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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을 읽는 막내 공자 200화 (200/200)

<검을 읽는 막내 공자 200화>

200화. 마지막 싸움과 각성(5)

“심법?”

공손무의 대답에 가면 사내의 눈가가 좁혀졌다.

‘대체 얼마나 강한 공력을 가지고 있길래 심법으로 내 환술을 부술 수 있단 말인가.’

그가 속마음을 숨기며 말을 이었다.

“환술이 내 모든 것으로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그건 내 힘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해.”

“나 또한 마찬가지다.”

“흥! 허세만 부릴 줄 아는 애송이가!”

가면 사내가 안광을 번뜩이며 공격 자세를 취하였다.

이를 깨달은 공손무가 검을 들며 내공을 끌어 올렸다.

‘얼굴을 보면 또 환술에 걸릴 터. 얼굴을 보지 않고 놈의 움직임을 읽어야 한다. 쉴 틈 없이 몰아쳐 단시간에 해치우는 수밖에 없어!’

생각을 끝낸 그가 땅을 박차고 앞으로 튀어 나갔다.

매화질풍검이 호선을 그리며 검풍을 일으켰다.

‘탈명화풍(奪命花風).’

돌풍과 함께 선홍빛을 띤 연기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뭐지?”

처음 보는 기술에 가면 속 사내의 눈빛이 예리하게 빛났다.

“이 냄새는……?”

코끝을 간지럽히는 향기로운 냄새.

바람과 함께 떠밀려온 선홍빛의 연기는 향기로운 매화꽃 내음을 머금고 있었다.

하지만 아름다운 장미에 날카로운 가시가 있는 것처럼 향긋한 꽃향기에도 가시가 존재했다.

그것도 그냥 가시가 아닌 한순간에 목숨을 거두어 가는 무시무시한 가시 말이다.

“헉! 수, 숨이!”

가면 사내가 그 자리에 무릎을 꿇더니 괴로워하기 시작했다.

물속에 빠진 듯한 답답함과 동시에 온몸이 불타오르는 듯한 고통.

상반되는 두 개의 고통 속에서 몸부림을 쳤다.

공손무가 그런 그를 차가운 눈빛으로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매화질풍검법의 초식 중 하나인 탈명화풍(奪命花風)이다. 탈명화풍을 흡입한 적은 꽃 냄새를 맡은 나비처럼 춤을 추지만, 곧 숨이 막히고 오장육부가 타들어 가는 고통에 휩싸이지. 어떠냐? 고통스러우냐?”

“크아아아!”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어서 항복해라.”

“크윽! 하, 항복하면 이 고통을 없애줄 건가!”

“항복하고 내 명령을 따른다면 탈명화풍을 거두어 주지. 하지만 끝까지 고집을 부린다면 지금보다 더 큰 고통을 맛볼 것이다.”

“하, 항복……!”

순간 가면 사내의 입꼬리가 기이하게 꺾였다.

“할 것 같아?”

쉬이이이.

고통에 몸부림치던 가면 사내는 놀랍게도 환영이었다.

“가짜?!”

공손무가 재빨리 땅을 박차고 뒤로 물러났다.

‘언제 바꿔치기한 거지? 놈은 어디에 있는 거야!’

그가 기감을 펼친 채 주위를 둘러보며 가면 사내를 찾으려 했다.

하지만 사방에 가면 사내의 기운이 안개처럼 퍼져 있어서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어디에 숨은 것이냐! 어서 모습을 드러내라!”

“키킥. 여기다.”

“앗!”

언제 왔는지 가면 사내는 공손무의 등 뒤에 서 있었다.

“하아앗!”

공손무가 몸을 회전시키며 검을 휘둘렀지만, 가면 사내의 손길에 막혀 버렸다.

‘내, 내 검을 한 손으로 잡았어?’

가면 사내는 손가락 두 개로 매화질풍검을 막고 있었다.

“네 녀석은 절대로 날 이기지 못해.”

“크윽! 헛소리!”

가면 사내가 미소를 흘리면서 뒤로 물러섰다.

“더는 도망칠 수 없다!”

공손무가 안광을 번뜩이며 매화질풍검을 세차게 휘둘렀다.

‘광풍육룡(狂風六龍).’

거센 돌풍이 휘몰아치고 매화 꽃잎을 품은 여섯 마리의 용이 앞으로 뻗어져 나갔다.

지면을 가르며 용들이 날아오고 가면 사내의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여섯 마리의 자줏빛 용들이 그대로 가면 사내를 덮쳤다.

‘해치웠나?’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공손무의 귓가에 가면 사내의 음흉한 목소리가 들렸다.

