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을 읽는 막내 공자 163화>
163화. 광기의 검객(4)
이에 질세라 쌍아 또한 양손에 검을 들고서 앞으로 달려 나왔다.
맹렬한 속도로 달려오던 그가 땅을 박차고 허공으로 솟아올랐다.
재빠른 움직임이었지만 공손무의 표정은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날 상대로 정면 돌파를 하시겠다? 방심했구나!’
무슨 생각인지 그가 검을 집어넣더니 대신 양손을 뻗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쌍아가 미간을 좁혔다.
‘으음? 검을 놓았어? 장법? 아니면 권법을 쓰려는 건가?’
끼이이잉!
하지만 공손무가 쓰려는 것은 장법도 아니고 권법도 아니었다.
‘할아버지가 했던 동작, 호흡, 그리고 내공의 흐름을 떠올리는 거야. 그럼 양손에서 매화혈사를 뽑아낼 수 있어!’
그가 내공을 끌어 올리자, 손바닥에 있던 거미 모양의 흉터에서 예리한 칼날과도 같은 거미줄이 뿜어져 나왔다.
거미줄들이 유려한 곡선으로 파도처럼 출렁거리며 허공을 맴돌았다.
‘가라! 가서 쌍아의 온몸을 잘라 버려!’
공손무가 양손을 가볍게 휘젓자 출렁이던 실들이 빳빳해지더니 일제히 쌍아를 향해 날아갔다.
‘놈이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왔다. 먼저 녀석의 팔부터……!’
날카로운 거미줄들이 검을 잡은 쌍아의 두 팔을 노렸다.
‘거미줄?’
반투명한 거미줄들이 날아오자 쌍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호오. 뭔지 모르겠지만 내 팔을 휘감을 셈인가 보군. 그렇다면!’
비릿한 미소와 함께 쌍아의 양손이 세차게 휘둘러졌다.
촤아아악!
그러자 놀랍게도 날아가던 매화혈사가 수십 조각으로 잘려 버렸다.
‘뭣?’
매화혈사가 너무나도 쉽게 끊어져 버리자 공손무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이, 이것이 이렇게 쉽게 끊어지는 거였나?’
매화혈사는 웬만한 고수의 검으로도 쉽사리 끊을 수 없는 강도를 지니고 있었다.
하나를 끊는 것도 어려운 것인데 쌍아는 수십 개를 한 방에 잘라 버린 것이다.
쏴아악! 쏴아악!
쌍아가 광기 어린 미소를 흘리며 몇 번 손을 휘두르자, 나머지 거미줄도 모조리 끊어져 버렸다.
“키히히힛! 참으로 재미있는 놈이군! 거미줄이라! 이 나를 죽이기 위해 거미줄을 쓰다니! 이 얼마나 독특한 발상인가!”
거침없는 그의 기세에 공손무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져 있었다.
‘그런 건가. 매화혈사를 만드는 데는 성공했지만, 할아버지의 것과는 질적으로 달라. 내 것은 훨씬 얇고 강도가 떨어져. 젠장! 그렇게 죽도록 수련했는데 이런 모습을 보이다니!’
공손무가 이빨을 깨물며 다시 한번 양 손바닥에서 거미줄을 뽑아냈다.
‘매화혈사(滅劫血絲). 죽음의 고치.’
조금 전보다 더 많은 양의 거미줄들이 날아가 쌍아의 온몸을 휘감는 데 성공했다.
“으음?”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되자 쌍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이번에야말로 끝이다.”
공손무가 양손을 잡아당기자 쌍아는 거미줄에 칭칭 감겨 거대한 고치의 형태로 변해 버렸다.
‘날카로운 절단면에 온몸이 베이고 독에 중독되었을 거야. 이번만큼은 쌍아도 빠져나갈 수 없겠지.’
하지만 그 믿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아니?’
무언가를 느꼈는지 공손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고치 안에서 엄청난 기운이 요동치고 있어!’
놀랍게도 고치 내부에서 정체불명의 기운이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이럴 수가!’
촤아아악!
아니나 다를까 고치가 갈가리 찢어지더니 그 속에서 쌍아가 안광을 번뜩이며 튀어나왔다.
‘매화혈사에 온몸이 감겼는데도 죽지 않는단 말인가?’
스치기만 해도 살이 찢어질 정도로 날카로움을 가진 매화혈사였다.
그것을 온몸에 둘렀음에도 쌍아의 몸에는 자그마한 상처 하나 보이지 않았다.
‘상처가 하나도 없다는 건 내 매화혈사의 강도를 뛰어넘은 호신강기를 온몸에 둘렀다는 거겠지. 크읏! 이 녀석은 내 예상을 뛰어넘는 엄청난 고수구나.’
이때 쌍아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소리쳤다.
“키히히힛! 정말 보면 볼수록 진국인 녀석이잖아?”
