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을 읽는 막내 공자 190화 (190/200)

<검을 읽는 막내 공자 190화>

190화. 사도련의 사람들(1)

“자네가 정말 화산검마의 제자란 말인가?”

“예. 그렇습니다.”

“이거 정말 놀랄 일이군. 내가 화산검마의 제자를 직접 보게 될 줄이야.”

양휘소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대는 무슨 일로 부총관과 동행한 거지?”

“저는 부총관님과 함께 사도련에 암약하고 있는 흑사교를 잡으려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호오? 부총관. 이 말이 사실인가?”

그의 물음에 묵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이 사내는 우리의 대업을 도와줄 겁니다.”

“흥미롭군. 지금까지 화산검마는 우리와 협력하기를 꺼렸어. 독자적으로 활동했지. 그런데 이제 와서 제자를 보낸다? 무슨 심경의 변화라도 생긴 것인가?”

“제자의 강한 의지를 꺾을 수 없었던 게지요.”

순간 양휘소의 눈빛이 예리하게 빛났다.

“강한 의지? 그 의지라는 건 흑사교를 잡으려는 의지를 말하는 건가, 아니면 다른 무언가가 있는 것인가?”

잔잔한 물음이었지만, 그 속에는 공손무마저 긴장시킬 만한 위엄이 서려 있었다.

“저는 그 누구보다 흑사교를 잡고 싶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더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그게 뭐지?”

“저의 친부모를 찾는 것입니다.”

의외의 대답이었는지 양휘소가 눈썹을 씰룩였다.

“지금 친부모라고 하였나?”

“그렇습니다. 제가 흑사교를 잡는 것을 도와주면 부총관께서 저의 친부모에 대한 정보를 찾아 봐 주시기로 약조하셨습니다.”

“부총관. 저 말이 사실인가?”

묵번이 또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맞습니다.”

“흐음…….”

잠시 뭔가를 고민하던 양휘선이 이내 나직한 어조로 말했다.

“초면에 실례겠지만, 물어보지 않을 수 없겠군. 혹시 흑사교에게 부모를 잃은 것인가?”

“흑사교 때문에 친부모에게 버려졌고, 흑사교 때문에 저를 사랑으로 키워 주신 분들을 잃었습니다. 흑사교는 제 모든 것을 파괴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죽이려는 겁니다.”

양휘소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네. 자네의 눈빛을 보아하니 진심이로군. 자네가 우리의 일을 도와준다면 우리도 자네를 도와주지.”

“감사합니다. 련주님.”

양휘소가 고개를 돌려 묵번을 바라보았다.

“나는 그만 본성으로 돌아가 봐야겠다. 상의할 것이 많으니 그대도 서둘러 돌아오라.”

“분부 받잡겠나이다.”

말을 끝낸 그가 기다리고 있던 마차에 몸을 실었다.

잠시 후 마차가 사라지자 묵번이 고개를 돌려 공손무를 바라보았다.

“참으로 잘 됐구나. 련주님께서도 자네를 반가워하니 말이야.”

“예,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우리도 서둘러 출발해야겠다. 흑사교의 움직임이 뚜렷해진 이상 더는 지체할 수 없어.”

공손무와 묵번이 말에 올랐고 사도련의 성을 향해 고삐를 잡아당겼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말을 타고 길을 가던 공손무의 눈에 거대한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부총관님. 저기가 사도련의 성입니까?”

“그래. 직접 눈으로 보니 어떠냐.”

공손무는 선뜻 그의 물음에 답하지 못했다.

실로 거대한 성벽과 그곳을 지키고 있는 수많은 무사.

괜히 철의 요새라고 불리는 게 아니었다.

“정말 굉장합니다. 무림맹이 여기까지 쳐들어온다고 해도 쉽게 막아 낼 것 같습니다.”

“잘 보았다. 실제로 무림맹이 온다고 해도 우린 여기서 몇 년 동안 농성을 할 수 있다. 그만한 장비와 식량을 항상 갖추어 두고 있지. 하지만 그것은 그야말로 최후의 항전. 그 일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될 것이야.”

이윽고 그들은 관문 앞에 도착하였다.

‘보면 볼수록 정말 대단하구나.’

하늘로 치솟은 높다란 성벽.

공손무는 가까이서 성벽을 보자 심장이 쿵쾅거림을 느꼈다.

