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이혼대법 7화>
* * *
‘크흐흐흑.’
주녹정은 수치심과 모멸감에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꾸중 한 번 듣지 않고 자란 황실의 장중보옥으로 자랐건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매를 맞은 것이었다.
그것도 엎드려뻗친 자세로 말이다.
더욱이 움직일 수도 없고 말도 나오지 않았기에 더했다. 누가 봐도 복종의 자세였으니.
‘가만두지 않겠어. 반드시. 반드시 죽여 버릴 거야.’
속으로 얼마나 욕을 삼키고 저주를 퍼부었는지 몰랐다.
‘진무백, 저 자식은 호위 무사라는 놈이 뭐하는 거야! 빨리 어떻게 좀 해보란 말이야!’
하나 마음과 달리 혓바닥은 마비 상태에서 풀리지를 않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진무백 역시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무슨 점혈이기에 내공을 쓰지도 않고 이런 효과를 내는 거지? 말도 안 돼.’
전신전력으로 내공을 운기해 혈을 타통하려 했지만 어찌나 점혈법이 복잡한지 해혈이 되지 않고 있었다.
어린 무승의 말대로 내공을 쓰지 않은 점혈은 지속력이 길지 않았기에 시간이 지나면 풀릴 것은 자명했다. 방법이 없으니 이대로 꼼짝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크흑. 공주님 죄송합니다. 지켜드리지 못한 죄, 죽음으로 벌을 받을 것입니다.’
진무백은 최연소 위사니 뭐니 했던 지난날이 후회되고 또 후회되었다.
우쭐대며 오만하지 않고 끊임없이 정진을 거듭했다면 이런 일이 생겼을까.
자신의 실력이 부족해 이런 참담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었다.
그렇게 반성하던 그 순간이었다.
투툭.
‘엇!’
진무백은 몸속에서 무언가 뚫리는 소리가 들리자 점혈이 풀리고 있음을 직감했다.
한데 몸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고 마혈이 아니라면 풀리는 것은 아혈이었다.
‘헉! 저자 설마…….’
진무백의 불길한 예감은 주녹정의 입으로 향했고 어김없이 예상 가능한 말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지금 상황에 나와선 안 되는 욕지거리가 말이다.
“야 이 새끼야아아! 너 내가 누군지 알아!? 내가 대명제국의 공…….”
타타탁.
적사결이 또다시 점혈을 짚자 주녹정의 입은 벌린 채로 굳었고 신체 역시 뻣뻣해진 상태였다.
그리고 진무백과 소앵 역시 주녹정과 동일한 점혈을 당해야 했다.
“이런, 이런. 하마터면 벌써 점혈이 풀릴 뻔했구려. 소승이 아직 어리고 미숙하여 이런 비무가 익숙지 않소. 후후후.”
도대체 어디가 미숙하단 말인가.
세 사람은 승복을 입은 마귀가 웃는 얼굴을 보며 얼굴에 핏기가 가시고 있었다.
‘악마 같은 새끼!’
주녹정은 적사결이 자신의 아혈이 가장 먼저 풀리게 해 놓았다는 것을 직감했다.
마치 너 때문에 다들 맞게 되었다는 것을 보여 주듯이 말이다.
놈은 능청스럽게 바닥에 던졌던 검집을 다시 집어 들고 있었다.
“내 이번에는 제대로 된 초식을 보여 주겠소. 아주 멋있을 거요. 사부께 배운 무적의 초식이라오.”
적사결이 다가오자 주녹정은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마치 이 자리를 기어코 벗어나겠다는 발버둥 같았다.
‘늦었어. 멍청한 년아.’
만일 아혈이 풀렸을 때 졌다라고 했다면 더 맞지는 않았을 것이다.
주녹정은 자신이 공주라는 권위 때문에 현재 처한 상황을 간과한 것이었다.
뭐 그렇게 유도하긴 했지만.
척.
적사결은 검집을 진무백의 엉덩이에 먼저 갖다 대었다.
호위이기에 이번에도 가장 먼저 맞는 것이었다.
“나! 무! 아! 미! 타! 불!”
짝! 짝! 짝! 짝! 짝! 짝!
진무백은 뼛속을 파고드는 고통에 파들파들 떨고 있었다.
두 번째 점혈은 내공까지 제압하는 상승의 점혈법이었기 때문이었다.
단련된 무사인 그조차 그러니 소앵과 주녹정은 나무아미타불을 얻어맞고 숨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었다.
‘죽일 거야. 아니 구족까지 몰살시켜 버리겠어. 흐으윽.’
주녹정이 살기 어린 눈빛으로 적사결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적사결은 그런 그녀를 심드렁하게 바라보더니 다시 검집을 들어 올렸다.
