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이혼대법 5화>
“반로환동이라니요? 그게 정말입니까, 사백님?”
공선은 무산대사의 말을 듣고도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적사결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나에 대해 어지간히 악감정이 있는 모양인데 그렇다고 방장의 말도 믿지 못해서야 되겠어?”
“그것이 아니라 고금을 통틀어 반로환동에 대한 기록은 존재하지 않기에…….”
“기록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불가능하다 이거야? 이래서 먹물들은! 쯧쯧쯧!”
공선은 난감한 얼굴로 땀을 뻘뻘 흘렸다.
무산대사의 표정에서도 혀를 차는 그것이 그대로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제 소견이 좁다 보니 방장 어른과 사백님께 실례가 된 것 같습니다. 송구합니다.”
공선이 고개를 숙이며 반장을 취하자 적사결은 손을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마음에도 없는 허례허식은 집어치워라. 내가 반로환동이란 걸 알았으니 장경각주로서 네가 해야 할 일이 있을 터. 해서 너를 부른 것이다.”
“아, 예 물론입니다.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신 사백님 덕분에 반로환동에 대한 기록을 남기게 되었으니 장경각주로서 깊이 감사드립니다. 방장 어른, 지필묵을 좀 쓸 수 있겠습니까?”
공선의 물음에 무산대사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공선이 지필묵과 화선지를 펼쳐 기록을 준비하자 적사결은 그 모습을 보며 속으로 히죽 웃었다.
‘큭큭. 반로환동에 대해 가짜 기록을 남긴 놈으로 네놈과 무허는 역사에 그 이름을 남길 것이다. 멋지게 한번 써 보거라.’
자신이 훗날 본래의 몸으로 돌아간다면 소림에서 공표한 반로환동 현상은 사기라고 알려 소림의 얼굴에 똥칠을 해 줄 작정이었다.
적사결이 생각하는 사이 준비를 마친 공선이 질문을 해 왔다.
“반로환동을 하신 것이 언제입니까? 장소는요?”
“오늘 아침 달마동에서 면벽 수련 중에 반로환동을 겪게 되었지. 한데 반로환동을 할 것 같다는 느낌은 이전부터 있었네.”
“언제부터 말입니까?”
“마교와의 전쟁에서 복귀한 후 장경각에 들어갔을 때부터지.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부터 깨달음이 올 것 같다는 느낌이 근질거렸던 것 같군. 아마 다들 내가 이상하다고 느꼈을 것이야.”
공선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 역시 사람이 갑자기 변한 것 같다고 느꼈으니 말이다.
“하면 결정적인 깨달음은 어찌 온 것입니까?”
“당시 소림의 무공을 처음부터 끝까지 뜯어보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혔었지. 해서 칠십이 종 절예의 필사본도 요청했었고 말이야. 그러다 달마동에서 면벽 수련을 하다 나도 모르는 사이 반로환동 한 것이네. 그리고 외모만이 아니라 이전과 아주 다른 변화가 생겼지.”
“어떤 변화입니까?”
공선이 흥분한 얼굴로 세필붓을 쥔 손에 힘을 쥐었다.
“무공을 비롯해 많은 기억을 잊었어. 까먹어 버린 거지. 지금은 기본인 나한권조차 생각나지 않는군.”
적사결의 말에 심기가 흐트러졌는지 공선이 끄적이던 붓을 미끌거렸다.
“아니 그럼 보리연화공도 잊었다는 말씀이십니까!? 아니시죠?”
공선은 질겁한 얼굴로 물었다.
보리연화공은 무허 이전, 삼대에 걸쳐 연성 중이던 초상승의 무공이었다.
완성만 된다면 고금 삼대 절학을 사대 절학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신공절학이었다.
“맞아. 까먹었어.”
“…….”
공선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런 공선을 보던 무산대사가 입을 열었다.
“공선, 없는 것에 연연해선 안 되네. 지금은 해야 할 일에 집중해야 할 때지.”
“방장 사숙! 하나…….”
“무허 사형께서 장경각에 칠십이 종 절예의 필사본 반출을 요청한 적이 있었다 했지?”
“그랬습니다.”
“당시 무허 사형께서는 은연중에 본인이 경지에 오르면 보리연화공을 잊을 수도 있을 거라는 위화감이 들었다 보고 계시네. 해서 깨달음이 오더라도 무공을 잊지 않게 칠십이 종 절예를 미리 재해석해 실날같은 희망을 안배해 두려 했던 것이지.”
“그걸 제가 매몰차게 거절한 것이었군요…….”
공선은 낙담한 얼굴로 한숨을 쉬었다.
하나 어쩌겠는가 이미 사달이 난 것을.
“공선.”
“……?”
적사결이 자신을 부르자 공선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네 탓이 아니다. 당시 난 반쯤 정신이 나갔었으니까. 해서 그런데 이제라도 칠십이 종 절예의 필사본을 내주겠나? 처음부터 하나하나 뜯어보고 살펴보면 무공을 되찾을 수도 있을 듯한데.”
“…….”
“반출이 안 되는 건 알지만 난 내 거처가 마음이 편하다. 장경각 내에서는 도저히 수련에 집중이 되지 않아.”
