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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을 읽는 막내 공자 168화 (168/200)

<검을 읽는 막내 공자 168화>

168화. 폭풍전야의 땅으로(1)

객잔에서 나온 공손무는 도심을 빠져나와 근처의 야산으로 향했다.

불빛 하나 없는 어둠 속에서도 익숙한 길인지 걸음걸이에 거침이 없었다.

잠시 후 정체를 알 수 없는 동굴이 앞쪽에 나타났다.

주변을 잠깐 살피던 그는 이내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자 불꽃이 타오르는 횃대가 여기저기 걸린 게 보였다.

버려진 동굴이 아닌 누군가가 사용하는 동굴이었다.

동굴의 끝에 이르자 꽤 큼직한 공간이 나왔는데, 그물망으로 만든 침대와 탁자가 있는 거로 봐서 누군가의 생활공간인 것 같았다.

“쓸 만한 정보를 건지신 건가?”

공손무가 탁자 위의 문서들을 집어 들어 그 내용을 훑어보았다.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남이 애써 모은 정보를 훔쳐보는 건 중대한 범죄라네. 젊은이.”

뒤쪽의 어둠 속에서 섬뜩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공손무의 몸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졌다.

휘이익!

얕은 바람 소리와 함께 어둠 속에 숨어 있던 누군가가 순식간에 그의 옆으로 이동했다.

“헤헤. 계셨습니까?”

“그럼 당연하지. 내가 달리 갈 곳이 어디 있단 말이냐?”

“역시 할아버지의 은신술은 대단합니다.”

공손무의 앞에 등장한 것은 바로 전대 화산검마 용종찬이었다.

그가 입꼬리를 올리며 물었다.

“임무는 어떻더냐?”

“생각보다 너무 허술했습니다. 광소라는 자는 황금의수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강력한 세력가가 아니었습니다. 이는 필시 누군가가 저를 끌어내어 정보를 얻기 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으음. 그렇구나. 네가 전서구로 보낸 정보를 토대로 황금의수 건의 의뢰자를 추적하고 있다. 조만간 그 결과가 나올 것이야.”

공손무는 살막의 의뢰를 받은 뒤 누군가에게 전서구를 띄웠었는데, 그 대상은 다름 아닌 화산검마였다.

지난 몇 년 동안 그가 화산검마라는 이름으로 살막에서 활동한 이유는 자신의 정보를 미끼처럼 흘려 흑사교가 물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제발 이번에는 놈들이 맞아야 할 텐데요.”

“나도 너와 같은 마음이다. 정보원들을 풀어 은밀히 조사하고 있으니 좀 더 기다려 보자꾸나.”

“예. 할아버지.”

“아, 그리고…….”

이때 용종찬이 품을 뒤적이더니 조그마한 서찰을 꺼내 건네주었다.

“이게 뭡니까?”

잠시 뜸을 들이던 그가 나직한 어조로 속삭였다.

“놀라지 말고 들어라. 어릴 적 헤어진 너의 가족 중 한 명. 둘째 형을 드디어 찾았다.”

그 말을 들은 공손무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떠졌다.

“그게 정말입니까?”

“그래. 네가 살막에서 열심히 돈을 벌어와 준 덕분에 우수한 정보원들을 길러낼 수 있었지. 몇 년 동안의 노력이 이렇게 결실을 보는구나.”

“아아…….”

자신의 둘째 형을 찾았다는 소식에 공손무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어서 열어 보아라.”

그가 두근대는 마음을 부여잡으며 조심스럽게 서찰을 뜯어보았다.

“응?”

그런데 무슨 내용을 본 것일까?

서찰의 내용을 살펴보던 그의 눈빛이 세차게 흔들렸다.

“왜 그러느냐?”

“그것이…….”

서찰 안에는 공손무의 둘째 형으로 추정되는 사람의 이름이 있었다.

그 이름은 다름 아닌.

“현천빙검(玄天氷劍) 공손경승……?”

놀랍게도 서찰 안에 적혀 있는 이름은 보광사에서 만난 중년 사내가 제거해 달라고 한 대상이었다.

공손무가 당황한 기색을 보이자 용종찬이 다가와 물었다.

“왜 그러느냐? 혹시 아는 사람이냐?”

“그것이…….”

잠시 고민하던 공손무가 이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할아버지.”

“왜 그러느냐?”

“실은 보광사에서 백골단에게 잡힌 무역상을 한 명 구했는데, 그자가 저에게 암살 의뢰를 했습니다. 그 대상이 바로 현천빙검이었습니다.”

그의 말에 용종찬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떠졌다.

“뭐라? 그게 정말이냐?”

“예. 우연일까요?”

“흐음…….”

수염을 쓰다듬던 용종찬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쎄다. 우연이라 하기에는 뭔가 좀 이상하구나. 그 사람에 대한 다른 정보는 없는 것이냐?”

