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을 읽는 막내 공자 181화 (181/200)

<검을 읽는 막내 공자 181화>

181화. 천기자(5)

“뱀의 혓바닥?”

공손무의 머릿속으로 지난날 용종찬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뱀의 혓바닥은 선전 선동을 담당한다. 흑사교에 대해 긍정적인 설교를 해서 민심을 잡으려고 하지.’

대현자라고 불리는 자의 진짜 실체가 지금 이 자리에서 드러난 것이다.

“네가 흑사교의 교도?”

천기자가 흑사교 소속이라는 것이 밝혀지자 공손무의 두 눈에 분노가 일렁거렸다.

촤르르륵!

공손무가 매화혈사로 무릎을 꿇고 있는 천기자를 구속했다.

천기자는 두려움 가득한 눈빛으로 애원했다.

“왜 이러는 거야! 원하는 것을 답해 주었잖아! 이제 나를 놓아줘! 놓아 달라고!”

“어림없는 소리. 질문은 지금부터다. 자, 다시 묻겠다. 내 손바닥에 있는 흉터를 보고 놀란 이유가 뭐지? 이걸 보고 내가 천살성이라는 걸 어떻게 안 것이야?”

“그건…….”

“어서 말해!”

몸을 휘감고 있는 매화혈사가 조여들자 고통을 참지 못한 천기자가 인상을 찡그리며 소리쳤다.

“알았어! 말할게! 화산파의 천승진인이 나에게 말해 준 거야. 화산파에서 주도진인이라는 자가 비밀스럽게 천살성을 기르고 있었다고 말이야.”

천승진인이라는 말을 들은 공손무의 표정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졌다.

“지금 천승진인이라고 했나?”

“그래. 천승진인이 너에 관한 얘기를 해 주었어. 죽은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살아 있었다고. 화산검마의 제자가 되어서 다시 나타났다고 말이야!”

“그 녀석은 지금 어디에 있지?”

“그, 그건 나도 몰라.”

“이놈이 아직도!”

공손무가 주먹을 들자 천기자가 울먹이는 표정으로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히이익! 난 정말 몰라! 난 그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야! 그러니까 이제 제발 풀어 줘! 이렇게 빌 테니까 제발!”

조금 전만 하더라도 오연한 표정으로 내려다보던 천기자가 무릎을 꿇은 채 어린아이처럼 울고 있으니 공손무는 분노를 넘어 어이없음을 느꼈다.

“이런 자가 도대체 뭐가 대단하다고. 세상 사람들은 네가 이런 비겁한 놈인지 알고 있을까?”

그의 비난에 천기자가 어두운 표정으로 바닥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그럼 나보고 어떻게 하란 말이야. 거지들 사이에서 죽어 가는 나를 살려 준 게 그들인데. 난 그들의 명령을 수행할 수밖에 없어. 그들의 완벽한 꼭두각시가 되어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단 말이다.”

공손무가 힘없이 고개를 떨구고 있는 천기자를 지그시 내려다보았다.

그의 두 눈동자에는 아주 작지만 약간의 동정심이 묻어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의 죄를 눈감아줄 수는 없었다.

“정말 이상해. 어떻게 너 같은 녀석이 세간에 대현자라고 불릴 수 있었던 거지?”

“그건 내 능력 때문이 아니야. 나는 뛰어난 통찰 능력도 없고 앞일을 내다보는 것은 더더욱 하지 못해. 내가 대현자라고 불릴 수 있었던 것은 다 뛰어난 정보원들 덕분이야.”

“정보원?”

“그래. 흑사교 상부에서 내게 붙여 준 정보원들이 있어. 정보원이자 감시자들이지. 그들은 나를 찾아올 세력가들의 정보를 미리 수집한 다음 나에게 알려 주었어. 기본적인 신상정보부터 시작해 현재 어떠한 문제에 직면했는지까지 주도면밀하게 조사를 해서 나에게 정보를 넘겨주지. 그리고 목표 대상이 나를 찾아오면 받은 정보를 바탕으로 대답을 해 주는 거야. 그럼 그 사람은 자연스럽게 내가 통찰력이 있다고 생각하고 신처럼 떠받드는 거지.”

이야기를 듣던 공손무가 허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소리쳤다.

“참나! 그건 완전 사기잖아!”

“어쩔 수 없었어! 나는 살기 위해 그랬을 뿐이라고!”

“닥쳐라! 그렇다고 해도 네 죄가 없던 게 되지는 않는다. 무엇보다도 너는 자신이 한 짓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있어. 모든 것이 밝혀진 지금에 와서도 변명만 할 뿐, 진정으로 뉘우치는 기색은 보이지 않잖아.”

