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이혼대법 14화>
산을 내려온 적사결의 최종 목적지는 정해져 있었다.
천마신교의 본단이 있는 신강.
대명제국의 영토 중 가장 척박하며 새외로 구분될 정도로 변방에 위치한 지역이었다.
한 마디로 무림에 적을 둔 집단 중 중원에서 가장 먼 곳에 자리 잡은 것이다.
‘신강까지 가는 길도 멀지만 이곳저곳 들르려면 더 오래 걸리겠어.’
본단으로 곧장 돌아가 무허를 조질 수도 있었다.
하나 놈이 순순히 몸을 돌려줄까?
그 노괴는 어떤 고문을 받더라도 입을 열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사실 강도 높은 고문을 할 수도 없지. 내 몸이니까…… 빌어먹을…….’
하니 돌아가기 전에 이렇게 된 원인과 되돌릴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러기 위해선 천하사괴, 그들의 주변을 파 보는 것이 유일한 방법인지도 몰랐다.
‘일단 제일 가까운 놈도 하남성에 있었지.’
천하사괴는 워낙 전국구에서 사고를 치기에 특정 지역을 대상으로 활동하지 않았다.
하나 그중 두 사람, 무허와 지금 적사결이 노리는 자.
그들은 하남에 적을 두고 있기에 근방에서 활동을 했고, 가까이 있다 보니 친분도 깊었다.
‘기다려라. 뼈째 발라 버릴 테니까.’
적사결은 하남성 낙양을 목표로 움직였다.
“아오, 땡중 새끼들, 드럽게 발 빠르네.”
적사결은 후미진 산길을 걸으며 혀를 찼다.
산을 내려가 첫 번째 마을에 들어가기 직전 소림승들을 발견하고는 다시 산으로 올랐기 때문이었다.
이후로도 마을을 발견할 때마다 같은 처지에 처해야 했고 결국 산길을 위주로 이동 중이었다.
노숙을 할 수밖에 없었고 이동 속도는 느렸지만 들키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자신을 찾는 무승들의 눈이 벌게져 있었으니까.
외모로는 들키지 않겠지만 녹옥불장이 있기에 검문을 당한다면 걸릴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가다간 금의위 그 새끼들한테 따라잡힐 수도 있는데 말이지…….”
적사결의 말대로 추적자는 소림승만이 아니었다.
천리추종향으로 자신을 쫓는 금의위가 어떤 면에서는 더욱 골치 아팠다.
“귀찮은데 확 모가지 따서 산속에 파묻어?”
입으로 꺼낸 말을 실행할까 망설였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황실은 생각보다 끈질길뿐더러 놈들은 언제든 갈아치울 수 있는 소모품.
새로운 놈들이 계속해서 충원됨은 물론 그 인원도 증가할 것이었다.
“쫓아 올 테면 쫓아와 봐라. 수틀리면 발가벗겨서 나무에 매달아 놓지, 뭐.”
적사결은 산속을 평지처럼 주파하며 속도를 높였다.
전하현 풍류객잔.
적사결이 무려 열 개의 마을을 지나친 후 들르게 된 첫 객잔이었다.
소림에서도 아직 이곳까지 무승들을 푼 것은 아닌 듯했다.
“어서 오세요.”
십삼 세가량의 어린 여자애가 적사결을 반겨 주었다.
“식사만 하실 건가요, 며칠 묵고 가실 건가요?”
“하루 묵고 갈 예정이다. 일단 배가 고프니 이곳에서 제일 잘하는 것으로 몇 가지 내어 오거라.”
“네, 우선 이쪽으로 앉으세요. 방은 식사가 끝나시면 안내해 드릴게요.”
적사결이 자리에 앉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음식은 나왔다.
아직 점심 전이기에 손님이 많지 않아 그런 듯했다.
“저희 가게 특별 요리인 육사초면과 어향육사입니다. 혹시 술은 안 드시나요? 저희 어머니께서 담그신 죽엽청과 같이 먹으면 더 맛있답니다. 히히.”
