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이혼대법-8화 (8/206)

<기적의 이혼대법 8화>

*   *   *

“위사들께서는 무슨 일이시오?”

무산대사는 장문전을 나와 금의위 앞에 섰다.

일부러 기세를 흘리며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도 잊지 않았다.

‘사형. 내 반드시 틈을 만들 테니 들키지 않게 빠져나가시오.’

적사결의 존재를 들키는 순간 대역죄라는 수렁으로 빠져들 것이 자명했다.

비록 특별 사면권이 있다하나 금의위에서 증거를 손에 넣는 즉시 무용지물일 것이고 말이다.

“금의위 백호 왕욱이라 합니다. 공주님께 무례를 저지른 흉적을 찾는 중입니다. 방장께 협조를 구하고자 찾아뵈었습니다.”

금의위는 지휘사 아래 두 명의 남, 북 진무사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아래 천호를 두어 실무를 관장하고 있었다.

백호는 그 천호 바로 아래의 직책.

현재 소림에 행차한 금의위 중 두 번째 실권자인 것이었다.

“공주님께 무례를 저지르다니? 대관절 누가 말이오?”

“흉적의 입으로 무허라는 승려의 제자라 칭했다 합니다. 혹, 방장께서는 아시는 바가 있으십니까?”

무산대사는 역시라는 생각을 하며 태연히 대꾸했다.

“이상한 일이구려. 그분은, 빈승의 사형으로 제자를 두지 않았는데 말이오.”

“저희들도 그것이 의아합니다. 금의위에서 파악한 바 역시 방장께서 말씀하신 것과 다르지 않으니 말입니다.”

그 정도로 소림의 내부 사정에 밝단 말인가.

무산대사로서는 금의위의 정보력이 황실을 넘어 무림에까지 미친다는 소문이 피부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위사께서는 승적과 경내 제자들을 대조해 봄이 어떠시오? 정체를 숨긴 흉적이 있다면 밝혀낼 수 있을 듯하오만.”

“이미 수하를 보내었고 산문의 입산 통제를 해 놓은 상황입니다. 방장께서는 모든 사항에 대한 협조만 해 주시면 될 것입니다. 흉적은 저희가 반드시 찾을 테니 말입니다.”

“아닙니다. 본사 경내에서 일어난 일인데 어찌 손 놓고 보고만 있겠습니까. 보종.”

무산대사의 말에 장문전을 지키는 십팔나한의 수장, 보종이 앞으로 나섰다.

“네, 방장 어른.”

“모든 각과 전의 책임자들에게 협조를 아끼지 말라 이르게. 또한 자네 역시 나한들과 함께 흉적을 찾도록 하게.”

무산대사의 말에 왕욱은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했다.

‘중놈들이 뻔뻔하기가 이를 데가 없구나. 아무리 취불 무허의 제자라 하나 대역죄를 저지른 자를 감싸려 하다니…….’

왕욱은 이미 흉수가 장문전에 있다는 것을 알고 온 것이었다.

다만 놈이 범죄 현장에서 장문전까지 거침없이 움직였기에 조심스럽게 접근하기 위해 밑밥을 깔았을 뿐이었다.

“방장께서 그렇게까지 협조를 해 주신다면야 저희로서는 감사할 따름입니다. 진무백!”

왕욱의 부름이 있자 금의위의 포위망 한쪽이 열리며 진무백이 다가왔다.

약간의 어기적거리는 걸음으로 보아 어딘가 불편한 점이 있어 보였다.

“위사 진무백. 백호의 명을 받습니다.”

“소림 방장께 이르도록 하라.”

왕욱의 명에 진무백이 품에서 작은 약병을 꺼내 들어 나한에게 건네었다.

나한으로부터 그것을 받은 무산대사는 의아한 눈을 한 채 물었다.

“이것이 무엇이오?”

