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을 읽는 막내 공자 195화>
195화. 불상 조각가의 비밀(3)
“아아…….”
공손무의 말을 듣던 사마소가 낮은 탄식과 함께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정말 놀랍구나. 천살성인 것도 모자라 이미 사흉수와 만났었다니.”
“사흉수라는 것에 대해 잘 아십니까?”
사마소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 알고말고. 오랜 시간 동안 사흉수에 대한 정보를 모아 왔으니까.”
“저는 처음에 제 눈을 의심했습니다. 이 세상에 그런 생물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아주 위험한 놈들이지. 그놈들이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활동한다면 천하의 질서는 바뀔 것이야.”
“그런 위험한 생물이 흑사교의 손에 있으니…….”
이때 무엇이 이상했는지 사마소가 눈가를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이해가 가지 않는구나.”
“예? 무엇이 말입니까?”
사마소가 한 손으로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흑사교가 너를 노리는 이유는 천살성이기 때문이다. 그건 알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그럼 그들이 천살성을 노리는 구체적인 이유도 아느냐?”
잠시 뜸을 들이던 공손무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알아낸 바로는 흑사교 내부에 오래된 예언이 하나 있습니다. 그건 바로 천살성의 힘을 가진 자가 흑사교를 멸망시킨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와 반대로 천살성의 힘을 가진 자가 흑사교를 구한다는 내용의 예언도 있습니다. 흑사교에게 천살성이란 양날의 검입니다. 그러니 죽이든 살리든 나중에 정하더라도 일단은 자신들의 손아귀에 넣으려는 것이겠지요.”
공손무의 대답에 사마소의 눈이 크게 떠졌다.
“호오. 보면 볼수록 참으로 놀랍군. 설마 거기까지 알고 있었을 줄이야. 하지만 한 가지 모르는 사실이 있구나.”
“그것이 무엇입니까?”
“잘 들어라. 천살성이 흑사교에게 양날의 검으로 여겨지는 이유, 그건 바로 천살성이 사흉수를 지배하는 힘을 가졌기 때문이다.”
“예?”
사마소의 말에 공손무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천살성이 사흉수를 지배한다고 하셨습니까?”
“그래. 이제 알겠느냐?”
“하지만…….”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공손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큰형님은 그 이무기를 길들인 것 같았어. 내가 알기로 큰형님은 천살성이 아니야. 어떻게 된 거지?’
부모가 천살성이라고 자식이 천살성이라는 법은 없다.
천살성은 핏줄로 이어지는 것이 아닌, 타고나는 것이니까.
‘또 모르지. 어렸을 때는 몰랐던 천살성의 기운이 커서 갑자기 발현되었을지도.’
이때 사마소가 눈가를 좁히며 입을 열었다.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나 보지?”
“예?”
“이해가 가지 않는 점 말이다. 진짜 이무기를 지배하고 있다면 그 집행자라는 녀석 또한 천살성이야. 네가 봤을 때는 어떠냐. 정말 천살성이었느냐?”
“저도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진짜 그 녀석이 천살성이라면 이건 큰 문제다. 흑사교가 그 녀석을 이용해 나머지 사흉수까지 지배하려 들 테니까. 만약 그렇게 되면 무림은 흑사교의 손에 떨어진다.”
그것만은 안 된다는 듯 공손무가 결의에 찬 표정으로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제가 반드시 막을 겁니다. 흑사교의 뜻대로 되게 놔두지 않을 겁니다.”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던 사마소가 나직한 어조로 말했다.
“한 가지 부탁이 있는데, 들어줄 수 있겠느냐?”
“무엇입니까?”
“네가 나 대신 사흉수들을 잡아다오.”
“사흉수를 말입니까?”
“그래. 흑사교가 사흉수를 잡기 전에 네가 먼저 가서 그 녀석들을 제거해 다오. 천살성인 너라면 충분히 할 수 있어.”
꿀꺽.
사마소의 말을 들은 공손무가 마른침을 삼켰다.
머릿속에서 이무기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내가 그 녀석을 죽일 수 있을까? 혼자서 어떻게 할 수 있는 생물이 아닌 것 같은데.’