“하하하, 그러하냐. 하면 그것도 한 병 내어 오거라.”
적사결은 점소이 소녀, 아화의 넉살에 기분 좋은 웃음을 지었다.
무허 때문에 술을 싫어하지만 그렇다고 못 마시는 건 아니었다. 그리고 무허의 몸이기 때문일까 육체가 술을 원한다는 느낌도 들었다.
“감사합니다, 복 받으실 거예요.”
아화는 빠르게 죽엽청을 대령했고, 그 아이의 말대로 죽엽청과 함께 먹으니 맛이 배가 되는 느낌이었다.
적사결은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기가 막히는구나. 네 덕분에 이런 맛을 알았으니 이건 그 보답이다.”
“감사합니다. 헤헤.”
아화는 빼는 척도 하지 않고 한 냥을 품에 넣었다.
“한데 손님은 상인이신가요? 저희 마을에는 상행으로 오신 거예요?”
아화는 적사결의 짐을 보며 물었다.
여행자라기엔 등짐에 봇짐에 지팡이까지 딱 봐도 상인으로 보인 것이다.
“뭐…… 그렇지.”
굳이 부정할 필요는 없었다.
그렇게 알아주면 뒤따라올 추적자들의 눈을 피할 수도 있고 말이다.
“어떤 물품을 파시는 거예요? 제가 여기 토박이라 아는 곳 되게 많아요.”
아화는 맹랑하게도 또다시 보답을 바라는 모양이었다.
“하하하하. 고 녀석 참. 예정된 주인이 있으니 그런 정보는 필요 없겠구나.”
“아이, 아깝다. 오늘 대박칠 수 있었는데. 헤헤헤.”
“하하하. 너라면 언젠가 그리될 것이니라.”
적사결은 아화를 보며 오랜만에 웃어 볼 수 있었다.
땡중들 틈에서 자신을 속이고 살며 쌓인 체증이 이 아이와 대화를 하며 가시는 기분이었다.
아화는 솔직했고 소림의 능구렁이 같은 놈들과는 다른 시원시원함이 있었다.
촤르륵.
그때 십여 명의 장한들이 객잔 내로 들어섰다.
“그럼 식사 맛있게 하세요. 필요한 것 있으면 부르시고요. 전 손님 맞으러 갈게요.”
“오냐. 덕분에 잘 먹으마.”
적사결은 죽엽청을 홀짝이며 아화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평범한 삶을 살았다면 저만한 아이가 있지 않았을까.
적사결은 피식 웃으며 잔을 마저 비웠다.
한데 기분 좋던 그의 귓가에 거슬리는 말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이고, 그렇게나 많은 양을 말입니까.”
풍류객잔의 주인인 아화의 아비가 방금 들어온 장한들 앞에서 난처함을 표하고 있었다.
“에헤이, 주인장. 그게 뭐가 많아. 며칠 사람 써서 준비하면 충분히 할 수 있을 거 아냐. 우리 형님께서 풍류객잔 음식을 무척 좋아하셔서 특별히 여기를 콕 집으셨는데 지금 나 보고 퇴짜 맞았다고 얘기하란 거야?”
사내는 짜증을 부리며 객잔 의자를 걷어찼다.
“돈 준다잖아. 여기 계약금도 있고. 뭐가 문제야?”
미간을 좁히고 눈을 있는 대로 부라리는 사내는 전형적인 뒷골목 파락호로 보였다.
적사결은 손짓으로 아화를 불렀다.
“무슨 일이더냐?”
“그게…….”
아화는 우물쭈물하며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정파의 영역도 마찬가지구먼. 하긴 저런 세상 좀 먹는 구더기들은 어디나 있는 법이지.’
적사결은 혀를 차며 다시 물었다.
“보호비를 달라고 하더냐?”
아화는 입을 앙 다물고 있다 대답했다.
“그건 아니고요.”
