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이혼대법 4화>
우두둑. 우득.
세수경과 역근경의 숨겨진 구결을 습득한 후 가부좌를 틀고 있던 적사결의 몸에서 일어난 변화였다.
그리고 골격에서 일어난 변화는 곧 피륙으로 번져 갔다.
꿀렁. 꿀렁.
처음엔 주름지고 늘어진 피부가 당겨지고 팽팽해졌다.
그러고는 노인의 그것이던 회백색 눈썹과 수염이 검게 물들어갔다.
마치 신체 전반에 걸쳐 활력이 돌며 젊음을 되찾는 것만 같았다.
“크크크크. 성공이다.”
적사결은 마치 반로환동한 것처럼 노인이었던 무허의 몸을 젊게 만드는 데 성공한 것이었다.
숨겨진 구결들은 추측대로 천축 구도자들의 수련법이었고 신체의 모든 부분을 의지 하에 두게 만드는 공능이 있었다.
간단히 생각하면 자신의 몸이지만 내부적으로는 장기가 대표적이었고 외부적으로는 귀와 머리카락과 같이 뜻대로 움직일 수 없는 기관은 생각보다 많았다.
한데 숨겨진 구결들은 그것들을 움직일 수 있게 만들어 주었고 육체적 잠재 능력까지 활성화시킬 수 있었다.
천축유가신공.
요가라 불리는 천축의 구도자들의 수련법을 달마가 중원식으로 이름 붙인 무공이었다.
무엇 때문에 간단한 단련법만 전파하고 요체가 되는 핵심을 숨겼는지 모르나 수많은 세월이 흘러 그것이 적사결에게 전해진 것이었다.
“그건 그렇고 무허, 이 새끼. 역시 젊었을 때부터 대머리였단 말이지.”
찰싹.
적사결은 여전히 민둥 머리인 머리를 찰지게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자신의 짐작대로 무허는 대머리라서 소림에 입문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한 것만 같았다.
“성취가 높아지면 머리카락도 나게 할 수 있을 거야. 일단 이 정도로 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 볼까.”
적사결은 곧바로 움직였고 그가 떠난 달마동에는 부스러진 벽곡단과 지린내가 남아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다.
* * *
우당탕탕.
‘웬 소란인고…….’
눈을 감고 참선 중이던 무산대사는 갑자기 밖이 소란스러움을 느꼈다.
그에 기감을 집중하니 장문전을 지키는 나한들과 한 사람이 드잡이질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안 놔!? 이 새끼들이 내가 누군지 알고!”
“소시주가 누군지 우리가 어찌 알겠소. 여긴 방장 어른께서 계신 곳이니 허락되지 않은 자는 출입할 수 없소.”
“그러니까 그 허락을 구하라고!”
“하니 신분을 밝히라 하지 않았소. 신분도 밝히지 않는 사람에 대해 어찌 방장 어른께 아뢴단 말이오.”
“그럼 나오라 그래. 그럼 해결된다니까!”
“어허! 소시주는 예의도 모르시오. 어찌 방장이신 무산대사님을 오라 가라 한단 말이오!”
적사결은 답답함에 얼굴을 찌푸렸다.
원하는 바를 얻어 내려면 지금 자신이 무허라는 것을 밝힐 수는 없었다.
“말할 수 없는 사정이 있으니 가서 전하기만 해. 만나면 해결된다니까.”
“불가! 신분이 불확실한 자 절대로 장문전에 들 수 없소.”
“아, 진짜! 절에서 중놈 얼굴 한 번 보겠다는데 더럽게 비싸게 구네! 너 나중에 내가 누군지 알면 후회할 텐데 감당할 자신 있냐?”
소림 방장인 무산대사의 사형이자 소림 최고의 배분인 무허였다.
더 이상 자극하면 계획이고 뭐고 본래 나이의 무허로 돌아가 조져 버릴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한데 그것을 모르는 무승은 얼굴이 일그러지며 막대한 기운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지금 중놈이라 했는가!? 감히 대소림의 장문전 앞에서 그런 상소리를 하고 네놈이 무사할 성 싶으냐!”
무승들은 적사결을 둘러싸며 원진을 형성해 갔다.
“어쭈? 잘못하면 치겠다?”
적사결은 간만에 접한 전의에 이죽거리며 원진을 형성한 나한들을 죽 훑어보았다.
광혈존이라는 별호를 얻을 정도로 패도적이고 혈투를 즐기는 자신이었다.
마공을 사용할 수 없다 하나 적사결에게서 위축된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만들 하거라.”
장문전 쪽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나한들은 기세를 풀며 반장을 했다.
그들이 예를 갖추는 이는 무산대사였다.
“방장 어르신!”
“그 아이의 말대로 절에서 중을 찾는데 못 만날 이유가 무에 있겠느냐.”
무산대사는 시선을 적사결에게 옮겨 그를 바라보았다.
