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이혼대법-3화 (3/206)

<기적의 이혼대법 3화>

적사결이 향후 행보에 천하사괴를 염두에 둔 그때였다.

“사백, 정말 여기 계셨군요.”

적사결의 뒤로 후덕한 인상의 승려가 다가왔다. 출타 중이었던 장경각주 공선이었다.

‘이놈이 공선이구나.’

적사결은 그간 근방을 오가는 소림승에 대한 파악을 끝냈기에 그가 공선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사백께서 복귀하신 후 이곳에서 살다시피 하신다기에 제 귀를 의심했었습니다. 더구나 그 좋아하시던 술도 끊으셨다고요?”

공선은 푸근한 미소를 가득 담아 말했다.

그는 평소 사백인 무허를 못마땅하게 보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능력은 누구보다 뛰어났으나 행동거지가 승려에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별호가 말해 주듯 술에 환장하는 것부터 시작해 악인이라 하나, 그 살계를 여는 데 거리낌이 없었고, 무엇보다 천하사괴라는 해괴하기 그지없는 무리에 어울리는 것까지.

공선은 소림 내 누구보다 무허를 싫어하는 인물이었다.

한데 그런 무허가 개과천선한 모습을 보이니 공선으로서는 그만큼 기뻐하고 있었다.

“사질 말대로 이제부터라도 마음을 고쳐먹으려 하네.”

“잘 생각하셨습니다. 돌아가신 전대 방장 어른께서도 이제야 편히 열반에 드실 수 있겠군요.”

“해서 그런데 사질이 날 좀 도와줄 수 있을까?”

“이 사질이 가능한 일이라면 무엇이든 들어드리겠습니다. 말씀만 하십시오.”

공선은 힘차게 말하며 적사결의 손을 붙잡았다.

‘아놔, 이 부담스런 돼지가 손은 갑자기 왜 잡아.’

적사결은 어색하게 웃으며 손을 뺀 후 말했다.

“내 원상 그 녀석에게 필사본을 부탁한 게 있는데 말이야. 그것 좀 거처로 가져가면 안 될까?”

“아, 얘기는 들었습니다. 칠십이 종 절예 말씀이지요.”

“맞네.”

“아무리 각주라 하나, 아니 각주이기에 불가합니다. 장경각의 규율을 각주인 제가 어길 순 없지요. 지금까지처럼 각 내에서 보시면 안 되겠습니까?”

공선의 얼굴은 단호했다.

그는 돌부처라 불릴 정도로 융통성이 없다하여 석불이라 불리는 인물이었다.

무공을 익히지 않은 학승임에도 별호를 지닌 석불 공선, 그는 대쪽 같은 성정으로 강호에서 유명한 소림승이었다.

‘본교에서는 말하지 않아도 다들 알아 처먹었건만 더럽게 피곤하구나.’

적사결은 울컥하는 마음으로 귀찮은 파리 쫓듯 손을 휙휙 저었다.

“아까는 말만 하라더니, 쳇! 도와주지 않을 거면 꺼져!”

“…….”

공선은 한숨을 푹 쉬더니 등을 돌렸다.

그러면 그렇지라는 분위기가 그의 등에서 뿜어져 나왔다.

“아참, 잠깐만.”

“……?”

적사결의 말에 공선이 고개만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세수경과 역근경. 그것들은 어디 있지? 장경각에 없는 듯한데.”

“…….”

“왜…… 왜 그런 이상한 눈으로 보는 거야?”

달마가 유일하게 남긴 두 개의 무경이 세수경과 역근경이었다.

적사결은 장경각의 모든 서책을 확인했으나 그것들이 없기에 물은 것이었다.

그런 전설의 비급은 당연히 장경각주가 따로 보관할 것이라는 생각이었기 때문에.

“휴우, 사백. 혹시 근래 들어 자주 깜박하거나 순간순간 기억이 끊어진 적이 있습니까?”

“뭐?”

“혹여 마교주와의 일전에서 머리를 심하게 다쳤다거나…….”

