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이혼대법-6화 (6/206)

<기적의 이혼대법 6화>

“헉, 헉. 이제 그만 돌아가셔야 합니다.”

시비로 보이는 여인이 고급스러운 궁장을 입은 여인에게 존대를 하며 다그쳤다.

그러면서 옆에 선 젊은 사내에게도 눈을 흘겼다.

사내도 난감한 표정으로 그녀를 도우려 입을 열었다.

“소앵의 말대로 그만 돌아가시지요. 지금쯤이면 다른 위사들도 저희를 찾고 있을 겁니다.”

일행들로부터 몰래 나왔기에 사내는 난처함을 표했으나 젊은 여인은 코웃음을 쳤다.

“우리가 뭐 산문 밖을 나간 것도 아니고 소림사 경내 구경 좀 하겠다는데 뭐가 그렇게 불안해서 그래? 여기 소림이야, 소림. 여기가 뭐 태산북두? 북숭소림? 뭐 그렇게 불린다며?”

“천호 어른께 말씀드리지도 않았고 호위라고는 저만 대동하셨으니 문제지요. 다들 걱정할 겁니다.”

“야, 진무백! 화산 근처까지 갔다가 일정을 바꿨는데도 소림까지 얌전히 따라왔잖아. 산책도 못해? 시비도 대동하고 전속 호위도 챙겼는데 뭐가 문제래. 흥!”

여인의 말에 시비 소앵과 호위 진무백은 한숨을 내쉬었다.

문제가 생겨 정해진 일정대로 하지 못하고 급하게 여정을 바꾼 것은 분명 난리칠 상황이었다. 그 상황에서 말괄량이가 말썽부리지 않고 온 것이 대견하다 했더니 결국 터진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데 기연이 있단 말이야. 잠자코 따라와 봐.”

여인의 말에 진무백은 황당한 얼굴로 되물었다.

“예? 기연이라니요?”

“이 바보. 강호에 기왕 나왔으니 기연을 찾아야지! 진무백, 너 지금보다 강해지고 싶지 않아?”

“아니 강해지고 싶긴 한데 소림사 내에서 무슨 기연을…….”

“풋. 기연이 절벽이나 폭포 뒤에만 있는 줄 알아? 여기 소림사야. 혹시 알아? 죽지 않은 전전대 고승이라도 만나서 절세 무공을 전수 받을지?”

소림사 고승이 자파의 제자를 두고 왜 남에게 무공을 전수한단 말인가.

진무백은 고개를 저으며 관자놀이를 눌렀다. 그녀는 항상 사고를 칠 때면 자신의 핑계를 대곤 했다.

“난 내 호위 무사가 최고였으면 좋겠단 말이야. 잔말 말고 따라들 와.”

여인은 의기양양하게 걸음을 내디뎠다. 그리고 그녀의 눈앞에 외따로 떨어진 모옥 한 채가 눈에 들어왔다.

“얘들아, 찾았어. 강호에 모래알만큼 많다는 기인이사의 거처야.”

그곳은 그녀의 말대로 기인이라 불렸던 취불 무허의 거처였다.

*   *   *

적사결은 눈앞에 자리한 세 남녀를 무심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정확히는 가장 앞에 서서 조잘거리는 여인을 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얘. 이 거처의 주인은 어디 갔냐는 말이야.”

여인은 적사결에게 묻고 있지만 눈은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누군가를 찾는 행색이었다.

“오래된 집인 걸 보면 분명 고승일 텐데. 분명 전전대 기인이사일 거야.”

적사결은 한 눈에 그녀가 부잣집 철부지 딸년과 떨거지들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이런 류는 대개 싸가지도 없고 예의도 없기에 어디까지 심기를 건드릴지 두고 보는 중이었다.

“얘, 이 거처 쓰는 고승의 법명이 어떻게 되니? 유명하나? 왠지 유명할 것 같은데.”

모옥은 낡았지만 경치가 좋았기에 그녀는 꽤 높은 자리의 승려일 거라 예상했다.

“뭐…… 무허란 법명을…….”

“어머! 무허!? 무허라면 소림에서 제일 세다는 사람 아니었어?”

적사결의 말을 도중에 자른 여인은 진무백을 보며 물었다.

“예. 취불 무허라면 분명 천하에서 세 손가락에 꼽힌다는 고수라고 들었습니다.”

“어머나! 천하 삼대고수! 이거 봐. 내가 이렇다니깐. 깔깔깔.”

여인은 쉴 새 없이 재잘거리며 호들갑을 떨었다.

‘무허를 안다? 천하 삼대고수? 흐음…….’

적사결은 문득 호기심에 진무백을 향해 물었다.

“당신이 말한 천하 삼대고수의 나머지 두 사람은 누구지?”

진무백은 자신보다 어려 보이는 승려의 자연스런 하대에 얼떨결에 대답했다.

“파황무존 백천악.”

‘그래…… 그 놈도 괴물 중 하나지. 인정. 다음은 누구냐?’

하나 적사결은 이어지는 답변에 얼굴을 구겼다.

“창궁검제 남궁건?”

진무백이, 사파제일인 사무련주 백천악에 이어 남궁세가의 가주를 언급한 것이었다.

