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을 읽는 막내 공자 183화 (183/200)

<검을 읽는 막내 공자 183화>

183화. 뱀들의 회합(2)

‘어떻게 하지…….’

한참을 고민하던 그는 결국 한 가지 결론에 이르렀다.

‘이렇게 많은 교도에게서 직접 정보를 얻을 기회는 흔치 않아. 아니! 이제 다시는 없을 거야! 그러니까 일단 교도들과 대화 하면서 교주에 대한 정보를 얻어 보자. 교주와 최측근을 죽이지 못하면 흑사교는 또다시 일어날 거야.’

이윽고 공손무가 지하 공동의 중앙에 도착했다.

공동 안에는 뱀이 휘감겨진 기둥들이 우뚝 솟아 있었고 그 주변으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인 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저건 또 뭐지?’

공동의 중앙에는 제단이 있었는데, 그 제단 위에는 황금 불상이 있었다.

그런데 여느 불상과는 다르게 머리가 인간의 형태가 아닌 기다란 목을 가진 뱀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실로 괴기스러운 모습에 공손무의 표정이 절로 찌푸려졌다.

‘황금 불상? 머리 모양이 뱀과 닮았잖아? 도대체 왜 저런 걸?’

디리링!

그 순간 경쾌한 알림음과 함께 그의 머릿속으로 엘파고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 공손무 님. ]

‘무슨 일이야?’

[ 근처에서 강력한 영혼 에너지가 느껴집니다. ]

‘영혼 에너지라니? 그게 무슨 뜻이지?’

[ 쉽게 말해서 저와 동질적인 기운이 느껴집니다. 또 다른 엘파고가 이 공간 안에 있는 게 확실합니다. ]

‘뭐, 뭐라고?’

엘파고의 말에 공손무의 두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말도 안 돼! 또 다른 엘파고라니!’

흔들리던 그의 시선이 뱀 머리를 가진 황금 불상으로 향했다.

‘설마, 저 불상인가? 저 불상에 또 다른 엘파고가 있는 건가?’

[ 저 불상을 한번 만져 보시면 확실하게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공손무는 당장이라도 달려가 황금 불상을 만지고 싶었지만, 주위를 철통같이 지키고 있는 무사들 때문에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다.

‘저 불상은 마지막에 확인하도록 하고, 일단 교주에 대한 정보부터 찾자. 그게 우선이니까.

[ 예. 알겠습니다. ]

공손무가 교주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교도들 주위로 조심스럽게 걸어갔다.

“그대는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군!”

“뭐라고? 아니 내가 무얼 모른단 말이오!”

그러던 공손무에게 격한 감정의 말들이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한쪽에서 두 명의 교도들이 말다툼을 벌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일단 저쪽으로 한번 가 볼까?’

그가 소란이 일어나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번에는 사도련이 이길 수 있게 힘을 실어야 하오!”

“말도 안 되는 소리! 이번에도 무림맹이 이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니깐?”

공손무가 조심스럽게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크흠흠! 저기…….”

그의 등장에 열을 올리던 교도 중 상대적으로 마른 자가 먼저 고개를 돌리더니 반가운 기색을 보였다.

“아! 마침 잘 왔소. 이리 와서 내 얘기를 좀 들어 보시오.”

“무슨 주제이길래 그리 열띤 토론을 하고 계시는 겁니까?”

“아, 이 형제분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지 않소. 이번 천하제일 무공대회에서 사도련 대신 무림맹이 이겨야 한다니.”

교도의 말에 반대편에 있던 덩치 큰 교도가 걸걸한 목소리로 성질을 내며 소리쳤다.

“당연한 소리를! 누가 뭐라고 해도 이번에는 무림맹이 이겨야 해!”

“그러니까 그에 합당한 이유를 대보라고 하지 않소!”

“이 사람 완전히 귀가 먹었구먼! 지금까지 내가 여러 차례 말하지 않았나!”

말없이 그들의 대화를 듣던 공손무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천하제일 무공대회? 그건 무림에서 열리는 가장 큰 무술대회 아닌가?’

그의 생각처럼 천하제일 무공대회는 무림에서 열리는 가장 큰 공식 무술대회로서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무림의 양대 산맥이라 할 수 있는 무림맹과 사도련이 합동으로 주관하여 그 위상이 실로 대단했다.

‘그렇게 큰 대회의 승패를 왜 이 녀석들이 미리 정한단 말인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공손무가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저기…….”