현재 적사결은 수염을 밀고 눈썹까지 다듬었기에 그의 나이는 15세 전후로 보일 정도였다.
그리고 그 어린 모습을 보며, 무산대사는 그 얼굴이 익숙하다 느끼고 있었다.
‘낯은 익으나 분명 소림의 제자는 아니다. 한데 어찌 머리를 밀고 소림의 승복을 입고 있는 것일까…….’
무산대사는 적사결을 보며 의아함을 느꼈다.
행동거지로 보아 다른 사찰의 승려도 아니었고 자신과 일면식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한데 낯이 익은 것은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그러다 그의 뇌리로 한 줄기 생각이 빠르게 스쳐 갔다.
‘이…… 이 망할 사형! 설마!’
무산대사는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쉬었다.
그런 그의 모습에 적사결은 히죽 웃으며 말했다.
“역시 날 알아보는군. 거 봐 새끼들아!”
적사결은 무허의 젊었을 적 얼굴을 무산이 알아본 것이라 여겼다.
으득.
적사결의 이죽거림에도 나한들은 이를 악물고 제자리를 지켰다.
도발적인 발언에도 그들이 자중하는 것은 무산대사의 행동이 분명 평소와 달랐기 때문이었다.
“나한들은 물러가고 너는 따라 들어오거라.”
무산대사는 서늘한 안광을 흘리며 말하고는 장문전으로 들어가 버렸다.
냉기가 흐르는 표정에서 적사결은 이상함을 느꼈다.
‘뭐야. 표정이 왜 저래? 젊은 시절의 무허 얼굴을 알아봤을 텐데 사형이 젊어져서 질투하는 건가?’
적사결은 입술을 삐죽 내밀고 무산대사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방장실에 도착한 그는 무산대사의 첫 물음에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너는 혹시 무허, 그분을 혈육으로 알고 소림을 찾아온 것이냐.”
무산대사는 적사결이 입은 소림의 승복과 머리카락이 없는 것, 그리고 젊은 시절의 무허를 닮은 얼굴에서 그렇게 짐작했다.
자신의 사형은 십여 세 무렵부터 지독한 탈모가 있었고 그것은 유전이었으니까.
그리고 워낙 사고뭉치라 이런 유형의 사건도 능히 벌일 수 있는 괴짜였다.
“뭐어!? 하…… 나 진짜…….”
적사결은 숨겨진 핏줄 취급받는 것에 짜증이 솟구쳤다.
도대체 무허는 평소에 무슨 짓을 저지르고 다녔기에 중이 자식을 만들었다는 오해까지 받는단 말인가.
적사결은 장경각주 공선의 태도부터 시작해 방장인 무산까지 이리 대하자 무허에 대해 다시금 학을 뗐다.
“아니라면 소시주는 누구인가?”
무산대사는 자신의 짐작이 틀렸다는 것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행히 사형은 그 정도까지 망종은 아니었던 것인가.
무산대사는 안도의 눈빛으로 적사결을 바라보았다.
“내가, 니 사형이다.”
“음?”
“내가 무허라고, 무허. 너의 사형 말이다.”
“흐음…….”
무산대사는 눈을 가늘게 뜨고 적사결을 보았다.
그러고는 순식간에 출수했다.
쉬익, 빠악.
“크악!”
적사결은 눈 깜짝할 새에 털려 버린 아구창을 잡고 눈을 부라렸다.
무산대사의 출수는 보았지만 몸이 제대로 반응하지 못해 피하지 못했기에 더 열 받은 것이었다.
아직 무허의 신체에 완벽하게 적응한 상태가 아니라는 방증이었다.
“이 새끼가 선빵을 날려!?”
“빈승의 사형은 이 정도도 못 막을 약골이 아닌데 말이오. 허허. 소시주는 도대체 누군가? 정말 무허 사형의 혈육이 아니란 말인가?”
“반로환동했다, 이 새끼야.”
“그게…… 무슨…….”
무산대사는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인지 귀를 의심했다.
반로환동이라니.
화경의 극에 이르러 얻는다는 환골탈태와 비슷했지만 젊음을 되찾는 반로환동은 오직 이상향일 뿐이었다.
말 그대로 전인미답의 경지였다.
“그러고 보니…….”
무산대사는 그제야 적사결의 목 아래에 난 점과 귀 뒤에 난 사마귀를 보고 흠칫했다.
분명 그것은 자신의 사형인 무허의 몸에 있는 특징이었다.
이어서 무산대사는 적사결의 어깨 깃을 내려 좌측쇄골을 살폈다.
“윽. 이 새끼가 갑자기 뭐하는 거야!?”
“가만히 좀 있어 보시오.”
무산대사는 쇄골 밑의 붉은 점을 확인하자 경악했다.
“이럴 수가! 저…… 정말 사형이시오? 한데 어찌 방금 그걸 못 피한 겁니까?”