“참! 후반식이 남아 있었는데 깜박했네. 불제자가 관세음보살을 빼먹다니 부처님 뵐 면목이 없군.”
주녹정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다, 그 빛을 꺼트리고 있었다.
* * *
“사형. 바, 방금 뭐라 했소?”
무산대사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듣고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자신의 사형은 언제나 생각지도 못한 사고를 치긴 했으나 이번은 정말이지 미친 거 아닐까 의심이 될 정도였다.
“아, 몇 번을 말해야 해. 공주를 팼다고.”
“황제의 셋째 딸인…… 영안공주…… 주녹정 황녀의 몸에 손을 댔단 말입니까! 사형 도대체!”
“모르고 그랬어. 몰랐다고.”
“아무리 몰랐더라도! 어휴! 내가 수명이 줄지 줄어!”
무산대사는 울화통이 터지는지 가슴을 팡팡 쳐 댔다.
“그러게 미리 황실의 방문이 있을 거라고 귀띔이라도 해 주면 좋았잖아. 웬 싸가지 없는 년이 앞에서 나 좀 때려 주세요 하는데 가만있냐?”
무산대사는 울컥하며 적사결의 말을 받아쳤다.
“그렇다고 여인을 팹니까! 더구나 복식만 보더라도 높은 집안의 자제라는 것을 알았을 것 아닙니까!”
“높은 집안의 자제나 뒷골목 파락호의 자제나 다 같은 중생이지. 지금 불제자가 사람 차별하냐?”
“이 나이 먹고 탁상공론이나 하잔 겁니까? 지금 현실을 얘기하잖습니까!”
“그래, 현실을 얘기하잖아. 이미 팬 걸 어쩌라고. 가서 약이라도 발라 줘?”
적사결은 당장 달려가 공주의 치마라도 들출 기세였다.
“아윽, 정말…….”
“이미 엎질러진 물인데 어쩌겠어. 알아서 잘 퍼 담아 봐. 대소림의 장문 사제님.”
빠직.
무산은 능글맞은 사형의 모습에 이마에 핏줄이 늘었지만 더 이상 말해 봐야 입만 아플 것이라 판단했다. 그러고는 마음을 가다듬으려 차를 마셨다.
손이 떨리고 욕지기가 치밀었지만 지금은 사태 수습이 먼저였다.
후우. 후우.
짧은 순간 마음을 다스린 무산대사는 이내 입을 열었다.
“일단 사형에게 황실과의 교류를 알리지 않은 것은 갑작스럽게 일정이 잡혔기도 했고 수련 중인 사형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갑작스럽게 일정이 잡히다니? 꼬장꼬장 절차를 따지는 황실 느림보들의 행차인데?”
“본래 올해는 화산파에서 행사가 있을 예정이었으나 화산에 변고가 생겼습니다.”
“변고라니?”
“얼마 전 천경진인께서 등선하셨다 합니다. 본사에서도 이틀 전, 급히 조문을 보냈고 말입니다.”
천경진인은 화산파에서 유일하게 남은 천자 배 항렬의 장로였다.
특별한 요직을 맡지 않았다 하나 배분이 높았기에 황실의 행차까지 변경해야 할 정도의 변고인 것이었다.
“해서 화산으로 가던 길을 소림으로 바꾼 것이군.”
“그렇지요. 그리고 그렇게 오신 분들 중 영안공주가 있었고 그분께 사형은 대역죄를 저질렀고 말입니다.”
잡아먹을 듯한 무산대사의 눈빛에 적사결은 생각해 둔 말을 꺼내었다.
“나도 내가 꽤 큰 사고를 친 건 인지하고 있어. 다행인 건 그년 아니 그분이 내 정체를 정확히 모른단 거야. 화가 닥치면 잠시 피해 있는 것도 한 가지 방법 아니겠어?”
자신이 무허라는 것을 아는 자는 소림 내에서도 무산대사와 장경각주 공선, 둘뿐이었다.
더구나) 공주 일행에게는 무허의 제자라는 허위 신분을 알려 주었고 말이다.
적사결은 이 기회를 빌어 소림사 산문 밖을 나갈 생각이었다. 그리고 다행히 무산대사 역시 같은 생각인 듯했다.
“저도 그 수밖에 없을 듯하군요. 풍문에 공주가 호위를 꽤 아낀다 들었습니다. 그자의 목숨이 달렸으니 섣불리 움직이진 않을 것입니다.”
역시 한 집단의 수장.
그만큼 중요한 인물들이 방문하는데 사전 조사가 안 되었을 리 없었다.
“휴우. 공선의 반로환동 논문이 완료되면 제자들에게 사형을 선보이며 대대적으로 공표하려 했건만. 이게 무슨 꼴인지 원…….”
