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이혼대법 1화>
꽈아아앙.
콰쾅.
하늘에서 울려 퍼지는 뇌음이 아닌 지상에서 터져 나가는 뇌성벽력이었다.
강기가 어우러지며 파괴의 폭풍을 일으키는 장소, 그곳에 두 사람이 있었다.
그중 검을 든 자는 검붉은 기운을 두르고 있었다. 바로 천마신교의 교주, 마도제일인 광혈존 적사결이었다.
“교주, 그때보다 더욱 강해졌구려.”
콰지직. 우웅.
그런 그를 상대하는 이의 발밑이 한 치가량 움푹 꺼지며 황금빛 기운이 터져 나왔다.
그 속에 모든 사마를 멸하는 기운이 담겨 있으니 그가 소림이 자랑하는 정도제일인, 취불 무허였다.
그는 내공을 발산하는 것만으로 몸속에 침투한 적사결의 마기를 와해시킨 것이었다.
“중늙은이 당신도 꽤 좆 빠지게 수련했나 보군. 크크크.”
“헐헐헐, 중이 쓸 데도 없는 좆 달고 있어 뭐하겠소.”
“하여간 변태 노괴 같으니. 놀리는 재미가 없단 말이야. 쯧!”
“허허. 빈승이 워낙 자유로운 영혼인 것은 교주도 잘 알고 있지 않소.”
무허는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허리춤에 매어진 술병을 들고 흔들었다. 그러고는 싸우는 와중에 그것을 마셔 댔다.
금주가 계율인 승려의 신분으로 취불이란 별호를 지니고 있는 무허는 별종 중의 별종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적사결은 심드렁한 모습으로 바라보았다.
“뒈지기 전에 마지막 한 잔인 줄 아시오. 앞으로는 그 목구멍으로 술이 넘어갈 일은 없을 테니까.”
“허허허허. 늘 한결같은 패기로구려. 그럼 교주도 한잔하시겠소?”
무허는 말이 끝나자마자 술병을 던졌다.
한데 술병은 곡선을 그리는 것이 아닌 일직선으로 적사결에게 날아갔다.
그 속도 역시 빨랐기에 적사결은 반사적으로 그것을 받아 들었다.
터턱. 찌이잉.
술병을 받아 든 적사결의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그렇지 않았다.
무허가 던진 술병에는 그의 막대한 내공이 실려 있었던 것.
자신의 마기를 뚫고 침투하는 항마력을 억누른 적사결은 호쾌하게 술병을 들고 그것을 마셨다.
서로 웃고는 있지만 생사대적이라 불리는 관계. 상대방은 자신을 앞에 두고 태연히 술을 마셨으니 거절하는 약한 모습을 보일 순 없었다.
한데.
“크으. 좋군. 이거 무슨 술이오?”
적사결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꿀덩이 같은 술맛에 놀라 물었다.
무림 최대 방파의 수장으로서 먹어 보지 못한 것이 없었고 가져 보지 못한 것도 없었다.
한데 방금 마신 술맛은 지금껏 맛본 어떤 술보다 입에 착착 감겼다.
“허허허허. 교주도 마음에 드는가 보구려. 얼마 전에 선물 받은 것인데 반선주라는 것이오. 한 병밖에 없는 귀한 것이지만 마지막 한 모금을 그대에게 양보한 것이라오.”
무허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띤 채 답했다.
“반선주? 들어 보지 못한 술이군. 한데 양보라……?”
“저승길은 그대가 걸을 것이니 한 잔 정도는 양보할 수 있지 않겠소. 우리가 그동안 쌓은 미운 정도 있으니 말이오.”
“크하하. 오늘 사생결단을 내자 이거로군. 좋지!”
파사삭.
적사결의 손에 든 술병이 마기에 의해 가루로 화해 흩날렸다.
동시에 시뻘건 혈광이 두 눈에서 폭사되며 광기와 살기가 주변을 옭아매어 갔다.
콰르릉.
또다시 격돌한 지옥의 악신과 하늘의 천신.
그리고 경천동지할 위력이 지상을 초토화시켰다.
* * *
“이 씨발. 오늘 내, 저 새끼 반드시 죽인다!”
적사결은 피투성이가 된 채로 땅바닥을 짚고는 중얼거렸다.
삼 년의 폐관 수련으로 스스로 최강임을 자신했건만 이 꼴이 되다니. 자부심이 너덜너덜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적사결이 힘겹게 몸을 일으키려는 그때.
좌우에서 누군지 모를 무인들이 양팔을 잡고 자신을 부축해 갔다.
한데 갑자기 일어섰기 때문일까.
“쿠엑. 쿨럭. 쿨럭.”
