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을 읽는 막내 공자 167화 (167/200)

<검을 읽는 막내 공자 167화>

167화. 새로운 화산검마(4)

“금화 150냥?”

“그래. 어떤가? 해 볼 텐가?”

살막을 통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의뢰를 받는 것은 금지된 행위다.

만약에 의뢰를 받은 사실이 살막에 알려진다면 지금까지 쌓아 온 평판이 무너질 뿐만 아니라 살막에서 쫓겨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공손무는 선뜻 거절하지 못했다.

단순히 돈이 탐나서가 아니었다.

금화 150냥을 부를 자금력을 가진 이 사람의 정체가 궁금할 뿐.

‘금화 150냥을 이리 선뜻 제시하다니, 이 사람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지?’

그는 예리한 눈빛을 빛내며 정체를 알 수 없는 중년 사내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안에 있을 때는 어두워서 제대로 못 봤는데…… 꽤 비싸 보이는 옷을 입고 있었군. 진짜 그만한 재력을 가진 사람인가?’

날카로운 턱선과 선명한 이목구비를 가진 중년 사내는 속을 알 수 없는 그윽한 눈길을 보내며 공손무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후우…….”

잠시 후 공손무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살막을 통해서 정식으로 의뢰하세요. 개인적으로는 받을 수 없습니다.”

“흐흐. 이미 해 봤지. 하지만 퇴짜를 놓더군.”

중년 사내의 대답에 공손무의 눈빛이 반짝였다.

‘살막이 퇴짜를 놓았다고? 무슨 의뢰이길래?’

의뢰의 내용이 궁금했던 그가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살막이 퇴짜를 놓았다라…… 그게 정말이에요?”

“진짜라니까! 나도 원래라면 이런 건 하지 않지만, 워낙 급해서 그러는 것일세. 어떻게 안 되겠나? 내 이렇게 빌겠네.”

“흐음…….”

잠시 고민하던 공손무가 팔짱을 끼며 물었다.

“규율상 안 되지만, 몇 가지 질문에 답해 주시면 수락할 수도 있어요.”

“오오! 그게 정말인가? 어서 하시게.”

“첫 번째로 만약 제가 의뢰를 받는다면 이 모든 건 목숨을 걸고서 비밀리에 진행돼야 할 거예요. 그럴 수 있나요?”

“물론이지! 그 바닥 규율을 내가 모르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으흐흐!”

긍정적인 대답에도 음흉한 미소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공손무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럼 두 번째 질문으로 넘어가죠. 금화 150냥을 선뜻 제시할 정도면 굉장한 부자라는 소린데, 이런 도적놈에게 돈을 빌린 게 이해가 안 돼요.”

“나는 가난한 집안 출신이야. 불행한 유년기를 보냈고, 밑천 하나 없이 독립했지. 그 뒤로 배를 만드는 목수를 하다가 무역업에 뛰어들었어. 하지만 목수와는 달리 무역업은 초기에 많은 자금이 들더군. 그래서 손을 뻗은 게 백골단이야. 돈을 빌린 뒤로는 다행스럽게도 사업이 승승장구했어. 그래서 얼마 전에 빌린 돈을 갚으러 왔는데, 이 사달이 난 거야.”

“정확히 어떤 물품을 거래하는 거죠?”

중년 사내가 웃으며 대답했다.

“흐흐. 예술품이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예술을 좋아했지. 예술가가 되고 싶었지만, 그 대신 이거라도 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지 몰라.”

막힘없는 대답에 공손무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예술품을 거래하는 무역상이라…….”

“이제 의심은 좀 풀렸나?”

“뭐, 좋아요. 다만 의뢰의 내용을 듣고서 할지 안 할지를 결정하겠어요.”

“오오! 그렇게 말해 줘서 고맙네!”

“시간이 없으니 의뢰 내용을 빨리 말해 주세요.”

“아, 그래야지. 어흠흠!”

목청을 가다듬던 중년 사내가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자네가 생각하기에 무역상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겠나?”

“으음. 거래할 상대가 있어야겠죠?”

“맞는 말이지만 그것 이전에 근본적으로 자유로운 무역을 할 수 있는 환경과 그에 걸맞은 권리가 있어야겠지. 그래야 거래를 할 상대를 만들 수 있으니까 말이야. 그런데 최근에 내 사업을 방해하는 놈이 생겼어. 자유롭게 무역할 수 있는 나의 권리를 침해하는 놈이지.”

“그게 대체 누군데요?”

