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이혼대법 12화>
* * *
“백호께서는 공주님의 추측을 어찌 생각하십니까?”
진무백은 왕욱에게 물었다.
“모르겠구나.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겠으나 놈을 검거할 단초라고는 무허대사뿐이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
왕욱은 한숨을 쉬며 하늘에 떠 있는 달을 바라보았다.
마치 자신들의 상황을 대변하듯 달은 어두운 구름 속으로 그 모습을 숨기고 있었다.
“일단 무허대사의 주변을 이 잡듯이 뒤진다. 놈을 잡지 못하면 우린 평생 강호를 떠돌게 될 것이야. 너도 공주님 성정을 잘 알지 않느냐.”
“예. 한 번 결정한 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번복하지 않으시지요. 휴우…….”
“한데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냐? 정황이라도 좀 알자꾸나.”
“죄송합니다. 공주님께서 함구하라 엄명을 내리셔서…….”
주녹정이 볼기짝을 맞았다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
모르긴 몰라도 자신은 참수되고 금의위에서 대대적으로 조사에 나설 것이다.
하나 그렇게 나선다고 놈을 잡을 수 있을까?
능청스럽게 점혈을 사용해 공주님의 신분을 듣지 않았고 용의주도하게 세 번에 걸쳐 공포심을 심어 주었다.
공주는 지금도 위사들의 검집을 보면 움찔거리며 눈빛이 흔들렸다.
그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 심계를 가진 자가 소림의 보호까지 받고 있다.
진무백은 승적에도 오르지 않고 정체가 모호한 놈을 잡으려면 양지에서의 수사로는 어렵다 판단했다.
“백호께서 심려하시는 부분은 이해가 됩니다. 하나 그자를 잡는데 소수의 인원으로 비밀 수사를 진행하라는 공주님의 판단은 틀리지 않다 생각됩니다. 놈을 잡은 후 모든 것을 밝힐 것이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
왕욱은 진무백의 눈에서 죽음을 각오한 자만이 보이는 눈빛을 읽었다.
저런 눈빛을 한 자는 고문은 물론이오 피붙이를 가지고 하는 협박에도 굴하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알았다. 내 너를 믿을 것이니 그놈을 잡고 나면 허심탄회하게 말해 다오.”
“감사합니다. 일이 마무리되면 백호께는 가장 먼저 알려 드리겠습니다.”
왕욱은 읍을 하는 진무백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는 걸음을 옮겼다.
“가자. 오늘부터 무허대사의 일거수일투족을 빠짐없이 감시하는 거다.”
그렇게 그들은 사건이 벌어졌던 장소. 무허대사의 거처에 도착하였고 곧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천리추종향의 냄새가 다른 곳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진무백은 미리 맡아 놓은 추적향 덕분에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설마 떠난 것인가?”
“그런 듯합니다. 향은 저쪽 능선 방향으로 이어져 있군요.”
“뒤가 구리지 않다면 급히 떠나진 않았겠지?”
서로를 바라보던 왕욱과 진무백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장 움직였다.
그들이 움직이는 방향은 적사결을 향해 일직선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 * *
파사사삭.
수풀에서 튀어나온 적사결은 뒤를 바라보며 추적자를 살폈다.
강화한 시각과 청각을 동원해 살피자 여전히 거리를 좁혀 오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소림승? 설마 금의위인가?’
어느 쪽이든 추적에 꽤 일가견이 있는 듯했다.
그때 적사결의 머릿속에 한 가지가 떠올랐다.
‘천리추종향! 이런 젠장! 깜박하고 있었군.’
두 손을 갖다 대고 냄새를 맡으니 여전히 이질적인 냄새가 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없어질 것이라 생각했건만 하루가 지나도록 변화가 없는 것으로 보아 쉽게 지울 수 없는 듯했다.
‘일단 손이라도 씻어 보자.’
놈들을 죽이는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나 자신을 쫓는 금의위 위사가 죽는다면 그 자체로 골치 아파질 것이 자명했다.
적사결은 일단 추적을 따돌리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파삭. 파사사삭.
등에 커다란 봇짐을 지고 한 손에는 어깨에 걸친 자루를, 한 손에는 천으로 감싼 녹옥불장을 지팡이 삼아 움직이는 그는 얼핏 본다면 상인이라 오해해도 될 법했다.
쉴 새 없이 발을 놀리는 적사결의 눈앞에 작은 개울이 나타났다.
첨벙. 첨벙.
손을 씻고 다시금 냄새를 맡는 적사결의 미간이 다시 좁아졌다.
물로 씻어 냈음에도 냄새는 가시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짜증나는군.’
이대로는 흔적이 계속 남는다.
더구나 이런 산속에서는 무슨 냄새든 멀리 퍼지고 뚜렷해진다.
사람이 사는 곳은 여러 가지 냄새가 뒤섞이지만 산은 공기가 맑고 숲이 발산하는 내음 외에는 인위적인 냄새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스스스.
시각을 강화한 적사결의 안력이 주변 지형을 훑었다. 정확히는 산세를 읽는 것이었다.