“하나…….”
공선이 그래도 망설이자 적사결은 무산을 바라보며 눈을 흘겼다.
어떻게 좀 나서보라는 표정이었다.
무산은 결국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흠흠. 공선. 자네도 알다시피 보리연화공은 근 백 년에 걸쳐 소림의 역량이 집중된 무공이네. 자네도 장경각주로서 선대가 쌓은 그 노력의 결실을 기록하고 보존할 의무가 있지 않은가.”
“…….”
“또한 사형께서는 자네에게 반로환동의 기록이라는 업적을 남겨 주셨네. 그 정도 융통성은 보여줌이 어떠한가?”
적사결은 무산대사의 말을 들으니 짜증이 치밀었다.
‘방장이라는 새끼가 뭐하는 짓이야. 아주 빌어라 빌어. 빌어 처먹을 놈들. 휴우, 신교에서는 한 마디면 알아서 척척이었는데. 하여간 정파놈들은 답답해 미치겠군.’
자신이 그런 생각에 할 때 여전히 공선은 묵묵부답이었다.
적사결은 무산대사에게 다시 눈치를 보냈지만 그는 고개를 살짝 저으며 시선을 회피했다.
‘이제 와서 발을 빼?’
적사결은 속으로 욕을 퍼부으며 자신이 직접 입을 열었다.
“크흠, 공선. 내 달마동에서 면벽 수련을 하며 깨달은 심득 중 한 가지가 있는데 들어 보겠나?”
“……무엇 ……입니까?”
공선이 무거운 심중을 담은 눈빛으로 적사결을 바라보았다.
마치 자신의 관념을 뒤흔들 만한 말은 듣고 싶지 않다는 표정이었다.
그래도 귀 열고 똑똑히 들어라 새끼야.
“달마께서는 항시 견성(見性)을 중시하셨네. 그렇지 않은가?”
“그렇습니다.”
달마의 가르침 중 기본인 견성을 언급하자 공선의 표정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견성(見性), 마음속 본성을 보라는 뜻이지. 부처는 마음속에 존재하니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아마 그 구절에 따라 내 스스로를 되돌아보며 반로환동을 한 것이 아닐까 싶어. 자네도 규율에 얽매이지 않고 본질을 보는 것이 어떠한가?”
해석하자면 규정이나 규율 따윈 제발 좀 집어치우라는 얘기였다.
“어떤 본질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그 목소리에, 공선이 한 발 다가온 것이 느껴졌다.
“내 거처가 어디 멀리 있는 것도 아니고 다 같은 소림 산문 내에 있지 않은가? 자네 마음에 소림이 있다면 장경각이든 내 거처든 저어될 것이 무에 있겠나?”
제발 그 정도 융통성은 발휘해 다오.
적사결은 보안이 철저한 장경각에서 칠십이 종 절예를 빼돌리기 위해, 기를 쓰고 있었다.
“사백님의 말씀대로 달마조사께서는 본성을 직관해 스스로 부처가 되라는 돈교(頓敎)를 주장하셨지요. 마음 밖에 부처 없고 부처 밖에 마음이 없으니 마음이 곧 부처라 하셨습니다. 하니 참부처는 자신의 성품을 깨우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하겠군요. 사백님 덕분에 혜안을 넓힌 듯합니다.”
무슨 알아먹지도 못할 개소리를 지껄이는 거지.
설마 네 본성은 돌부처이니 곧 죽어도 규정을 지키겠다는 말이냐.
적사결은 설마하는 표정으로 공선을 바라보았다.
“역시 안 되겠습니다. 이 사질이 부족하여 제 부처는 장경각을 벗어나지 못하는 듯합니다.”
결국 공선은 고개를 숙이며 완곡한 거절을 표했다.
무산대사는 그 모습을 보며 껄껄 웃었다.
“사형과 사질이 이렇게 토론하는 날이 올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그려. 아주 보기 좋은 모습입니다. 허허허허.”
‘썅, 웃음이 나와?’
적사결이 쌍심지를 켜고 무산대사를 바라보았다.
무산대사는 그런 적사결의 눈빛을 부드럽게 받아넘기며 입을 열었다.
“본디 부처란 마음에 있으니 부처는 경을 잃지도 않고, 부처는 계를 가지지도 않으며, 또한 범하지도 않느니라. 그렇지 않은가, 공선?”
무산대사는 마음속 부처에게는 계율이 없으니 이를 어기는 것도 아니라는 뜻으로 말한 것이었다.
공선은 그 말에 쉬이 대답하지 못하고 있었다.
“또한 칠십이 종 절예는 현 소림의 대표적인 절기라 그렇게 명명했을 뿐 늘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되어 왔지 않은가. 오늘의 칠십이 종 절예가 내일의 칠십이 종 절예와 같으란 법은 없네. 무릇 모든 것은 물 흐르듯 흘러가는 것이지.”
무산대사의 말에 공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 지요. 보리연화공이 완성되었다면 칠십이 종 절예 중 하나에 들었을 것이고 말석 중 하나는 그에서 빠졌을 터. 방장사숙께서는 그것을 강조하고 싶으신 것입니까?”
