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이혼대법 11화>
* * *
“으윽…….”
신음 소리를 연신내는 환자는 온몸에 붕대를 칭칭 감고 있었다.
황궁 태의원 소속의 의원은 마지막 침을 놓고는 일어서 말했다.
“최소 일 년은 정양을 해야 할 것입니다. 뼈가 붙더라도 정상인 생활을 할 수 있을지는 재활에 달렸습니다. 비무에서 입은 상처라고는 믿을 수가 없군요.”
주녹정이 고개를 끄덕이자 의원은 탕약을 준비하기 위해 밖으로 나섰다.
“죄…… 죄송합니다. 공주님…… 으윽…….”
위충은 일어나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중태였다.
하나 황녀의 앞이라 일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지랄하지 말고 누워 있어.”
주녹정의 싸늘한 말에 위충은 신음을 삼키며 몸에 힘을 뺐다.
“위충. 놈을 상대해 봤으니 확실히 알겠지? 그가 무허라는 승려가 맞아 아니야?”
“마지막 한 수에 보인 일장을 생각하면 도저히 어린 무승이라 볼 수 없습니다. 속하의 판단으로는 취불 무허대사가 아니고서는 그런 무위를 보일 수 없다 사료됩니다.”
무엇보다 그런 엄청난 내공수위라니.
만약 놈이 흉적이고 어린 무승이 맞다면 태어나면서부터 영약을 밥 먹듯이 먹어야 가능한 수준이었다.
“그럼 그 늙은이가 그놈이 아니란 거야?”
“지…… 지금으로써는…….”
위충은 개미가 기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는 주녹정의 눈빛에서 자신의 연줄이 싹둑 잘리는 듯한 느낌을 받고 있었다.
‘이번 생에 비어복은 글렀구나. 아니, 자칫 천호 자리도 위태롭겠어…… 후우…… 고향에 가서 백숙집이라도 차려야 하는 건가…….’
위충은 자신의 앞길에 암운이 드리운 것을 직감했다.
주녹정은 위충의 모습에 이를 빠드득 갈더니 다시 물었다.
“천리추종향이란 것 효과가 어느 정도지? 만일 무허라는 늙은이가 천리추종향이 묻은 그 개새끼의 손을 잡았다면 향이 묻을 순 없나?”
주녹정은 무허대사가 제자의 존재를 숨기고 사건을 은폐하려 할 수도 있지 않나 물은 것이었다.
“이 차적으로 묻을 순 있지만 놈에게 천리추종향이 묻은 부위가 손바닥입니다. 아무리 사부와 제자라지만 손을 잡았을까요?”
남자는 십오 세 정도가 되면 설사 아비라도 남자 손은 잡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남색을 밝히는 변태가 아닌 이상 말이다.
“무공 지도나 대련을 하다 그랬을 수도 있지 않을까?”
“놈이 그 사달을 벌인 지 얼마 안 되어 위사들이 움직였습니다. 그럴 시간이 없었을 텐데요…….”
위충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주녹정은 쓰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렇게 하자. 갑자기 사제 관계가 애틋해져 두 사람이 손을 잡았고 천리추종향이 묻은 거야. 우리가 유령을 본 것이 아닌 이상 그렇게 가정하고 뒤를 캐는 수밖에 없어.”
주녹정은 상황을 정리하고 서릿발 같은 기세로 명을 내렸다.
“왕욱, 진무백. 무허의 뒤를 캐내 흉적의 신변을 확보하라. 무슨 수를 써서라도 놈을 내 앞으로 데려 와야 할 것이다. 그전까지 황궁으로의 복귀를 금한다. 필요한 지원은 무엇이든 해 줄 것이다.”
처처척.
부복한 채로 고개를 숙인 왕욱과 진무백이 동시에 답했다.
“충! 명을 받듭니다.”
* * *
약왕전.
소림사의 의방으로 환자를 치료하고 약초를 연구하는 기관이다.
이곳은 장문전, 장격각과 함께 소림에서 가장 경계가 삼엄한 삼대 기관 중 하나였다.
이는 천하에서도 손꼽히는 영약인 대환단과 그 제조법, 그리고 각종 영약이 보관 중이기 때문이었다.
스스슥.
적사결은 어두운 수풀 속에서 약왕전을 주시하며 눈을 빛내고 있었다.
‘역시 장문전과 마찬가지로 십팔나한이 경계 중이구나.’
드러내 놓고 보이진 않는다.
하나 은신한 상태인 십팔나한이 있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두근. 두근. 두근.
청각을 강화한 적사결의 귀에는 그들의 심장소리가 천둥처럼 들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정면으로는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군.’
한참을 살폈으나 역시나 나한들에게 방심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적사결은 미끄러지듯 움직이며 약왕전과 십장 정도 떨어진 건물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곳 주춧돌에는 주먹 하나가 들어갈 정도의 구멍이 몇 개 있었다.
‘가능하려나…… 중간에 끼는 사태가 생기지 않아야 할 텐데.’