‘처…… 천하를 논하는데 내…… 내가 아니라…… 이런 썅!’

아무리 천마신교의 본단이 새외나 마찬가지인 신강에 있다 하나 적사결로서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한데 대관절 뉘시오?”

적사결의 퉁명스런 물음에 소앵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

“이놈. 이분이 누구신줄 알고 그런 말이더냐!”

“누군지 모르니 뉘시냐 물었지 않소.”

“이분은 말이다. 바로…….”

“소앵.”

여인이 흥미로운 눈으로 말을 자르며 끼어들었다.

‘호호호. 보아하니 어려서 본 황실의 행차를 듣지 못했나 보구나.’

여인의 이름은 주녹정.

대명제국 황실의 공주 중 한 명으로 소림을 방문한 것이었다.

“꼬마 스님. 보아하니 무승인 듯한데 혹시 무허대사에게 사사받았니.”

주녹정은 적사결에게 무허의 제자인지 물었다.

‘계집년이 장난치고 싶어 눈이 반짝반짝하는구나. 어디 장단 한 번 맞춰 줘 볼까.’

적사결은 천하 삼대고수에 자신이 빠진 것에 빈정이 상했기에 기회를 봐서 골려줄 생각이었다.

“어험. 본인이 무허대사님의 제자가 맞소.”

자신의 대답을 들은 주녹정의 눈이 더욱 빛나자 떡밥을 넌지시 던져 주었다.

“스승님께선 외유 중이시라 지금은 안계십니다. 여긴 본산 제자들에게도 출입이 금지된 곳이니 시주들은 어서들 돌아가시지요.”

다시 말해, 여긴 보는 눈도 없으니 어디 마음껏 활개 쳐 봐라. 란 뜻이었다.

적사결이 그렇게 던진 미끼를 주녹정은 망설이지 않고 물었다.

“와아! 무허대사님의 제자였구나! 그럼 무공 실력도 뛰어나겠네?”

약관도 안 된 어린 것이 뛰어나 봤자지.

내심 얕보고 있었으나 주녹정은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말을 이었다.

“혹시 시간되면 우리랑 비무 한 번 해보지 않겠어? 무허대사님을 못 뵈었으니 제자분의 실력이라도 견식했으면 하는데 말이야.”

“나와 말이오? 흠…….”

적사결은 고민하는 척했지만 속으론 쾌재를 불렀다. 감히 자신을 빼고 천하 삼대고수를 언급한 호위 무사놈을 정당하게 개박살 내줄 수 있으니 말이다.

그 잠깐, 소앵과 진무백은 주녹정을 끌고 구석에서 작당모의를 하고 있었다.

‘무슨 꿍꿍이들인지 한 번 들어 볼까.’

적사결은 정신을 가다듬고 의념을 귀에. 정확히 귀 속 달팽이관에 집중시켰다.

천축유가신공으로 청각을 강화시키자 숙덕거리는 말이 바로 옆에서 들리듯 들려오기 시작했다.

“공주님, 어쩌려고 이러십니까. 비무라니요?”

“뭐가? 어차피 소림에 친선 비무하러 온 거잖아. 네가 미리 경험해 보고 소림 무공의 특징을 천호에게 알려 주면 내일 있을 비무에 도움이 되지 않겠어? 설마 저 꼬마 상대로 이길 자신 없어?”

“공주님께선 그저 싸움 구경을 하고 싶으신 것이잖습니까. 천호의 허락 없이 전 싸울 수 없습니다.”

“에이, 무허대사의 제자라니까 자신 없는 거구나? 금의위 사상 최연소 위사라더니. 역시 그런 너도 강호에 나오면 허접인 건가? 으읍.”

주녹정의 입에서 시정잡배나 쓸 법한 저급한 말이 나오자 소앵이 서둘러 입을 막았다.

어린 시절부터 그녀와 함께 자라다시피 했기에 그럴 수 있었지 평범한 시비였다면 황녀의 몸에 손을 댄 죄로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웠을 것이었다.

“공주님, 제발요.”

“어휴, 알았어. 알았어.”

주녹정은 손사래를 치고는 진무백에게 다시 물었다.

“쟤 아까 나한테 퉁명스럽게 하는 거 봤지? 아참! 반말도 했지. 나 공주 아냐? 그래도 되는 거야?”

“공주님이신 걸 모르지 않습니까. 지금이라도 신분을 밝힌다면 예를 다할 것입니다.”

“모르면 그래도 돼? 모르면 없던 일이 되는 거야? 마구 패도 되겠네? 왜? 몰랐으니까.”

“끙…….”

진무백은 주녹정의 억지에 골치가 아픈지 이마를 짚었다.

“무백아, 그냥 비무야. 너도 소림사까지 왔으니 소림승과 자웅을 겨뤄 보고 싶을 거 아냐? 내일 너한테 비무 기회가 있을 것 같아? 최말단 위사한테 그런 기회 안 와. 내가 판 깔아 줄 때 시원하게 한 번 붙어 봐.”

“…….”