“의창에서 향백관이라는 곳을 운영한다고 말했습니다.”

“향백관? 알겠다. 내 거기에 대해서도 정보원들을 풀어 알아보마.”

“감사합니다.”

“그래서…….”

용종찬이 은근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진짜 그 사람을 죽일 건 아니지?”

“설마요. 제 형을 어떻게 죽이겠습니까. 임무에 실패했다고 차후에 보고해야겠죠.”

“쯧! 보광사에서 괜한 놈을 구해 주는 바람에 네 명성에만 흠집 나게 생겼구나.”

“그런 건 상관없습니다. 그보다…….”

공손무가 화제를 돌렸다.

“현천빙검의 위치는 파악된 것입니까?”

“호북성 무한에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현재 무림맹에서 청룡대의 대주 직을 맡고 있지.”

별호뿐만 아니라 위치와 소속도 보광사에서 만난 중년 사내가 말한 것과 일치하였다.

‘확실해. 그 사람이 죽여 달라는 사람은 내 둘째 형이다. 어떻게 이런 우연이 있을 수 있는 거지?’

점점 커져 가는 의문 속에서 용종찬의 목소리가 공손무의 생각을 흩뜨려놓았다.

“무한으로 가기 전에 주의해야 할 점을 알려 주마.”

“그게 뭡니까?”

“지금 무한은 말 그대로 폭풍전야의 땅이라고 불린다.”

“폭풍전야의 땅?”

“그래. 무림맹과 사도련 양 세력이 팽팽한 긴장감 속에 대치하고 있지.”

정파의 구심점에 무림맹이 있는 것처럼 사파의 구심점에는 사도련이 있었다.

이런 두 조직이 충돌하는 것은 결코 예삿일이 아니었다.

“무림맹과 사도련이 맞붙는다는 것은……?”

공손무가 말하려는 것이 뭔지 안다는 듯 용종찬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맞아. 그 말인즉슨 정사대전이 시작된다는 것이지. 그 시발점이 될 수 있는 게 바로 무한이고 말이야. 수많은 중원의 눈들이 그곳에서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지 지켜보고 있단다.”

“만만치 않은 여정이 될 것 같습니다.”

“그렇겠지. 거기는 지금 중원의 화약고와 같은 곳이니까. 또한, 공손경승이 네 말을 듣고 순순히 믿어 줄지도 의문이고.”

“하지만 최선을 다할 겁니다. 누가 무슨 말을 하든 그 사람은 제 형이니까요.”

그 말이 옳다는 듯 용종찬이 고개를 끄덕이며 공손무의 어깨를 붙잡았다.

“네가 그토록 고대하던 순간이 왔다. 흑사교에 대한 조사는 내가 계속하고 있을 테니 넌 무한으로 가서 네 형을 만나라.”

“감사합니다. 제 마음을 형에게 전하고 또 나머지 가족에 대한 행방도 반드시 알아 오겠어요.”

*   *   *

여정을 위해 간단히 짐을 꾸린 공손무는 다음 날 이른 아침, 용종찬의 은신처를 떠났다.

“의창을 떠나기 전 그곳을 들러야겠지.”

무한으로 가기 전에 그는 의창 외곽에 있는 취선루로 향했다.

“아하하핫! 또 오셔야 합니다~”

취선루에 가까워지자 기녀들의 간드러진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준수한 외모를 가진 공손무가 취선루의 입구로 다가오자 기녀들이 멋진 먹잇감을 발견했다는 듯 눈빛을 반짝였다.

“어머나! 귀하게 생기신 분이 오셨군요! 실례지만 어느 가문의 자제이신지?”

“저리 안 가?! 이분은 내가 먼저 찜했거든?”

“무슨 소리야! 내가 먼저라고!”

말다툼이 거슬렸던 공손무가 눈가를 찌푸리며 말했다.

“이곳에 주술사가 있다고 해서 왔소만?”

주술사라는 말에 그녀들이 실망한 듯 입맛을 다셨다.

“쩝. 뭐야, 곤붕 할아범의 손님이셨구만? 안쪽으로 들어가서 오른쪽 구석으로 가면 신당이 있을 거예요.”

“고맙소이다.”

고개를 가볍게 까딱여 보인 공손무가 서둘러 취선루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여자들의 분 냄새와 싸구려 술 냄새가 뒤섞인 이상한 냄새가 그의 코를 자극했다.

‘이런 시궁창 같은 곳에 그 노인의 신당이 있단 말인가?’

발길을 돌리고 싶었지만, 가족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도 있다는 희망 하나로 그는 기녀들이 말한 곳으로 걸어갔다.

‘여기인가?’

이윽고 취선루 내부에서 유일하게 한산해 보이는 공간이 나타났다.

‘흐음. 기녀들이 말한 곳은 여기인 것 같은데.’