“그것이 아니다? 하면 무엇이지?”
“주문 예약을 해 달라고 하는데…… 그게 준비해야 할 양이 너무 많아서요…….”
“너무 많아? 얼마나 말이냐?”
“팔백인 분이요…….”
객잔의 규모로 보아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은 오십 명이 채 안 될 것이었다.
하니 아화의 아비가 쩔쩔 매고 있고 말이다.
‘뭔 놈의 파락호 새끼들이 팔백 명이나…….’
인근 뒷골목 패거리들이 다 같이 회합이라도 하는 건가.
한데 보통은 영역 다툼을 하는 경쟁 관계이기에 그럴 리는 없을 터.
적사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화야, 혹여 저놈들이 돈 떼어 먹을까 걱정인 것이냐?”
“그게…… 돈 떼이는 걱정은 크게 없어요. 전하현은 종리세가의 영역이라 그곳에 발고하면 해결될 테니까요.”
종리세가라면 오대세가에 미치지는 못하나 근자에 들어 그 세가 급격히 늘어나는 가문이었다.
몇 해 전 종리세가에서 의천맹의 맹주, 종리천을 배출한 이후 더욱 말이다.
‘그 병신 맹추 놈의 가문이 여기까지 세를 넓혔군.’
엄연히 이곳 전하현은 하남에 속해 있기에 소림의 입김이 있는 곳이었다.
소림은 전통적으로 하남성의 패자였고 말이다.
‘도가만이 아니라 불가도 점차 쇠퇴하는 건가…….’
과거 구파일방이라 불릴 당시에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하나 세월이 흘러 그들은 점차 그 세가 약화되고 작금은 오대세가라 불리는 다섯 가문이 정파의 주축을 이루고 있었다.
종리세가는 그 다섯 가문 아래 등급에 위치한 여러 무가 중에 한 곳이었고 말이다.
‘본좌가 몇 달 전 공동파 본산까지 밀어 버렸으니 도가는 무당과 화산, 불가는 소림. 그리고 개방만이 남은 건가. 구파일방의 잔재도 오래가지 못하겠군.’
과거엔 그들의 연맹을 무려 ‘무림맹’이라 하여 무림 전체를 대변하는 듯 오만한 이름으로 불린 적도 있었다.
그런 그들도 세월의 흐름 속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이다.
적사결은 비릿하게 웃으며 죽엽청 한 잔을 털어 넣었다.
“아화야. 돈 떼일 걱정이 아니라면 무엇이 문제더냐? 이 객잔에서 수용하기 힘들어 그런 것이냐?”
적사결은 다시 아화에게 물었다.
“그것도 그렇구요…….”
아화는 장한들의 눈치를 보며 속 시원히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까 자신에게 재잘거릴 때와는 딴판인 것이었다.
‘정황을 모르니 일단은 지켜 볼까.’
적사결은 아화를 곁에 두었다.
혹시나 패악질이 벌어지면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한데 파락호들과 아화의 아비 간의 대화는 조용히 마무리되는 듯했다.
“어쨌든 주인장! 앉을 자리는 밖에 천막을 치든 자리를 깔든 알아서 마련해 주면 돼. 하나 준비는 해 줘야 할 거야. 당신 오늘 재수 좋은 거야. 여기 계약금 스무 냥.”
장한은 두툼한 전낭을 아화의 아비에게 강제로 떠넘기고 객잔을 떠났다.
전낭이 양손 가득이지만 그는 씁쓸한 표정이었다.
“휴우.”
한 숨을 푹푹 쉬는 그의 옆에서 아내는 그를 위로하고 있었다.
적사결은 아화를 데리고 그들의 앞으로 다가갔다.
“이보시오. 대관절 무슨 일이오?”
“그것이…….”
적사결의 물음에 아화의 아비는 어렵게 입을 뗐다.
이어지는 그의 설명에 적사결은 어이가 없었다.