“설마…… 지금 내가 매병(呆病 : 치매)이나 기억 상실 같은 것에 걸렸다고 의심하는 건가? 그런 거야?”

적사결은 황당한 눈으로 공선을 바라보았다.

“아…… 아닙니다. 하긴 사백께선 보리연화공의 대성 외에는 다른 무공에 관심이 없으셨고 달마동 역시 가 보지 않으셨지요. 세수경과 역근경은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전설의 비급도 아니고 거창한 비전 신공도 아닙니다. 달마동에 있으니 가 보시면 아시게 될 겁니다.”

공선의 말에 적사결은 문득 이상한 점을 느꼈다.

‘뭐? 소림승이면서 세수경과 역근경에 관심이 없었고 달마동도 가 보지 않았다? 그럼 혹시 놈의 진신무공인 보리연화공이 세수경과 역근경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 아닐까. 그래서 관심이 없었을지도…….’

보리연화공은 무허의 독문무공으로 소림에서도 유일한 전승자가 그였다.

무공 비급 중 가장 먼저 그것을 찾아보았으나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에 차선책을 찾는 와중이었는데 공선이 단초 하나를 던져 준 것이었다.

적사결이 생각을 이어 가는 와중에 공선은 마지막 말을 내뱉고 있었다.

“설마 달마동 위치까지 알려 드려야 되는 건 아니시겠죠? 그럼 전 이만 바빠서.”

그 말을 끝으로 공선은 휙 하니 자리를 떠났다.

더 이상 말을 섞기 싫다는 노골적인 언행이었다.

“달마동이라…….”

적사결은 나직이 달마동을 읊조렸다.

그곳은 달마가 구 년 동안 면벽 수련을 한 장소로 소림에서도 특히 유명한 장소였다.

“가 보면 안다고 했으니 일단 가 보지, 뭐.”

적사결은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움직였다.

달마동은 오유봉 중턱에 위치해 있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적사결이 도착한 곳은 세수경과 역근경이 보관 중이라 믿기 힘들 정도로 경계가 허술했다.

아니, 허술하다 못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저벅. 저벅.

적사결은 천천히 달마동 내부를 살피며 걸음을 옮겼다.

‘이런 곳에서 구 년 동안, 벽만 쳐다보고 있었다고? 미친 거 아냐?’

달마동 내부 공동은 한 사람이 기거하기에도 좁은 곳이었다.

그리고 좁기 때문일까. 공동에는 달마를 기리기 위한 어떤 것도 마련되어 있지 않았고 그저 텅 빈 동굴로 느껴졌다.

‘여기에 세수경과 역근경이 있다? 어디에? 서책이 아니라면 설마?’

적사결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벽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살펴보았다.

“있구나!”

공동의 벽에는 빼곡히 문자가 적혀 있었다.

손가락으로 판 것 같은 문자는 분명 달마가 새겨 놓은 것이라는 추측이 들 정도로 정교했다.

“좌측이 혈맥과 경혈에 관한 것으로 보아 세수경, 우측이 근육과 골격을 다루는 역근경이로구나.”

난잡하게 새겨져 있지만 세수경과 역근경의 구분이 안 될 정도는 아니었다.

한데 모든 내용을 읽은 적사결의 미간은 오히려 좁아져 있었다.

‘평이하다. 특별한 부분이 전혀 없어. 이 정도 내용은 그저 몸을 튼튼히 하는 단순한 수련법에 불과해.’

외공의 측면에서 본다면 평이하다 할 수는 없었다.

말 그대로 신체를 단련하는 데 있어서 세수경과 역근경은 분명한 효과를 발휘할 테니 말이다.

하나 적사결은 신공으로서의 심오함을 기대했기에 그런 것이었다.

“소림 무공의 시초라 여겨졌기에 허황된 소문이 나돈 것이었나.”

하긴 특별했다면 이렇게 아무런 보안이 안 되었을 리 없었고 그 긴 세월 누구도 이곳의 비밀을 알아내지 못했을 리 없었다.

