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을 읽는 막내 공자 196화>
196화. 마지막 싸움과 각성(1)
“뭐라? 대총관을 만났다고?”
“예.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대총관이 자네에게 뭐라고 하던가. 나와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지 묻던가?”
“그런 건 아닙니다. 단지 련주님을 깎아내리며 믿지 말라고 했습니다.”
양휘소가 묘한 미소를 지었다.
“후훗. 그래?”
“예. 그리고 한 가지를 의뢰했습니다.”
“의뢰라, 그것이 무엇인가?”
“무림맹의 인물을 암살하라는 의뢰였습니다.”
“그걸 승낙한 건가?”
공손무가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대총관의 아래에 제가 아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애초에 그것 때문에 만나게 된 거고요. 거절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었겠군. 무림맹을 흔든다고 해서 문제가 되는 일은 없겠지.”
“평화협상을 원하시는 것 아니셨습니까?”
“협상은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질 때 이루어지는 것일세. 나는 협상을 원하지만 무림맹은 이대로만 가면 사도련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 그 생각이 사라지지 않는 한 협상은 없을 걸세. 그러니 적당히 놈들을 흔드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예. 그러면 거기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으신 거로 알겠습니다.”
“부디 조심하시게. 무림맹 놈들은 만만치 않을 거야.”
공손무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
“동정십팔채(洞庭十八寨)를 찾으러 갈 것인가?”
“예, 그렇습니다.”
“알겠네. 부디 성과가 있었으면 좋겠군.”
양휘소의 말을 뒤로한 채 공손무가 방을 나왔다.
건물 밖으로 나온 그는 동정호로 향하기 위해 곧바로 말에 올랐다.
“드디어 동정호로 가는구나.”
공손경승의 모친이 마지막으로 목격된 것이 바로 동정호.
그녀는 무슨 일인지 그곳을 주름잡고 있던 동정십팔채와 한솥밥을 먹고 있었다.
‘동정십팔채의 채주를 만나 부모님의 행방에 대해 물어야 해. 서둘러야 한다. 놈들이 언제 사라질지 모르니까.’
생각을 끝낸 공손무가 고삐를 당기며 힘차게 출발했다.
* * *
그로부터 약 보름의 시간이 지났다.
“저기가 바로 동정호인가…….”
뿌연 안개를 뚫으며 앞으로 나아가던 공손무의 눈앞에 거대한 호수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고즈넉한 분위기의 잔잔한 호수.
안개가 짙게 끼어 있는 날의 동정호는 금방이라도 용 한 마리가 튀어나올 듯 신비함을 간직하고 있었다.
동정호에 도착한 공손무는 곧바로 주변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뛰어난 경치 때문인지 주변에 수많은 객잔과 고급 기루들이 즐비했다.
‘일단 저기로 가 볼까.’
고민하던 그는 이내 한 곳을 정하였다.
현판에는 ‘악양루’라고 적혀 있었다.
고급 기루인데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손님은 그다지 보이지 않았다.
공손무가 기루의 문을 열며 말했다.
“누구 계시오?”
이윽고 안쪽에서 여인의 가녀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은 영업시간이 아닙니다. 다른 곳으로 가 보세요.”
하지만 공손무는 몸을 돌리지 않았다.
“간단히 끼니만 해결하면 됩니다. 어떻게 안 될까요?”
“으음? 그런 거라면 근처 객잔으로 가면 되잖아요.”
“이 지역 객잔 음식은 입에 안 맞아서 그렇습니다. 어떻게 안 될까요?”
공손무가 간곡한 어조로 말하자 안쪽에서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화려한 치장을 한 기녀였다.
그녀가 공손무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뽀얀 피부에 청초한 인상.
균형 잡힌 몸매에 여우상을 가진 공손무가 마음에 들었는지 그녀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져 나갔다.
“오호홋! 그럼 어쩔 수 없죠. 부족하게나마 대접해 드릴 수밖에.”
“감사합니다.”
“이쪽으로 오세요.”
기녀의 안내를 받은 공손무가 이내 자리에 앉았다.
‘자, 일단 기루 안에 들어오는 건 성공했고. 다음은…….’
사실 그가 아쉬운 소리를 하면서까지 이곳에 들어온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건 다름 아닌 동정십팔채에 대한 정보.