그 구멍은 약왕전 지하비고로 이어지는 일종의 환기구였다.
그것들이 영약을 위해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적사결은 그곳을 이용하려 하고 있었다.
꿈틀. 꿈틀.
천축유가신공으로 근육은 물론 근골까지 유연하게 바꿔 나갔다. 아니, 유연한 것을 넘어 엿가락처럼 늘어나고 있었다.
팔부터 들어간 후 어깨가 들어가고 머리가 들어가며 뱀처럼 환기구 속을 이동해 갔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사술이니 괴물이니 난리를 떨 정도로 기괴한 모습이었다.
꾸물꾸물.
‘성공이다. 큭큭.’
반대쪽 환기구를 통해 바닥에 내려서자 사방에 작은 서랍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영약만이 아닌 일반 한약재도 보관 중이기에 너무도 방대한 양이었다.
너무 많아 하나하나 확인하려면 밤을 새야 할 정도였다.
‘이 새끼들이 천 년 동안 약만 모았나. 뭐가 이렇게 많아. 본교의 마의전은 새 발의 피잖아.’
적사결은 몇 개의 서랍을 열어 보며 뒤적거렸으나 대환단을 찾기란 요원해 보였다.
문제는 약왕전 말고도 들를 곳이 있으니 이곳에서만 시간을 허비할 순 없었다.
적사결은 대환단의 제조법은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약에 집중하자.’
적사결은 선택과 집중을 통해 영약만 훔치기로 결심했다.
그러자 천축유가신공이 또다시 발휘되며 후각이 어마어마하게 강화되기 시작했다.
킁. 킁.
영약이 주는 청량하고 알싸한 향기.
적사결의 후각은 그것들을 잡아내었고 거침없이 서랍들을 열고 있었다.
‘오옷. 천년하수오.’
돈 주고도 사기 힘든 것이 무려 다섯 뿌리나 있었다.
옆의 서랍엔 백년하수오가 백여 뿌리나 있었으나 천년하수오를 보니 눈길이 가지 않았다.
챙길 수 있는 양도 한정되어 있으니 이 역시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다.
‘크학. 이건 인형설삼!’
천 년은 묵어야 사람의 형상을 띤다하여 천년설삼으로도 불리는 귀물이었다.
한 뿌리에 내공을 이십 년이나 올려 준다는 이것이 세 뿌리나 있었다.
‘어허허헉. 만년삼왕.’
심장이 벌렁거리고 숨이 가빠왔다.
삼 중의 삼, 영약 중의 영약이라 불리는 천고의 보물이 만년삼왕이었다.
이것으로 얻을 수 있는 내공은 무려 일 갑자.
범인이 육십 년. 즉, 평생토록 숨만 쉬며 심법을 운용해야 얻을 수 있는 내공이었다.
‘하악. 하악. 공청석유.’
설명이 무에 필요가 있으랴.
화기를 띠는 영약에 만년삼왕이 있다면 수기를 대표하는 영약의 제왕이 그것이었다.
‘아…… 수명이 줄 거 같아.’
기뻐서 가슴이 뻐근해지는 경험은 또 처음이었다.
적사결은 이후에도 몇십 개의 서랍에서 영약을 챙기고 또 챙겼다.
우스운 것은 내단과 같은 동물성 영약은 단 하나도 없이 오로지 식물성 영약만이 가득했다.
꼴에 중놈들이라 그런 것인가.
그 와중에 드디어 약왕전을 방문한 목표물이 나타났다.
‘여기 있구나, 대환단. 그리고 소환단.’
앞서 흥분할 것을 다 해 버렸기 때문일까 정작 기대한 만큼 기쁘지 않았다.
역시 기대감이 없는 상태에서 접해야 곱절로 기쁜 것이다.
대환단은 아쉽게도 한 알만이 남아 있었고, 그보다 못하지만 소환단은 백여 알이나 있었다.
적사결은 찾아낸 영약들을 한 곳에 모아 놓았다.
이제는 그것들을 가지고 나가야 할 차례였다.
‘이렇게 보니 그래도 너무 많네…….’
선택과 집중에도 한 자루는 될 정도였다.
작은 환기구를 통해서는 나갈 수가 없는 것이다.
후다닥.
적사결은 급히 서랍들을 뒤적거렸다.
의방이라면 응당 있어야 할 것을 찾는 것이었다.
‘있다!’
서랍 속에서 꺼낸 것은 실 뭉치였다. 정학히는 봉합사. 바로 상처를 봉합할 때 쓰는 실이었다.
‘어라? 이건…….’
봉합사 옆에는 쉽게 보기 힘든 기물이 있었다.
‘분명해. 천잠사다!’
그 강도는 검기로도 끊을 수 없고, 이것으로 옷을 지어 입으면 수화불침이 가능한 보의가 된다는 보물이었다.
‘그러고 보니 천잠사는 봉합사로도 쓰인다고 했었지.’
마의전의 전주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일반 봉합사는 상처가 어느 정도 아물고 나면 실밥을 제거해야 했다. 하나 그렇기에 내장에 상처를 입으면 특수 처리를 하지 않는 이상 일반 봉합사를 그대로 사용할 수 없었다.