주변을 둘러보던 공손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실례합니다. 아무도 안 계십니까?”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격자무늬 문 안쪽에서 희미한 불꽃이 일렁거렸다.

끼이익!

잠시 후 둔탁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더니 한 노인이 촛대를 들고서 모습을 드러냈다.

공손무를 본 노인이 활짝 웃으며 소리쳤다.

“오오! 이게 누구야! 정말로 찾아와 주었구려!”

노인은 보광사에서 공손무가 구해 준 자였다.

“후훗. 혈색이 좋아 보이시는 게 몸은 좀 많이 나아지셨나 봐요?”

“덕분에 잘 지내고 있다오. 아, 어서 들어오시오.”

“예, 감사합니다.”

노인을 따라 방 안으로 들어가자 곧바로 신당이 보였다.

허름하고 낡은 신당이었지만, 곳곳에서 노인의 정성스러운 손길이 느껴졌다.

‘후우. 적어도 여긴 악취가 나지는 않는군.’

잠시 후 딸깍거리는 소리와 함께 노인이 찻잔을 들고서 나타났다.

“노인 혼자 사는 곳이다 보니 다른 건 줄 게 없고, 따뜻한 차라도 한 잔 대접하겠소.”

“그거면 충분해요.”

노인이 땅바닥에 앉아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이거 그러고 보니 내 이름도 밝히지 않았구려. 나는 곤붕이라고 하오.”

“공손무입니다.”

“좋은 이름이구려. 그나저나, 이 늙은 주술사에게 정확히 무엇을 부탁하고 싶어서 오셨소?”

말없이 찻잔 속의 자신을 들여다보던 공손무가 이내 나직한 어조로 답했다.

“제 가족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고 싶어서 왔어요.”

“가족? 현재 가족과 살고 있지 않소이까?”

“예. 어린 시절에 불의의 사고를 겪으며 헤어졌죠.”

“아아…….”

그제야 무슨 이야기인지 깨달은 듯 곤붕이 고개를 끄덕였다.

“헤어진 가족을 찾기 위해 어린 시절의 기억을 되살리겠다는 말로 이해하면 되겠소이까?”

“정확합니다.”

“흐음. 정확히 몇 살 때 헤어졌는지 알고 있소?”

“두 살이에요. 두 살 때 도적의 습격을 받고서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졌어요.”

“쯧쯧. 그런 사정이 있었구려.”

공손무는 어린 시절에 대해 기억나는 대로 곤붕에게 설명했다.

설명이 끝나고 잠시 후, 곤붕이 찻잔을 정리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충 사정을 들었으니 이제 주술을 시작해도 되겠소. 나를 따라오시오.”

“예, 어르신.”

공손무가 그의 뒤를 따라 신당 안쪽으로 향했다.

안쪽에는 또 다른 분위기의 방이 있었는데, 일단 조금 더 어둑했고 용도를 알 수 없는 골동품들이 사방에 널려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화려한 빛깔의 색유리로 만든 커다란 구슬과 그것의 양옆에 놓인 두 개의 의자였다.

이윽고 곤붕이 향을 피우며 자리를 권했다.

“여기에 앉으시구려.”

조금 긴장한 듯 공손무가 한숨을 내쉬며 의자에 앉았다.

‘묘한 냄새가 나는군. 저 향에서 나는 건가?’

사람의 마음을 꿈틀대게 하는 신묘한 향기가 방안을 가득히 메웠다.

준비가 끝나자 곤붕이 다가와 속삭였다.

“주술을 시작하기 전에 한 가지 당부할 것이 있소이다.”

“그게 뭔가요?”

“난 지금부터 무의식 속에 잠겨 있는 그대의 기억을 끌어 낼 것이오. 그런데 간혹 그 과정이 고통을 동반할 때가 있소. 다시 말해 내가 원하는 기억만이 아닌 다른 고통스러운 기억들이 같이 올라오는 경우지.”

“상관없어요. 제가 떠올려야 할 기억이 유쾌하지 않다는 건 잘 알고 있으니까요. 바로 시작해 주세요.”

“알겠소. 그럼 두 눈을 감고 최대한 편안한 자세로 있으시오. 이 순간만큼은 만사를 잊고 오직 옛날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에만 집중하시오.”

곤붕의 말에 따라 공손무가 두 눈을 감더니 심호흡을 하며 옛 기억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곧이어 주문을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그의 의식이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다.

무의식의 어둠 속에는 잠들어 있던 기억의 파편들이 흩어져 있었다.

‘내 가족들! 가족들의 기억을 떠올리고 싶어!’

허공을 표류하던 공손무의 의식은 마침내 19년 전의 광경을 담아낸 기억의 파편과 마주쳤다.

‘불타고 있어! 모든 것이!’

그의 생각대로 19년 전 그곳은 지옥의 한 장면처럼 온 사방이 새빨간 화마로 뒤덮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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