“오! 그래! 형제님의 생각은 어떠한가? 역시 사도련 쪽이겠지?”

“무슨 소리! 제대로 된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무림맹이지!”

고민하던 그는 결국 그들의 기대와는 다른 대답을 하였다.

“죄송하지만 한 가지 이해가 되지 않는 점이 있습니다.”

“응? 뭐가 말인가?”

“천하제일 무공대회는 무림에서 가장 큰 무술대회입니다. 그런 큰 대회의 승패를 어떻게 우리가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의 물음에 순간 분위기가 싸늘해지더니 가면 남성들이 말없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이윽고 마른 체구의 가면 사내가 키득거리며 말했다.

“크크큭! 정말 뜬금없는 소리로군. 자네 설마 이번 모임에 처음인가?”

“예, 그렇습니다.”

“역시 그랬군. 하기야, 갓 은혜를 받은 자가 우리 흑사교의 영향력을 제대로 알기는 힘들겠지. 지금까지 우물 안의 개구리였을 테니까 말이야.”

퉁퉁한 가면 사내가 그의 말을 거들었다.

“잘 모른다니 이 몸이 직접 가르쳐 주지. 흑사교는 천하의 균형을 맞추는 저울의 역할을 한다네. 어느 한쪽이 과한 힘을 가지지 못하도록 균형을 맞추는 거지. 그 균형을 맞추는 도구 중 하나가 바로 천하제일 무공대회이고 말이야.”

“아아. 그렇군요.”

공손무의 대답은 차분했지만, 속마음은 그렇지 못했다.

‘이런 구역질 나는 놈들 같으니라고. 결국, 지금까지 천하제일 무공대회의 승패를 조작하여 자신의 이익을 챙기고 있었다는 거잖아? 그런 유서 깊은 무술대회에도 놈들의 마수가 뻗어져 있었을 줄이야. 엘파고! 기록하고 있어?’

엘파고가 그의 생각에 즉시 답했다.

[ 예. 공손무 님. 하나도 빠짐없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상당히 유용한 정보가 될 것 같습니다. ]

‘놈들을 찾을 단서가 될 만한 것들은 전부 다 기록해 놔. 언제 어떻게 쓰일지 알 수 없으니까.’

[ 예. 알겠습니다. ]

엘파고의 대답을 들은 공손무가 다시 태연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정말 흑사교의 위세는 대단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인 게, 천하제일 무공대회의 승패에 따라서 흑사교가 얻는 것이 무엇인지 저로서는 상상하기 힘들군요.”

이에 퉁퉁한 사내가 팔짱을 끼더니 너털웃음을 지었다.

“어허헛! 당연한 걸 질문하니 조금 당황스럽군. 생각이 그렇게 짧아서야 어찌 장차 검은 뱀과 함께 큰일을 도모한다는 말인가.”

“처음이고,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저를 위해 가르침을 주시지요.”

“쯧쯧! 그렇게까지 말하니 어쩔 수 없군. 배포와 아량이 큰 내가 한참 모자란 후배 형제님을 위해 또 한 번 설명해 줘야겠지. 잘 들으시게. 우리 흑사교가 천하제일 무공대회로 얻는 것은 크게 두 가지일세. 하나는 정치적인 이윤, 그리고 또 하나는 경제적인 이윤.”

“정치와 경제?”

“그러네. 정치적인 이윤이라는 건 무림 전반에 대한 흑사교의 정치적인 입지를 말하는 것일세. 알다시피 그 대회는 무림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무술대회. 그 대회의 결과에 따라서 무림에는 엄청난 파장이 뒤따르지. 우리가 그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면 무림맹과 사도련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할 수 있고, 그것은 곧 중원의 판도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네.”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지만, 공손무는 차분한 어조로 질문을 이어 갔다.

“아아. 그런 뜻이었군요. 그럼 경제적인 이윤이라는 건?”

“우리 흑사교의 교도들 대부분은 저마다 정파 또는 사파와 상업적으로 얽혀 있는 관계야. 이 관계라는 게 참 오묘해서 정파의 기세가 올랐을 때 더 많은 이익을 얻을 때도 있지만, 또 어떨 때는 사파의 기세가 올랐을 때 더 많은 이익을 얻을 때도 있거든. 따라서 우리는 정기적으로 중원의 정세를 파악하고 그때마다 무림맹을 밀어 줄 것인지 아니면 사도련을 밀어 줄 것인지를 결정해. 우리에게 가장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여 상업적인 이권을 극대화하는 것이지.”