잠시 뜸을 들이던 중년 사내가 나직한 어조로 속삭였다.

“무림맹.”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공손무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무림맹이요?”

“그렇다네. 무림맹이 나의 사업을 방해하고 있어. 거기에 소속되어 있는 놈 중 한 명을 제거해 줬으면 좋겠네.”

“무림맹이라니, 그 녀석들이 방해하는 사업이라면 상당히 불법적인 것 아닌가요?”

공손무의 말에 중년 사내가 눈썹을 씰룩이며 고개를 내저었다.

“후훗. 역시 자네는 아직 젊구먼.”

“그게 무슨 소리죠?”

“중원 사람들은 무림맹이 하는 일이 정의라고 생각하지. 하지만 그놈들이 옳은 짓만 하는 건 아니야. 그 녀석들도 결국에는 중원의 이권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기득권 세력.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더러운 짓도 서슴없이 하는 놈들이라고.”

“흐음. 그래서 정확히 누구를 제거하길 원하나요?”

“호북성 무한 인근에 방백산이란 곳으로 가면 현천빙검(玄天氷劍)이라 불리는 자가 있을 것일세.”

“현천빙검?”

“그렇다네. 그는 나에게 뇌물을 요구했는데, 그것을 거절하자 사업을 방해하기 시작했지. 이제 더는 견디지 못하겠으니 이런 방법을 쓸 수밖에.”

공손무가 애매하다는 듯 볼을 긁적였다.

“현천빙검이라, 좀 더 구체적인 정보가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이름 같은 거라든지.”

“이름은 나도 모른다네. 현천빙검이라는 별호를 가졌고 호북성 무한 일대에서 무림맹의 세력을 이끌고 있다는 것만 알고 있지.”

“으음…….”

의뢰 내용을 들은 그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어쩌겠나? 하겠나?”

이윽고 공손무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그렇게까지 간절하다는데 거절한다면 도리가 아니겠죠?”

“크으! 역시 내가 사람을 잘 보았구먼.”

“돈이나 잘 준비해 두세요.”

“흐흐. 잘 부탁하네. 일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이곳 의창에 있는 내 가게로 오시게. 가게 이름은 향백관일세.”

“알겠어요.”

대화를 마친 공손무는 노인을 업은 뒤 중년 사내와 함께 사찰을 빠져나왔다.

“그럼 좋은 소식 기다리고 있겠네.”

중년 사내가 묘한 미소를 흘리며 어둠 속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이를 본 공손무가 노인을 땅바닥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여기서부터는 안전할 겁니다.”

“아아. 정말 고맙소. 꼼짝없이 죽는 줄 알았는데 덕분에 목숨을 건졌소이다.”

“앞으로는 아무리 돈을 준다고 해도 저런 놈들과는 엮이지 마세요. 아셨죠?”

“명심하겠소. 그런데 주제넘은 소리이긴 하지만, 혹시 아까 그 사내와 무슨 대화를 나누었소?”

“그건 왜 궁금하신데요?”

“나는 보석상이기 이전에 나름 이름을 날린 주술사이오. 그래서 관상을 좀 볼 줄 아는데, 조금 전 그 사내의 얼굴을 보아하니 남의 뒤통수를 칠 비열한 승냥이의 상이오. 혹여나 그 사람과 무슨 일을 같이하기로 한 거라면 다시 생각해 보는 게 좋을 것이오.”

노인의 말에 공손무가 은근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하핫! 관상을 그렇게 잘 보시면서 광소의 위험은 못 보셨나 봐요?”

“물론 봤지. 솔직히 말해서 그 녀석은 따로 관상을 볼 필요도 없이 누구나 봐도 흉포해 보이는 인상이지 않소? 나야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고 어쩔 수 없이 접근한 것이나, 그쪽은 여유가 있어 충분히 피할 수 있는 것 같으니 이런 말을 하는 것이오.”

하지만 공손무는 여전히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주술사라고 하셨는데, 그 주술이라는 게 어떤 걸 말하는 거죠?”

“주술에는 다양한 분야가 있지. 간단한 점괘부터 관상과 궁합. 이것들 말고도 많은 것들이 존재하오. 하지만 나는 그런 평범한 것들 말고 사람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특별한 주술을 사용한다오.”

“마음을 들여다본다고요?”

“그렇소.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되찾고 싶은 기억을 되살리거나 반대로 고통스러운 기억을 없애는 주술을 사용한다오.”