한 됫박은 됨직한 피가 입에서 쏟아져 나왔다. 더구나 눈앞이 흐려지고 귀에서 이명이 윙윙 울려댔다.
적사결은 몸 상태를 살펴보지 않아도 엉망이 된 것을 알 수 있었다.
‘제길…… 오감이 뒤죽박죽이고 온몸이 만신창이구나. 크윽.’
적사결은 어금니를 악물고 고개를 들었다.
그의 시야에, 얼핏 취불의 인영이 죽은 듯이 누워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으로 보아 상대는 아직 살아 있었다.
“오늘. 쿨럭…… 오늘 죽여야 돼.”
적사결은 앞도 제대로 분간이 되지 않는 상태에서 무허를 죽이기 위해 걸음을 내디뎠다.
다리가 휘청이고 세상이 핑핑 돌았지만 놈을 죽일 절호의 기회였다.
그때 자신을 부축하고 있던 무인들이 그것을 제지했다.
“진정하십시오. 내상이 심하십니다.”
“이거 놔라. 오늘 놈을 죽여야 한다.”
“안 됩니다. 보중하셔야 합니다!”
“놓지 못하겠느냐! 오늘 반드시 놈을 죽여야 한단 말이다!”
적사결은 광기를 뿌리며 발버둥을 쳤지만 자신의 양팔을 구속한 자들을 뿌리칠 수 없었다.
“보십시오. 놈들의 호위대가 벌써 방비를 굳혔습니다.”
“대사님, 일단 자리를 피하셔야 합니다.”
적사결은 정신없는 와중이었지만 흠칫했다.
뭐? 대사님? 뭔 개소리야?
다시 한번 몸을 비틀며 저항하는 그때였다.
타타탁.
누군가가 그의 수혈을 짚자 적사결은 그대로 눈앞이 캄캄해지며 의식을 잃었다.
“어서 대사님을 후군으로 뫼시어라!”
일단의 무인들이 주변을 둘러싸고 정신을 잃은 적사결은 그대로 안전한 곳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그 맞은편.
“교주님을 옮겨라. 수라혈검대는 목숨을 다해 교주님을 지켜야 할 것이다!”
천마신교의 장로 잔혼마수 구양패의 명에 마인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일견 교주의 패배처럼 보이기에 사기가 떨어질 법도 하건만 누구도 그에 영향을 받지 않고 있었다.
그만큼 그들은 정예 중의 정예였다.
‘이상하구나.’
구양패는 정신을 잃은 채 옮겨지는 교주를 보며 미간을 좁혔다.
그도 그럴 것이 교주가 익힌 혈마기는 시전자의 목숨이 끊어지기 전에는 정신을 잃는 것을 절대적으로 막아 주는 공능이 있는 걸로 알고 있었다. 한데 그의 눈앞에 그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뭐, 취불의 항마력이 워낙 대단하니, 그럴 수도 있겠지.’
구양패는 고개를 젓고는 전장에 집중했다.
하수가 고수를 평가할 순 없는 법.
더구나 강자존의 율법이 지배하는 마도인인 그에게 그것은 일종의 상식이자 본능이었다.
“와아아아.”
천마신교의 사기는 떨어지지 않았으나 취불, 무허대사의 승기에 힘입어 정파의 사기는 한껏 오른 상황.
의천맹의 총공세가 시작되자 땅이 진동하고 대기가 울며 떨었다.
* * *
“구양 장로님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교도들이 많이 희생되었네. 다행은 아니지.”
구양패는 씁쓸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의천맹의 공세에 천마신교의 전선은 밀리다 못해 패퇴하여 전진기지까지 잃고 감숙까지 퇴각한 상황이었다.
그중 자신은 가장 힘겨운 최후방을 맡아 마지막에야 중간 거점으로 합류한 것이었다.
“구양 장로님과 구양가의 희생이 없었다면 더 많은 교도들이 목숨을 잃었을 것입니다.”
“수뇌부로서 응당 해야 할 일이었을 뿐. 그런 말을 들으려 한 것이 아니네. 그나저나 교주님께서는 깨어나셨는가?”
구양패의 물음에 이장로 흑마검귀 관패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깨어는 나셨습니다. 한데…….”
“혹여 교주님께 무슨 일이 생겼는가?”
그 구양패는 주화입마나 무공을 잃는 것과 같은 극단적인 가정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취불과의 일전은 치열했기 때문이었다.
“걱정하시는 그것은 아닙니다.”
“이 사람. 답답하군! 어서 말해 보게.”
“그것이 교주님께서 깨어나자마자 술을 찾으시고 삼 일 밤낮으로 마시고 계십니다.”
“몸도 성치 않으실 터인데…… 아니 그것보다 취불 때문에 술을 누구보다 싫어하시는 분이?”