하나 천잠사는 달랐다.
내장봉합에 쓰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녹아서 신체에 흡수되기에 긴급 시 유용하게 쓸 수 있었다.
‘이것도 챙기자.’
천잠사 뭉치까지 챙긴 적사결은 일반 봉합사를 풀어 영약을 하나하나 묶기 시작했다.
개별로 본다면 많은 양이나 생각보다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작업이 끝나자 적사결은 봉합사의 끝을 잡고 환기구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꾸물. 꾸물.
환기구를 빠져나오자 들고 있던 실을 잡아당기며 히죽 웃었다.
‘영약 낚시라 그런가 손맛이 죽이는구나.’
영약은 환기구를 통해 줄줄이 엮어져 나오고 있었다.
모든 영약이 딸려 오자 자루에 쓸어 담은 적사결은 곧바로 거처에 가져다 놓은 후 바쁘게 움직였다.
‘자, 이제 마지막 보물찾기다.’
그의 신형이 장문전이 있는 방향으로 빠르게 쏘아져 갔다.
장문전에는 낮과 달리 십팔나한 중 삼분지 일인 여섯 명만이 남아 있었다.
나머지 나한들은 침소에 든 무산대사를 호위하기 위해 간 것이 분명했다.
‘여섯 명이면 식은 죽 먹기지.’
기본적으로 장문전은 집무를 보는 곳이기에 이곳에 배치된 십팔나한의 임무는 방장의 호위였다. 때문에 야간에는 무산대사의 거처에 호위가 집중되는 것이었다.
내공이 가미된 은잠술을 사용하지 않았다지만 적사결은 절대 고수였다.
천축유가신공으로 호흡과 기척을 죽인 그를 나한승 여섯의 감각으로는 잡을 수 없었다.
적사결은 장문전에 침입한 후 방장실로 곧장 움직였다.
‘여기 어디서 봤는데…….’
그간 방장실을 드나들며 유심히 살폈고 벽에 숨겨진 벽장이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안력을 강화한 후 수십 배로 확대해서 보지 못했다면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였다.
‘후후후, 어느 곳이나 수장의 집무실에는 비밀금고가 있는 법이지.’
달캉.
벽장을 열자 그 속에 검은색 일색의 금고에 자물쇠가 있었다.
‘헐…… 현철을 통짜로 맞춰 놨네.’
하늘이 내려 준다는 운철을 제외하고 가장 단단한 금속인 현철이었다.
‘현철이면 내공을 쓸 수밖에 없겠군…… 아오…… 생각만 해도 쏠려.’
아랫배에 떠오른 부처의 형상은 희미해져 있었지만 한 번 정도는 더 운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그그극. 빠카앙.
천축유가신공이 주는 극한의 외공과 보리연화공의 막대한 내공이 발휘되자 현철로 된 자물쇠가 손쉽게 우그러지며 박살 났다.
적사결은 헛구역질을 했지만 짧은 순간 약간의 내공만 사용했기에 토하는 지경까지는 이르지 않았다.
다만 당분간 내력을 사용하려면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이것이 녹옥불장인가.’
벽장 속에는 고귀한 자태를 뽐내는 녹색의 석장이 있었다.
석장이란 승려의 지팡이로 석장 또는 지장으로도 불린다. 그렇기에 지장보살의 상징물이 바로 이 지팡이였다.
녹옥불장은 소림의 장문령부.
즉, 이것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소림 방장에 준하는 명을 내릴 수 있었다.
‘중놈들이 돈이 얼마나 많기에 옥으로 지팡이를 만드냐. 에라이, 땡중 새끼들.’
적사결은 혀를 찬 후 준비해 간 천으로 녹옥불장을 둘둘 말았다.
녹옥불장에서 은은한 옥빛이 발산되기에 도주에 방해되기 때문이었다.
적사결은 빠져나오자마자 꽁지가 빠지게 달렸다.
‘들키기 전에 서두르자.’
거처에서 비급 필사본 봇짐과 영약 자루까지 둘러멘 적사결은 달빛 아래 한 마리 비조처럼 날았다.
산문을 벗어나 반대쪽 능선을 타고 오르자 멀리서 고함을 치는 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적사결도 익히 아는 목소리였다.
“사혀어어어어엉!”
잉? 어떻게 벌써 알아챈 거지? 무슨 경보 장치가 되어 있던 건가?
어찌 되었든 피를 토하듯 찢어지는 사자후의 주인공은 무산대사였다.
약왕전의 영약까지 털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정말 피를 토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네가 고생이 많다. 하나 어쩌겠느냐 몹쓸 사형을 둔 죄인 것을. 큭큭.’
적사결이 히죽거리며 소림사를 내려다보는 그때였다.
‘뭐야, 저놈들은?’
어둠 속이기에 정확히 식별되지 않으나 멀리서 두 사람의 인영이 자신이 있는 곳을 안다는 듯 일직선으로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