“그것은 금의위에서 사용하는 천리추종향입니다. 병 속의 향을 맡고 나면 천리추종향의 냄새를 맡을 수 있지요. 흉적의 몸에 천리추종향이 묻어 있으니 방장께서 그 향을 직접 맡아보십시오.”

금의위는 암중으로 특수한 임무를 수행하기에 역으로 위사들이 실종되거나 살해당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그런 경우를 위해 위사들은 평소에도 개개인에게 특정된 천리추종향을 몸에 바르고 다녀야 했다.

만일의 상황이 발생하면 동료와 접촉한 모든 사람을 조사하기 위해서였다.

무산대사는 등 뒤에 식은땀이 주르륵 흐르는 것을 느꼈다.

‘아미타불…….’

무산대사는 쉽사리 약병의 뚜껑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방장께서는 무엇하십니까? 어서 맡아 보십시오.”

진무백의 재촉에 무산대사는 천천히 손을 뚜껑으로 가져갔다.

‘뭐? 천리추종향?’

청각을 강화해 밖의 대화를 듣던 적사결은 곧 비무 중에 놈을 건드린 것을 생각해 냈다.

킁. 킁.

그러고는 손을 들어 냄새를 맡아보았지만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았다.

분명 놈과 닿은 곳이라고는 오른손이 다였다.

‘그냥은 안 난단 말이지. 그렇다면…….’

적사결은 천축유가신공으로 후각을 강화한 뒤 다시금 냄새를 맡아보았다.

킁. 킁. 킁.

‘희미하지만 이질적인 냄새가 섞여 있다.’

후각이 예민한 개라도 긴가민가할 정도로 미세한 냄새였다.

천리추종향의 냄새를 맡게 해 주는 특수한 냄새를 맡지 않고서는 개조차도 찾기 힘든 냄새인 것이었다.

‘대단하군. 본교로 돌아가면 우리 애들에게도 개발해 보라 명해야겠어.’

그렇게 생각하는 그 순간, 무산대사를 비롯한 사람들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적사결은 씨익 웃으며 그들을 환대했다.

“어서들 오시게나.”

*   *   *

“위충! 놈을 반드시 잡아야 해! 알겠어!?”

주녹정은 이를 바득바득 갈며 소리쳤다.

금의위 천호 위충은 쓰게 웃으며 주녹정을 진정시키려 했다.

“놈에게 천리추종향이 묻어 있으니 금세 잡힐 것입니다. 한데 그자와 무슨 일이 있었던 것입니까?”

“…….”

주녹정은 입술을 깨물며 시선을 돌렸다.

이미 소앵과 진무백에게도 함구할 것을 명한 그녀였다.

죽어도 볼기짝을 맞았다 말할 수는 없었다. 그 사실이 알려진다면 수치스러운 것은 물론이고 호위인 진무백이 참수에 처해질 것이 자명했다.

‘무백이 어떤 녀석인데 그렇게 허망하게 잃을 순 없지. 그 일을 입 밖에 꺼내선 안 돼.’

안하무인인 그녀였지만 주녹정은 자신이 아끼는 이에게는 너그러운 공주였다.

진무백은 수십 차례 전속 호위를 갈아치우며 얻은 인재였다.

그것도 차기 금의위 지휘사가 될 수 있을 정도로 능력 있는 재원이었다.

“위충! 정황보다는 본 황녀에게 모욕을 준 사실이 중요한 것 아닌가? 이는 황실에 대한 모독이다! 놈을 잡아 오면 내 직접 심문할 것이니 꼭 살려서 잡아 와!”

“한데 그가 취불 무허대사의 제자라 하셨지요?”

“그래. 그런데 그게 왜?”

“취불 무허는 소림의 무맥을 잇는 자로 어떤 의미로는 방장인 무산대사보다 중요한 인물입니다. 그런 그의 제자라면 그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지요.”

“지금 일개 사찰의 중놈이 본 황녀보다 중요하다는 거야?”