묵번이 준 정보에 따르면 동정호 주변의 고급 기루들은 대부분 동정십팔채와 엮여 있다고 한다.
공손무는 동정십팔채의 채주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기루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잠시 후 기녀가 음식과 술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탁자 위에 음식을 놓은 뒤 그녀가 술병을 든 채 말했다.
“제가 한 잔 올려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공손무의 잔에 술이 채워졌다.
그가 술을 마시자 기녀가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탁자 반대편에 착석했다.
“소녀가 공자의 말동무를 해도 괜찮을까요?”
“그렇게 해 주신다면야 저야 고맙지요.”
“우후훗!”
어지간히도 공손무가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공자께서는 어디에서 오셨나요? 귀티가 흐르시는 게 보통 분이 아니신 거 같습니다만.”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여행객입니다.”
“에이, 아닌 것 같은데?”
기녀의 말에 공손무가 표정을 고치며 은근한 시선을 보냈다.
“사실, 여기에 온 한 가지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으응? 그게 뭡니까?”
그가 술잔을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이 아름다운 동정호를 지배하고 있는 조직. 동정십팔채에 대해서 혹시 알고 계십니까?”
순간 기녀의 표정이 돌처럼 굳어졌다.
“지금 뭐라고 했나요?”
“동정십팔채에 대해 알고 있는지 물었습니다.”
가만히 있던 그녀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그만 나가 주세요.”
“예?”
“영업시간 아니니까 나가 달라고요. 어서요!”
“갑자기 왜 그러시는 겁니까?”
“어서 나가 달라고 했잖아요!”
공연히 소란을 피울 생각은 없었기에 공손무는 순순히 기루에서 나왔다.
비록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순 없었지만, 한 가지 사실은 확인할 수 있었다.
‘저렇게 당황하는 걸 보니 확실히 동정십팔채와 연관이 있는 모양이군.’
이후 몇 개의 기루에 들어가 똑같은 질문을 했는데 역시나 돌아오는 것은 냉랭함이었다.
물론 공손무는 여기서 순순히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이 방법은 쓰지 않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지.’
그가 매몰차게 돌아서는 기녀를 향해 소리쳤다.
“저기 잠시만요!”
“더는 할 말이 없다고 했……!”
그런데 무슨 일인지 기녀는 말을 잇지 못했다.
“아아…….”
대신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듣고 아는 대로 답해라. 알겠느냐?”
“예, 알겠습니다.”
공손무가 기녀에게 한 것은 다름 아닌 섭혼술.
섭혼술은 상대에게 최면을 걸어 자신이 원하는 대로 부리는 것을 말한다.
주로 정보를 빼내기 위해 살수들이 많이 쓰는 방법이다.
“동정십팔채를 아느냐?”
“예. 알고 있습니다.”
“그들과 무슨 관계냐?”
기녀는 우물쭈물하며 말하는 것을 망설였다.
“어서 답해라! 무슨 관계냐고 물었다!”
공손무가 내공을 끌어 올려 섭혼술의 강도를 높이자 기녀의 입이 열렸다.
“정기적으로 동정십팔채에 돈을 바칩니다. 그에 대한 대가로 그들은 저희 기루를 지켜 주지요. 그런 관계입니다.”
“그들은 정확히 언제 돈을 거두러 오느냐.”
“보름에 한 번꼴로 옵니다. 오늘 밤에 돈을 가지러 올 것입니다.”
“호오. 그렇단 말이지?”
오늘 밤에 동정십팔채의 일원이 온다는 말에 공손무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너는 나를 만난 적이 없다. 나를 기억에서 지워라. 알겠느냐?”
“예, 알겠습니다.”
말을 끝낸 공손무가 섭혼술을 품과 동시에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응?”
섭혼술에서 풀려난 기녀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뭐지? 나 왜 여기에 서 있어?”
이상한 기분에 이리저리 둘러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이는 게 없었다.
“정말 이상하네. 어제 너무 무리해서 그런가.”
기녀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것을 지켜보고 있는 눈동자.
어둠 속에 숨어 있던 공손무가 이내 건물 밖으로 빠져나왔다.
“밤이 올 때까지 여기에서 기다려야겠군.”
그는 동정십팔채의 일원을 만나기 위해 밤까지 기루 근처에서 머물렀다.
그렇게 해가 지고 밤이 되었다.