“그래도 덕분에 공주를 팬 흉수가 없어지는 거잖아. 좋게 좋게 생각해.”
적사결의 말을 들은 무산대사는 눈을 흘기며 바라보았다.
“설마 산문 밖을 나가려고 일부러 그러신 건 아니겠죠?”
“아니야. 난 걔가 공주인 것도 때린 후에 알았다니깐. 그리고 아직 칠십이 종 절예 재해석에다 보리연화공까지 내가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밖에 나가고 싶겠어?”
“하긴…… 보리연화공의 완성에 대한 사형의 마음은 언제나 진심이었으니.”
태연히 차를 마시는 무산대사를 보며 적사결은 갑자기 의문이 들었다.
‘이 늙은 너구리가 왜 이렇게 여유롭지? 한 번쯤은 더 화낼 법한데.’
길길이 날뛰던 처음과 달리 너무도 빠르게 침착해진 것이 의아한 것이었다.
오랜 수행으로 법력이 깊어졌고 세찬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노송이라 하나 무려 황녀를 팬 사건이었다.
자칫 소림의 기둥뿌리 하나 남지 않을 멸문지화를 일으킬지도 모르는.
“사제.”
“뭡니까? 설마 또 무슨 사고 친 것이 있습니까?”
무산대사는 적사결이 부르자마자 째려보았다.
워낙 양파 같은 인간이라 또 다른 사건이 있는지 묻는 것이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내가 없으면 가해자는 없더라도 피해자는 여전히 있는데 괜찮은 건지…….”
“그래도 사문이 걱정되긴 하십니까?”
확 씨 멸문해 버려라.
무산대사의 빈정거림에 그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차마 내뱉진 못하고 다시 삼켰다.
“너무 그러지 마라 사제. 내 반로환동을 겪고 난 후 심경이 복잡해 나도 내가 왜 그랬는지 후회될 때가 있으니 말이야.”
“그놈의 반로환동! 사형은 반로환동의 부작용이 아니었어도 그랬을 겁니다!”
무산대사는 온갖 잔소리와 함께 과거 무허가 저질렀던 사고와 그가 처리한 뒷수습들을 늘어놓았다.
그는 황녀를 때린 사건보다 과거의 사건들에 더 열 받고 있었다.
적사결은 황당한 눈으로 무산대사를 보며 생각했다.
‘무허 이 땡중…… 제정신이었나? 마을 여인네들 속곳은 왜 훔쳐? 그런 놈과 내가 호적수 소리를 들었던 거야? 아, 시발…….’
적사결은 어이가 없었다.
무산대사의 입에서 나온 것들은 시정잡배나 할 법한 행실들이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휴우, 어쨌든 증거가 없다면 설사 황제라도 소림을 건드릴 수 없을 겁니다. 하니 걱정 마십시오.”
무산대사의 말에 적사결은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뭐? 황제라도 못 건드린다고? 어째서?”
현 시대, 명이라는 나라에서 황제가 지니는 힘은 무소불위, 항거불능이었다.
나라 전체의 대소사를 황제가 직접 관장하고 모든 권력이 그 한 명에게 집중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과거 구파일방이 초대 황제인 홍무제와 인연이 있었습니다. 금의위의 창설을 비롯해서 많은 도움을 주었지요. 해서 태조께서는 각 문파에 한 번의 사면권을 하사하셨습니다. 설사 역모죄라 하더라도 증거가 없는 한 사면권은 유효하지요.”
건국에 기여한 바가 있어 특별 사면권을 얻었다는 말이었다.
작금에 이르러 당시의 구파일방 중 소림, 화산, 무당, 공동, 개방이라는 다섯 문파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무림에서 그들이라도 그 권한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대단히 큰 의미가 있었다.
‘믿는 구석이 있었구나. 젠장.’
과연 천년소림의 기둥뿌리인가. 이백 년 전 인물인 홍무제 주원장에게까지 뻗어 있었다니.
적사결이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젓는 그때였다.
“방장 어른.”
내실로 들어온 이는 장문전을 지키는 십팔나한의 우두머리이자 육대승장의 일인, 보종이였다.
“무슨 일이더냐?”
“잠시 나와 보셔야 할 듯합니다. 금의위 위사들이 장문전 주위에 포위망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뭐라? 으음…….”
무산대사는 침음성을 흘리며 적사결을 바라보았다.
적사결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눈빛으로 말했다.
‘내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벌써 알아챈 것이다. 황제 직속 특무 부대라더니 꽤 발 빠르구나.’
포위망이 형성되고 있다는 말에도 적사결은 턱을 쓰다듬으며 여유를 부렸다.
하나 무산대사는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마치 남일 대하듯 하는 태도 때문이었다.
‘아…… 부처님. 제게 왜 이런 시련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