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이혼대법-9화 (9/206)

<기적의 이혼대법 9화>

*   *   *

무산대사는 위사들이 떠난 후 나한들까지 내보내고 적사결과 독대했다.

“사형, 도대체 그 모습은 어떻게 된 겁니까?”

무산대사는 잠깐 사이 변해 버린 적사결의 얼굴이 생소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겹도록 봐 왔던 늙은 얼굴인데 말이다.

“반로환동 부작용인 것 같군. 갑자기 풀려 버리더라고. 하하.”

또 그놈의 반로환동인가.

무산대사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반로환동이 무슨 실타랩니까. 감았다 풀었다하게.”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된 걸 어쩌라는 거야? 사제 왜 그렇게 예민하지? 억울하면 직접 반로환동 하든가.”

“…….”

기가 차서 할 말이 없는 무산대사였다. 그런 그에게 적사결의 말이 이어졌다.

“아직 깨달음이 완전치 않아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아. 공선에게 이 증상도 꼭 기록하라고 전해 줘. 알았지?”

거짓 기록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그래야 그만큼 소림의 얼굴에 똥칠을 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럼 언제 다시 어려질지 알 수 없다는 겁니까?”

“그렇다니까. 다만 내일까진 이 모습을 유지할 것 같긴 해. 한데 그 이후에는 언제 모습이 변할지 가늠이 안 되는군.”

내일까지는 안 변해야 비무대에 오르지.

떠나기 전에 위충의 면상을 다져 놓고 갈 생각이었다.

꿍꿍이 속이 있는 놈들은 매가 약인 법이니까.

“휴우…… 하면 내일 비무 후에 바로 떠나는 것이 좋겠습니다. 자륜사에 기별을 해놓을 테니 황실이 잠잠해질 때까지 자숙하고 계십시오.”

“고마워, 사제. 복 받을 거야.”

무산대사는 허탈한 표정으로 답했다.

“예. 덕분에 일복이 터졌지요.”

*   *   *

“위충, 놈의 가면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주녹정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설마 그 얼굴이 가면이라는 말인가?

얼굴뿐만 아니라 손의 주름까지 있었는데 말이다.

“공주님은 놈을 우연찮게 만났다 하셨지요?”

“그랬지.”

“하면 놈의 진짜 얼굴은 그때의 모습이 맞을 겁니다. 공주님의 이동 경로를 노리고 기다린 것이 아닌 이상 말입니다.”

“그건…… 그럴 거야. 다 쓰러져 가는 모옥에 멍청히 앉아 있던 놈을 만난 거니까. 한데 아까 그 늙은이는 누가 봐도…….”

주녹정의 속내를 아는지 위충은 피식 웃으며 말해 주었다.

“무림에 사파라 불리는 집단이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시지요?”

“들은 적 있어. 장강 이남에 사무련이라는 곳이 구심점인 놈들 말하는 거지?”

“온갖 신기막측한 물건들이 존재하는 무림이지만 사파에는 더 해괴한 것들이 있지요. 그중에는 인피면구라는 것이 있습니다.”

“인피면구?”

“사람의 얼굴 가죽을 벗겨 만든 가면입니다. 말 그대로 인두겁을 뒤집어쓰는 거지요. 그걸 쓰면 인피면구의 전문가가 아닌 한 겉으로는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위충의 말을 들은 주녹정은 구역질이 난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그놈이 아까 사람 가죽을 쓰고 있었다는 말이야?”

“천리추종향이 거짓이 아니라면 그럴 가능성이 높지요.”

“한데 소림사는 정파라며?”

주녹정의 말에 잠시 뜸을 들이던 위충은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제 추측이지만 공주님의 언행으로 보아 이번 일이 명명백백히 밝혀진다면 소림은 멸문지화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 봅니다. 아마도 공주님께서는 진무백 그 녀석을 위해 진실을 숨기고 계시겠지요. 아랫사람을 위하는 그 마음을 알기에 저는 공주님의 뜻에 따를 생각이고요. 한데 그들은 그것을 알지 못할 겁니다. 만일 멸문지화를 피할 수 없다면 아무리 그들이 정파라도 순순히 멸문하겠습니까?”

세상에 어떤 곳도 죽음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곳은 없을 것이다.

주녹정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고, 위충은 입꼬리를 올렸다.

“삼십 년간 많은 이들을 봐 왔습니다. 아무리 청렴하고 명망 높은 자라 하더라도 죽음 앞에서는 못하는 짓이 없더군요. 하물며 사람 가죽이라고 못 쓰겠습니까? 그들이 정파라 하나 멸문의 화마에 몰리면 똥물이라도 뒤집어쓸 겁니다. 하하하.”

주녹정은 수긍이 가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위충을 다시 보았다.