“반로환동하며 무공을 잃었다.”
“무공을 잃다니요?”
반로환동이라면 상승의 경지에 진입한 것이 분명한데 도리어 무공을 잃다니?
무산대사는 자신의 상식으로는 이해되지 않았다.
“몰라, 인마. 반로환동이 끝나자 무공을 잃었는데 내가 왜 그런지 어떻게 알아. 궁금하면 너도 반로환동하든가.”
적사결은 툴툴거리며 대답했다.
아무도 겪어 보지 못한 반로환동에 대해 뭐라 설명한들 어떻겠는가.
어차피 아무도 모르는데.
“허허. 어찌 이런 일이. 그나저나 대단하십니다. 반로환동이라니. 사형은 정말 하늘이 내린 무재요.”
무산대사는 누구도 이루지 못한 경지에 다다른 자신의 사형을 다시 존경스럽게 바라보았다.
다른 건 다 상식 이하였지만 무공만큼은 누구도 따를 자가 없었던 사람이 바로 무허였다.
새삼 그 사실이 다시 무산대사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어쨌든 중요한 건 무공을 잃었다는 거야.”
“잃은 것이야 다시 찾으면 되는 것 아닙니까. 갔던 길을 다시 가는 데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이렇게 젊어졌으니 시간도 많고 말입니다.”
“그래서 말인데. 네가 좀 도와다오.”
“아니 제가 사형에게 무슨 도움이 된다고 그런 말씀이십니까?”
무산대사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이미 소림 무공의 끝을 본 사형이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하다니?
“그게…… 무공을 잃은 게 정확하게 얘기하면 다 까먹었다.”
“예? 무공을…… 잊었단 말입니까? 허어…….”
무산대사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탄식을 내뱉었다.
분명 경지가 높아질수록 무공을 사용함에 있어 의식하지 않게 되는 부분이 늘어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해서 무의 끝은 모든 것을 잊어버리는 것에 있다는 말도 있었고 말이다.
하나 현실적으로 생각한다면 잊는다는 것은 사라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초식은 물론이고 내공심법까지 모조리 잊었어.”
적사결은 안타까운 표정을 연기하며 말했다.
무산대사는 그 말에 한숨을 쉬며 물었다.
“사형이 익혔던 보리연화공은 완성된 무공이 아니기에 비급조차 없지 않았습니까. 하면 어찌해야 한단 말입니까?”
“당장은 보리연화공을 되찾을 수 없지만 칠십이 종 절예를 하나하나 익히다 보면 기억나지 않을까 싶다. 어차피 다 같은 소림 무공이니 연관된 것이 아예 없지는 않겠지. 어휴! 내가 이럴 거 같아서 미리 그것들이 필요했었는데…… 공선, 그 자식만 아니었으면…… 젠장!”
적사결은 투정부리듯 발을 구르며 무산을 힐끔 쳐다보았다.
“그것들이라니요?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무산대사가 되묻자 적사결은 기다렸다는 듯 생각해 두었던 말을 쏟아 냈다.
* * *
‘방장 사숙께서 무슨 일로 나를 찾으시는 걸까.’
공선은 자신을 찾는다는 무산대사의 부름에 장문전으로 향하고 있었다.
장경각은 경서의 해석과 정리 등 지난한 업무가 대부분이었고 특별한 일이 드문 조용한 곳이었다.
그 때문에 장경각주인 자신이 방장인 무산대사와 독대하는 경우도 드문데 직접 자신을 찾은 것이었다.
어느새 장문전에 도착한 공선은 자신을 향해 반장의 예를 올리는 나한들을 향해 말했다.
“장경각주 공선이네. 기별을 넣어 주시게.”
나한이 장문전으로 들어갔다 나오고 공선은 그를 따라 장문전 내부로 걸음을 옮겼다.
일각의 각주라 하나 분명한 신분 확인과 절차가 없이는 출입이 불가한 장문전은 소림 내 가장 경계가 삼엄한 곳이었다.
“방장 어른, 장경각주 공선입니다. 찾으셨다 들었습니다.”
공선이 문을 열며 들어서자 그곳에는 무산대사와 처음 보는 젊은 승려가 있었다.
낯이 익다 생각이 들어 그를 잠시 보던 공선은 이내 시선을 거두어 무산대사에게 반장의 예를 올렸다.
“어서 오시게, 공선.”
“무슨 일로 찾으셨는지요?”
“여기 이분을 알아보겠는가?”
“이분…… 이라니요?”
공선은 젊은 승려에게 존칭을 하는 무산대사를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무산의 말에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무허 사형이네. 얼마 전 반로환동의 경지에 오르셨다고 하네.”
“네에!?”
공선은 경악 어린 표정으로 눈을 끔벅거리며 젊은 승려를 바라보았다.
“오랜만이네, 공선.”
그 모습을 보며, 적사결은 그저 짓궂게 웃을 따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