하지만 이내 누군가의 목소리가 그의 생각을 방해했다.

“멈춰라!”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관문을 지키는 문지기.

“여기는 대 사도련의 영역이다. 말에서 내려 신분패를 보여라.”

이를 들은 묵번이 망토에 달린 모자를 벗으며 말했다.

“나는 사도련의 부총관 묵번이다.”

묵번을 알아본 문지기가 곧바로 고개를 푹 숙이며 소리쳤다.

“소인 손총! 부총관님을 뵙습니다!”

“련주님은 성에 도착하셨나?”

“예, 반 시진 전에 도착하셨습니다.”

묵번이 공손무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여기는 내 손님이다. 그냥 들어가도 되겠지?”

하지만 무슨 일인지 문지기는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왜 그러는 것이냐?”

“대총관께서 명령을 내리신 터라…….”

“설마 대총관이 내 일행에 대해 조사를 시킨 것이냐?”

“예. 정사대전의 상황이다 보니 안심할 수 없다면서 철저하게 검문을 하라고 지시하셨습니다.”

“이런 망할!”

묵번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자신의 상관인 대총관의 명령이라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가 고개를 돌려 공손무를 바라보았다.

“이거 미안하지만, 검문을 받아야겠다.”

“상관없습니다.”

공손무에 말에서 내려 문지기에게 신분패를 내밀었다.

신분패를 꼼꼼히 살피고 몇 번의 질문과 답이 오고 간 후에 검문은 끝이 났다.

“통과!”

찜찜한 마음을 뒤로한 채 공손무와 묵번은 성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여기가 바로 사도련의 성.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구나. 칼바람이 부는 것 같아.’

정사대전이 한창이라 그런지 거리에는 사람이 별로 걸어 다니지 않았다.

대신에 칼을 찬 사도련의 무사들이 무리를 지어 다니고 있었다.

공방에서는 수많은 공성 무기를 제조하고 있었고 대장간에서는 병장기를 만들기 위해 쉼 없이 열기를 내뿜고 있었다.

거리를 지나 성의 중심부에 도착한 공손무는 마침내 사도련의 본성에 들어갈 수 있었다.

목적지에 도착하자 묵번이 말에서 내리며 말했다.

“성안에서 머물 곳을 알아 봐 주겠다. 따로 부를 때까지 그곳에서 쉬면 될 것이다. 잠시 기다리거라.”

“감사합니다.”

말을 끝낸 묵번이 건물 안으로 유유히 모습을 감추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쪽에서 봇짐을 든 하인 한 명이 나왔다.

“부총관님께서 보내셨습니다. 저를 따라오시지요.”

“부탁하지.”

하인을 따라간 공손무는 꽤 고급스러워 보이는 목조 건물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기가 공손무 님께서 머무실 곳입니다.”

“안내해 줘서 고맙네.”

“별말씀을. 아 그리고…….”

하인이 가지고 있던 봇짐을 앞으로 내밀었다.

보따리 하나를 받아 든 공손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이게 무엇인가?”

“부총관님께서 전하라 하셨습니다.”

“이걸?”

궁금함을 참지 못한 공손무가 그 자리에서 봇짐을 풀었다.

봇짐 안에는 고급스러워 보이는 비단옷 한 벌이 들어 있었다.

“이건 옷이잖아?”

“예, 부총관께서 그 옷을 입고 연회에 참석하시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연회?”

“련주님께서 부총관님의 귀환을 축하한다는 의미에서 여는 연회입니다.”

“흐음…….”

비단옷을 바라보는 공손무의 눈빛이 깊어졌다.

‘부총관이 순수하게 먹고 즐기기 위해 연회에 부를 리가 없어. 필시 거기서 정보가 오가는 거야.’

부총관의 의도를 알아챈 공손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네. 내 꼭 참석하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연회의 장소와 시각은 봇짐 안에 든 서찰에 적혀 있습니다. 그럼 편히 쉬십시오.”

하인이 고개를 꾸벅 숙이더니 이내 몸을 돌려 걸어갔다.

하인이 사라지자 공손무가 서찰을 펼쳤다.

“여기가 연회 장소란 말이지.”

그가 비단옷과 서찰을 번갈아 보았다.

“연회 같은 거는 한 번도 참석해 본 적이 없는데.”