“그것도 있지만 현재 사형의 경지로 칠십이 종 절예를 재해석한다면 어떤 식으로 탈바꿈을 할지 그것도 궁금한 것이 사실이네. 죽을 때가 되니 오히려 호기심이 왕성해지는구먼. 허허헛.”
“…….”
무산대사의 말에 공선은 고심했다.
그 말대로 무허사백은 무공을 잊었다 하나 전인미답의 경지에 오른 상황.
칠십이 종 절예를 어떤 식으로 변화시킬지 가늠할 수 없었다.
‘그래. 방장 사숙의 말대로 이는 소림 무공의 일대 전환점이 될 수도 있는 기회가 될 수 있겠구나. 내 아무리 장경각주라 하나 무슨 자격으로 변화의 물꼬를 막을 수 있을꼬.’
공선은 점차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다.
적사결은 그런 마음의 틈을 귀신같이 눈치채고 안광을 빛냈다.
‘네가 이걸 보고도 흔들리지 않는다면 돌중이 아니라 철중이라 불러 주마.’
그러고는 그대로 오른손을 우측으로 뻗었다.
스스스슥.
적사결의 오른팔이 반장가량 길어지더니 우측 다탁 위의 찻잔을 잡고 다시 줄어들었다.
무산대사와 공선은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크게 뜬 상태였다.
“사, 사형 이, 이게 무슨!”
“사백님! 방금 그건!?”
적사결은 씨익 웃으며 공선을 바라보았다.
역시 공선은 장경각주이기에 대당서역기를 읽어 본 것이었고 천축의 구도자에 대해 알고 있음이 분명했다.
“죽이지?”
“…….”
“달마동에서 반로환동 후 그곳의 역근경을 내 나름대로 재해석한 것이지.”
“……달마동의 역근경을 말입니까? 허어…….”
이러고도 허락지 않는다면 다 때려치우고 야밤에 장경각을 털리라 다짐하는 적사결이었다.
한데 그런 다짐이 무색하게 공선은 뜨거운 눈빛으로 원하는 대답을 쏟아 내고 있었다.
“가서 바로 필사본을 보내드리겠습니다. 다른 것은 필요 없으십니까?”
공선은 몸이 달아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천축의 구도자들은 은막에 가려진 신인들이었다.
공선은 많은 자료를 접하며 그들에 대해 단편적인 정보는 얻을 수 있었으나 그 수련법이나 기술의 정체에 대해서는 오리무중인 상황이었다.
한데 그 비밀에 가까워질 수 있는 단초를 얻은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 공선으로서는 미끼를 물지 않을 수 없었다.
* * *
한 식경 후.
적사결은 거처에서 칠십이 종 절예의 필사본을 탐독하고 있었다.
빼돌리기 전에 읽어 보는 이유는 한 가지였다.
보리연화공.
달리 항마기공으로도 불리는 소림사 최고의 신공절학이었다.
백 년 전, 천하제일인으로 불린 무신불 법륜대사가 말년에 창안한 것으로 미완성임에도 최강의 불가무학으로 손꼽히는 무공.
완성되지 않은 무공은 비급으로 남기지 않는다는 소림의 계율에 따라 구전으로 일인전승의 형태로 전해져 왔으며 현재는 무허가 당대의 전승자였다.
그 때문에 적사결은 보리연화공으로 쌓은 묵직한 내공을 단전에 담고 있었으나 구결을 모르기에 전혀 써 보지 못하고 있었다.
적사결은 칠십이 종 절예 중 내공이 반응하는 무공이 있는지 확인하고 있는 것이었다. 근본은 다 같은 소림 무공일 테니 말이다.
‘영 반응이 없네…… 주인을 닮아서 그런가 더럽게 까탈스럽군.’
적사결은 벌써 절반의 비급을 훑었건만 단전에 느낌이 없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달마의 유체이탈에 대한 단서를 못 찾았으니 용의자인 천하사괴를 잡아서 탐문할 필요가 있었다.
한데 천하사괴는 한 명 한 명이 고수이기에 내공이 절실했다.
아무리 천축유가신공을 얻었다지만 결국 외공이기에 불안감이 있기 때문이었다.
무인에게 있어 내공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만큼 컸다.
사흘 후.
“안 움직여! 젠장! 빌어먹을!”
적사결은 마지막 한 권을 내동댕이치고 모옥 밖으로 나갔다.
사흘 동안 열 번이나 비급을 파헤쳤지만 소득이 없었고 답답함에 기분 전환이라도 해야 할 듯싶었다.
끼이익.
문을 열자 쏟아지는 햇살이 눈을 간지럽히고 산의 청량한 바람이 귓불을 스쳤다.
평상에 걸터앉은 적사결은 기둥에 머리를 기대고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았다.
‘어휴, 이게 무슨 꼴이냐.’
폐부 깊숙이 자리 잡은 한숨을 토해 내는 그때 그의 눈앞에 두 명의 여인과 한 명의 남자가 다가오는 모습이 들어왔다.
‘뭐야, 저 때깔 좋은 년놈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