놈들은 전하현을 비롯해 인근 마을을 주름잡는 작두파라는 파락호들이었다.
요약하자면 간혹 큰돈이 필요할 때 놈들이 쓰는 수법이 이것이었다.
갑자기 보호비를 올리면 종리세가의 눈치를 봐야 하니 꼼수를 쓴다는 것.
꼼수는 이러했다.
영세 상인이 소화하기 힘든 과도한 주문 예약을 해놓고 피해를 입힌다는 것.
만일 어렵사리 준비를 한다면 당일에 예약을 취소하고, 준비를 해 놓지 않으면 나타나서 위약금을 물게 하는 수법이었다.
“예약 취소 시 계약금인 스무 냥을 날리게 되니 놈들은 위약금을 받을 때까지 똑같은 짓을 반복합니다. 만일 예약을 받지 않는다 대응하면 저희 가게는 예약이 안 된다 동네방네 소문을 내지요. 저희 같은 마을 객잔에서 예약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에 그런 소문은 치명적이고 말입니다.”
“그냥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피해를 입힌다는 것이로군. 거참, 여기 파락호 새끼들은 돈 써 가며 상인을 괴롭히나…… 한데 종리세가에 발고하면 될 것 아니오? 여기 관할이 거기라던데.”
적사결의 물음에 아화의 어미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종리세가는 항상 직접적인 피해를 입어야지만 움직이더군요. 예약 취소에 따른 피해를 말해도 계약금을 받지 않았느냐 뭐가 문제냐고 따질 뿐이라 합니다. 옆 마을 연흥객잔도 같은 피해를 입고 신고했으나 그리 대하는 무인들에게 분통이 터졌다 합니다. 저희 같은 이들은 세세하게 계약 항목을 따지지 못하는 것을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것이지요. 휴우…….”
객잔의 예약은 보통 구두로 행해진다.
거창한 거래가 아니기에 서면으로 남기지도 않고 영세 상인들은 계약서가 익숙하지도 않았다. 놈들은 그 빈틈을 파고든 것이었다.
한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그래도 종리세가 놈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정황만 잘 따져 보면 문제를 알 수 있을 텐데. 왜 그러는 것이지? 자칭 정도를 걷는다는 놈들 아닌가?”
적사결의 말에 아비와 어미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으나 아화가 분통을 터트렸다.
“정파는 무슨! 그놈들은 항상 그랬어요. 주정뱅이가 영업을 방해해도 술에 취한 것이니 이해하라 그러고, 약쟁이가 행패를 부려도 심신미약이니 금방 풀어 주고 우리는 보복당하고. 작두파가 은근슬쩍 괴롭혀도 형식적인 순찰을 돌 뿐 별다른 제재를 가하지도 않고!”
하여간 이 개똥같은 정파새끼들. 하는 짓거리 보면 절로 분통이 터진다.
“흑흑…….”
아화는 결국 눈물을 줄줄 흘렸다.
적사결은 아화의 말을 듣고 짐작할 수 있었다.
정파라는 족속들은 대악인은 발 벗고 나서 처단할지언정 잡범들은 수수방관하는 것이다.
즉, 알면서도 더러운 싹을 뿌리 뽑지 않는 것이었다.
적당히 청소하고 관리하며 옆에 두어야 자신들의 필요성도 부각되니까.
그리고 지들도 상인들로부터 관할 유지비니 보호비니 하는 것 따위를 받으니까 말이다.
“차라리 마교가 여기까지 왔으면 좋겠어요. 듣자 하니 그 사람들은 저런 놈들 다 죽인다던데…….”
“얘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아화, 너 엄마가 말조심하라고 항상 얘기했지!”
아화의 어미는 누가 들을 새라 아화의 등을 때리며 말했다.
적사결은 아화의 말에 또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아이고, 귀여운 녀석.’
아화의 머리를 쓰다듬은 적사결은 아화의 아비를 향해 말했다.
“주인장, 오늘 진짜 대박친 줄 아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