“멍청하긴. 그런 느려터진 공격으로 나를 잡을 수는 없다.”

“쳇! 또 놓친 건가!”

공손무가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들어 올리자 가면 사내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놀랍게도 팔짱을 낀 채 허공에 둥둥 떠 있었다.

가면 사내가 양팔에 힘을 주며 속삭였다.

“환영나선(幻影羅扇).”

나선 모양을 한 남색의 기운이 양팔을 휘감았다.

팔과 주먹을 강기로 덮은 그가 지면을 향해 날아갔다.

정면으로 날아오는 권격.

공손무가 몸을 비스듬히 기울여 쏘아져 오는 주먹을 피했다.

콰가가강!

주먹이 빗나가자 돌풍과 함께 지면이 파헤쳐졌다.

공격을 피한 공손무가 곧바로 검을 수평으로 휘둘렀다.

매화질풍검이 호선을 그리며 가면 사내의 머리를 노렸다.

“후훗.”

하지만 놀랍게도 검에 닿자마자 가면 사내의 신형이 둘로 나뉘어졌다.

‘환술?’

두 개로 나누어진 가면 사내가 잔상을 일으키며 공손무의 양옆을 차지했다.

‘이런! 양옆에서 동시에 공격할 모양이군!’

아니나 다를까 두 명의 가면 사내가 양쪽에서 동시에 환영나선을 날렸다.

“치잇!”

예기치 못한 공격에 당황한 것도 잠시, 공손무는 허리를 뒤로 꺾어 권격을 피해 냈다.

“어림없다!”

그러고는 곧바로 검을 고쳐 잡으며 내공을 끌어 올렸다.

‘탈명월풍(奪命月風).’

매화질풍검이 허공을 긋자 날카로운 파공성과 함께 초승달 모양의 거대한 검기가 나타났다.

검기가 가면 사내들의 허리를 동시에 베었다.

‘역시 환영이었군.’

환영이 사라지자 등 뒤에서 또 다른 가면 사내가 주먹을 뻗으며 달려들었다.

‘두 번 당하지 않는다!’

매화질풍검과 환영나선이 허공에서 정면으로 부딪쳤다.

쩌어엉-!

귀를 에는 듯한 굉음과 함께 눈부신 불꽃이 번쩍였다.

두 개의 기운이 엎치락뒤치락하더니 이내 힘의 균형이 한쪽으로 기울여졌다.

먼저 뒤로 물러난 것은 가면 사내였다.

허공으로 날아오른 그가 내공을 끌어 올리며 한 손을 휘저었다.

‘환영대법(幻影大法).’

휘오오오.

흉흉한 기운이 주변으로 퍼지더니 이내 짙은 안개가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안개?”

공손무가 날카로운 눈빛을 한 채 안개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안개를 이용해 내 시야를 혼란케 할 셈인가. 야비한 놈 같으니.’

그는 기감을 펼쳐 가면 사내의 공격에 대비했다.

“비겁하게 숨지 말고 어서 나와라! 이런 거로 날 죽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자 사방에서 가면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크하하핫! 그런 말로 도발해 봤자 소용없다. 너는 이 안개 속에서 천천히 죽어 갈 것이야.”

목소리가 끝남과 동시에 안개 속에서 환영들이 튀어나왔다.

수십 명이나 되는 가면 사내들이 저마다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날아오고 있었다.

‘크읏! 저것들을 동시에 상대해야 하는 건가? 눈도 마주치지 않고서?’

가면 사내들이 환영나선을 두른 채 다가오자 공손무가 내공을 끌어 올렸다.

‘귀화흑륜장(鬼花黑輪掌).’

공손무의 두 손 사이에서 검은 소용돌이가 피어오르더니 사방으로 뻗어져 나갔다.

모든 것을 집어삼킬 것 같은 심연의 어둠.

환영들이 검은 소용돌이에 휩쓸려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런 안개 따위!”

공손무가 안광을 번뜩이며 검을 세차게 휘둘렀다.

‘광풍승천(狂風昇天).’

매화질풍검이 허공을 휘젓자 엄청난 크기의 소용돌이가 그 자리에 생겨났다.

그 모습이 마치 용이 승천하는 것처럼 보였다.

거대한 소용돌이의 등장에 주변을 뒤덮고 있던 뿌연 안개가 눈 녹듯이 사라져 버렸다.

“크윽! 설마 이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니!”

공손무의 내공에 먹구름이 드리워지고 천둥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기상마저 지배하는 힘이란 말인가. 이게 바로 천살성의 힘!”

후우웅!

