었어. 팔백인 분이라 그런지 간만 봤는데도 배부르네. 시발.”
“차라리 죽여! 죽어도 못 먹어!”
적사결에게 멱살을 잡힌 장한은 도망도 못가고 바둥거리며 저항했다.
“넌 내가 책임지고 먹인다. 감히 내 요리를 쓰레기라 비하하다니. 이리와.”
“웁, 우웁, 웁.”
장한의 입에 음식 아닌 음식을 우겨넣은 적사결은 곧이어 점혈을 짚었다.
타타탁.
그러자 장한의 턱이 움직이며 음식 아닌 음식을 씹어댔다.
우걱. 우걱. 쩝. 쩝.
“잘 먹네, 새끼. 막상 먹어 보니 맛있지?”
적사결은 환하게 웃으며 양파 껍질을 가득 들고 장한의 입속에 쑤셔 넣었다.
“많이 먹어. 양파는 껍질에 영양소가 많으니까.”
장한은 눈물을 찔끔찔끔 흘리며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입속에 가득한 것들 때문에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악마 같은 새끼. 죽여. 차라리 죽이란 말이다!’
그의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적사결은 입꼬리를 올리며 점혈을 짚었다.
타탁.
그러고는 장한의 목울대가 움직이며 꿀꺽하는 소리와 함께 넘어갔다.
“목 막히면 말해. 기름칠 제대로 해 줄 테니까.”
그 말을 하는 적사결의 옆에는 요리에 쓰고 남은 폐기름이 담긴 통이 몇 개나 놓여 있었다.
중화는 튀기고 볶는 요리가 주를 이루다 보니 그 양 역시 무지막지 했다.
“대, 대협. 잘못했습니다. 제가 죽을죄를…… 우웁.”
“그런 말할 시간에 한 입이라도 더 먹어. 니들이 주문한 게 얼마나 많은데. 언제 다 먹을래?”
장한의 입에 생선뼈를 통째로 넣고 똑같은 짓을 세 번이나 반복한 적사결이 뒤를 보며 말했다.
“뭐해? 니들은 안 먹어? 떠 먹여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