고금을 통틀어 소림은 항상 뛰어난 자들을 세상에 내놓았으니 말이다.

“그래도 풀떼기만 처먹는 중들이 우락부락한 이유는 알았군.”

적사결이 세수경으로 짐작되는 벽의 문자를 손으로 쓸어내리며 피식 웃었다.

한데 그런 적사결의 손끝에 위화감이 느껴졌다.

‘이거…… 미묘하게 깊이가 다른데?’

적사결은 횃불에 의지하지 않고 눈을 감은 후 손끝으로 문자를 훑어 내리기 시작했다.

그는 검을 움직이는 데 한 치를 열 번 이상 나눌 만큼 뛰어난 검사였다.

그런 그이기에, 손끝의 감각이 문자의 깊이를 모두 잡아 내고 있었다.

천연동굴의 벽면은 울퉁불퉁하기에 그 같은 감각이 아니라면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정도로 미세했다.

“확실히 깊이가 다르다.”

대부분의 문자가 정확하게 동일한 깊이였으나 일부 극도로 미세하게 깊게 새겨진 부분이 있었다.

적사결은 그 부분만 분류하여 조합해 보았다.

“이건…… 또 다른 구결?”

구결 속에 이중으로 숨겨진 구결이 있었다.

안력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햇빛이 들지 않는 동굴 안에서 이를 알아낼 수는 없었기에 지금껏 발견되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소림승들은 혹시나 있을 훼손을 우려해 만지지 않았을 것이고 말이다.

두근. 두근.

심장이 날뛰듯 격동하고 흥분을 증명하듯 목울대가 위아래로 요동쳤다.

꿀꺽-.

눈앞에 달마의 환상이 자리해 세수경과 역근경을 새기는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보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란 뜻으로 남긴 건가? 달마란 양반 음흉한 구석이 있었구먼.”

적사결은 진짜 세수경의 구결을 암기한 후 가부좌를 틀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혈맥과 경혈을 뜻대로 움직이는 세수경은 외공이자 일종의 의념법에 기반한 공부였다.

즉, 내공을 이용해 움직이는 것이 아닌 의지로서 다루는 것이었다.

“대박이구나. 이것이라면 이혈대법처럼 경혈의 위치를 마음대로 바꾸는 것은 물론이고 전신세맥의 탁기를 씻어 내고 혈류의 흐름조차 의지아래 둘 수 있어.”

의념법이기에 대성하기까지 다소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분명 심오하고 뛰어난 절학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적사결은 이번엔 역근경의 문자들을 더듬으며 숨겨진 구결을 찾기 시작했다.

슥. 스슥.

“뭐야, 왜 없지?”

적사결은 모든 문자를 비롯해 벽면 전체를 만져 보았으나 앞서와 같이 다른 부분은 존재하지 않았다.

“세수경이 있는데 역근경이 없을 리 없는데…….”

이번엔 먼지를 쓸 듯 바닥 전체를 손으로 만져 보았지만 이내 실망했다.

추측과 달리 아무런 단서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나 포기하지 않고 역근경을 중얼거리며 공동 구석구석을 살펴보는 그때 머릿속에서 어떤 생각이 번뜩하고 떠올랐다.

‘그래. 달마의 출신은 천축이었지. 단초는 그곳과 관련 있을지도 몰라.’

적사결은 바람처럼 달마동을 빠져나가 장경각으로 향했다. 그리고 천축과 관련된 서책을 찾아 무섭게 탐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당서역기라는 책에서 진짜 역근경의 진체라 짐작되는 일화를 찾을 수 있었다.

‘천축의 구도자들. 신체를 수축하거나 늘이기도 하고, 돌처럼 단단해지거나 말랑거리게 만드는 신비한 능력을 지닌 자들이었다…….’

대당서역기는 천축을 여행한 당대의 고승 현장이 저술한 여행기였다.

그가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이 생생히 적혀 있었고 그 내용 중 천축의 구도자들에 대한 묘사는 믿기 힘들 정도였다.