이번에는 반박할 수 없었는지 천기자가 붉게 상기된 얼굴을 한 채 입을 꾹 다물었다.

이윽고 그가 얕은 한숨을 내쉬며 힘없이 중얼거렸다.

“후우. 네 말이 맞아. 언제부턴가 나는 이 생활을 즐기고 있었지. 한낱 거지였던, 아니 거지들 사이에서도 무시당하던 내가 중원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니 얼마나 기뻤겠어. 잘못된 걸 알고 있었지만, 멈출 수 없었던 거야. 남들이 나를 숭배할 때 느껴지는 그 쾌감과 우월감 때문에!”

“지금이라도 알았으면 다행이다. 그 죄, 죽음으로 갚아라.”

모든 것을 체념한 것인지 천기자는 더는 우는 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저 두 눈을 꼭 감은 채 다가올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그를 가만히 내려다보던 공손무가 이내 손바닥을 펼쳐 매화혈사를 뽑아내었다.

“잘 가거라.”

“크읏!”

매화혈사가 날카로운 바람의 파공성을 일으키며 날아오자 천기자가 이빨을 꽉 깨물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천기자는 시간이 지나도 자신의 몸에 아무런 변화를 느끼지 못했다.

‘뭐, 뭐지? 왜 아무런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 거지?’

이상하게 여긴 그가 감았던 눈을 조심스럽게 떴다.

“이건?”

그의 눈앞에는 쥘부채가 갈기갈기 찢어진 채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천기자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들어 올리자 공손무가 나직한 어조로 말했다.

“더는 그 부채 뒤에 숨어서 살지 말아라.”

“그 말은?”

“살려 주겠다는 말이다.”

“저, 정말이야?”

“단, 한 가지 조건이 있다.”

조건이라는 말에 천기자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 조건이라는 게 뭐지?”

“모든 것을 밝혀라.”

“뭣?”

공손무가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내며 말을 이었다.

“지금까지 네가 한 말과 행동들은 모두 사기행각이었으며 스스로 대현자가 아님을 밝혀라. 그리고 그 배후에는 흑사교라는 단체가 있다는 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야 할 것이다. 그게 내가 너를 살려 줄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이다.”

묵묵히 듣고 있던 천기자가 이내 시선을 떨구며 중얼거렸다.

“그렇게 되면, 나는 그들에게 죽는다.”

“선택해라. 여기서 나에게 죽든지 아니면 한 번이라도 그들에게 대항해 보고 너란 존재를 되찾은 뒤에 죽을 것인지 말이다. 미리 말해 두겠는데, 지금 당장 위험을 피하고자 나에게 거짓말을 했다가는, 죽음보다도 더한 고통을 맛보며 비참하게 죽을 줄 알아라.”

심각한 표정으로 한참을 고민하던 천기자가 이내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후우. 알겠다. 네 말대로 하겠다. 내 진짜 실체를 모두에게 밝히지. 흑사교에 대한 모든 것을 명명백백히 밝히도록 하겠다.”

“네 목숨을 걸고 맹세할 수 있나?”

“맹세하겠다.”

결의에 찬 천기자의 표정을 빤히 쳐다보던 공손무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다. 너를 살려 주지. 그리고…….”

그의 시선이 쓰러져 있는 호위장에게 향했다.

“약속을 받아 낸 이상 저놈을 살려 두어서는 안 되겠군. 흑사교의 끄나풀에게 우리 계획에 대한 것을 알릴 수도 있으니까 말이야.”

이 말을 들은 호위장이 화들짝 놀라며 손사래를 쳤다.

“저,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것이오!”

“너 같은 녀석을 내가 어떻게 믿고? 그냥 이 자리에서 죽여 화근을 없애는 게 좋겠어.”

이때 뒤쪽에서 천기자가 다급하게 손을 뻗으며 소리쳤다.

“그 녀석은 살려 줘! 어차피 내가 너에게 내 정체를 밝혔다는 것을 흑사교가 안다면 나뿐만 아니라 저 녀석도 같이 죽는다. 호위장은 이제 나와 똑같은 운명이야. 그렇지? 호위장?”

그의 말에 호위장이 어두운 표정으로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세상 사람들에게 나에 대한 진실을 밝히고 그대로 사라질 생각이다. 흑사교 놈들을 따돌리려면 호위장과 그의 부하들이 필요해. 그러니 제발 그를 살려다오.”

“으음…….”

침음을 흘리며 고민하던 공손무가 결국 손을 거두었다.

그러자 천기자가 환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내 부탁을 들어 주어서 정말 고맙다.”