고치를 부수고 나온 그가 잔상을 일으키며 순식간에 공손무 앞에 도달했다.
“이번엔 내 차례다.”
짙은 검기를 머금은 쌍검이 어지러운 호선을 그리며 사방으로 휘둘러졌다.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른 검격이었지만, 공손무는 이를 악물며 피해 냈다.
폭풍과도 같은 공격이 한차례 끝나자 그가 재빨리 손으로 지면을 짚으며 뒤로 물러났다.
“크히힛!”
이를 본 쌍아가 혓바닥으로 자신의 검을 핥으며 말했다.
“고놈 참 재빠르네. 팔딱거리는 것이 싱싱한 생선 같아.”
“…….”
“표정이 왜 그래? 네가 자랑하는 무공이 먹혀들지 않아서 화가 난 거야? 케헤헤헷!”
쌍아의 빈정거림에 공손무가 그를 노려보았다.
“그렇게 여유 부릴 만한 실력을 갖추었다는 것은 인정해 주지.”
“오호! 내가 꼬맹이한테 인정을 다 받다니! 이거 기뻐서 춤이라도 춰야 하는 건가?”
“하지만 그 여유도 얼마 가지 못할 거다. 네가 여기서 죽는다는 것은 변함이 없으니까.”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더 큰 분노를 피워라. 그리고 더 재미난 걸 보여 다오! 네 말대로 난 이 화산파를 내 발바닥 아래에 두고 마구 짓밟으려고 왔으니까 말이야! 크히히힛!”
“크읏! 절대 용서 못 해!”
분노를 참지 못한 공손무가 입술을 깨물며 앞으로 날아갔다.
“그래! 어서 와라! 어서!!”
쌍아 또한 쌍검을 들고서 앞으로 돌진했다.
두 사람이 서로 부딪치려는 순간 공손무의 눈빛이 예리하게 빛났다.
‘걸렸구나!’
그가 검을 고쳐 잡더니 한 손에 내공을 집중시켰다.
‘탈골탄화(脫骨彈花).’
쩌어어엉!
내공을 집중시킨 매화질풍검과 쌍아의 쌍검이 허공에서 세차게 부딪혔다.
“으음?”
충돌과 동시에 무슨 일인지 쌍아의 한쪽 팔이 비정상적으로 떨렸다.
그러고는 이내 팔 전체가 아래로 축 처져 버렸다.
‘팔이 부러졌다?’
매화혈사를 휘감고도 상처를 낼 수 없었던 쌍아였지만, 이번엔 어찌 된 일인지 단 일 합에 팔이 부러진 것이다.
공격이 효과가 있자 공손무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탈골탄화(脫骨彈花)라는 거다. 상대방이 가한 힘을 반탄력을 이용해 그대로 돌려주는 거지. 상대방의 검압이 강하면 강할수록 더 강한 충격을 되돌려줄 수 있다.”
“호오?”
“그래도 대단하군. 이걸 맞으면 팔 뿐 아니라 내부장기까지 망가지는 게 보통인데…… 보아하니 너는 팔만 망가졌구나.”
뼈가 부러져 극심한 통증이 따를 텐데도 쌍아는 흥미롭다는 표정만 지을 뿐 두려운 표정을 짓거나 괴로운 신음을 내지 않았다.
공손무가 그를 향해 다시 검을 겨누며 말을 이었다.
“이제 나머지 한 짝도 못 쓰게 만들어 주지.”
“키히히힛! 참으로 재밌군. 이 시큰거리는 고통! 아아! 얼마 만에 느껴 보는 감각이던가!”
쌍아는 팔에서 느껴지는 고통에서 쾌락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게 너덜너덜해졌는데 아직도 여유로움이 남은 것이냐?”
“너덜너덜? 웃기는군. 겨우 팔 하나 부러뜨렸다고 으스대는 걸 보니 역시 애송이답구나.”
“뭐라고?”
“아무래도 내가 너무 얕보인 모양이야.”
쌍아가 나머지 한 손에 들린 검에 내공을 불어넣으며 검붉은 안광을 번뜩였다.
“뭘 하자는 거지?”
“네 녀석을 죽이는 데는 이 한쪽 손만으로도 충분하다.”
“흥! 끝까지 허세로군.”
“허세가 아니다. 이제 나도 조금은 진심으로 임할 생각이거든.”
“바라던 바다. 어서 덤벼라!”
“그래, 네 말대로 조금 기세를 올려야겠어.”
쌍아가 입이 귀에 걸릴 정도로 짙은 미소를 짓더니 자세를 한껏 낮추었다.
우우웅!
그러자 그의 몸에서 내공과 살기가 뒤섞인 기운이 끈적하게 피어올랐다.
속이 뒤틀리는 듯한 기분 나쁜 기운에 공손무가 인상이 찡그려졌다.