‘이 구절이 사실이라면 진짜 역근경은 뼈와 근육을 단련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닐 거야.’

적사결은 책자를 덮고 다시 달마동으로 향했다.

학승들은 바람처럼 왔다가 책들을 엉망으로 널브러뜨리고 사라진 적사결을 보며 한숨을 쉬고 있었다.

타다다닷.

달마동에 도착한 적사결은 다시 한번 유심히 공동 내부를 살폈다.

분명 비밀이 숨겨져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어느 하나 허투루 보지 않았지만 역시나 소득은 없었다.

털썩.

바닥에 주저앉아 면벽 수련하 듯 자세를 잡은 적사결은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나는 달마다. 달마가 되어서 생각하는 거다.’

그렇게 적막한 공간 속에서 시간은 하루하루 지나갔다.

머릿속에서 달마의 유체이탈 같은 것은 사라진 지 오래였고 새로운 무학에 대한 열망만이 가슴속에 존재하고 있었다.

한 달 후.

“모르겠다. 도대체 뭘 어떻게 숨겨 놓은 거냐. 휴우…….”

적사결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떨궜다.

모든 시도가 무색하게 비밀을 알아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달마 이 새끼, 무허처럼 또라이였음이 분명해. 이거 봐. 이렇게 많은 문자를 새기는데 굵기나 깊이가 일정하다니 이게 사람 새끼야? 강박증 변태 새끼!”

역근경의 구결은 한 번에 휘갈겨 쓴 듯 글자와 글자가 이어지는 선까지 굵기와 깊이가 일정했다.

그럼에도 한 치의 오차 하나 없었고 필체 역시 명필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훌륭했다.

“누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

적사결은 바닥에 주저앉아 준비해 놓은 벽곡단을 우걱우걱 먹어 댔다.

그럼에도 눈은 역근경의 구결에서 떠나지 않았다.

세수경의 숨겨진 구결을 찾지 못했고 천축의 구도자들에 대한 내용을 읽지 않았다면 진작 포기했을 터였다.

하나 새로운 무학에 대한 열망은 자신을 달마동에 붙잡아 놓고 있었다.

꿀꺽. 꿀꺽.

수통의 물로 텁텁해진 목구멍을 적힌 적사결은 다시 면벽 수련을 재개했다.

시일이 얼마나 걸리더라도 밝혀 내고 말겠다는 의지가 면벽 수련을 미친 짓이라 치부했던 적사결을 그렇게 만들고 있었다.

또다시 한 달 후.

“시부랄 달마!”

퍽. 퍽.

적사결은 결국 비밀을 밝혀 내지 못했고 발로 벽을 걷어찼다.

“좋은 게 있으면 왜 숨겨! 차라리 전수를 하지!”

후인에게 전수를 했다면 자신이 세수경의 구결이라도 얻지 못했을 것을 알고 있지만 홧김에 아무 말이나 내뱉을 정도로 짜증이 극에 달해 있었다.

발로 걷어차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남은 벽곡단과 수통을 벽에 집어던지는 적사결이었다.

어차피 자신에게는 달마에 대한 존경 따윈 조금도 없었다.

“헉. 헉. 씩. 씩.”

적사결은 숨을 몰아쉬며 여전히 역근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리고 그 순간, 지금까지와 다른 점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것은 수통이 박살 나며 터져 나간 물에 닿은 부위였다.

“색깔이 변해? 혹시 이게 비밀인가?”

적사결은 머뭇거리지 않고 허리춤을 내리고 하물을 움켜잡았다.

강함을 숭상하는 천마신교의 수장인 그였다.

새로운 무의 세상이 눈앞에 있는데 무엇이든 거리낄 것 없었다.

쫄쫄쫄.

“헛! 이거였어?”

달마가 이걸 봤다면 결코 이런 방식으로 구결을 숨기지 않았으리라.

적사결은 오줌이 닿으며 검붉은 글씨가 드러나자 씨익 웃으며 방광에 더욱 힘을 주었다.

쏴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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