처음 있는 일이라 긴장이 되었지만, 공손무는 마음을 굳게 먹기로 했다.

‘그래. 까짓거 별것 있겠어? 나는 거기에 연회를 즐기러 가는 것도 아니잖아.’

하지만 그의 생각은 연회 장소에 다다르자 무참하게 깨지고 말았다.

‘이게 뭐야?’

밤이 깊어지고 연회가 열리는 장소에 도착한 공손무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분위기에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다.

한쪽에서는 화려한 차림을 한 채 교양 있어 보이는 자들이 얌전하게 술을 마시며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반면에 반대쪽에서는 거칠어 보이는 사내들이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여인을 낀 채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떠들썩한 분위기 속에서 공손무가 마른침을 삼키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부총관은 어디에 있는 거야?’

저벅저벅.

한참을 두리번거리던 그는 이내 누군가의 발소리를 들었다.

‘발걸음 소리, 이쪽으로 온다. 누구지?’

공손무가 긴장된 얼굴을 한 채 고개를 돌렸다.

‘여인?’

그의 앞에 등장한 것은 정체를 알 수 없는 한 여인이었다.

‘이 여자는 누구지?’

홀연히 나타난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공손무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상냥함이 담긴 아름다운 눈빛.

여인의 두 눈은 보석처럼 반짝였다.

눈빛에 홀리기라도 한 듯 공손무가 멍한 시선을 보냈다.

‘아름다워. 하지만 그것이 다가 아니야. 이게 무슨 느낌이지? 마치 벌거벗겨진 것 같은, 내 속을 다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이야.

그는 아름다운 눈빛에서 지혜와 통찰력을 보았다.

이상한 것은 자신을 꿰뚫어 보는 듯한 그 눈빛이 싫지 않다는 것이다.

‘눈빛이 부담스럽지 않아. 오히려 편해진다고 할까?’

사도련의 대총관에게서 날카로움이 느껴졌다면 눈앞의 여인에게서는 범접할 수 없는 우아함이 깃들어져 있었다.

잠시 후 여인이 생긋 웃으며 먼저 입을 열었다.

“공손무 공, 맞으신지요?”

“예, 맞습니다.”

“후훗. 반갑습니다. 제 이름은 효란. 사도련 련주의 아내 되는 사람입니다.”

눈앞에 있는 여인은 놀랍게도 양휘소의 아내였다.

“아아.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공손무. 이번에 련주님의 일을 돕기 위해 사도련에 왔습니다.”

공손무의 당황한 모습이 귀여웠는지 효란의 미소가 짙어졌다.

“말씀은 들었습니다. 부디 제 남편을 잘 도와주세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효란이 고개를 돌리며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그나저나, 연회는 마음에 드시는지요?”

“연회는 처음이라 적응하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

“후훗. 뭐든지 처음 시작하는 게 어렵지요. 하지만 익숙해지시면 여기만큼 편안한 곳이 없을 겁니다.”

그녀의 시선이 별로 수놓아진 밤하늘로 향했다.

“정사대전이 벌어진 지금 우리는 모두 지옥 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 고통을 단 하루라도 잊기 위해 오늘 저는 이 연회 자리를 마련한 것이고요.”

진심이 묻어나는 말에 공손무는 입을 꾹 다문 채 고개만 끄덕였다.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궁금한 것이요?”

효란이 묘한 시선으로 공손무를 바라보며 물었다.

“예, 공손무 공께서는 인생에 있어서 소중한 것이 있으십니까? 제 말은, 자신의 목숨을 바쳐도 아깝지 않을 것 말입니다.”

잠시 굳은 표정으로 가만히 있던 공손무가 이내 시선을 내리깔며 답했다.

“있습니다. 제 목숨을 바쳐도 아깝지 않을 것이.”

“혹시 그것이 무엇인지 말씀해 줄 수 있을까요?”

“세 명의 사람입니다. 친자식이 아닌데도 저를 정성으로 키워 주신 분들입니다.”

“호오. 정말 훌륭하신 분들이군요.”

“하지만 이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예?”

공손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눈에서는 옅은 살기마저 일렁거렸다.

“한 분은 어린 저를 지키다 불길 속에서 돌아가셨고, 한 분은 생사불명이며 또 다른 한 분은 화산파에서 저를 위해 대신 칼을 맞으셨지요. 모두 저 때문에 사라지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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