이때 옆에서 듣고 있는 마른 가면 사내가 퉁명스러운 어조로 쏘아붙였다.

“아이고! 그렇게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말을 그렇게 해? 뭐? 무림맹이 대회에서 이겨야 한다고? 지금 정사대전에서 무림맹의 기세가 얼마나 대단한지는 알고 그런 말을 하는 건가?”

이에 질세라 퉁퉁한 가면 사내가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소리쳤다.

“대단하기는 뭐가 대단해! 무림맹은 지금 위험에 처했어. 자신들이 최강이라고 여겼던 청룡대가 보급 부족과 연이은 패전으로 제대로 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잖아! 청룡대의 부진에 무림맹 전체의 사기가 꺾였다고! 이런 상황에서 사도련의 기를 살려 준다? 잘못하다가는 무림맹이 무너질 수도 있는 상황이야!”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들의 말다툼이 다시 이어졌고, 공손무는 조용히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어느 정도 거리가 벌려지자 그가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후우. 정말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었는데. 설마 흑사교가 천하제일 무공대회를 농락하고 있었다니. 이거 정말 충격적인데?”

화를 가라앉힌 공손무가 다시 주위를 둘러보며 정보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이제 어느 쪽으로 가 볼까나…….”

이윽고 공동 안을 배회하던 중 그는 한쪽에서 이상한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끄아아악!”

“이건……?”

그건 다름 아닌 누군가의 비명이었다.

갑작스러운 비명에 공손무가 재빨리 소리가 나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저쪽인가?’

기둥들 사이에 좁은 통로가 하나 있었는데, 그 통로 사이로 비명이 간간이 퍼져 나오고 있었다.

‘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길래 비명이 들리는 거지? 설마 누굴 고문이라도 하는 건가?’

상황이 심상치 않아 보이자 그가 눈가를 좁히며 통로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였다.

‘응?’

그런데 그 순간, 무슨 일인지 통로 안으로 내디디려는 발이 허공에 우뚝 멈추어 섰다.

‘이 기운은?’

공손무의 발을 잡는 것은 다름 아닌 통로 안쪽에서 느껴지는 불길한 기운 때문이었다.

‘온몸에 벌레가 기어오르는 듯한 이 기분 나쁜 끈적거림, 설마?’

뭔가 감을 잡았는지 그가 마른침을 삼키며 힘겹게 발을 내디뎠다.

저벅저벅.

통로 안을 지나가는 그의 걸음걸이는 조금 전과는 많이 달라 보였다.

전체적으로 움직임이 경직되어 있었고, 특히 두 손은 어떻게 할지를 모른 채 끊임없이 쥐었다 펴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잠시 후 통로의 모퉁이를 지나자 자그마한 방이 나왔다.

“끄아아악!”

방 앞에 서자 비명이 또렷하게 들려왔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공손무가 벽에 기댄 채 얼굴의 반쪽만 살짝 내밀어 방 안쪽의 상황을 살폈다.

‘저건?’

방 안에는 가면을 쓰고 있는 두 명의 교도가 있었다.

놀라운 건 한 명은 칼을 빼든 채 서 있고 나머지 한 명은 무릎을 꿇은 채 두 손을 싹싹 빌고 있다는 것이었다.

“내, 내가 이렇게 빌겠소! 제발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시오!”

“끼히히힛! 살려 달라고? 너 같이 쓸모없는 녀석을 살려 두어 서 무얼 하려고? 너는 검은 뱀을 숭배할 자격이 없는 놈이야!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하지 말고 대장부답게 자결해라!”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공손무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이 기분 나쁜 웃음소리. 설마 쌍아인가?’

참으로 놀랍게도 눈앞에 있는 것은 화산파에서 맞닥뜨렸던 쌍아였다.

그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공손무는 등골이 오싹해짐을 느꼈다.

‘쌍아다. 틀림없이 쌍아야. 어떡한다, 이대로 그냥 모른 척해야 하나?’

쌍아는 화산파에서 공손무와 검을 맞댄 적이 있는 자였다.

가면을 쓰고 있다 하더라도 성급하게 모습을 드러냈다가는 정체가 탄로 날 위험이 컸다.

‘섣불리 말을 걸었다가는 낭패를 보고 말 거야. 신중하게 움직여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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