“대신 내가 요구한 것을 성실히 이행해야 할 것이야.”

“물론이지. 여기까지 와서 거짓말을 할 생각은 없어.”

천기자의 대답을 들은 공손무가 몸을 돌려 방을 나서려고 했다.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잠깐!”

천기자의 외침에 공손무가 눈썹을 추켜세우며 고개를 돌렸다.

“할 말이 남은 건가?”

“한 가지 더 말해 줄 것이 있어.”

“그게 뭐지?”

그의 물음에 천기자가 뒤쪽으로 걸어가더니 보석이 알알이 박힌 큼지막한 상자를 열었다.

그러고는 상자 속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내기 시작했다.

‘저건?’

상자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칠흑같이 검은 망토와 용도를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가면이었다.

궁금함을 이기지 못한 공손무가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그게 다 뭐지?”

잠시 머뭇거리던 천기자가 마른침을 삼키며 답했다.

“이건 그들을 만날 때 입는 의복이야.”

“그들을 만날 때? 흑사교를 만날 때 말인가?”

“맞아. 흑사교는 비정기적으로 장소를 옮겨 가며 비밀 회합을 하는데, 내일 밤 이곳 성도에서 그 회합이 열리거든.”

놀라운 사실에 공손무의 두 눈이 번쩍 떠졌다.

“지금 놈들의 회합이 열린다고 했나?”

“그래. 이곳 성도에서 열리지.”

“정확히 어디서?”

“이곳 성도 외곽에는 잠룡사라는 사찰이 있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많이 오갔지만, 명나라가 건국된 이후로 불교가 탄압당하면서 승려들이 떠났고 자연스럽게 버려지게 되었지. 그곳의 지하에는 승려들의 면벽 수련을 위한 커다란 공동이 있는데 흑사교가 그곳을 보수하여 자신들의 회합 장소로 만들어 버렸다.”

“이곳 성도에 그런 장소가 있었다니.”

천기자가 공손무에게 다가와 의복을 건네며 말했다.

“무슨 사연인지는 모르겠지만, 흑사교에 대한 원한이 대단히 깊은 것 같은데. 이걸 입고 암어를 말하면 회합 장소로 들어갈 수 있을 거야. 암어의 내용은 어둠의 포용 속에 모두가 하나가 되리 이다.”

하지만 공손무는 여전히 뭔가 이해가 되지 않는 듯했다.

“왜 그런 표정을 짓는 거지? 네가 간절히 원하는 정보 아니었나?”

“그건 맞는데, 이해가 되지 않는 점이 있어서 말이야.”

공손무가 가면을 가리키며 물었다.

“왜 이런 우스꽝스러운 것을 써야 하는 건데?”

그의 물음에 천기자가 가면을 응시하며 답했다.

“당연히 자신의 신분을 숨기기 위해서지.”

“그 말은, 다른 교도들은 너의 진짜 정체에 대해서 모른다는 건가?”

“그래. 교도들은 서로의 신분에 대해서 알지 못해. 묻는 것도 금지되어 있지. 오직 교주와 최측근 몇 명만이 교도들의 신분을 알고 있어. 이건 한 교도가 잡혔을 때 다른 교도에 대한 정보가 새어 나가지 않도록 하기 위한 흑사교의 내부전략이야.”

“그렇군. 그래서 곽영에게서도 별다른 정보가…….”

“응? 그게 무슨 말이야?”

“아니다. 그럼 확실한 건 그곳에 네 모습을 아는 사람은 없다는 거지?”

“그런 셈이지. 아, 목소리 정도는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어. 하지만 나는 회합에 참석해도 워낙 다른 교도들이랑 말을 섞지 않는 편이라 대부분은 목소리조차도 모를 거야.”

“흐음…….”

의복을 만지작거리던 공손무가 눈가를 좁히며 물었다.

“이걸 굳이 나에게 넘겨주는 이유가 뭐냐?”

“당연히 내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지. 내 정체를 세상에 알려진다면 그 즉시 흑사교의 지도부는 쓸모가 없어진 나를 죽이려 들 거야. 하지만 그 전에 네가 회합 장소에서 일을 벌인다면 흑사교 내부는 혼란에 휩싸이겠지.”

“한마디로 내가 회합에서 깽판을 놓기를 원한다는 말인가?”

“깽판 정도가 아니야. 다 죽여 주기를 원해.”

순간 공손무의 두 눈이 조금 커졌다.

“호오. 그래도 일말의 동지애는 있는 줄 알았는데.”

“동지애? 웃기지 말라 그래. 흑사교에 그런 것은 없어. 오직 검은 뱀에 대한 충성심만 요구할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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