하지만 거절하기에는 사안이 너무 중요했다.
만약 흑사교가 사흉수를 모두 지배한다면 흑사교를 멸망시킨다는 그의 목표를 실현하기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윽고 공손무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두 눈은 의지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예, 해 보겠습니다.”
“오오! 그게 정말이냐!”
“흑사교를 없앨 수만 있다면 제 목숨을 바쳐서라도 사흉수들을 잡겠습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저는 사흉수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집행자의 이무기만 한 번 보았을 뿐, 다른 사흉수는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릅니다.”
그의 말에 사마소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걱정하지 말아라. 내가 알고 있으니.”
“그게 정말입니까?”
“난 평생 사흉수를 찾아다녔다. 끈질긴 노력 끝에 그들이 봉인된 위치를 찾았지. 그렇기에 흑사교가 날 노린 것이야.”
“그렇군요. 이제야 이해가 갑니다. 놈들이 왜 공을 노렸는지.”
사마소가 어두운 표정으로 벽에 걸린 지도를 보았다.
“나는 사흉수가 어디에 있는지 알았지만, 그것을 련주에게 말할 수 없었다. 왜냐고? 이유는 간단하지. 그것을 찾으러 갔다가는 한 놈도 남김없이 모두 사흉수에게 죽임을 당할 테니까. 그래서 말할 수 없었다.”
“사흉수를 실제로 본 적이 있으십니까?”
“그래. 보았지.”
사마소의 두 눈에 공포심이 차올랐다.
“이무기가 아닌 다른 사흉수였다. 그것을 보는 순간 뭐라 형언할 수 없는 지독한 무언가가 내 전신을 휘감았어. 그때 난 깨달았다. 사흉수는 평범한 인간이 어떻게 할 수 있는 생물이 아니라는 것을.”
그 당시가 떠오르는 듯 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때부터였나. 벽에 부적을 붙이고 불상을 만들었던 것이. 너무 무서워서 그랬어. 머리에서 놈의 눈빛이 떠나가지를 않았거든.”
건물을 가득 채운 수많은 불상과 벽에 붙여진 부적들.
그것들은 모두 사흉수에 대한 사마소의 공포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네 말이 사실이라면 집행자라는 놈이 이무기의 위치를 알고서 봉인을 깨트린 뒤 길들였다는 것이다. 즉, 이무기에 대한 내 정보가 쓸모없어졌다는 뜻이지. 하지만 아직 세 마리가 남아 있다. 그들을 제거하면 흑사교는 자신들의 목적을 이룰 수 없게 돼.”
“저에게 나머지 세 마리에 대한 행방을 알려 주십시오. 제가 그 녀석들을 잡겠습니다.”
“알겠다. 내 너를 한번 믿어 보마.”
“믿으시는 김에…….”
“응?”
잠시 머뭇거리던 공손무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참에 은둔생활을 청산하시고 련주님의 곁으로 돌아가시는 건 어떻습니까? 저에게 정보를 주시려면 일단 공의 안전이 제일 중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으음…….”
사마소는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오랜 시간의 은둔생활 때문에 밖으로 나올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이를 눈치챈 공손무가 다가와 간곡한 어조로 말했다.
“련주님의 벗이지 않습니까. 지금 련주님은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사방이 적으로 가득합니다. 진짜 벗이라면 지금이야말로 나설 때가 아니겠습니까.”
그의 말에 잠시 고민하던 사마소가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그래, 네 말이 옳다. 내가 너무 오랫동안 떠나 있었어. 인제 그만 돌아갈 때도 되었지.”
“그럼?”
“알겠다. 내 돌아가마.”
“정말 잘 생각하셨습니다.”
“잠시 시간을 다오. 짐을 챙긴 후에 출발하도록 하자.”
“예, 밖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잠시 후, 사마소가 봇짐을 챙긴 채 건물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제가 모시겠습니다.”
공손무의 말에 사마소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에 올라탔다.
이윽고 그들은 사도련의 성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실로 오랜만에 오는구나.”
풍경이 바뀌고 점점 목적지가 다가오자 사마소는 긴장하는 것 같았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련주께서 따뜻하게 맞아 주실 겁니다.”