주녹정이 쌍심지를 켜고 쏘아보자 위충은 고개를 숙이며 말을 이었다.

“그런 뜻이 아닙니다, 공주님. 다만 놈이 그런 위치에 있다면 소림에서 특별 사면권을 쓸지도 모르기에 말씀드린 것입니다. 공주님의 옥체에 손을 대는 대역죄만 아니라면 그것으로 빠져나갈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뭐? 특별 사면권? 그게 뭔데?”

“태조께서 소림에 내리신 일회성 사면권입니다. 역모죄라 하더라도 증거가 충분치 않다면 사면을 받을 수 있지요.”

“그…… 그런 게 있었어?”

설마 그걸 믿고 자신의 볼기짝을 때린 건가 생각하는 주녹정이었다.

한데 놈은 사면권이 있더라도 소용없을 중죄인이나 정작 그것을 말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망할 마귀 새끼! 젠장!’

이렇게 되면 특별 사면권을 쓰기 애매한 정도의 죄질을 덮어씌울 수밖에 없었다.

억울함에 눈물이 날 지경이었지만 주녹정은 태형 삼백 대 정도로 형량을 내리려 하고 있었다.

‘놈은 태형 삼백 대지만 소림은 가만두지 않겠어. 아바마마께 말씀드려 온갖 감사와 사찰로 쑥대밭으로 만들고 말 테다.’

아무리 절간이라도 털어서 먼지 하나 나지 않을 수 없는 법.

주녹정의 분노는 소림조차 집어삼킬 듯 거대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화를 달래 주기라도 하듯 기다리던 소식을 지니고 위사 하나가 내실로 들어왔다.

“백호 왕욱으로부터 전언이 왔습니다. 흉적이 장문전에 있는 것을 확인했다 합니다. 곧 죄인을 압송하여 올 것입니다.”

위사의 보고를 들은 주녹정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니. 내 직접 장문전으로 가서 놈을 심문할 것이다.”

“장문전에서 말입니까?”

“방장 앞에서 처벌을 내려야 나중에 특별 사면권인지 뭔지로 딴죽을 걸지 않을 것 아니냐. 가자.”

주녹정이 어기적거리며 걸음을 옮기자 소앵이 같은 걸음으로 뒤를 따랐다.

“휴우. 정말 바람 잘 날 없는 공주님이로군.”

위충 역시 고개를 저으며 움직였다.

*   *   *

“아니…… 이게 무슨…….”

진무백은 장문전 내실에 앉아 있는 자를 보며 눈을 끔뻑거렸다.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태연한 모습으로 자리한 그는 변하지 않고 그대로였다.

“진무백.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천리추종향이 제대로 묻은 것이 맞느냐?”

“그렇습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공주님의 명으로 잠시나마 손을 섞었고 그 과정에서 분명 천리추종향이 묻었습니다.”

진무백으로서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다시금 약병에 코를 댄 후 냄새를 맡아 봐도 천리추종향은 눈앞의 이자에게서 나고 있었으니 말이다.

우당탕탕.

“이 개자식, 어디 있어!”

눈을 부라리며 새로이 나타난 이는 주녹정이었다.

“야, 왕욱, 진무백! 그놈 어디 있어?”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주녹정은 놈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자리에 앉아 있던 이가 일어나며 반장을 취했다.

“어서들 오시게나. 빈승은 무허라 하오. 사제에게 듣자니 나랏일 하시는 귀한 분들이시라 들었소이다. 소림에 온 것을 환영하오. 허. 허. 허. 허.”

주름이 가득한 외양에 골골거리는 행색까지 영락없는 노승의 그것이었다.

주녹정은 멍한 얼굴로 적사결의 얼굴을 주시하고 있었다.

‘흐흐흐. 요것들아. 네놈들이 뛰어 봤자 벼룩이지.’