‘아직도 이 정도의 힘이 남아 있었다는 건가?’
한쪽 팔이 부러진 상태의 쌍아였지만, 느껴지는 기운은 조금 전보다 더 강해져 있었다.
“각오해라!”
쌍아가 비릿한 미소를 머금은 채 공손무를 향해 달려 나갔다.
쉬이익! 퍼어억!
날카로운 바람의 파공성이 울려 퍼지더니 매끈했던 지면에 곡선 모양의 깊은 상처가 나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한 위력에 공손무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저건 뭐지? 검격으로 만들어진 건가? 하지만…….’
그의 두 눈에 쌍아는 그저 검을 치켜든 채 달려오고만 있었다.
‘쌍아는 검을 휘두르지 않고 있다. 그런데 어째서 땅에 검흔이 새겨지는 거지?’
검을 휘두르지 않았는데도 지면에 검흔이 어지럽게 생기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잠깐, 설마?!’
그제야 뭔가를 깨달은 듯 공손무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히힛! 이제 깨달아 봤자 소용없다! 이미 늦었어!”
“이런 젠장!”
절체절명의 순간, 공손무는 한 가지를 깨달았다.
쌍아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아니었다.
단지 그의 발검이 너무나도 빨라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발검술 때문에 검을 가만히 들고 있는 것처럼 보인 것이다.
‘반응할 수가 없다! 늦은 건가!’
이런 사실을 깨닫는 순간 쌍아의 검은 공손무의 옆구리를 관통하려고 하고 있었다.
‘키히히힛! 끝이다. 네놈의 피가 분수처럼 터진다니 상상만 해도 즐겁구나!’
그 순간이었다.
쩌어어엉!
‘뭣?’
빠르게 움직이던 쌍아의 검이 갑자기 뭔가에 턱 하고 걸려 멈추어졌다.
“이게 무슨……?”
쌍아가 눈가를 찌푸리며 자신의 검을 보았다.
검이 누군가의 발에 의해 지면에 박혀 있었다.
곧 완숙한 살기가 느껴지는 중저음의 목소리가 쌍아의 귓가로 들려왔다.
“이제야 찾았다! 이 쥐새끼 같은 녀석!”
“너는?”
고개를 든 그의 눈에 풍성한 백색 수염에 깡마른 노인이 보였다.
노인은 다름 아닌 화산검마, 용종찬이었다.
“뱀의 이빨, 광란(狂亂)의 검사 쌍아! 지금부터 화산파의 이름으로 검은 뱀의 신봉자인 네놈을 처단하겠다!”
자신을 처단하겠다는 말에 쌍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오호라. 보아하니 네 녀석이 바로 화산검마로구나? 내 꽁무니만 쫓는 것이 어떤 놈일지 궁금했는데, 설마 이런 형편없는 노인이었을 줄이야.”
“흥! 그 형편없는 노인에게 오늘 너는 죽을 것이다!”
일갈을 내뱉은 용종찬이 안광을 번뜩이며 내공을 끌어 올렸다.
내기를 잔뜩 머금은 그의 검이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허공을 갈랐고, 거센 돌풍이 사방으로 일어났다.
‘광풍홍련참(狂風紅聯斬).’
자홍빛의 날카로운 강기가 소용돌이치며 쌍아의 전신을 휘감았다.
“키히히힛! 그런 거로 이 내가 죽을 것 같은가!”
쌍아가 광기 어린 안광을 번뜩이며 소용돌이를 베어 버리려고 하였다.
콰지직!
“아니?”
하지만 소용돌이에 닿은 검은 어찌 된 일인지 산산이 조각나고 말았다.
일순간 당황한 그는 이내 뭔가를 깨달았는지 빠르게 침착함을 되찾았다.
‘그렇군. 저 애송이와 기운만 닮았을 뿐. 질적으로는 차원이 다르단 건가?’
검을 한번 맞대고 나니 쌍아는 눈앞에 있는 노인의 진정한 실력을 알 수 있었다.
반격하려고 했지만 이미 때가 늦어 있었다.
검기의 소용돌이가 전신을 수십수백 조각으로 잘랐기 때문이다.
한 줌의 먼지가 되어 가는 그 상황 속에서 놀랍게도 쌍아는 웃고 있었다.
고통에 찬 비명 대신 미소를 짓자 이를 이상하게 여긴 공손무가 앞으로 걸어가 물었다.
“진정으로 미쳤구나. 온몸이 갈리는데도 웃고 있다니 말이야.”
“쿡쿡. 웃을 수밖에. 너희들 지금 이 나를 죽였다고 생각하고 있잖아. 안 그래?”
“당연한 것 아닌가. 네 꼴을 보라고.”
“그러니까 우스운 거다. 이 애송아.”
“뭐?”
쌍아가 하늘을 바라보며 낮은 어조로 중얼거렸다.