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을 읽는 막내 공자 188화 (188/200)

<검을 읽는 막내 공자 188화>

188화. 사도련으로(2)

“혹시 두려워서 그러느냐? 걱정하지 말아라. 나는 교주님의 집행자, 네가 마음을 확실히 고쳐먹는다면 내가 대변해 주지. 네가 이제 우리 편임을 말이야.”

공손무가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없습니다.”

“뭐? 방금 뭐라고 말했지?”

“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다시 한번 말해 드릴까요? 전 절대로 형님 같은 비열하고 나약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비열? 나약? 이 내가 말이냐?”

공손무가 안광을 번뜩이며 소리쳤다.

“그렇습니다! 자신의 아비를 죽인 자와 결탁하여 세상을 바꾼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입니까? 흑사교가 어떤 조직인지 진정 모르시는 겁니까! 그들은 중화를 차지하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대가라도 치를 자들입니다. 피에 굶주린 괴물들이라고요!”

“헛소리! 중화의 모든 이들은 모두 자신의 목적에 따라 움직인다. 그들이라고 우리와 다를 것 같으냐? 정파와 사파 모두 똑같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그 어떠한 대가도 치를 것이야.”

공손무가 답답한 듯 인상을 찡그렸다.

“다 같더라도 흑사교만은 안 됩니다!”

“왜 안 된다는 것이냐!”

“흑사교는 누군가와 타협을 할 수 있는 조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정파와 사파는 중화 전체를 위해 움직이는 집단. 하지만 흑사교는 교주 하나만을 위한 조직이지요. 한 사람의 탐욕 때문에 중화 전체가 피바다가 되게 둘 수는 없습니다.”

공손익황이 손을 격하게 휘저으며 소리쳤다.

“참으로 어리석구나. 그렇게 설명을 해 줬는데도 알아듣지 못하다니!”

“몇 번을 설명해 준다고 해도 제 생각은 변하지 않을 겁니다.”

“으음…….”

침음을 흘리던 그가 몸을 돌렸다.

“지금 당장에 마음을 바꿀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시간을 두고 천천히 생각해 보아라.”

“그럴 필요 없습……!”

순간 공손익황이 안광을 번뜩이며 공손무의 말을 잘랐다.

“해 보라고 했다! 아니 하는 게 네 신상에 좋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 자리에서 죽을 테니까.”

“크윽!”

무시무시한 살기에 공손무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운 좋은 줄 알아라. 네가 천살성이 아니었다면 기회를 주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마지막. 다음에 만났을 때도 생각이 바뀌지 않았다면, 그때야말로 네 녀석의 최후가 될 것이다.”

휘리릭!

공손무는 뭐라고 말을 하려 했지만, 이미 공손익황은 바람과 함께 사라진 후였다.

그는 공허한 시선으로 허공을 쳐다보았다.

가슴이 쓰리고 아팠다.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도대체 왜 그런 선택을 하느냐고! 도대체 왜!!”

하늘에다 울부짖었지만, 아무 대답 없이 메아리만 울려 퍼졌다.

깊은 상실감에 공손무는 한동안 그 자리를 뜨지 못했다.

“후우…….”

잠시 후 겨우 마음을 추스른 공손무는 쓸쓸한 발걸음으로 산에서 내려왔다.

그를 발견한 묵번이 말을 몰며 다가왔다.

“화산검마님은 잘 만나 뵈었나?”

“예…….”

공손무의 목소리에서 이상함을 느낀 묵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러느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냐?”

“아닙니다. 그냥 생각할 것이 좀 있어서 그런 것입니다. 괘념치 마십시오.”

“흐음. 언제든지 좋으니 도움이 필요하거든 말하거라. 내 여력이 닿는 대로 힘써 주마.”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자, 이제 어서 가자. 갈 길이 멀다.”

말에 오른 공손무는 복잡한 심경을 감춘 채 고삐를 잡아당겼다.

*   *   *

그로부터 보름이 지나고.

공손무와 묵번은 사도련이 있는 광동 지역에 이르렀다.

“드디어 광동에 도착했구나.”

“여기서 사도련으로 가려면 얼마나 더 걸립니까?”