한때 신교 전체에 금주령까지 내렸던 적사결이었다.
당시 취불과의 일전에서 반수 정도 밀렸다는 것에 화가 끝까지 치밀어, 내린 명이었던 것.
그만큼 그의 승부욕은 남달랐다.
‘설마 패한 것에 좌절하신 것은 아니겠지…….’
취불과의 승부에서 정신을 잃고 땅바닥에 드러누워 버린 상황. 적사결의 성정으로는 화를 내지 않을 수 없을 터였다.
한데 반대의 경우도 생각할 수 있었다.
상상하기 싫지만 넘을 수 없는 벽에 주저앉아 버리는 경우. 적사결이 그럴 일은 없겠지만 그도 사람이었으니까.
‘아니야. 교주님께서 그럴 일은 없다’
구양패는 주먹을 꽉 쥐고 걸음을 옮겼다.
적사결을 직접 보기 위해 움직인 것이었다.
그리고 그 사이.
“아이고 이런 귀한 검남춘을 한 동이나 먹게 되다니.”
적사결, 아니 적사결의 몸을 한 무허의 얼굴에 웃음꽃이 가시질 않았다.
물론 자신이 못 먹어 본 술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처럼 눈치를 보지 않고 마음 편히 양껏 마신 경우 또한 없었다.
취불이라는 별호까지 얻을 정도로 술을 좋아했지만 소림이라는 배경 탓에 주변 시선을 생각지 않을 수 없었던 탓이었다.
하나 지금.
벌컥. 벌컥.
무허는 동이째로 벌컥벌컥 검남춘을 마셔 댔다.
삼일 동안 그는 그동안의 욕망을 해금하고 마음껏 술을 먹고 있지만 아직도 술이 고팠다.
타앙.
“끄윽. 쥑이는구먼.”
술동이를 내려놓은 무허는 문득 방 한구석에 놓여 있는 명경에 시선이 갔다.
흑단목 같은 긴 머리가 허리까지 내려오고 송옥, 반안이 부럽지 않은 얼굴이 거기 있었다.
“허허, 노부도 소싯적에 날려 줬지만 교주의 이 얼굴은 장난이 아니구나.”
중년의 중후함과 마도인을 대변하는 듯한 강인한 인상.
다듬지 않은 수염조차 멋스러웠고 미중년의 모든 장점이 얼굴에 녹아 있었다.
“반신반의했건만 진짜 이루어지다니 부처님께서 기적을 내려 주셨도다. 허허허.”
손으로 턱을 쓰다듬으며 무허는 싱긋 웃었고 명경 속의 적사결이 활짝 웃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동이를 들고 목구멍으로 술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무허는 이 상황을 꽤 만족하고 있었다.
* * *
같은 시각.
의천맹 천군각.
“어떻게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날 수 있지…….”
무허의 모습을 한 적사결은 삼 일 동안 고뇌에 고뇌를 거듭했지만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세상에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고 믿는 적사결도 이번만큼은 이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 몸이 바뀔 수도 있다고 쳐! 근데 왜 하필 이 몸이란 말이냐…….”
적사결은 명경을 들고 그곳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절망적으로 바라보았다.
자신이 무허의 몸으로 들어왔기에 세상은 그때의 승자가 무허인 것으로 알고 있었다.
정작 깨어 있는 사람은 자신이었지만 정신을 잃지 않고 서 있던 몸은 무허의 것이었으니까.
벌써부터 소문은 자신이 패배자라고 나돌고 있었다.
“씨발…….”
적사결은 명경 속의 무허가 능글맞게 웃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욕이 절로 나왔다.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또 짜증나네…….”
아까는 보지 못했던 외모가 적사결의 눈에 들어왔다.
주름이 가득한 볼품없는 대머리 늙은이. 털이라고는 길어질 대로 길어져 처진 눈썹과 좁쌀영감 같은 수염이 전부였다.
“크흑, 다 좋다고 쳐! 하필 왜 대머리냐고!”
무허의 몸인 지금 자신의 머리통을 만져 보고 깨달았다.
아무리 노인의 몸이라 하나 머리를 깎은 것이 아닌 원래 없는 것이라는 걸. 그것도 완벽한 민머리였다.
남자라면 모두 학을 뗀다는 탈모 말이다.
찰싹.
찰지기 그지없는 소리.
적사결은 머리를 만지던 손을 그대로 내려 얼굴을 감싸 쥐었다.
“이 망할 늙은이 분명 대머리라서 소림에 들어갔을 거야!”
그 술고래가 그렇지 않고서 금주가 계율인 소림승이 됐을 리가 없었다.
적사결은 얼굴을 감싸 쥐고 소리쳤다.
“뭐 이런 개 같은 일이 다 있어! 씨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