“알았어. 돌아가면 금의위 지휘사에게 얘기해서 너 동창으로 보내라고 할게. 지금 보니 사내새끼가 불알도 없는 것 같은데 그 편이 너도 좋겠지? 읍.”

소앵이 진땀을 흘리며 다시 주녹정의 입을 막았다. 정말 입방정 하나만큼은 천하제일인 공주였다.

“휴우, 하겠습니다.”

진무백은 백기를 들고 검대를 고쳐 잡았다.

보아하니 주녹정은 무슨 짓을 해서라도 비무를 하게 만들 작정인 듯했다.

“잘 생각했어. 이게 다 피가 되고 살이 될 거야. 고수의 길은 험난하다고.”

주녹정이 진무백의 어깨를 두드리며 앞으로 나섰다.

“제자 분께서는 결정했니?”

적사결은 고개를 끄덕이며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누가 봐도 어린 승려가 생애 첫 비무를 치르는 모습이었다.

진무백은 측은한 얼굴로 그 앞에 서며 말했다.

“서로 내공은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하지요. 친선 비무이니 말입니다.”

주녹정은 무언가 말을 하려다 진무백의 날카로운 기세에 입을 다물었다.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며 말도 함께 먹어 버린 것이었다.

‘애송이가 꽤 기세가 좋군. 황실의 수준도 제법이야.’

적사결은 갓 스물이나 되었을 법한 진무백이 세밀하게 기운을 조절하는 것을 느끼고 감탄했다.

황실의 금의위와 동창의 고수들이 무공을 익히고 있다 들었지만 실제로 대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정파의 의천맹은 금의위와, 그리고 사파의 사무련은 동창과 교류가 있지만 천마신교는 변방에 위치한 데다 사교 집단이라 치부되기에 황실과의 접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스르릉.

진무백의 발검은 깔끔했고 기수식은 군더더기 없이 유려했다.

적사결은 초보자인 양 긴장되고 뻣뻣한 모습으로 양 주먹을 들어 올렸다.

하나 이미 천축유가신공의 공능으로 신체 전반에 걸쳐 철저하게 대비된 상태였다.

“먼저 가겠습니다. 승룡비천검 제일초 탄천일시.”

친선 비무이기에 진무백의 입에서 공격신호와 더불어 무공명과 초식명이 연이어 나왔다.

이미 안력을 강화한 자신의 눈에 느릿느릿한 진무백의 검이 다가오고 있건만 친절하게 이것저것 알려 주니 그로서는 하품이 나올 지경이었다.

“적당히 피하기.”

슈욱.

진무백의 검신에 적사결의 왼쪽 얼굴이 비치며 느리게 지나갔다.

순간적으로 다리의 근력을 강화해 빠르게 움직였기에 상대적으로 진무백의 검이 느려진 것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초식이라 할 수도 없는 초식명.

“대충 툭 치기.”

투욱.

오른손이 턱 끝을 스치듯 때리자 진무백의 다리가 허물어지고 있었다.

인지하지도 못한 사이 뇌가 흔들리며 신경으로 신호를 보내지 못한 것이었다.

“점혈 짚기.”

탁. 타탁.

적사결은 순식간에 진무백의 마혈과 아혈을 짚은 후 주녹정과 소앵에게 짓쳐 들었다.

“헉!”

“점혈 짚기.”

탁. 타탁.

“자, 잠깐.”

“점혈 짚기.”

탁. 타탁.

그야말로 찰나. 제압당한 세 사람은 신음 소리도 내지 못하고 눈만 데굴데굴 굴리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냐는 표정만이 가득했다.

적사결은 그들을 보며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휴우, 삼 대 일이라니. 힘겨웠다.”

나지도 않은 땀을 훔친 후 적사결은 씨익 웃으며 진무백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의 검대에 매인 검집을 빼 들었다.

“내공을 쓰지 않은 점혈이니 반의 반각도 되지 않아 풀릴 테고…… 비무는 아직 끝나지 않은 거야. 그치?”

상대방이 항복하거나 반각 이상 전투 불능이 될 시 패배하는 것이 통상적인 비무의 규율이었다.

적사결은 세 사람을 나란히 엎드리게 한 후 검집을 높이 들었다.

‘좀 맞자.”

짜악.

‘네놈은 천하 삼대고수를 잘못 알고 있는 죄.”

짜악.

‘네년은 본좌에게 이놈이라고 혓바닥을 잘못 놀린 죄.”

적사결은 히죽거리며 상쾌한 기분을 만끽했다.

손에 착착 감기는 손맛에 보리연화공 때문에 쌓인 체증이 쑥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역시 머리가 막힐 땐 몸을 움직이는 것이 기분 전환에 최고였다.

이어 다음 차례인 주녹정의 엉덩이를 주시했다.

‘네년은 일단 싸가지가 없는 죄.”

짜악.

‘본좌를 비무 노리개감 취급한 죄.”

짜아악.

‘너야말로 본좌를 몰라본 죄. 왜? 몰랐으니까.”

짜아아악.

주녹정의 엉덩이를 찰지게 때린 후 적사결은 검집을 바닥에 던져 버렸다.

‘공주라 그랬겠다? 흠…… 이 일로 천년소림이 멸문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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