“광주로 가야 하니 넉넉잡아 열흘은 걸릴 것이다.”

“그렇군요. 서둘러야겠습니다.”

“그러자꾸나.”

열흘 뒤 그들은 마침내 사도련의 본성이 있는 광주 지역에 도착했다.

광주는 중화 전역에서도 몇 안 되는 대도시 중 하나답게 수많은 사람이 거리를 오가고 있었다.

엄청난 인파에 공손무가 혀를 내둘렀다.

“와아. 사람이 정말 많습니다.”

“당연하지. 광동은 상인들의 집이라고 불리고, 광주는 그 중앙에 있는 지역이니까.”

“사도련의 성은 어디에 있는 겁니까?”

“여기서 좀 더 외곽지역으로 나가야 한다. 그곳에 사도련이 자리를 잡고 있어.”

“어서 가시죠. 여기는 사람이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살수 생활을 한 공손무는 사람이 많은 곳이 부담스러웠다.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묵번의 생각은 좀 달랐다.

“사도련에 입성하기 전에 한 가지 처리할 일이 있다.”

뜻밖의 말에 공손무의 얼굴에 이채가 띠었다.

“할 일이라니요? 그게 무엇입니까?”

“내 수하를 이 근처에서 만나기로 했다.”

“중요한 일입니까?”

“녀석에게서 중요한 정보를 들어야 해.”

“무슨 정보를……?”

잠시 뜸을 들이던 묵번이 나직한 어조로 답했다.

“전에 말했었지. 사도련에 흑사교가 암약하고 있다고. 그에 대한 정보다.”

“아아!”

공손무는 그제야 깨달은 돗 고개를 끄덕였다.

“흑사교에 대한 정보였군요.”

“그래. 녀석이 언제 어디서 보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여기서 만나자고 했다. 이곳은 보다시피 사람이 많으니까 들킬 위험이 적지 않느냐.”

“맞는 말씀입니다.”

“나를 따라오거라. 근처의 객잔에서 만나기로 했다.”

“예, 알겠습니다.”

잠시 후, 그들은 귀향객잔이라고 써 있는 곳에 도착했다.

끼이익!

묵번이 문을 잡아당기자 경첩이 비명을 질러 댔다.

객잔 안으로 발을 내딛자 시큼한 술 향기가 코를 간지럽혔다.

“흐음. 어디 보자.”

객잔을 둘러보던 와중 점소이가 실실대며 다가왔다.

“어서옵쇼!”

“혹시 척종선이라는 자가 여기에 오지 않았소? 기다란 흑색 수염에 매부리코를 가진 중년 사내이오만.”

잠시 고민하던 점소이가 이내 뭔가를 떠올린 듯 두 눈을 크게 떴다.

“앗! 기억납니다! 혹시 사도련에서 오신 분이십니까?”

묵번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러셨군요. 저를 따라오십시오. 저쪽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점소이가 걸어가자 묵번과 공손무가 그 뒤를 따랐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객잔에서 후미진 곳이었다.

그곳에 한 중년 사내가 혼자서 술을 기울이고 있었다.

“저분이 맞으십니까?”

“맞네. 수고하였어. 이제 가 보시게.”

“예! 또 필요하신 거 있으시면 언제든지 부르십시오.”

점소이가 물러가자 묵번이 조심스럽게 자리로 향했다.

“척 대주.”

“앗! 부총관님!”

묵번이 부르자 척종선이라는 자가 술잔을 놓고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궁상맞게 혼자서 술을 기울이고 있었나?”

“달리 할 것도 없지 않습니까. 마음이 흉흉하니 술 한잔으로 달랠 수밖에요.”

“그건 그렇구먼.”

“그런데…….”

척종선의 시선이 공손무에게 향했다.

“옆에 있는 분은 누구입니까? 아무리 봐도 본 련의 호위무사 같지는 않은데 말입니다.”

“우리의 일을 도와줄 사람일세.”

“예?”

“정식으로 소개하지. 여기는 공손무. 그 유명한 화산검마님의 제자야.”

“헉! 화산검마? 그게 정말입니까?”

“그러네. 자, 인사하지.”

공손무가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공손무라 합니다.”