이번 일은 자신이 행차했으니 적어도 북진무사나 남진무사는 동행해야 마땅하나 일개 천호가 최고 책임자가 된 것이 마뜩잖았던 그녀였다.

한데 화산파의 변고를 듣자마자 소림사로 일정을 변경한 행동력이나 이번 사건에 있어 상황 파악이나 대처까지 흠 잡을 데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금의위 지휘사가 위충 그대를 내정한 이유를 알겠군.”

주녹정의 칭찬에 위충은 짧게 읍하며 미소 지었다.

지휘사는 자신에게 주녹정이라는 끈을 달아 다음 진급에서는 진무사로 올리기 위해 이 자리를 만든 것이었다.

상관이 판을 깔아 주었으니 자신은 능력을 보이고 주어진 연줄을 잡는다.

천호 이상의 직급은 능력만으로는 오르기 힘든 자리였다.

‘놈의 가면을 벗기면 나도 이 지긋지긋한 위사복을 벗고 비어복을 입는 거다.’

금의위 고급관리직만 입을 수 있는 비어복.

위충은 그것을 입은 자신을 상상하고 있었다.

*   *   *

다음 날.

소림사 대연무장에는 소림승과 금의위가 양쪽으로 대치하듯 사열해 있었다.

무산대사는 단상에 올라 좌중을 향해 육합전성을 펼치며 선포했다.

“이백 년에 걸쳐 정파 무림과 금의위 간에는 친선 교류를 위한 무공 시연과 비무라는 전통을 가져왔습니다. 올해는 황녀이신 영안대장공주께서 자리해 주셨으니 양측에 있어 더욱 뜻 깊은 자리가 될 것입니다. 모쪼록 서로의 관계를 공고히 하고 천하안녕을 위해 각자 자신의 무를 발전시킬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지금부터 천관무도회를 개최합니다.”

와아아아.

젊은 무승들과 금의위들은 뜨거운 환호를 보내었다.

평소 절제를 강조하는 각 집단의 특성 때문인지 이런 자리가 마련되자 더욱 열광하는 모습이었다.

처처척.

첫 번째 시연은 소림의 측에서 이루어졌다.

소림에서 자랑하는 백팔나한진이 그것이었다. 백팔 명의 무승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뛰어난 연무를 선보이자 좌중은 숨을 죽이고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쳇. 저릿저릿하군. 이것이 소림 최후의 보루라 불리는 백팔나한진인가.’

지금 보이는 연무가 모든 것은 아닐 것이다.

하나 기합이 잔뜩 들어간 나한들의 기세에 단편적이나마 그 속을 엿볼 수 있었다.

오직 본사의 방어를 위해서만 펼쳐진다는 백팔나한진.

십팔나한진 여섯 개가 육합을 기본으로 기기묘묘한 합격진을 펼쳐 내는 형세였다.

천마신교의 교주인 적사결로서는 형이나마 두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이 기연이나 마찬가지였다.

알고 대하는 것과 모르고 대하는 것은 천지 차이이니 말이다.

언젠가 소림을 무너뜨릴 때 큰 도움이 될 경험이었다.

차차착.

시연을 끝낸 백팔 명의 나한들이 일제히 반장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일사불란한 그 모습에 좌중은 갈채를 보내며 역시 소림이라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위충. 봤어? 방금 그건…….”

주녹정은 얼이 빠진 얼굴로 위충을 향해 입을 열었다.

무술에 관심 많은 그녀였고 황군의 훈련을 여러 보았지만 지금과 같은 것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대단하지요? 그래서 저희들이 천관무도회라는 친선 교류를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태조께서 관은 무림에 관여치 말라는 황명을 내리셨다지만 저들의 무력은 주시할 필요가 있으니까요.”

“그럼 나한진이란 저런 것을 병사들에게 가르치면 될 것 아냐? 왜 지켜만 보는 거지?”

“무공은 가르친다고 아무나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당장 황실만 하더라도 무공을 사용할 수 있는 곳은 금의위와 동창이 전부입니다. 그중에서도 나한진을 익힐 정도로 뛰어난 자들을 백 명 이상 키워 내긴 힘들지요.”

위충의 설명에 주녹정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방금 전의 시연만 보더라도 백 명이서 천 명, 아니 만 명이라도 상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태조께서 이들과 교류가 있었다는 것이 괜한 것이 아닌 것이다.

“다음은 화답으로 금의위 위사들의 검무가 있겠습니다.”

백호 왕욱의 명에 십사 인의 위사들이 연무장에 자리했다.

자유로우면서 실전적인 그들의 검무는 마치 실제 적을 상대하는 듯한 비장함이 서려 있었다.

‘호오. 재밌는걸.’