놀라운 말에 공손무의 입이 벌어졌다.

기억을 다룬다는 것은 듣도 보도 못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게 정말 가능하다는 말이에요?”

“물론이오. 내가 거짓을 말할 이유가 있겠소?”

조금 전과는 달리 공손무는 턱을 매만지며 진중한 표정으로 뭔가를 생각했다.

“그럼 혹시 어릴 적의 기억도 다시 되살릴 수 있나요?”

“물론이오. 어릴 적에 어떠한 장면을 똑똑히 목격했다면 주술로 되살리는 게 가능하오.”

“그럴 수가!”

노인의 긍정적인 대답에 공손무의 표정이 멍해졌다.

‘어릴 적 가족들과 헤어진 그 날, 그날의 기억을 되살리는 게 가능하다는 말인가?’

정말로 가능하다면 가족을 되찾을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얻을 수도 있었다.

“지금 여기서 그 주술을 할 수 있나요?”

“응? 그 말은 내 주술이 필요하다는 뜻이오?”

“예, 맞아요. 그 주술을 받고 싶어요.”

“미안하지만 여기서는 불가능하오. 일단 내 주술 도구가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이런 어수선한 곳에서는 집중이 되지 않소.”

“그럼 어디로 가야 하나요?”

공손무가 적극적으로 묻자 노인이 너털웃음을 지었다.

“허허. 의창 외곽에 취선루라는 술집이 있소. 거기 한쪽에 신당을 꾸리고 영업을 하고 있지. 내 주술이 필요하다면 그곳으로 오면 될 것이오.”

“일이 끝나는 대로 꼭 들를게요.”

“알겠소. 내 은혜를 갚는 셈 치고 무료로 해 드리리다.”

방문 약속을 하고 노인을 떠나보낸 공손무는 살막의 본거지로 돌아왔다.

이번에도 쇠창살의 어둠 속에서 말소리가 흘러나왔다.

“황금의수는 의뢰인에게 전달될 것이다. 이번에도 깔끔하게 처리했더군. 잘했다.”

“뭘 이 정도로…….”

말끝을 흐리던 공손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기 한 가지 부탁할 게 있어.”

“응? 뭐지?”

“개인적으로 의뢰 하나를 수행하려 하는데 허락해 줄 수 있나?”

“살막의 규율을 잘 알면서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지?”

“그러니까 이렇게 정중하게 부탁하는 거잖아. 특급 살수가 왜 특급 살수겠어. 이럴 때 부탁 한 번 하려고 특급인 거지.”

“흐음. 누구의 의뢰를 맡는다는 거야?”

“이름은 밝히지 않았어. 다만 의창에서 향백관이라는 곳을 운영한다더군. 자기 말로는 살막에 의뢰를 넣었다가 퇴짜를 맞았다던데?”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어둠 속에서 가벼운 감탄이 들려왔다.

“아! 설마 그 사람인가?”

“기억나는 거야?”

“그래. 기억난다. 무림맹의 현천빙검(玄天氷劍)을 제거해 달라고 했지. 위험한 사안이라 손대지 않기로 했어.”

“호오. 살막의 주인이 손대지 못할 정도면 엄청 거물인가?”

“거물이지. 현재 무림맹의 실세 중의 한 명인데.”

“그렇군. 그래서 허락해 주는 거야, 아니면 안 되는 거야?”

“현천빙검을 잡으려는 걸 안 이상 허락해 주면 안 되겠지. 하지만 표정을 보아하니 이미 수락한 것 같은데?”

공손무가 혀를 차며 투덜거렸다.

“눈썰미 하나는 더럽게 날카롭다니까.”

“다 들리거든?”

“크흠흠! 잘 들어 봐. 그 사람이 제시한 금액이 금화 150냥이야. 의뢰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면 금화 50냥을 줄게.”

“으음…….”

“내가 요즘 돈이 궁해서 그러거든. 한 번만 하게 해 주라. 응?”

이윽고 어둠 속에서 단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금화 100냥을 준다면 허락하지.”

“헉! 날강도야? 그렇게 많이 먹겠다고?”

“허락해 주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할 텐데? 싫으면 그만두던가.”

“끄응. 어쩔 수 없지. 알았어! 금화 150냥을 받으면 그중 100냥을 주지.”

“좋아. 허락하지.”

대화가 끝나자 공손무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돌렸다.

쇠창살 너머의 어둠 속에서 형형한 안광이 번뜩이며 그의 등 뒤를 주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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