“허허. 화산검마님의 제자를 직접 볼 줄이야. 반갑소. 나는 척종선이라 하오. 사도련에서 묵번 님의 밑에서 일을 하고 있지.”

인사가 끝나자 묵번이 자리를 권했다.

“어서 앉거라. 술이나 한잔하면서 얘기를 나눠 보자고.”

공손무가 자리에 앉자마자 척종선의 질문이 이어졌다.

“화산검마의 제자라는 건 알겠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일을 도와준다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말 그대로일세. 우리가 지금 하는 일. 사도련에서 암약하고 있는 흑사교의 교도를 찾고 처단하는 것을 도와줄 것일세.”

척종선은 깜짝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게 정말입니까?”

“그러네. 내 말을 못 믿겠는가?”

“오랫동안 화산검마님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그분은 우리의 요청을 계속 거절해 왔지 않습니까.”

“그랬지. 하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 없듯이 제자 이기는 스승도 없는 법. 제자가 이리 나서는데 그분도 별수 없었을 것이야.”

척종선이 흥분한 표정으로 공손무에게 말했다.

“정말 우리를 도와줄 수 있겠는가?”

“예. 그렇게 하기로 약조하였습니다.”

“잘 생각했네! 화산검마의 제자가 도와준다니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아!”

이때 묵번이 끼어들었다.

“치켜세워 주는 건 그만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지. 가지고 온 정보부터 풀어 봐.”

“앗! 알겠습니다.”

척종선이 짐을 풀더니 안에서 지도 한 장을 꺼냈다.

“이것은……?”

“녀석의 행동 경로를 파악한 것입니다.”

“호오? 내가 없는 동안 놈이 움직였다는 건가?”

“예, 여길 한번 보십시오.”

그가 지도의 한 곳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최근 놈이 부하들을 풀어 상인들에게 돈을 갈취하면서 시전상인들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남몰래 야금야금 먹어 들어가더니 이제 본격적으로 움직인다는 건가?”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주변 금광에 대한 소유권도 사들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뭐라고? 금광은 우리에게 팔겠다고 약조 받지 않았었나!”

묵번이 윽박지르자 척종선이 고개를 떨구었다.

“아무래도 놈들의 협박을 이기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이런 망할!”

험악한 분위기 속에서 공손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무엇이냐?”

“여기서 말하는 놈이라는 것은 누구를 말하는 겁니까?”

“흑사교의 교도 장본인이거나 적어도 그 측근이라고 예상되는 인물이야. 이름은 장개. 흑금왕(黑金王)으로 불리는 놈이지.”

“흑금왕?”

“온갖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끌어모으기에 붙은 별명이지. 아주 지독한 놈이다. 생각만 해도 치가 떨려.”

공손무는 여전히 뭔가가 이해되지 않는 듯했다.

“사도련이 그런 놈 하나 어쩌지 못한단 말입니까?”

“녀석을 잡으려고 했지만, 그럴 때마다 번번이 미리 냄새를 맡고는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더군.”

“그 말씀은?”

묵번이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부에서 그 녀석에게 정보를 흘리며 뒤를 봐주는 놈이 있다는 거지. 그것도 상당한 힘을 가진 자가.”

“그럼 사도련에 교도가 두 명이나 있다는 말입니까?”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내 생각으로는 교도가 아니라 단순히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와 협력하고 있을 가능성이 커. 교도들은 한 구역에서 활동하지 않아. 흩어져서 점조직을 이루지.”

“예, 그건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묵번이 고개를 끄덕이며 지도를 유심히 살폈다.

“이번에는 어떻게 해서든 놈을 잡을 것이야. 어둠 속에 숨어 있던 놈이 바깥으로 드러난 이상 절대 놓칠 수 없어.”

그가 지도를 챙기더니 척종선에게 말했다.

“어서 가자. 이 상황에 대해 서둘러 련주님과 상의를 해야겠다.”

“아, 그것이…….”

떨떠름한 반응에 묵번이 눈가를 좁혔다.

“왜 그러는 것이냐?”

“사실 련주님께서는 지금 이 근방에 계십니다. 제가 어딘지 알고 있사오니, 안내해 드리지요.”

“뭐라고? 련주님이 이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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