“그럼 다행이겠지만…….”
사도련의 본성에 도착하자 공손무가 말에서 내리고 사마소가 그의 뒤를 따랐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련주님의 임무를 수행하고 오는 길이오.”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련주가 미리 언질을 해 놓았는지 그들의 앞을 가로막는 자는 없었다.
이윽고 계단과 통로를 지나 련주의 집무실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 앞에 있던 하인이 방 너머를 향해 소리쳤다.
“련주님! 공손무 공이 왔습니다!”
“어서 들여보내라!”
“련주님의 허락이 떨어졌습니다. 들어가시지요.”
문이 열리고 공손무가 먼저 집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양휘소는 고급스러운 의자에 앉은 채 업무를 보고 있었다.
그의 모습을 본 공손무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련주님을 뵙습니다.”
“이렇게 빨리 다시 돌아오다니, 설마 사마소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니겠지?”
“그런 건 아닙니다.”
그가 고개를 돌리며 문밖을 바라보았다.
“들어오시지요.”
“응?”
공손무의 말에 양휘소의 시선이 문 쪽으로 향했다.
이윽고 발소리와 함께 사마소가 쭈뼛거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자네!”
양휘소가 놀라며 토끼 눈을 뜨자 사마소가 고개를 살짝 숙이며 입을 열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진짜 자네인 건가?”
“예, 련주님. 저 사마소입니다.”
“아아!”
양휘소가 자리를 박차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러고는 곧바로 사마소를 껴안았다.
“잘 돌아왔네! 정말 잘 돌아왔어!”
“려, 련주님…….”
“이 못난 사람아. 그동안 내가 자네 때문에 얼마나 속을 썩였는지 아나.”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부총관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도망쳐버렸습니다.”
사마소의 말에 양휘소가 껴안은 팔을 풀더니 고개를 내저었다.
“아닐세. 나야말로 미안하네. 자네를 제대로 돌봐주지 못했어. 오로지 내 생각만 했어. 앞으로는 내 곁을 떠나지 말게. 소싯적에 약속했지 않은가. 함께 사도련을 훌륭하게 이끌어 가자고.”
양휘소의 말이 마음에 와닿았는지 사마소의 두 눈에 눈물이 맺혔다.
“예! 알겠습니다! 이제는 도망치지 않겠습니다! 저 사마소! 가시밭길을 가더라도 련주님과 함께 하겠습니다!”
양휘소와 사마소는 그날 밤 술을 마시며 회포를 풀었다.
공손무는 그들을 위해 자리를 피해 주었다.
다음 날, 그는 다시 양휘소의 집무실을 찾았다.
“후우…….”
전날 과음을 한 탓인지 양휘소의 얼굴은 핼쑥했다.
하지만 표정은 어느 때보다 개운해 보였다.
마음속에 묻어 두었던 오래된 짐이 사라진 탓이었다.
“련주님을 뵙습니다.”
공손무를 본 양휘소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반갑게 맞이했다.
“어서 오시게. 그렇지 않아도 기다리고 있었어.”
“사마소 공과는 어떠셨습니까?”
“후훗. 오랜만에 만나니 할 얘기가 어찌 그리 많은지, 서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밤을 새워 버렸네.”
“그 말씀을 들으니 마음이 놓입니다.”
“그리고…….”
양휘소가 은근한 눈길을 보내며 말을 이었다.
“자네와 내 벗 사이에 오고 갔던 이야기도 다 알고 있네. 그가 자네에게 사흉수를 잡아달라고 부탁했다지?”
“예, 그렇습니다.”
“놀랍군. 난 솔직히 사흉수의 존재에 대해 믿지 않았거든. 그가 심약해져 허상을 보고 있다고만 생각했었지.”
“사흉수는 실제로 있습니다. 제가 똑똑히 봤으니까요.”
“자네들을 믿네. 내 아낌없이 지원해 주지.”
“감사합니다.”
고개를 살짝 숙여 보인 공손무가 이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리고 한 가지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응? 무엇인가?”
“사실 련주님과 대화를 나누었던 날, 대총관을 만났습니다.”
그의 말에 양휘소의 두 눈이 번쩍 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