거대한 소용돌이가 가면 사내의 전신을 집어삼켰다.

잠시 후 거대한 소용돌이가 사라지자 공손무가 사내의 곁으로 다가왔다.

가면 사내는 미동도 없이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드디어 끝났구나.’

흑사교의 교주와 그 부하를 죽였다는 기쁨도 잠시, 갑자기 주변의 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귓속으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환영궁의 시련을 훌륭히 끝냈도다. 이제 세상 밖으로 나와 그 힘을 마음껏 휘둘러 세상의 악을 격멸하라!

목소리가 끝나자 공손무의 의식이 어둠의 소용돌이 속으로 잠겨 버렸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헉!”

공손무가 숨을 급하게 들이켜며 두 눈을 떴다.

“여기는……?”

그가 눈을 뜬 곳은 공손세가 선산의 신검궁.

백부인 공손광이 옅은 미소를 지은 채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가 만든 환영궁의 시련을 훌륭히 마쳤구나. 아니지, 환영궁의 시련 속에서 스스로 길을 찾아 화경의 고수에 이르렀으니 훌륭히 마쳤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하겠구나.”

공손무는 말없이 눈을 깜빡이며 자기 몸을 살폈다.

시간이 지나자 이제야 자신이 환영궁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왔다는 것을 자각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자기 몸에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기운이 흘러넘치는 것 또한 알 수 있었다.

조금만 힘을 주어도 내공이 용솟음치며 태산이 무너질 듯한 위력을 내뿜었다.

“제가 화경의 고수가 된 것입니까?”

“그렇다.”

“이 힘이라면 북마교를 때려 부수는 건 일도 아니겠군요.”

“그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지 않으냐.”

무슨 말인지 이해했는지 공손무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 * *

며칠 후, 몸을 완전히 추스른 공손무는 곧바로 공손세가 본가로 향했다.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막내 공자가 돌아오자 사람들 모두가 놀랐지만, 가주는 보자마자 깨달았다.

공손무가 공손광이 내린 시련을 무사히 마치고 금의환향했다는 것을.

“아버지, 저는 공손세가의 후계자가 되고 싶습니다.”

하나뿐인 후계자 자리를 놔두고 대공자 공손룡과 막내 공자 공손무 간의 일생일대의 대련이 시작되었다.

치열한 양상으로 진행되던 대련은 공손무가 본격적인 실력을 발휘하면서 힘의 균형이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결국 대련의 최종 승자는 공손무가 되었고, 그가 공손세가의 후계자가 되었다.

“공손세가의 후계자가 되었으니 이제 남은 것은 북마교를 막는 일.”

공손무는 검괴에게 빼앗은 정보를 이용, 공손세가의 정보망을 총동원하여 중원에 암약하고 있는 북마교의 첩자들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남궁세가의 대공자, 남궁성회와 그의 어머니인 공손연화가 첩자들을 이끄는 우두머리인 것을 확인했다.

“혈혼, 드디어 너의 복수를 이룰 때가 왔다.”

공손무는 혈혈단신으로 남궁세가로 쳐들어가 증거를 들이대며 남궁성회와 공손연화가 북마교의 첩자임을 입증했다.

남궁성회와 공손연화가 반발하며 공격했지만, 그는 환영궁에서 얻은 힘을 이용하여 반격에 성공.

중원에 암약하고 있는 북마교의 뿌리를 뽑을 수 있었다.

중원의 모처에서 숨어 지내던 검괴 또한 공손무의 칼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했다.

-내 원수들을 모두 해치워 줘서 정말 고마워!

학통 또한 공손무의 활약에 감탄했다.

-허허! 참으로 대단하구나! 이로써 북마교도 함부로 중원을 침공하지 못할게다. 네가 중원의 미래를 바꾼 것이야!

검괴와 북마교의 첩자들을 모두 해치운 공손무.

학통의 예언대로 그의 위명은 날이 갈수록 커졌고, 이 충격적인 소식은 먼 북방에 있는 북마교 교주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공손호 하나만으로도 중원침공이 어려웠는데, 그의 막내아들이 화경의 고수라니.

그들로서는 어쩔 수 없이 중원침공의 계획을 접으며 중원의 대문파들에게 화친의 뜻을 전했다.

“아직 멀었습니다. 저의 시대는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얼마 뒤, 공손호는 일선에서 물러나 태상가주가 되었다.

그리고 북마교가 화친의 뜻이 담긴 문서와 선물들을 보내온 날, 공손무는 모두의 축복 속에서 당당히 공손세가의 최연소 가주가 되었다.

바야흐로 공손무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검을 읽는 막내 공자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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