천마신교의 본단이 위치한 곳은 십만대산. 십만 개가 넘는 봉우리가 있는 곳이었고 그런 환경에서 자라게 되면 필연적으로 얻는 능력이 산의 지형을 꿰뚫어 보는 통찰안이었다.
어디에 골짜기가 형성되어 물줄기가 형성되는지, 어디에 능선이 이어지고 어디에 절벽이 있는지와 같은 예측능력 말이다.
‘찾았다.’
우측 능선 두 개를 넘으면 원하는 지형이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적사결은 망설이지 않고 신형을 옮겼다.
* * *
후루룹.
왕욱과 진무백은 적사결이 있었던 개울에 도착해 목을 축이고 우측 능선을 바라보았다.
“실수했군.”
왕욱은 날카로운 눈빛을 발하며 말을 이었다.
“놈은 이곳에서 손을 씻었다. 추적을 눈치챈 것이야. 쯧, 좀 더 조심해서 움직였어야 했는데…….”
천리추종향이 묻은 지 하루가 지나 냄새가 없어졌을 것이라 방심하고 있었을 텐데 자신들의 추적 속도가 빨라 놈의 감지 범위에 들어간 것이 분명했다.
“놈의 이동 속도가 빨라 이 이상 벌어지면 놓칠 수도 있지 않습니까. 어쩔 수 없습니다.”
진무백이 왕욱을 위로하듯 말했다.
그의 말대로 산에서 너무 거리가 벌어진 상태에서 쫓다 평지로 들어서면 놓칠 수도 있었다.
평지에서의 이동 속도는 산속보다 세 배 이상 빨라지니 말이다.
“어서 움직이자. 이렇게 된 거 지근거리에서 살피는 것이다. 뒤가 구린 놈이니 단초는 금방 얻을 수 있을 것이야.”
만약 무허대사와 흉수인 그 제자, 두 사람이 함께 있는 모습을 확인한다면 그것으로도 족했다.
왕욱과 진무백은 경공을 최대한 펼쳤다.
타다다닷. 타닷. 슈욱.
노출을 우려하지 않고 움직이는 두 사람의 신형은 산속을 빠르게 가로질렀다.
금의위의 훈련에는 산속을 정해진 시간 내에 주파하는 경공 수련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특무 부대로서 온갖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훈련받은 두 사람의 움직임은 눈부셨다.
그런 그들의 눈에 뒷모습을 보이는 한 명의 인영이 들어왔다.
“보입니다.”
“한 명이군. 무허대사인가?”
“어두운 데다 얼굴이 보이지 않아 잘 모르겠습니다.”
진무백이 왕욱에게 대답한 그 순간이었다.
적사결이 몸을 틀어 뒤를 돌아보았고 달이 구름 속에서 나오며 그 빛을 얼굴 위에 비추고 있었다.
“헉! 놈입니다!”
진무백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왕욱 역시 어린 승려의 얼굴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놈을 잡는다. 가자.”
차아앙.
검을 뽑은 두 사람이 발끝에 더욱 힘을 주며 신형을 쏘아 올렸다.
“엇!?”
진무백은 십장도 안 되는 거리까지 좁혀간 그때 적사결의 뒤에 자리한 절벽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적사결은 그 속으로 뛰어들고 있었다.
“안 돼!”
절벽의 거리는 무려 삼십 장에 가까웠다.
허공답보가 아닌 한 뛰어넘기에는 무리인 거리.
역시 절반도 못가 적사결은 곡선을 그리며 바닥이 보이지 않는 무저갱으로 떨어져 내렸다.
“이런 젠자앙!”
다 잡았건만 자살이라니.
왕욱과 진무백은 분통을 터트리며 절벽 아래를 바라보았다.
“빌어먹을…… 내려가 보자. 이렇게 된 거 시체라도 끌고 가야 한다.”
“예…….”
진무백이 힘없이 대답하는 그때였다.
슈우우욱.
칠흑 같은 무저갱에서 하얀 손이 뻗쳐 나왔다.
끝없이 길어지는 그것은 결국 반대쪽 절벽의 끝을 부여잡았다.
“뭐…… 뭐야!”
진무백은 입을 다물지 못하고 그 광경을 지켜봤다.
아래에서 솟구친 적사결이 반대쪽 절벽에 오르는 그 모습을 말이다. 그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다.
“지……, 진 위사…… 우리가 도대체 뭘 본 건가?”
왕욱은 얼이 빠진 모습으로 입을 열었다.
진무백도 입술을 달싹거리다 다시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말이 안 나온다는 게 이런 거구나…….’
쿵.
봇짐과 자루를 내려놓은 적사결이 바닥에 앉아 한 숨을 돌렸다.
천축유가신공으로 늘릴 수 있는 팔의 길이가 절벽 끝에 닿은 것.
절반은 도박이었으나 다행히 성공할 수 있었다.
‘덕분에 천축유가신공의 성취 역시 깊어졌다.’
사람이 더욱 집중할 수 있는 상황은 실전, 바로 아까와 같은 급박한 경우다.