적사결은 검무를 보며 눈을 반짝였다.

정파와 교류가 있으니 당연히 정공일 것이라 생각했으나 예상이 틀린 것이었다.

‘내공의 바탕은 정종심법이나 초식에 사공이 섞여 있다?’

그러고 보니 앞서 진무백과의 비무에서 보았던 일검도 사이한 면이 있었다.

적사결은 위충을 다져 놓는 것을 떠나 약간의 기대감을 가지게 되었다.

근본이 다른 무공을 섞어 놓은 것은 위험하다 할 수 있지만 그만큼 파격적인 시도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사형이 보시기엔 어떻습니까?”

흥미로운 눈으로 금의위의 검무를 보는 적사결에게 무산대사가 물었다.

“제법이긴 한데 위태위태하군. 정공과 사공을 섞다니. 칼날 위를 걷는 것과 같아.”

“역시 그렇지요? 듣기로 금의위와 동창, 그 두 단체는 창설 때부터 정파와 사파처럼 그들만의 작은 무림을 형성했다고 들었습니다. 한데 몇 년 전부터 서로 무공을 교류한다고 하더군요. 아마 그 때문인 듯합니다.”

무산대사는 앞서 천관무도회를 치른 남궁세가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를 말하고 있었다.

“서로를 배척하는 강호와는 다르군.”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는 정적과도 손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이겠지요. 황실은 무서운 곳입니다.”

적사결과 무산대사가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 금의위의 연무가 끝나고 나한승과 위사들 간의 비무가 이어졌다.

젊은 무인들이 내공을 사용하다 자칫 사망자가 날 것을 우려해 내공을 제한했기 때문인지 앞서 시연보다 박진감은 오히려 덜했다.

“쯧, 이런 비무가 무슨 도움이 된다고. 무릇 연습은 실전처럼, 실전은 연습처럼 이거늘.”

적사결은 심드렁하게 말했다.

“혈기왕성한 아이들이니까요. 자칫 실수했다가는 뒷감당이 힘든 상대 아닙니까.”

속내는 아닐 것이다.

실전 비무에서는 자칫 금의위에게 밑천이 털릴 수도 있을 테니까 숨기려 하는 것일 터.

적사결은 대충 짐작이 갔기에 더 따지지 않았다.

세 번의 비무 중 소림승이 두 번의 승리를 가져가며 마무리되자 한 사람이 연무대에 오르고 있었다.

그는 금의위 천호 위충.

강호식 인사법인 포권으로 적사결을 향해 예를 다하며 말했다.

“오늘 천관무도회의 대미를 장식하기 위해 본 위사와 취불 무허대사님의 마지막 비무가 있을 것입니다. 내공의 제한이나 규칙 없이 실전 비무로 흥을 돋울 것이니 모두 즐겨 주시길 바랍니다.”

와아아아.

양측 최고수들 간의 일전에 내공의 제한까지 없앤 비무라 하니 좌중은 열광했다.

모두의 이목이 연무대에 선 위충에게 집중되었고 어떤 대결을 보여 줄지 기대하는 눈빛이었다.

‘새끼. 무대 체질이다 이거지.’

적사결은 이죽거리며 위충이 벌여 놓은 판에 기꺼이 응했다.

애초에 어제의 약조도 있었으니 말이다.

“사형. 적당히 하십시오. 보는 눈이 많으니 사고 치면 안 됩니다.”

무산대사는 무공을 잊었다 하나 적사결에 대한 조금의 걱정도 없었다.

자신의 사형이 이룬 무의 경지는 잊는다 하여 없어지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바가지 좀 그만 긁어. 마누라도 아니고 말이야. 쯧.”

“수십 년을 긁었더니 저도 손톱이 빠질 지경이군요. 제발 안 긁게 좀 해 주십시오.”

“그건 긁어서 그런 게 아니라 늙어서 손톱도 빠지고 그러는 거야. 반로환동 해.”

한 마디도 지지 않는 적사결이었다.

무산대사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울화통 터지는 가슴을 팡팡 쳐 댔다.

그 사이 연무대에 오른 적사결은 위충을 마주하며 반장을 취했다.

“한 번 잘 어울려 봅시다.”

“잘 부탁드립니다, 대사.”

치이이잉.

말이 끝나자마자 거칠게 발검한 위충의 검이 공간을 가르며 짓쳐 들었다.

일다경 후.

적사결은 비틀거리며 손으로 입을 막고 있었다.

‘이, 이게 뭐야…….’

배 속에서 요동치는 그것은 적사결의 의지를 거스르고 식도를 타올라 입으로 분출되듯 튀어나왔다.

푸화아악.

“으웨에에엑.”

비무를 지켜보던 모든 이들은 예상과 다른 결과에 황당한 눈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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