기루 주위가 손님들로 북적이면서 낮과는 완전히 딴 세상이 되었다.
동정십팔채의 식구를 놓치지 않기 위해 공손무는 기루의 지붕 위에서 드나드는 사람을 샅샅이 살펴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응? 저 녀석인가?’
밤이 깊어지자 피풍의를 입은 정체불명의 사내가 기루 건물의 뒤편에 나타났다.
주변을 연신 살피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이 한눈에 봐도 수상해 보였다.
덜커덩!
이윽고 기루의 뒷문이 열리고 기녀 한 명이 밖으로 나왔다.
기녀가 가죽 주머니 하나를 내밀자 사내가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서 품에 넣었다.
‘저놈이구나!’
사내를 바라보는 공손무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저 녀석의 뒤를 밟아야겠어. 계속 쫓다 보면 놈들의 본거지를 알아낼 수 있겠지.’
공손무는 피풍의 사내를 은밀하게 뒤따르기 시작했다.
기척을 완전히 죽인 탓에 사내는 공손무의 존재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이후 그는 아무 의심 없이 몇 개의 기루에서 돈을 받고는 산길로 접어들었다.
‘저건!’
험한 산길을 오른 지 약 반 시진이 지나자 먼발치에서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동정십팔채의 산채에 도착한 것이다.
산채는 꽤 견고해 보였고 지키는 자들도 많아 보였다.
피풍의 사내가 정문 앞에 나타나자 문지기들이 고개를 숙이며 소리쳤다.
“앗! 조장님 오셨습니까!”
“그래. 별일 없었느냐?”
“예! 아무런 일도 없었습니다!”
“채주님은?”
“안채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렇구나. 어서 문을 열어라.”
“예! 조장님!”
대답을 마친 문지기들이 서둘러 문을 열려고 했다.
그 순간이었다.
끼이익!
그런데 무슨 일인지 안쪽에서 누군가가 먼저 문을 열어젖혔다.
휘오오오.
얕은 바람이 불어오고 스산한 기운이 감돌았다.
“응?”
문이 완전히 열리자 무엇을 보았는지 피풍의 사내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채주님!”
사자의 갈기같이 나풀거리는 머리카락.
백색의 풍성한 수염.
핏발이 서 있는 눈동자.
열린 문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다름 아닌 동정십팔채의 채주였다.
“채주님을 뵙습니다!”
피풍의 사내가 고개를 숙였지만, 어쩐 일인지 채주라는 자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어리석은 것.”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채주가 안광을 번뜩이며 피풍의 사내의 어깨 너머를 쏘아보았다.
“멍청한 놈. 쥐새끼를 달고 와놓고서는 뭘 잘했다고 인사를 하는 것이냐!”
순간 동정십팔채 무사들의 시선이 일제히 뒤쪽으로 향했다.
자신의 존재를 들키자 숨어 있던 공손무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말도 안 돼! 내 존재를 간파했다는 건가!’
마음먹고 기척을 숨긴 상태였다.
그런 자신을 간파할 수 있는 상대가 나타나자 그는 놀람을 감출 수 없었다.
이때 채주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다시 한번 허공에 울려 퍼졌다.
“쥐새끼처럼 숨지 말고 어서 모습을 드러내라! 그 뻔뻔한 낯짝, 구경이나 해 보자꾸나!”
“치잇!”
더는 숨을 수 없게 되자 공손무는 결국 어둠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아니! 진짜 있었잖아!”
“세상에! 바로 뒤쪽에서 따라오고 있었는데도 모르고 있었다니!”
무사들의 말을 뒤로한 채 그가 앞으로 천천히 걸어가며 입을 열었다.
“기척은 완벽히 지웠다고 생각했는데, 내 존재를 어떻게 알아챈 것이오?”
채주가 피식 웃으며 한 손으로 자신의 수염을 잡아당겼다.
“끌끌. 옛날부터 쥐새끼들 냄새는 기가 막히게 맡았거든. 너는 누구냐? 누군데 감히 동정십팔채에 숨어 들어오려고 한 것이냐?”
대답하려는 순간, 공손무의 귓가에 충격적인 말이 들려왔다.
[ 사악한 영혼이 느껴집니다. 흑사교 교주일 확률이 높습니다. ]
동정십팔채의 채주, 그가 바로 뱀의 머리 흑사교의 교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