그런 상황에서 목적한 바를 이루면 무공이든 뭐든 실력이 급성장하게 된다.
적사결은 순식간에 오 성의 성취를 이룬 것을 알 수 있었다.
꿀꺽. 꿀꺽.
수통을 꺼내 물을 마신 적사결은 문득 서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 방향은 천마신교의 본단이 있는 신강 쪽이었다.
‘무허 그 늙은이는 뭐하고 있을까.’
자신이 소림의 보물들을 빼돌리고 개판으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일까.
무허 역시 신교에서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드는 적사결이었다.
* * *
천마신교에서의 삼 개월.
무허가 그동안 한 것이라고는 술 마신 것밖에 없었다.
그가 그런 것은 적사결의 몸에 그 이유가 있었다.
‘혈마기라…… 술 마시는 데 있어서는 가히 최고의 무공이로구나. 흐흐.’
무허는 지금도 술을 홀짝이며 실실 웃었다.
본래 취기가 오르면 내공으로 주독을 배출하고 다시 마시는 방법이 최선이었다.
하나 그것은 진정한 주당의 자세가 아니다.
그렇다고 주독을 배출하지 않고 버티면 술에 이기지 못하고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잘 마신다 하더라도 술에는 장사 없는 법이니까.
한데 혈마기는 굳이 운기하지 않더라도 주인의 정신을 잃지 않게 해 주는 공능이 있었다.
아무리 술을 먹어도 정신을 잃지 않고 먹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무허는 삼 개월 동안 술독에 얼굴을 묻고 살았다.
“교주님.”
구양패는 오늘에야말로 결단을 보겠다는 생각으로 교주전을 찾았다.
깨달음이 눈앞에 있으니 조금 더 먹어 봐야겠다는 교주의 말에 휘둘린 것이 몇 번인지 셀 수도 없었다.
아무리 하늘같은 교주라지만 더 이상 이대로 방치할 수 없었다.
“오, 구양 장로. 그렇지 않아도 부르려 했는데 마침 잘 왔군.”
“교주님. 드디어 성취가 있으셨습니까?”
“그래서 부르려 한 거네. 혼자 마시니 진전이 더뎌서 말이야. 술이란 역시 함께 마시는 게 정답인 것 같네.”
구양패는 교주의 말에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이런 식으로 또 구렁이 담 넘어가려는 것인가.
“이번엔 진짜라네, 구양 장로. 그런 눈으로 있지 말고 어서 앉게나.”
“교주님.”
“어허, 이 사람. 본좌가 무허대사를 넘어서야 본교의 대업이 완수될 것 아닌가.”
“휴우…… 대업도 대업이지만 저와 함께 외유 좀 하시지요.”
“음? 외유?”
무허는 갑자기 외유를 들먹이는 구양패의 말에 물고 있던 술병을 내려놓았다.
“그렇습니다. 그동안 교주님께서 폐관 수련을 하신다 말해 놓았으나 근자에 소문이 파다합니다.”
“소문? 무슨 소문?”
“교주님께서 패배의 시름을 앓고 계시다는 소문 말입니다. 휴우…….”
구양패의 한숨에 무허는 이제는 풍성한 자신의 뒷머리를 긁적였다.
역시 머리카락이 있어야 긁는 맛이 있구나.
무허는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구석에 처박혀 너무 변한 모습을 보여 주는 것도 의심을 살 수 있었다.
이미 충분히 이상했지만 말이다.
“가지. 가서 본좌가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줌세.”
“잘 생각하셨습니다. 교주님.”
무허와 구양패는 교주전에서 나와 내성을 비롯해 외성, 그리고 천마신궁 인근의 마을까지 순시를 하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들이 천마신교라는 단일 종교를 믿는 신자들의 마을.
무허 역시, 소림사라는 종교 단체에서 평생을 보냈으나 천마신교처럼 신실한 교도들은 보지 못했다.
‘허허…… 이처럼 열렬한 지지라니.’
독실함을 넘어 광신도에 가까운 모습들.
하나 그들의 믿음이 자신을 향하는 것을 보니 무허는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마치 부처가 된 기분이 이러할까.
그 기분은 교주의 업무를 보는 와중에도 이어졌다.
그동안 밀린 결재 중 구양패가 처리하지 못한 중요 업무들. 무허는 하나하나 꼼꼼히 살펴보았다.
그것들 모두가 인근 백성들과 관련된 것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모든 업무를 처리한 무허는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적사결 교주가 철혈의 지존이었다더니 과연 말 한마디면 다 되는구나.’
앞사람이 고생해서 닦아 놓은 대로를 거침없이 달리는 기분이 이럴까.
결재를 하며 자신의 생각대로 방향을 틀어도 딴죽 한 번 없었다.
‘평생 누리지 못한 호사는 여기서 다 누리는 느낌이구나…… 아미타불…….’
처음 느껴 보는 절대 권력과 무한히 술을 마실 수 있다는 극한의 쾌락, 무엇보다 자신을 신으로 대하는 듯한 맹목적인 신봉은 무허의 마음을 뒤흔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