적사결은 천축유가신공으로 신체를 다시금 늙게 만든 것이었다.

천리추종향의 냄새는 지우지 못했으나 그게 무슨 상관인가.

일을 저지른 외모와 지금의 외모는 수십 년의 세월 차가 있는데 말이다.

“진무백.”

그때 천호 위충이 돌아가는 상황을 감지하고 입을 열었다.

“위사 진무백. 천호의 명을 받듭니다.”

“천리추종향은 어디서 나고 있는가?”

“그것이…….”

“사실 그대로 고하라.”

위충의 지엄한 명에 진무백은 적사결을 바라보며 말했다.

“무허대사님의…… 손에서 나고 있습니다.”

“하면 공주님과 자네가 말한 흉적은 무허대사님인가?”

“아닙니다. 그자는 십오 세 전후의 어린 승려였습니다.”

진무백의 보고를 들은 위충은 적사결의 눈을 똑바로 보며 물었다.

“무허대사님께서는 제자가 있으십니까?”

“빈승은 아직 제자를 들이지 않았습니다.”

“하면 장문전에 오기 전 만났던 자는 없습니까?”

“없었소이다. 금일 소림에 복귀한 즉시 이곳으로 왔으니 말입니다. 한데 무슨 일이십니까?”

“별일 아닙니다. 무언가 오해가 있었던 듯합니다. 저희가 괜한 소란을 부렸군요.”

“아닙니다. 나랏일 하시는 분들의 행사에 소란이라니요. 제가 도울 일이 있으면 허심탄회하게 말씀하십시오. 빈승도 적극 도울 테니 말입니다.”

적사결이 너스레를 떨며 말하자 위충은 눈을 빛내며 말했다.

“하면 내일 있을 친선 비무에 대사님의 무위를 견식할 기회를 주시지 않겠습니까? 천하에 위명이 자자한 대사님의 무공이라면 위사들에게도 좋은 자극이 될 듯합니다.”

“아아 장문 사제에게 얘기는 들었습니다. 그런 뜻 깊은 자리에서 나 같은 늙은이가 도움이 될지는 모르나 귀하신 분의 요청이니 한 팔 거들어 보도록 하지요. 허허.”

적사결은 흔들리지 않는 눈빛으로 위충을 주시하며 대답했다.

인자한 미소와 달리 그의 눈은 날카로운 빛을 내고 있었다.

‘요놈 봐라. 꿍꿍이 속이 있다 이거지? 후후.’

*   *   *

주녹정은 멍한 표정으로 숙소로 걸어가고 있었다.

소앵은 난리를 칠 것이란 예상과 달리 그녀가 순순히 물러나자 의아한 얼굴로 계속해서 눈치를 살폈다.

“공주님, 괜찮으신가요?”

“…….”

주녹정은 소앵의 물음에 대답도 않고 터벅터벅 걷고 있었다.

“공…….”

“맞아! 그 눈빛이었어!”

“히익! 엄마야!”

소앵은 주녹정에게 가까이 다가갔을 때 그녀가 갑자기 소리치자 놀라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런 그녀를 보지도 않고 주녹정은 위충을 바라보았다.

“위충!”

“압니다.”

“뭐?”

“그자가 범인이지요?”

위충의 말에 진무백을 비롯해 위사들이 그의 말에 주목했다.

“어떻게 알았어?”

“삼십 년 넘게 이 바닥에서 굴렀습니다. 분명 무언가를 숨기는 눈빛이었습니다. 무엇인지는 모르나 뒤가 구리지 않다면 그런 눈빛은 나오지 않지요.”

비록 진무사에 오르지 못했지만 위충은 금의위에서 가장 노련한 위사였다.

감찰기관인 금의위에서 삼십 년을 버텼다는 것은 그 경험의 깊이를 가늠하기 힘들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위충은 자신만만하게 말을 이었다.

“내일 제가 직접 놈의 가면을 벗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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